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코리건
1. 개요
조 코리건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골키퍼 코치로, 1966년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하여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1969-70 시즌 유러피언 컵위너스컵과 풋볼 리그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1976년 리그컵 우승에도 기여했다. 1976년부터 1982년까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9경기에 출전했으며, 1982년 FIFA 월드컵 선수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리버풀, 체스터 시티, 스톡포트 카운티, 웨스트브로미치 앨비언, 헐 시티 등에서 골키퍼 코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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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Joseph Thomas Corrigan |
|---|---|
| 출생일 | 1948년 11월 18일 () |
| 출생지 | 잉글랜드 맨체스터 |
| 키 | 1.93m |
| 포지션 | 은퇴 (과거 골키퍼) |
| 청소년 클럽 연도 | 0 0 |
|---|---|
| 청소년 클럽 | 세일 중등학교 맨체스터 시티 |
| 클럽 연도 | 1967–1983 1983 1983–1984 1984 1984 합계 |
|---|---|
| 클럽 | 맨체스터 시티 시애틀 사운더스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 → 노리치 시티 (임대) → 스토크 시티 (임대) |
| 출장수 (골) | 476 (0) 29 (0) 36 (0) 3 (0) 9 (0) 553 (0) |
| 국가대표팀 연도 | 1978 1978–1981 1976–1982 |
|---|---|
|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U-21 잉글랜드 B 잉글랜드 |
|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 | 3 (0) 10 (0) 9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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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사운더스 (1974년)의 축구 선수 -
제프 허스트
제프 허스트는 1966년 FIFA 월드컵 결승전 해트트릭으로 잉글랜드 우승을 이끈 공격수 출신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여러 클럽에서 선수 생활 후 텔포드 유나이티드와 첼시 FC 감독을 역임했다. -
스톡포트 카운티 FC의 비선수진 -
마이크 펠런
마이크 펠런은 잉글랜드 출신 축구 선수 및 지도자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선수로서 FA컵, UEFA 컵 위너스 컵, 프리미어 리그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하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석 코치와 헐 시티 감독을 역임했다. -
스톡포트 카운티 FC의 비선수진 -
클린트 힐 (축구 선수)
클린트 힐은 잉글랜드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코치이며, 트란미어 로버스 등 여러 팀에서 선수로 활약했고, 퀸즈 파크 레인저스 소속으로 챔피언십 우승을 경험했으며, 플리트우드 타운 등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
잉글랜드 남자 B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케니 샌섬
케니 샌섬은 1958년 런던 출생으로 왼쪽 수비수로 활약하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86경기 출전, FIFA 월드컵 출전, FA 유스컵 우승 등의 경력을 가진 전 잉글랜드 축구 선수였다. -
잉글랜드 남자 B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토니 우드콕
토니 우드콕은 잉글랜드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공격수로 활약하며 노팅엄 포리스트, 쾰른, 아스널 등에서 뛰었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으로 42경기에 출전하여 16골을 기록했다.
2. 선수 경력
코리건은 1966년에 유소년 선수 신분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했다. 그는 1967년에 블랙풀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신고식을 치렀다. 코리건은 1969년에 FA컵을 들어올린 해리 다우드의 계보를 이을 선수였다. 이후 1969-70 시즌에 들어 1군 주전으로 자리잡았고, 맨체스터 시티의 유러피언 컵위너스컵과 리그컵의 컵대회 2관왕 주역이 되었다. 그는 1976년 리그컵 우승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첫 경기는 1976년 5월 28일에 열린 이탈리아전으로, 이 경기를 시작으로 9번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했고, 1982년 월드컵 당시 선수단에 이름을 올렸었다. 그는 피터 실턴과 레이 클레멘스가 없었다면 논란의 여지 없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리건은 1980-81 시즌에 FA컵 결승전에 올랐지만, 토트넘 홋스퍼에 패하고도 최우수 선수로 활약했다. 코리건은 맨체스터 시티에서 도합 592번의 경기에 출전했는데, 그보다 많은 경기를 출전한 선수는 같은 골키퍼였던 앨런 오크스였다. 그는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로도 3번 선정되어 리처드 던과 함께 역대 최다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선수였다. 그는 프랭크 스위프트와 베르트 트라우트만과 함께 맨체스터 시티 역사상 정상급 골키퍼로도 회자된다.
코리건은 이후 1983년에 미국의 시애틀 사운더스에 £30,000으로 이적했다. 코리건은 미국에서 몇 달만 머물렀고, 29번의 경기에 출전한 후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으로 둥지를 옮겨 잉글랜드 무대로 복귀했다. 말년에 그는 스토크 시티와 노리치 시티로 임대되기도 했다.
2.1. 맨체스터 시티
코리건은 1966년에 유소년 선수 신분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했다. 그는 1967년에 블랙풀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신고식을 치렀다. 코리건은 1969년에 FA컵을 들어올린 해리 다우드의 계보를 이을 선수였다. 이후 1969-70 시즌에 들어 1군 주전으로 자리잡았고, 맨체스터 시티의 유러피언 컵위너스컵과 리그컵의 컵대회 2관왕 주역이 되었다. 그는 1976년 리그컵 우승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첫 경기는 1976년 5월 28일에 열린 이탈리아전으로, 이 경기를 시작으로 9번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했고, 1982년 월드컵 당시 선수단에 이름을 올렸었다. 그는 피터 실턴과 레이 클레멘스가 없었다면 논란의 여지 없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리건은 1980-81 시즌에 FA컵 결승전에 올랐지만, 토트넘 홋스퍼에 패하고도 최우수 선수로 활약했다. 코리건은 맨체스터 시티에서 도합 592번의 경기에 출전했는데, 그보다 많은 경기를 출전한 선수는 같은 골키퍼였던 앨런 오크스였다. 그는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로도 3번 선정되어 리처드 던과 함께 역대 최다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선수였다. 그는 프랭크 스위프트와 베르트 트라우트만과 함께 맨체스터 시티 역사상 정상급 골키퍼로도 회자된다.
코리건은 이후 1983년에 미국의 시애틀 사운더스에 £30,000으로 이적했다. 코리건은 미국에서 몇 달만 머물렀고, 29번의 경기에 출전한 후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으로 둥지를 옮겨 잉글랜드 무대로 복귀했다. 말년에 그는 스토크 시티와 노리치 시티로 임대되기도 했다.
2.2. 기타 팀
코리건은 1983년에 미국의 시애틀 사운더스에 £30,000으로 이적했다. 코리건은 미국에서 몇 달만 머물렀고, 29번의 경기에 출전한 후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으로 둥지를 옮겨 잉글랜드 무대로 복귀했다. 말년에 그는 스토크 시티와 노리치 시티로 임대되기도 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조 코리건은 잉글랜드 태생의 아일랜드 혈통이다. 그는 1976년부터 1982년까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9경기 출전했다.
4. 감독 경력
조 코리건은 현역 은퇴 후 1994년부터 라파엘 베니테스가 취임하는 2004년까지 리버풀에서 골키퍼 코치를 역임했다. 2004년 9월 21일, 코리건은 체스터 시티의 사단에 합류했지만, 이후 2004년 10월 5일에 스톡포트 카운티의 골키퍼 코치가 되었다. 2005년 2월, 코리건은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에 합류했다. 그는 2008-09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2011년 2월, 코리건은 은퇴를 번복하고 마크 프루도의 후임으로 헐 시티의 골키퍼 코치가 되었는데, 헐 시티 지지자들은 프루도의 지도자 자질에 의문을 제기했다. 코리건은 2011년 8월에 짐 불러드와 시즌 전 슬로베니아 전지 훈련에서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린 후 헐 시티에서의 보직을 내려놓았고, 불러드도 그 결과 방출되었다.
5. 수상 내역
;맨체스터 시티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969–70
* 풋볼 리그컵: 1969–70, 1975–76
* 채리티 실드: 1972
;개인
*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 1976, 1978, 1980
5.1. 클럽
조 코리건은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동하며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에서 1969–70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풋볼 리그컵에서는 1969–70 시즌과 1975–76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채리티 실드에서는 1972 시즌 우승을 기록했다. 개인적으로는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에 1976, 1978, 1980년에 선정되었다.
6. 경력 통계
6.1. 클럽
조 코리건은 맨체스터 시티에서 대부분의 선수 경력을 보냈다. 1967-68 시즌에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하여 1982-83 시즌까지 16시즌 동안 476경기에 출전했다. 1969-70 시즌부터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34경기에 출전했고, 이후 꾸준히 많은 경기에 출장했다. 특히 1975-76 시즌에는 리그 41경기, 리그컵 9경기를 포함해 총 55경기에 출전하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 1976-77 시즌부터 1979-80 시즌까지는 4시즌 연속으로 리그 전 경기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1983년에는 북미 사커 리그의 시애틀 사운더스로 이적하여 29경기에 출전했다. 이후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으로 이적하여 1983-84 시즌에 36경기에 출전했다. 1984-85 시즌에는 노리치 시티와 스토크 시티에서 임대 선수로 각각 3경기와 9경기에 출전했다.
조 코리건의 선수 시절 출장 기록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구단 | 시즌 | 리그 | 컵 | 리그컵 | 기타 | 기타 | ||||||
|---|---|---|---|---|---|---|---|---|---|---|---|---|
| 리그명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맨체스터 시티 | 1969–70 | 1부 리그 | 34 | 0 | 1 | 0 | 7 | 0 | 8 | 0 | 50 | 0 |
| 맨체스터 시티 | 1975–76 | 1부 리그 | 41 | 0 | 2 | 0 | 9 | 0 | 3 | 0 | 55 | 0 |
| 맨체스터 시티 | 1976–77 | 1부 리그 | 42 | 0 | 4 | 0 | 1 | 0 | 2 | 0 | 49 | 0 |
| 맨체스터 시티 | 1977–78 | 1부 리그 | 42 | 0 | 2 | 0 | 7 | 0 | 2 | 0 | 53 | 0 |
| 맨체스터 시티 | 1978–79 | 1부 리그 | 42 | 0 | 2 | 0 | 5 | 0 | 8 | 0 | 57 | 0 |
| 맨체스터 시티 | 1979–80 | 1부 리그 | 42 | 0 | 1 | 0 | 4 | 0 | 0 | 0 | 47 | 0 |
| 시애틀 사운더스 | 1983 | 북미 사커 리그 | 29 | 0 | – | – | – | 29 | 0 | |||
|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 | 1983–84 | 2부 리그 | 36 | 0 | 3 | 0 | 3 | 0 | 0 | 0 | 42 | 0 |
| 노리치 시티 (임대) | 1984–85 | 1부 리그 | 3 | 0 | 0 | 0 | 1 | 0 | 0 | 0 | 4 | 0 |
| 스토크 시티 (임대) | 1984–85 | 1부 리그 | 9 | 0 | 0 | 0 | 0 | 0 | 0 | 0 | 9 | 0 |
6.2.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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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골 |
|---|---|---|---|
| 잉글랜드 | 1976 | 1 | 0 |
| 1977 | 0 | 0 | |
| 1978 | 1 | 0 | |
| 1979 | 1 | 0 | |
| 1980 | 2 | 0 | |
| 1981 | 2 | 0 | |
| 1982 | 2 | 0 | |
| 합계 | 9 | 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