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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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버풀 FC는 1892년 존 호울딩에 의해 창단된 잉글랜드의 프로 축구 클럽이다. 랭커셔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1900년대 초반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명성을 쌓았다. 빌 샹클리 감독 부임 이후 FA컵, 유러피언컵 등에서 우승하며 전성기를 맞았으며, 밥 페이즐리 감독 체제에서 유러피언컵 3회 우승을 포함해 20개의 트로피를 획득했다. 1980년대에는 헤이젤 참사와 힐스버러 참사라는 비극을 겪었지만, 케니 달글리시 감독의 지휘 아래 리그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위르겐 클롭 감독 시대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리버풀은 앤필드 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며, 'You'll Never Walk Alone'을 응원가로 한다.

리버풀 FC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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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로고
별칭더 레즈 (The Reds)
창단1892년 6월 3일
소유주펜웨이 스포츠 그룹
회장톰 워너
감독아르네 슬로트
리그프리미어리그
경기장안필드
수용 인원61,276명
웹사이트리버풀 FC 공식 웹사이트
클럽 명칭
원어 명칭Liverpool Football Club
유니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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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리버풀 FC의 창립자, 존 홀딩
리버풀 FC의 창립자, 존 홀딩

엠린 휴스를 안고 있는 밥 페이즐리 동상. 페이즐리는 클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으로 남아 있다.
엠린 휴스를 안고 있는 밥 페이즐리 동상. 페이즐리는 클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으로 남아 있다.


리버풀 FC의 역사는 1892년 존 홀딩이 에버턴과의 분쟁 끝에 앤필드를 기반으로 새로운 팀을 창단하면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에버턴 FC & 애슬레틱 그라운드 주식회사'로 명명되었으나, 잉글랜드 축구 협회의 거부로 인해 1892년 3월 리버풀 FC로 이름을 바꾸었다.

리버풀은 1892년 9월 1일 로더럼 타운과의 친선 경기에서 7-1로 승리하며 첫 경기를 치렀다. 초기 선수단은 존 맥케나 감독이 스카우팅한 스코틀랜드 선수들로 구성되어 '맥의 팀'으로 불렸다. 리버풀은 랭커셔 리그 우승을 거쳐 2부 리그에 합류했고, 1896년 1부 리그로 승격했다. 톰 왓슨 감독 하에 1901년과 1906년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14년 첫 FA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번리에게 패했다. 1922년과 1923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나, 1946-47 시즌 조지 케이 감독 하에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50년 아스널과의 FA컵 결승전에서 패배했고, 1953-54 시즌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1958-59 FA컵에서 비리그 팀 워스터 시티에 패한 후, 빌 샹클리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샹클리는 24명의 선수를 방출하고 부츠룸을 만들어 팀을 재정비했다. 1962년 1부 리그로 승격한 후, 1964년 리그 우승, 1965년 첫 FA컵 우승을 달성했다. 1966년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유러피언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패했다. 1972-73 시즌 리그와 UEFA컵을 동시에 우승했고, 1974년 FA컵을 다시 우승했다. 샹클리 감독은 은퇴하고 밥 페이즐리가 그 뒤를 이었다.

페이즐리 감독은 1976년 리그와 UEFA컵을 다시 한번 석권했다. 다음 시즌 리그 우승을 유지하고 유러피언컵을 처음으로 우승했지만, 1977년 FA컵 결승전에서는 패했다. 1978년 유러피언컵을 지켜냈고, 1979년 1부 리그 우승을 되찾았다. 페이즐리는 9시즌 동안 유러피언컵 3회, UEFA컵 1회, 리그 우승 6회, 리그컵 3회 연속 우승 등 20개의 트로피를 획득했다.

페이즐리 은퇴 후 조 파건이 감독직을 이어받아, 첫 시즌에 리그, 리그컵, 유러피언컵을 우승하며 잉글랜드 팀 최초로 한 시즌에 3개의 트로피를 획득했다. 1985년 유벤투스와의 헤이젤 경기장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헤이젤 경기장 참사가 발생했다. 리버풀 팬들이 유벤투스 팬들에게 돌진하여 39명이 사망했고, 이로 인해 잉글랜드 클럽은 5년, 리버풀은 6년 동안 유럽 대회 출전이 금지되었다. 14명의 리버풀 팬이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파건은 참사 직전 은퇴를 발표했고, 케니 달글리시가 선수 겸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달글리시 재임 기간 동안 클럽은 리그 우승 3회, FA컵 2회를 우승했다. 그러나 1989년 힐스버러 참사로 인해 97명의 리버풀 팬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후 테일러 보고서가 발표되어 경기장 안전에 대한 정부 검토가 이루어졌고, 1부 리그 팀들은 모두 좌석제 경기장을 갖추게 되었다.

달글리시는 1991년 사임하고 그레이엄 수네스가 감독이 되었다. 수네스 감독 하에 리버풀은 1992년 FA컵 결승전에서 우승했지만 리그 성적은 부진했고, 1994년 로이 에반스로 교체되었다. 에반스는 1995년 리그컵 결승전에서 우승했지만, 1998년 제라르 울리에가 공동 감독으로 임명되고, 에반스 사임 후 단독 감독이 되었다. 2001년, 울리에 감독 하에 리버풀은 FA컵, 리그컵, UEFA컵 트레블을 달성했다. 2001-02 시즌 심장 수술을 받은 울리에는 리그 2위를 차지했고, 2003년 리그컵을 추가로 우승했지만, 이후 우승 경쟁을 펼치지 못했다.

라파엘 베니테스가 2003-04 시즌 후 울리에를 대신하여 감독이 되었다. 베니테스의 첫 시즌에 리버풀은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승부차기 끝에 AC 밀란을 꺾고 우승했다. 다음 시즌 리버풀은 프리미어 리그 3위, 2006년 FA컵 결승전에서 우승했다. 2006-07 시즌 미국의 사업가 조지 길렛과 톰 힉스가 클럽을 인수했다. 리버풀은 2007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AC 밀란에 패했다. 2008-09 시즌 리버풀은 높은 승점을 기록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준우승했다.

2009-10 시즌 리버풀은 7위를 차지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고, 베니테스는 로이 호지슨으로 대체되었다. 2010-11 시즌 초 리버풀은 파산 직전에 놓였고, 존 W. 헨리가 클럽을 인수했다. 부진한 성적으로 호지슨은 케니 달글리시로 교체되었다. 2011-12 시즌 리버풀은 리그컵 우승과 FA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8위를 차지하며 달글리시는 해고되었다. 브렌던 로저스가 감독이 되었고, 2013-14 시즌 우승 경쟁을 펼쳤지만 맨체스터 시티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실망스러운 2014-15 시즌 후 로저스는 2015년 10월 해고되었다.

위르겐 클롭이 로저스의 후임으로 부임했다. 클롭의 첫 시즌에 리버풀은 풋볼 리그컵과 UEFA 유로파리그 결승에 진출했지만 모두 준우승했다. 2018-19 시즌, 리버풀은 높은 승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클롭은 리버풀을 2018년과 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연속으로 이끌었고, 2019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토트넘 홋스퍼를 꺾고 우승했다. 리버풀은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고, 2019-20 프리미어 리그에서 30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24년 1월 클롭은 시즌 종료 후 클럽을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고, 2024년 5월 아르네 슬롯이 그의 후임으로 발표되었다.

2.1. 창단과 초기 (1892-1959)

존 호울딩은 1892년 3월 15일 리버풀 축구 클럽을 창단하였다. 이는 안필드 경기장 임대료 문제로 에버턴과 결별한 후였다. 구단의 최초 이름은 "에버턴 F.C & 애슬레틱 그라운즈"(Everton F.C. and Athletic Grounds, Ltd.영어)였으나, 잉글랜드 축구 협회가 기존 에버턴 팀과의 혼동을 이유로 승인을 거부하여 리버풀 축구 클럽(Liverpool F.C.)으로 변경되었다.

수염과 보타이를 착용한 나이든 대머리 존 홀딩의 흑백 사진.
리버풀 FC의 창립자, 존 홀딩

안필드. 리버풀 축구클럽의 홈 구장이다.
안필드. 리버풀 축구클럽의 홈 구장이다.


리버풀은 창단 첫 시즌에 랭커셔 리그에서 우승하였고, 1893-94 시즌 2부 리그로 승격되었다. 2부 리그에서도 전승 무패로 우승하며 1부 리그로 승격하였다. 1901년 클럽 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1906년에도 우승을 추가하였다. 1914년에는 FA 컵 결승에 처음 진출했으나 번리에게 1-0으로 패배하였다.

1922년과 1923년, 리버풀은 리그 2연패를 달성하였다. 하지만 이후 조지 케이 감독 체제에서 1946-47 시즌 5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 다른 우승컵을 획득하지 못했다. 1950년에는 FA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아스널에게 패배했다. 1953-54 시즌, 리버풀은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2.2. 빌 섄클리와 밥 페이즐리 시대 (1959-1983)

안필드 밖에 있는 빌 섄클리 동상
안필드 밖에 있는 빌 섄클리 동상

1959년 빌 섄클리가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리버풀은 1부 리그로 승격하지 못했다. 섄클리는 부임 후 24명의 선수들을 방출하고 팀을 재정비했다. 1961년, 리버풀은 섄클리 감독 부임 2시즌 만에 1부 리그로 승격했는데, 이는 2부 리그 강등 이후 7년 만의 일이었다.

1961-62 시즌 1부 리그로 승격한 빌 섄클리의 리버풀은 3시즌 만인 1963-64 시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리버풀 통산 6번째 리그 우승이자, 1947년 마지막 우승 이후 17년 만의 일이었다. 1965년에는 리버풀 통산 첫 FA컵 우승을 차지했고, 1965-66 시즌에는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UEFA 컵위너스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연장전 끝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패하며 더블에는 실패했다.

1972-73 시즌에는 리그 우승과 UEFA컵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며, 리버풀의 첫 번째 더블을 기록했다. 1974년에는 두 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빌 섄클리는 명예롭게 은퇴했고, 그의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밥 페이즐리가 새로운 감독이 되었다.

앤필드 외부에 있는 부상당한 전 리버풀 주장 엠린 휴스를 안고 있는 밥 페이즐리 동상. 페이즐리는 클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으로 남아 있다.
앤필드 외부에 있는 부상당한 전 리버풀 주장 엠린 휴스를 안고 있는 밥 페이즐리 동상. 페이즐리는 클럽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으로 남아 있다.

페이즐리 감독은 빌 섄클리보다 더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었다. 팀을 맡은 지 두 시즌 만인 1975-76 시즌에 리그와 UEFA컵 우승으로 더블을 이끌었다. 1976-77 시즌에는 리그 2연패를 달성했고, 처음으로 유러피언 컵(챔피언스리그의 전신) 우승에도 성공했다. FA컵 결승전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하며 잉글랜드 축구 사상 최초의 트레블 달성에는 실패했다.

1977-78 시즌에 리버풀은 리그 3연패와 유러피언 컵 2연패를 달성하며 네 번째 더블을 차지했다. 이 시즌 리그 우승 당시에는 총 42경기에서 16골만을 실점하는 기록을 세웠다. 페이즐리 감독은 1973-74 시즌부터 1982-83 시즌까지 9시즌 동안 리버풀을 이끌며 총 20개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6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유러피언 컵 우승, 1번의 UEFA컵 우승, 3번의 리그컵 우승, 6번의 채러티 실드 우승, 1번의 UEFA 슈퍼컵 우승)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트로피는 FA컵이었다. 페이즐리는 1983년 섄클리처럼 명예롭게 은퇴했고, 그의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조 페이건이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2.3. 헤이젤 참사와 힐스버러 참사 (1983-1991)

조 페이건은 1983년에 리버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1983-84 시즌, 리버풀은 리그, 리그 컵,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하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그러나 리그 컵은 FA컵보다 권위가 낮은 대회로 여겨져, 엄밀한 의미의 트레블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1984-85 시즌, 리버풀은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여 유벤투스와 맞붙었다. 벨기에 에젤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킥오프 전부터 리버풀 훌리건들이 유벤투스 서포터들을 공격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낡은 벽이 무너지면서 39명이 사망하고 600여 명이 부상당하는 헤이젤 참사가 발생했다.

경기는 그대로 진행되었고, 리버풀은 유벤투스에게 패했다. 이 사건으로 UEFA는 잉글랜드의 모든 클럽에 대해 5년간 유럽 대회 출전을 금지했고, 리버풀은 10년 징계를 받았으나 후에 6년으로 줄었다. 난동을 부린 리버풀 훌리건 14명은 학살 혐의로 6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페이건 감독은 참사 후 사임했다.

페이건의 사임 후, 리버풀의 스트라이커였던 케니 달글리시가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했다. 달글리시는 1985-86 시즌 더블(리그와 FA컵 우승)을 포함해 세 번의 리그 우승과 두 번의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리버풀의 성공은 힐스버러 참사로 인해 빛이 바랬다.

1989년 4월 15일, 리버풀은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FA컵 준결승전을 힐스버러 스타디움(셰필드 웬즈데이의 홈구장)에서 치르게 되었다. 경기장에 너무 많은 리버풀 팬들이 몰려들어 펜스가 무너지면서 94명이 사망하고 750여 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부상자 중 2명이 추가로 사망하여 총 사망자는 96명이 되었다.

이 사건 이후 피터 테일러 재판관은 힐스버러 경기장의 안전 문제와 경찰의 통제 실패를 지적하며, 상위권 리그 팀들은 홈경기장을 모두 좌석제로 개조해야 한다는 내용의 테일러 리포트를 발표했다. 달글리시는 1990년에 선수에서 은퇴하고 감독직에 전념했지만, 1991년 힐스보로 참사의 여파로 사임했다.

2.4. 침체기와 회복 (1991-2004)

그레이엄 수네스가 케니 달글리시의 뒤를 이어 리버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수네스 감독 체제에서 리버풀은 1992년 FA컵 결승전에서 우승했지만, 리그에서는 2년 연속 6위에 머물렀다. 결국 1994년 1월, 수네스는 경질되고 로이 에반스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에반스 감독은 1995년 리그컵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에반스 체제에서 리버풀은 몇 차례 우승 경쟁을 펼쳤지만, 1996년과 1998년에 기록한 3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1998-99 시즌, 제라르 울리에가 공동 감독으로 부임했고, 에반스가 사임한 1998년 11월부터는 단독 감독 체제를 구축했다.

2001년, 울리에 감독 체제에서 리버풀은 FA컵, 리그컵, UEFA컵 우승을 달성하며 '트레블'을 기록했다.

2.5. 베니테스와 클롭 시대 (2004-현재)

라파엘 베니테스는 2003-04 시즌이 끝나고 제라르 울리에의 후임으로 리버풀 감독에 부임했다. 베니테스 감독의 첫 시즌, 리버풀은 리그에서 5위를 기록했지만,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AC 밀란을 상대로 3-3 무승부 후 승부차기 끝에 3-2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는 '이스탄불의 기적'으로 불린다.

다음 시즌,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에서 3위를 기록했고, 2006년 FA컵 결승전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3-3 무승부 후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우승했다. 2006-07 시즌에는 미국의 사업가 조지 길렛과 톰 힉스가 클럽을 인수하며, 218.9에 달하는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리버풀은 2007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AC 밀란에 2-1로 패했다. 2008-09 시즌, 리버풀은 86점을 획득하며 프리미어리그 최고 승점을 기록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9-10 시즌,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에서 7위를 기록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고, 베니테스는 상호 합의 하에 팀을 떠났다. 그의 후임으로는 풀럼 감독이었던 로이 호지슨이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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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임기
로이 호지슨2010 ~ 2011


2010-11 시즌 초, 리버풀은 파산 위기에 놓였고, 채권자들은 힉스와 길렛의 의사에 반하여 클럽 매각을 법원에 요청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펜웨이 스포츠 그룹의 소유주인 존 W. 헨리가 클럽 인수 입찰에 성공하여 2010년 10월 리버풀의 소유주가 되었다. 시즌 초반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호지슨 감독은 상호 합의 하에 팀을 떠났고, 과거 리버풀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케니 달글리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2011-12 시즌, 리버풀은 리그컵에서 우승하며 8번째 우승 기록을 세웠고, FA컵 결승에도 진출했지만, 리그에서는 8위에 그치며 18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고, 결국 달글리시는 해임되었다. 그의 후임으로는 브렌던 로저스가 부임했다.

로저스 감독 체제 하의 리버풀은 2013-14 시즌, 예상을 깨고 우승 경쟁을 펼치며 챔피언 맨체스터 시티에 이어 2위를 차지, UEFA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했다. 이 시즌에 리버풀은 101골을 기록했는데, 이는 1895-96 시즌의 106골 이후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2014-15 시즌, 리버풀은 리그에서 6위에 그치며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었고, 다음 시즌 초반에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로저스는 2015년 10월 해임되었다.

로저스의 후임으로는 위르겐 클롭이 부임했다. 클롭 감독의 첫 시즌, 리버풀은 풋볼 리그컵과 UEFA 유로파리그 결승에 진출했지만, 두 대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2018-19 시즌, 리버풀은 97점을 획득하며 2008-09 시즌의 86점을 넘어섰지만, 단 한 경기만 패배하고도 우승하지 못한 팀 중 최고 기록을 세우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클롭은 리버풀을 2018년과 2019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연속으로 진출시켰고, 2019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토트넘 홋스퍼를 2-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리버풀은 2019년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의 플라멩구를 1-0으로 꺾고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이후 리버풀은 2019-20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하며 30년 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리버풀은 7경기를 남겨두고 우승을 확정지으며 역대 최단 기간 우승 기록을 세웠고, 클럽 최고 기록인 99점을 기록했으며,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다 승리 공동 기록인 32승을 거두었다.

2022년, 리버풀은 리그컵과 FA컵에서 모두 첼시를 승부차기로 꺾고 우승했다. 2024년 1월, 클롭은 시즌 종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4년 5월 20일, 아르너 슬롯이 클롭의 후임으로 발표되었고, 6월 1일 감독직에 취임했다.

3. 경기장

리버풀 FC는 아치볼드 리치(Archibald Leitch)가 설계한 안필드를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훈련장은 웨스트 더비 지역에 있는 멜우드를 195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다. 멜우드는 커비에 있는 리버풀 아카데미와는 다른 시설이다. 안필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필드 문단을, 멜우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훈련 시설 문단을 참조하라.

3.1. 안필드

1994년에 재개조한 이후의 스피온 콥 스탠드 (2006년 8월 마카비 하이파 FC와의 경기).
1994년에 재개조한 이후의 스피온 콥 스탠드 (2006년 8월 마카비 하이파 FC와의 경기).

스피온 콥 스탠드의 밖.
스피온 콥 스탠드의 밖.

섕클리 게이트
섕클리 게이트

안필드 경기장
안필드 경기장


안필드아치볼드 리치(Archibald Leitch)가 설계한 경기장으로, 원래는 지역 라이벌인 에버턴 FC의 홈구장이었다. 1884년 영국 리버풀 스탠리 파크 근처에 지어졌으며, 당시에는 에버턴 FC가 사용하였다.

1892년 경기장 임대료 문제로 에버턴 FC가 안필드를 떠난 후, 안필드 소유주였던 존 호울딩이 리버풀 FC를 창단하였다. 창단 당시 안필드 수용 규모는 2만 명 정도였지만, 리버풀의 첫 홈경기 관중은 100명에 불과했다.

1906년, 경기장 한쪽 스탠드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 명칭인 스피온 콥(Spion Kop)이 공식적으로 붙여졌다. 제2차 보어 전쟁 당시 스피온 콥 전투에서 랭커셔 연대 소속 군인 약 300여 명이 전사했는데, 이들 중 다수가 리버풀 출신이었다. 스피온 콥 스탠드는 최대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 단일 스탠드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였다. 많은 잉글랜드 경기장들이 스피온 콥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안필드의 스피온 콥은 당시 영국에서 가장 컸으며, 경기장 전체보다 더 많은 서포터를 수용할 수 있었다. 1994년, 힐스버러 참사 이후 안전 문제와 테일러 리포트로 인해 안필드는 모든 좌석을 갖추게 되었고, 스피온 콥 스탠드는 12,390명 규모로 축소되었다.

안필드 로드 스탠드는 스피온 콥 스탠드 맞은편에 위치하며, 원정 팀 서포터가 자리한다. 1998년 재개조되어 2008년 기준 9,074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안필드에서 가장 최신 스탠드이다. 메인 스탠드(12,227명 규모, TV 카메라 위치)와 센테너리 스탠드(11,762명 규모)는 이 두 스탠드 사이에 있다. 메인 스탠드는 1973년 재개조 이후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 가장 오래되었으며, 선수 대기석과 감독석이 있다. 센테너리 스탠드는 과거 켐린 로드 스탠드로 불렸으나, 1992년 구단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여 재개조되면서 이름이 바뀌었고, 켐린 로드는 철거되어 주소에서도 사라졌다. 2016년 기준 총 수용 인원은 54,074명이며, UEFA 경기장 등급에서 4등급을 받았다.

2004년 7월 30일, 리버풀 시 의회는 안필드에서 약 270m 떨어진 스탠리 파크에 6만 명 규모의 새 구장 건립 계획을 승인했고, 2006년 9월 8일에는 리버풀이 해당 부지를 999년간 임대하는 것을 승인했다. 2007년 2월, 조지 질레트와 톰 힉스의 구단 인수 후 새 구장 건설은 재설계되었고, 2007년 11월 시 의회의 동의를 얻어 2008년 6월 착공했다. 미국 건설업체 HKS, inc가 2011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었으나, 경제 상황 등으로 개장이 늦춰지다가 2012년 10월 안필드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구장 인근 주택 90채를 철거하고 150을 투자했다.

안필드의 라커룸 문은 홈팀과 원정팀 쪽의 크기가 다르며, 홈팀 쪽 문이 더 작다. 이는 상대적으로 선수들을 더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3.2. 훈련 시설

리버풀 FC의 훈련 시설은 웨스트 더비에 있는 멜우드이다. 멜우드는 1950년대부터 사용되어 온 훈련장이다. 리버풀 FC 아카데미커비에 있으며, 멜우드와는 다른 시설이다.

4. 엠블럼과 유니폼

리버풀은 1892년 창단 당시 파란색과 흰색 사선 무늬 유니폼을 사용했지만, 1896년 도시의 색상인 빨간색을 채택했다. 1901년에는 도시의 상징인 리버 버드를 엠블럼(배지)으로 채택했지만, 1955년까지는 유니폼에 포함되지 않았다. 1964년 빌 샹클리 감독은 선수들의 심리적 위압감을 높이기 위해 상·하의 모두 빨간색으로 통일한 유니폼을 도입했다.

원정 유니폼은 주로 노란색이나 흰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였지만, 회색, 녹색, 금색 등 다양한 색상 조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1979년 히타치와 계약을 맺으며 유니폼에 스폰서 로고를 부착한 최초의 잉글랜드 프로 클럽이 되었고, 이후 크라운 페인츠, 캔디, 칼스버그를 거쳐 2010-11 시즌부터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 스폰서가 되었다.

1992년, 클럽 100주년을 기념하여 샹클리 게이트와 힐즈버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영원한 불꽃을 상징하는 쌍둥이 불꽃이 포함된 새로운 엠블럼이 제작되었다. 2012년, 워리어 스포츠의 첫 번째 리버풀 유니폼은 1970년대 엠블럼으로 회귀했으며, 힐즈버러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불꽃과 숫자 96은 유니폼 뒷목으로 옮겨졌다.

4.1. 엠블럼

샹클리 게이트에 묘사된 리버풀 배지의 한 버전
샹클리 게이트에 묘사된 리버풀 배지의 한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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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의 엠블럼은 리버풀 시의 상징인 '리버 버드(Liver Bird)'를 중심으로 디자인되었다. 엠블럼에는 안필드의 샹클리 게이트 문 장식과 서포터들의 응원가인 "You'll never walk alone" 문구가 새겨져 있다. 리버 버드 양쪽의 불꽃은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영원한 불꽃을 상징하며, 안필드 외부에 있는 힐스버러 기념비에도 묘사되어 있다. 리버 버드는 리버풀 시내 피어 헤드에 위치한 로열 리버 빌딩의 두 개의 시계탑 상단에 있는 새를 본떠 만들었으며, 리버풀 선원들의 수호신이다.

4.2. 유니폼

리버풀의 홈 유니폼은 1960년대 중반까지 빨간색 상의와 흰색 하의를 사용했다. 1892년 창단 당시에는 에버턴과 같은 파란색과 흰색 사선 무늬 유니폼을 사용했지만, 1896년부터 도시의 색상인 빨간색을 채택했다. 1901년에는 도시의 상징인 리버 버드를 엠블럼으로 채택했다.

1964년, 빌 샹클리 감독은 안데를레흐트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상·하의 모두 빨간색으로 통일한 유니폼을 선보였다. 당시 선수였던 이언 세인트 존은 자서전에서 샹클리 감독이 빨간색이 위험과 힘을 상징한다고 믿었으며, 선수들에게 빨간색 유니폼이 더 위협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파란색과 흰색 사선 무늬 유니폼과 흰색 반바지
upright


원정 유니폼은 주로 흰색 상의에 검은색 하의이거나 노란색이었다. 1987년에는 회색 유니폼이 도입되어 1991-92 시즌까지 사용되었고, 이후 녹색 상의와 흰색 하의 조합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다양한 색상 조합을 시도했으며, 2008-09 시즌에는 회색 유니폼이 다시 도입되었다.

유니폼 제조사는 1985년까지 엄브로, 이후 아디다스, 1996년부터 리복이 맡았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다시 아디다스가 제작했고, 2012-13 시즌부터 워리어 스포츠가 유니폼을 공급했다. 2015년 2월, 워리어 스포츠의 모회사인 뉴발란스가 유니폼을 제작하게 되었다. 2020-21 시즌부터는 나이키가 공식 유니폼 공급업체이다.

샹클리 게이트에 묘사된 리버풀 배지의 한 버전
샹클리 게이트에 묘사된 리버풀 배지의 한 버전


리버풀은 1979년 히타치와 계약을 맺으며 유니폼에 스폰서 로고를 부착한 최초의 잉글랜드 프로 클럽이 되었다. 이후 크라운 페인츠, 캔디, 칼스버그를 거쳐, 2010-11 시즌부터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 스폰서가 되었다.

5. 서포터

리버풀 팬들은 종종 그들만의 언어로써 스피온 캅 스탠드를 코파이트(kopites)라고 언급하고 있다. 리버풀은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모든 홈 경기들은 거의 매진이 되기도 한다. 현재 시즌 평균 43.984명으로 리그 5위를 기록하고 있고, 97.2%의 관중 동원율을 기록하고 있다.

콥 스탠드
콥 스탠드


리버풀 축구 클럽의 주 응원가(anthem)인 You'll Never Walk Alone은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뮤지컬 커로젤에서 따왔다. 리버풀 출신의 가수 게리 & 더 페이스메이커스가 불렀다. 이 노래는 1960년대부터 리버풀 축구 클럽의 주 응원가(anthem)으로서 불리고 있다. 다른 축구단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축구 팬들에게 인기가 높다. 1982년 8월 2일 前 감독 빌 섕클리를 기리기 위한 섕클리 게이츠의 제막식이 거행되었는데 이때 섕클리 게이츠의 꼭대기에 이 노래이자 응원가가 장식되었다. 그리고 이 You'll Never Walk Alone은 리버풀의 엠블럼에도 들어가게 된다.

이 노래는 셀틱 FC,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입스위치 타운 FC, SK 랍니다 비엔, 페예노르트, 아약스 암스테르담, SL 벤피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FC 도쿄 등의 서포터들에게도 불리게 되었다. 또한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직후 열린 리버풀 경기에서는 피해 지역인 일본을 향해 "You'll Never Walk Alone"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래하며 메시지를 전달했다.

유명인 서포터로는 비틀즈 멤버 중 존 레논,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참고로, 폴 매카트니는 에버턴 팬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영화 배우, 6대 제임스 본드 역), 캐롤라인 보즈니아키(테니스 선수), 다렌 틸(격투가), 밀리 바비 브라운(배우), 아담 우드야드(배우), 안젤리나 졸리(배우), 브래드 피트(배우), 클라이브 오웬(배우), 닥터 드레(래퍼/음악 프로듀서), 게리 배로우(가수), 존 비숍(코미디언), 킴 캐트럴(배우), 라나 델 레이(가수), 르브론 제임스(농구 선수), 리암 니슨(배우), 멜라니 브라운(가수), 마이크 마이어스(배우), 레베카 퍼거슨(가수), 스티븐 그레이엄(배우), GLAY의 베이시스트 JIRO, Suchmos 보컬 요시카와 히로키, 김재욱(배우), 시라이 유우스케(성우) 등이 있다.

6. 경영 및 재정

2010년, 리버풀 이사회는 미국의 뉴잉글랜드 스포츠벤처(NESV)에 구단을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NESV 소속 펜웨이 스포츠 그룹(FSG)의 존 헨리가 구단주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8년 4월, 미국의 경제 미디어 포브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아스널에 이어 리버풀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축구 클럽 4위로 선정했다. 당시 리버풀은 채무를 포함해 100 (605) 가치로 평가받았다.

2024년 1월, 회계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가 발표한 딜로이트 풋볼 머니 리그에 따르면, 2022-23 시즌 클럽 수입은 593.8이며, 세계 축구 클럽 중 7위를 기록했다.

;메인 스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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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명본사 소재지사용 시작년도사용 종료년도
히타치(HITACHI) 도쿄19721981
Crown Paints 랭커셔주더웬19821987
캔디 브루게리오19881991
칼스버그(Carlsberg) 코펜하겐19922009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 런던2010현재까지

7. 선수단

2024-25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리버풀의 기본 포메이션은 4-2-3-1 포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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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2일 현재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 홈그로운 선수는 잉글랜드 또는 웨일스 축구 협회에 3년 이상 등록된 선수를 의미하며, 21세 이하 선수는 2003년 1월 1일 이후 출생한 선수를 의미한다.

감독은 위르겐 클롭이다.

7.1. 현재 선수 명단 (2024년 8월 30일 기준)

Liverpool F.C.영어의 2024년 8월 30일 기준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7.2. 임대 선수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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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임대 선수 명단
번호포지션이름국적임대 구단
22DF캘빈 램지Scotland영어위건 애슬레틱
43MF스테판 바이체티치Spain영어레드불 잘츠부르크
45GK마르셀루 피탈루가Brazil영어리빙스턴
46DF리스 윌리엄스England영어모컴
47DF너새니얼 필립스England영어더비 카운티
50FW벤 도크Scotland영어미들즈브러

7.3. 유명 선수

이언 캘러건은 리버풀 통산 최다 출장(857경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언 러시는 리버풀 통산 최다 득점(346골)을 기록하고 있다. 스티븐 제라드는 리버풀 역사상 최장수 주장(12시즌)이다. 로저 헌트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멤버이며, 1961-62 시즌 41골로 리버풀 한 시즌 리그 최다 득점자로 기록되었다. 고든 호지슨은 통산 240골로 3위에 랭크되었고, 17개의 해트 트릭을 기록했다. 로비 파울러는 1994-95 시즌 아스널 전에서 4분 32초 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해 리버풀과 분데스리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8. 코칭 스태프

현재 리버풀 감독 아르너 슬로트
현재 리버풀 감독 아르너 슬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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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코칭 스태프
직책이름
감독아르너 슬로트
수석 코치십케 훌스호프
수석 코치존 헤이팅아
1군 골키퍼 코치파비안 오테
1군 골키퍼 코치클라우디오 타파렐
1군 퍼포먼스 코치루벤 페터스
1군 피트니스 코치코널 머타
아카데미 디렉터알렉스 잉글소프

9. 우승 기록

리버풀의 첫 번째 트로피는 창단 시즌에 우승한 랭커셔 리그였다. 1901년에 클럽은 첫 리그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19번째이자 가장 최근 우승은 2020년이었다. 1965년 FA컵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리버풀이 가장 성공적인 시기는 1980년대로, 리그 타이틀 6회, FA컵 2회, 리그컵 4회, 풋볼 리그 슈퍼컵 1회, 자선 쉴드 5회(1회 공동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컵 2회를 우승했다. 2020년 리버풀은 8개의 다른 10년대에 리그 타이틀을 획득한 최초의 잉글랜드 클럽이 되었다.

리버풀은 다른 어떤 잉글랜드 팀보다 많은 1부 리그 승리와 승점을 기록했다. 또한 2015년까지 50년 동안 평균 리그 순위(3.3)가 가장 높았으며, 1900년~1999년 기간 동안 아스널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평균 리그 순위(8.7)를 기록했다.

* 더블(2관왕):
리그유러피언컵 (2): 1976-77, 1983-84
리그UEFA컵 (2): 1972-73, 1975-76
리그컵유러피언컵 (1): 1980-81
* 트레블(3관왕):
리그, 리그컵유러피언컵 (1): 1983-84
** FA컵, 리그컵UEFA컵 (1): 2000-01

9.1. 국내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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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우승 기록
종류대회타이틀시즌
국내퍼스트 디비전/프리미어리그191900–01, 1905–06, 1921–22, 1922–23, 1946–47, 1963–64, 1965–66, 1972–73, 1975–76, 1976–77, 1978–79, 1979–80, 1981–82, 1982–83, 1983–84, 1985–86, 1987–88, 1989–90, 2019–20
세컨드 디비전41893–94, 1895–96, 1904–05, 1961–62
FA컵81964–65, 1973–74, 1985–86, 1988–89, 1991–92, 2000–01, 2005–06, 2021–22
풋볼 리그컵/EFL컵101980–81, 1981–82, 1982–83, 1983–84, 1994–95, 2000–01, 2002–03, 2011–12, 2021–22, 2023-24
FA 자선 쉴드/FA 커뮤니티 실드161964*, 1965*, 1966, 1974, 1976, 1977*, 1979, 1980, 1982, 1986*, 1988, 1989, 1990*, 2001, 2006, 2022 (* 공동 우승)
풋볼 리그 슈퍼컵11985–86

* 공동 우승
* 더블(2관왕):
리그FA컵 (1): 1985–86
리그와 리그컵 (3): 1981–82, 1982–83, 1983–84
** FA컵과 리그컵 (1): 2021–22

9.2. 국제 대회

리버풀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6회(1976-77, 1977-78, 1980-81, 1983-84, 2004-05, 2018-19) 우승하며 잉글랜드 클럽 중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AC 밀란 만이 리버풀보다 많은 우승을 기록했다. 2005년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는 결승전에서 AC 밀란을 꺾고 5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빅 이어 영구 소장과 다승자 배지를 수여받았다.

UEFA 유로파리그에서는 3회(1972-73, 1975-76, 2000-01) 우승하여 잉글랜드 클럽 중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UEFA 슈퍼컵에서도 4회(1977, 2001, 2005, 2019) 우승하여 잉글랜드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9년에는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클럽 월드컵, 챔피언스리그, UEFA 슈퍼컵의 국제 트레블을 달성한 최초의 잉글랜드 클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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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진열장 안에 여섯 개의 트로피. 트로피에는 리본이 달려 있으며 옆에는 기념품이 있다.
클럽 박물관에 전시된 1977년부터 2019년까지 리버풀이 우승한 여섯 개의 유러피언컵

10. 더 보기

* 머지사이드 더비
* 노스웨스트 더비
* 헤이젤 참사
* 힐스버러 참사
* 유윌 네버 워크 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