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줄
1. 개요
조줄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중대부를 지냈다. 혜제 시기 아버지 조참이 승상이 되었으나 정무를 돌보지 않자 혜제의 명으로 간언했다가 매를 맞았다. 이후 평양후 작위를 물려받았으며, 여태후 4년에 어사대부가 되었으나 여씨 일족 몰락으로 면직되었다.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인 기원전 161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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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61년 사망 -
엘랄란
엘랄란은 촐라 왕족 출신으로 기원전 205년 아누라다푸라 왕국을 침공하여 왕이 되었으며, 공정한 통치로 백성의 신망을 얻었으나 두투가무누 왕자에게 패배한 후 타밀 문학에서 정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
기원전 161년 사망 -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는 기원전 164년부터 162년까지 셀레우코스 제국을 통치한 왕으로, 9세의 나이에 즉위하여 뤼시아스의 섭정을 받았으며,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의 귀환으로 처형당하고 마카베오 반란 진압에 실패했다. -
중국에 관한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중국에 관한 -
카자흐인
카자흐인은 15세기 카자흐 칸국 건국 이후 명칭이 사용된 튀르크계 중앙아시아 북부 유목민족으로, "자유로운 자"를 뜻하는 카자흐라는 명칭은 권위에 저항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유래했으며, 카자흐 초원을 중심으로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번성했고, 유목 생활과 튀르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여러 국가에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고 있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생애
조줄은 중대부를 지내다가, 혜제 시절에 승상이 된 아버지 조참이 정무를 다스리지 않자 이를 괴이하게 여긴 혜제의 명으로 아버지에게 간언했다가 매 2백 대를 맞았다. 아버지가 죽자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평양후를 습작했다. 여태후 4년(기원전 184년)에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되었으나,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됐다. 기원전 161년에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에 죽어 아들 조기가 습작했다.
2.1. 관직 생활
조줄은 중대부를 지냈다. 혜제 6년(기원전 189년), 아버지 조참이 죽자 평양후를 습작했다. 여태후 4년(기원전 184년)에는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됐으나,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됐다.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인 기원전 161년에 죽어 아들 조기가 습작했다.
2.1.1. 중대부 시절
중대부를 지내다가, 혜제 시절에 승상이 된 아버지가 정무를 다스리지 않자 괴이하게 여긴 혜제의 명으로 아버지에게 간언했다가 매 2백 대를 맞았다. 아버지가 죽자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평양후를 습작했다.
2.1.2. 어사대부 시절
혜제 시절에 승상이 된 아버지 조참이 정무를 다스리지 않자 괴이하게 여긴 혜제의 명으로 아버지에게 간언했다가 매 2백 대를 맞았다. 아버지가 죽자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평양후를 습작했다.
여태후 4년(기원전 184년)에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되었고,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되었다.
2.2. 혜제와 여태후 시기
曹窋중국어은 혜제 때 중대부를 지냈다. 혜제는 아버지 조참이 승상이 되고 나서 정무를 다스리지 않자 이를 괴이하게 여겨 조줄에게 간언하게 했으나, 조줄은 도리어 매를 맞았다.
여태후 4년(기원전 184년)에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되었으나,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됐다. 기원전 161년,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에 죽어 아들 조기가 작위를 이었다.
2.2.1. 부친과의 관계
曹窋중국어은 혜제 시절 승상이었던 아버지 조참이 정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자, 이를 걱정한 혜제의 명으로 아버지에게 간언했다가 매 2백 대를 맞았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평양후 작위를 물려받았다.
2.3. 평양후 습작
중대부를 지내다가, 혜제 시절에 승상이 된 아버지가 정무를 다스리지 않자 괴이하게 여긴 혜제의 명으로 아버지에게 간언했다가 매 2백 대를 맞았다.
아버지가 죽자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평양후를 습작했고, 여태후 4년(기원전 184년)에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됐으나,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됐다.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인 기원전 161년에 죽어 아들 조기가 습작했다.
2.3.1. 습작 과정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아버지가 죽자 평양후를 습작했다.
2.3.2. 습작 이후
아버지가 죽자 기원전 189년에 평양후를 습작했다.
기원전 184년에 임오를 대신해 어사대부가 되었고, 기원전 180년에 여씨 일족이 몰락하면서 면직되었다. 평양후가 된 지 29년 만인 기원전 161년에 죽어 아들 조기가 습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