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줄
1. 개요
조줄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중대부를 지냈다. 혜제 시기 아버지 조참이 승상이 되었으나 정무를 돌보지 않자 혜제의 명으로 간언했다가 매를 맞았다. 이후 평양후 작위를 물려받았으며, 여태후 4년에 어사대부가 되었으나 여씨 일족 몰락으로 면직되었다.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인 기원전 161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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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61년 사망 -
엘랄란
엘랄란은 촐라 왕족 출신으로 기원전 205년 아누라다푸라 왕국을 침공하여 왕이 되었으며, 공정한 통치로 백성의 신망을 얻었으나 두투가무누 왕자에게 패배한 후 타밀 문학에서 정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
기원전 161년 사망 -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는 기원전 164년부터 162년까지 셀레우코스 제국을 통치한 왕으로, 9세의 나이에 즉위하여 뤼시아스의 섭정을 받았으며,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의 귀환으로 처형당하고 마카베오 반란 진압에 실패했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조줄은 중대부를 지내다가, 혜제 시절에 승상이 된 아버지 조참이 정무를 다스리지 않자 이를 괴이하게 여긴 혜제의 명으로 아버지에게 간언했다가 매 2백 대를 맞았다. 아버지가 죽자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평양후를 습작했다. 여태후 4년(기원전 184년)에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되었으나,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됐다. 기원전 161년에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에 죽어 아들 조기가 습작했다.
2.1. 관직 생활
조줄은 중대부를 지냈다. 혜제 6년(기원전 189년), 아버지 조참이 죽자 평양후를 습작했다. 여태후 4년(기원전 184년)에는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됐으나,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됐다.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인 기원전 161년에 죽어 아들 조기가 습작했다.
2.1.1. 중대부 시절
중대부를 지내다가, 혜제 시절에 승상이 된 아버지가 정무를 다스리지 않자 괴이하게 여긴 혜제의 명으로 아버지에게 간언했다가 매 2백 대를 맞았다. 아버지가 죽자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평양후를 습작했다.
2.1.2. 어사대부 시절
혜제 시절에 승상이 된 아버지 조참이 정무를 다스리지 않자 괴이하게 여긴 혜제의 명으로 아버지에게 간언했다가 매 2백 대를 맞았다. 아버지가 죽자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평양후를 습작했다.
여태후 4년(기원전 184년)에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되었고,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되었다.
2.2. 혜제와 여태후 시기
曹窋중국어은 혜제 때 중대부를 지냈다. 혜제는 아버지 조참이 승상이 되고 나서 정무를 다스리지 않자 이를 괴이하게 여겨 조줄에게 간언하게 했으나, 조줄은 도리어 매를 맞았다.
여태후 4년(기원전 184년)에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되었으나,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됐다. 기원전 161년,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에 죽어 아들 조기가 작위를 이었다.
2.2.1. 부친과의 관계
曹窋중국어은 혜제 시절 승상이었던 아버지 조참이 정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자, 이를 걱정한 혜제의 명으로 아버지에게 간언했다가 매 2백 대를 맞았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평양후 작위를 물려받았다.
2.3. 평양후 습작
중대부를 지내다가, 혜제 시절에 승상이 된 아버지가 정무를 다스리지 않자 괴이하게 여긴 혜제의 명으로 아버지에게 간언했다가 매 2백 대를 맞았다.
아버지가 죽자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평양후를 습작했고, 여태후 4년(기원전 184년)에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됐으나,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됐다.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인 기원전 161년에 죽어 아들 조기가 습작했다.
2.3.1. 습작 과정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아버지가 죽자 평양후를 습작했다.
2.3.2. 습작 이후
아버지가 죽자 기원전 189년에 평양후를 습작했다.
기원전 184년에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되었고, 기원전 180년에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되었다.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인 기원전 161년에 죽어 아들 조기가 습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