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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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는 1930년 8월 국민부 내 좌파 세력이 민족 계열 국민부에서 탈퇴한 후, 김광렬과 제휴하여 결성한 군사조직이다. 이종락이 총지휘를 맡았으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표방하며 중국 공산당을 상부로, 국민당 정부 타도를 목표로 삼았다. 1930년 11월 조선혁명군 사령부로 개칭되었으며, 김일성이 소속되어 활동했다. 1931년 1월 지휘부가 일경에 체포되면서 조직이 와해되었고, 이후 세화군, 동방혁명군으로 재편되기도 했다.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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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 결성 (1930년 8월)

이종락국민부 내 좌파 세력은 민족 계열의 국민부에 반대하여 1930년 8월 19일 국민부를 탈퇴했다. 이들은 동아혁명군(東亞革命軍) 수령(首領) 김광렬과 제휴하여 9월 10일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朝鮮革命軍 吉江指揮部)"("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길강성 지휘부(吉江省 指揮部)"라고도 한다)를 만들고, 이종락이 총지휘를 맡았다.

2.1. 국민부와의 갈등

이종락 등 국민부 내 좌파 세력은 민족 계열의 국민부에 반대하여 1930년 8월 19일 국민부를 탈퇴했다. 이들은 1930년 9월 10일에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朝鮮革命軍 吉江指揮部)"를 창설하면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한 17개 구호를 발표했다.

이들은 중국공산당을 상부 조직으로 여기며 국민당 정부 타도를 제1 목표로 삼았다. 또한, 만주 지역 내 조선인 민족주의 계열 항일세력도 적으로 규정하는 등 민족주의 계열의 국민부와는 확연히 다른 노선을 추구했다.

국민부를 탈퇴한 공산주의자들이 1930년 9월 10일자로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를 창설할 당시의 조직표와 선언 및 구호 : 1930년 9월 17일자 길림 주재 일본 총영사의 외무대신앞 보고서.
국민부를 탈퇴한 공산주의자들이 1930년 9월 10일자로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를 창설할 당시의 조직표와 선언 및 구호 : 1930년 9월 17일자 길림 주재 일본 총영사의 외무대신앞 보고서.

2.2. 중국 공산당과의 연계

이종락국민부 내 좌파들은 1930년 8월 19일 민족 계열의 국민부에 반대하여 탈퇴하였다. 이후 이들은 동아혁명군(東亞革命軍) 수령(首領) 김광렬과 제휴하여 9월 10일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朝鮮革命軍 吉江指揮部)"를 창설하였다. 이종락은 총지휘를 맡았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이종락 등 지휘부 인물들은 1930년 9월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구 재건설계 (舊 再建設系)'로 분류되었다.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의 선언문과 17개 구호(口號)는 이들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한 조직임을 보여준다. 구성원 모두 조선인이었지만, 이들은 중국 공산당을 상부 조직으로 여기며 국민당 정부 타도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또한 항일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고, 조선 독립에 대한 언급도 없었으며, 만주 지역 내 조선인 민족주의 계열 항일세력도 적으로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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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의 17개 구호(口號)

2.3. 주요 인물

이종락(1907 ~ 1940)은 국민부를 탈퇴하여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를 창설하고 총지휘를 맡았다. 김광렬(1896 ~ ?)은 동아혁명군(東亞革命軍)의 수령(首領)으로서 이종락과 제휴하여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 창설에 참여하였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이종락 등 지휘부 인물들은 1930년 9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구 재건설계(舊 再建設系)로 분류되었다.

2.4. 강령 및 구호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한 조직이었다. 구성원 모두가 혈통상 조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을 상부로 떠받들며 국민당 정부 타도를 제1의 목표로 하였다. 항일의 목표도 뚜렷하지 않았으며, 조선 독립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만주 지역 내 조선인 민족주의 계열 항일 세력도 적으로 규정하였다.

다음은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의 17개 구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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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구호 내용
1제국주의 국민당 정부 타도
2노농 병사 대표대회 - 소비에트 정부 건설
3조선혁명당, 국민부, 한족연합회, 생육사 및 민회 등의 반혁명 집단 박멸
4중국 공산당 지도하 지방 폭동 조직 참가
5중국 공산군 - 홍군(紅軍)에 편입
6전만적(全滿的) 유격전을 개시하자
7오등(吾等)은 노농혁명(勞農革命)의 무장대이다
8일체 반혁명 무장을 몰수하고, 홍군(紅軍)을 조직하자
9무장폭동에 의하여 군벌전(軍閥戰)을 소멸시키자
10국제 제국주의 및 군벌의 소비에트 구역(區域) 진공(進攻)을 반대하자
11전중국(全中國) 제1차 소비에트 구역(區域) 대표대회(代表大會) 결의를 옹호하자
12제2차 전쟁 반대
13СССР(소련)를 무장하고 사수하자
14백색공포(白色恐怖)와 싸우자
15소비에트 중국(中国) 만세
16중국 홍군(紅軍) 승리 만세
17세계혁명 만세

3. 조선혁명군 사령부로 개칭 (1930년 11월)

1930년 11월 25일,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는 조선혁명군 사령부(朝鮮革命軍 司令部)로 개칭되었다. 이종락의 부하였던 북한 김일성도 이 조직에 소속되어 있었다. 1931년 1월 28일, 이종락, 김광렬 등 지휘부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 조직이 와해되었다.

3.1. 김일성의 초기 활동

북한 김일성은 이종락의 부하로서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 및 조선혁명군 사령부 소속원이었다. 1931년 3월 26일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김일성(金一成), 최득영(崔得永), 류봉화(女子)가 체포되었다. -- 1931년 5월 4일 동아일보에는 김일성(金一成), 최득영(崔得永), 류봉화(劉鳳和) 등이 조사를 마치고 길림성 정부로 호송된다는 기사가 실렸다. --

4. 조선혁명군 사령부 와해 (1931년 1월)

1931년 1월 28일, 이종락, 김광렬 등 지휘부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 조직이 와해되었다. 이종락의 부하였던 김일성도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 및 조선혁명군 사령부 소속원이었다.

-- : 김일성(金一成), 최득영(崔得永), 류봉화(女子)

-- : 김일성(金一成), 최득영(崔得永), 류봉화(劉鳳和) 등이 조사를 끝내고 길림성 정부로 호송된다는 기사.

5. 세화군, 동방혁명군으로 재편 (1931년 3월 ~ 5월)

1931년 3월 23일, 최창걸(? ~ 1931.11), 차광수(1905 ~ 1932) 등 조선혁명군 사령부 잔존 세력은 세화군(世火軍)으로 재편성했다. 같은 해 5월 3일에는 동방혁명군(東方革命軍)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이종락 일파는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여 적극적인 행동으로 전환하였고, 군사령부를 재조직하고 13군단을 배치했다. 이 기사에서는 이종락 등이 체포된 후 고할신(고액신)이 최고 행정집행위원장, 안붕이 군사총지휘관이 되었으며, 길림, 하얼빈, 장춘, 봉천 등 남북만주에 13군단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전한다.

5.1. 최창걸, 차광수의 역할

1931년 3월 23일, 최창걸(崔昌傑, ? ~ 1931.11)과 차광수(車光洙, 1905 ~ 1932) 등 조선혁명군 사령부 잔존 세력은 세화군(世火軍)으로 재편성되었고, 5월 3일에는 동방혁명군(東方革命軍)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이후 내분이 발생했고, 최창걸은 1931년 11월 조선혁명군에 의해 사살되며 조직은 소멸했다.

김일성은 1931년 3월 23일 세화군 군정위원회 위원이 되었으나, 3월 26일에 체포되어 5월 초 취조 후 길림성 정부로 호송되었다. 곧 풀려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최창걸과 차광수를 김일성의 부하였다고 주장하며, 평양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이들의 묘를 조성하였다. 묘비에 있는 소속 부대명은 "조선혁명군"인데, 이는 이들이 조직했던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 (조선혁명군 사령부, 세화군, 동방혁명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는 국민부 산하 조선혁명군 타도를 목표로 했다.

5.2. 내분과 소멸

1931년 3월 23일, 최창걸(崔昌傑, ? ~ 1931.11), 차광수(1905 ~ 1932) 등 조선혁명군 사령부 잔존 세력이 세화군(世火軍)으로 재편성하고, 5월 3일에 동방혁명군(東方革命軍)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내분이 일어나고, 최창걸도 1931년 11월 조선혁명군에 사살되어 조직이 소멸하였다.

6. 독립운동사 자료집의 기록

이종락국민부 내 좌파들이 1930년 8월 19일 국민부를 탈퇴하고, 동아혁명군(東亞革命軍) 수령(首領) https://web.archive.org/web/20180510051629/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7HIL_A9999_1_0026437 김광렬과 제휴하여 9월 10일에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朝鮮革命軍 吉江指揮部)"를 만들었다.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길강성 지휘부(吉江省 指揮部)"라고도 하며, 이종락이 총지휘를 맡았다.

국민부(國民府)를 탈퇴한 공산주의자들이 1930년 9월 10일자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길강지휘부(吉江指揮部)를 창설할 당시의 조직표(組織表)와 내건 선언(宣言) 및 구호(口號): 1930-09-17 일자 길림(吉林) 주재 일본 총영사의 외무대신앞 보고서.
국민부(國民府)를 탈퇴한 공산주의자들이 1930년 9월 10일자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길강지휘부(吉江指揮部)를 창설할 당시의 조직표(組織表)와 내건 선언(宣言) 및 구호(口號): 1930-09-17 일자 길림(吉林) 주재 일본 총영사의 외무대신앞 보고서.


독립운동사자료집 10 : 독립군전투사자료집 / 일본 외무성 보존 문서 /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관한 문서 속보의 건 / 대정 8년 4월 25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자료집에는 대정 8년(1919년) 4월 25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소화 7년 (1932년)에 작성된 기록이다.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의 선언문이나 17개 구호(口號)를 보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한 조직임을 알 수 있다. 구성원 모두가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공산당을 상부로 떠받들며 국민당 정부 타도를 제1의 목표로 하고 있고, 항일의 목표도 뚜렷하지 않으며, 조선독립에 대한 언급은 없고, 만주 지역 내 조선인 민족주의 계열 항일세력도 또한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7. 관련 기록 원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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