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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미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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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미들턴은 1578년 잉글랜드 헤일에서 태어난 인물로, 약 282cm에 달하는 키로 인해 '헤일의 아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는 랭커스터셔의 보안관 길버트 아일랜드의 경호원으로 활동했으며, 제임스 1세 국왕과의 만남에서 레슬링 시합으로 승리하여 상금을 받기도 했다. 미들턴은 1623년 가난하게 사망하여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에 묻혔으며, 묘비에는 그의 키가 9피트 3인치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정확한 키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기네스북에는 등재되지 못했으며, 현재 세계 최장신 기록은 로버트 워들로가 보유하고 있다. 미들턴은 지역적인 기념 행사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의 초상화와 조각상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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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미들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존 미들턴의 16세기 (공식 초상화)
이름존 미들턴
영어 이름John Middleton
출생1578년
출생지헤일, 리버풀, 잉글랜드
사망1623년 (45세)
사망지헤일, 리버풀, 잉글랜드
알려진 이유거인
신장236cm ~ 282cm (미확인)
직업보안관
경호원

2. 생애

존 미들턴은 1578년 잉글랜드 왕국 헤일에서 태어났다. 기록에 따르면 그의 키는 약 2.82m (약 2.82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거대한 체구 덕분에 랭커스터셔의 지주 길버트 아일랜드의 경호원으로 일했으며, 1620년에는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를 만나 궁정 레슬링 시합에서 승리하여 20GBP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귀향길에 동료들에게 상금을 빼앗기는 불운을 겪었고, 1623년 가난 속에서 사망하여 헤일의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에 묻혔다.[1] 그의 묘비에는 키가 약 2.82m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기록의 정확성에 대한 논란으로 기네스북에는 등재되지 못했다. 만약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는 역사상 최장신으로 알려진 로버트 워들로(키 약 2.72m)보다 더 큰 인물이 된다.

2. 1. 출생과 성장

1578년 잉글랜드 왕국 헤일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기록과 그의 묘비에 따르면, 키는 약 2.82m (약 2.82m)까지 자랐으며, 잠을 잘 때는 발이 집 창밖으로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브레이지노스 칼리지(Brasenose College, Oxford)를 방문했을 때 그의 초상화가 그려졌다고 알려져 있다.

거대한 체구 때문에 랭커스터셔의 지주이자 보안관인 길버트 아일랜드 경의 경호원으로 고용되었다. 1617년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가 아일랜드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러 방문했을 때 미들턴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와 아일랜드를 궁정으로 초대했으며, 이들은 1620년에 초대에 응했다. 미들턴은 궁정에서 레슬링으로 국왕의 챔피언을 이겼는데, 이 과정에서 상대의 엄지손가락을 부러뜨렸다. 그는 상금으로 20GBP를 받았는데, 이는 2024년 가치로 환산하면 약 3500GBP에 해당한다.

하지만 미들턴의 재산을 질투한 동료들이 헤일로 돌아가는 길에 그를 습격하여 돈을 빼앗았고, 결국 1623년 가난 속에서 사망했다. 그는 헤일에 있는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에 묻혔으며, 묘비에는 "여기에 헤일의 아이 존 미들턴의 시신이 잠들다. 9피트 3인치. 1578년 출생, 1623년 사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

그의 키에 대한 기록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 기네스북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된 역사상 가장 키가 큰 인물은 키 약 2.72m (약 2.72m)의 로버트 워들로이다. 만약 미들턴의 키 기록(약 2.82m)이 사실이라면, 그는 로버트 워들로보다 더 큰 역사상 최장신 인물이 된다.

2. 2. 경호원 활동과 왕과의 만남

미들턴은 그의 거대한 체구 때문에 랭커스터셔의 지주이자 보안관이었던 길버트 아일랜드에게 경호원으로 고용되었다. 1617년,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가 길버트 아일랜드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미들턴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후 왕은 미들턴과 아일랜드를 궁정으로 초대했고, 그들은 1620년에 초대에 응했다.

궁정에서 미들턴은 왕의 챔피언레슬링 시합을 벌여 승리했으며, 이 과정에서 상대방의 엄지손가락을 부러뜨렸다. 이 일로 그는 제임스 1세로부터 20GBP를 하사받았는데, 이는 2024년 기준으로 약 3500GBP에 해당한다.[1] 하지만 그의 재산을 질투한 동료들은 미들턴이 헤일로 돌아가는 길에 그를 습격하여 돈을 빼앗아갔다.[1] 결국 미들턴은 1623년 가난 속에서 사망했으며, 헤일에 있는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여기에 헤일의 아이 존 미들턴의 시신이 잠들다. 약 2.74m. 1578년 출생, 1623년 사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

2. 3. 불운한 말년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는 1617년 랭커스터셔의 지주이자 보안관인 길버트 아일랜드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미들턴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와 아일랜드를 궁정으로 초대했다. 1620년, 미들턴과 아일랜드는 초대에 응해 궁정을 방문했다. 미들턴은 궁정에서 열린 레슬링 시합에서 국왕의 챔피언을 이겼고, 이 과정에서 상대의 엄지손가락을 부러뜨렸다. 이 승리로 그는 20GBP를 상금으로 받았는데, 이는 2024년 기준으로 약 3500GBP에 해당하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들턴이 받은 상금을 질투한 동료들은 그가 헤일로 돌아가는 길에 그를 강도질하거나 사기를 쳐서 돈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1] 결국 미들턴은 1623년 가난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헤일에 있는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에 묻혔으며, 그의 묘비에는 "여기에 헤일의 아이 존 미들턴의 시신이 잠들다. 9피트 3인치. 1578년 출생, 1623년 사망"이라고 적혀 있다.[1]

3. 키에 대한 논란

존 미들턴의 키는 당시 기록과 그의 묘비에 따르면 약 2.74m까지 자랐다고 전해진다. 이는 너무 큰 키여서 잠을 잘 때 그의 발이 집 창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 키가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이 때문에 기네스북과 같은 공식 기록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된 세계 최장신 인물은 키 약 2.44m의 로버트 워들로이다.[1]

미들턴은 헤일에 있는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에 묻혔는데, 그의 묘비에는 "여기에 헤일의 아이 존 미들턴의 시신이 잠들다. 약 2.74m. 1578년 출생, 1623년 사망"이라고 명확히 적혀 있다.[1] 만약 이 묘비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는 로버트 워들로를 넘어 역사상 가장 키가 큰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다.[1]

4. 사후 영향 및 기념

존 미들턴의 실제 키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과 추정이 존재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발굴 조사에서는 그의 키를 약 2.82m로 추정했다. 반면, 기네스 세계 기록은 브래즈노즈 칼리지에 남아있는 그의 손자국을 근거로 약 2.36m로 추정하고 있다.[2][1]

4. 1. 헤일의 아이 펍

헤일에 위치한 펍인 '헤일의 아이'는 브래즈노즈 칼리지에 소장된 존 미들턴 초상화의 사본을 가게 간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들턴을 기리기 위한 여러 지역적인 기념물이 존재한다. 1996년에는 교회 맞은편에 세워진 커다란 나무 기둥에 존 미들턴, 헤일 등대, 그리고 다른 지역 상징물들을 새긴 조각 작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2011년, 할튼 자치구 의회는 질병 및 공공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이 나무 기둥 조각을 철거했다. 이후 2013년 4월, 해당 자리에는 조각가 다이앤 고빈이 제작한 높이 3m의 청동 조각상이 새롭게 설치되어 기존의 나무 조각을 대체했다.[1]

4. 2. 조각상

미들턴을 기리는 여러 지역 기념물이 있었다. 1996년에는 헤일의 교회 맞은편에 존 미들턴, 헤일 등대 및 기타 지역 상징물들을 조각한 커다란 나무 기둥이 세워졌다. 그러나 2011년, 할튼 자치구 의회는 질병과 공공 안전 문제를 이유로 이 나무 기둥을 제거했다. 2013년 4월에는 나무 조각을 대체하여 조각가 다이앤 고빈이 제작한 높이 3m의 청동 조각상이 세워졌다.[1]

4. 3. 초상화

잉글랜드 왕국 옥스퍼드의 브래즈노즈 칼리지를 방문했을 때 그의 초상화가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칼리지에는 미들턴의 실물 크기 초상화 1점, 작은 그림 2점, 실물 크기의 손 묘사 2점이 소장되어 있다.[2][1] 또 다른 실물 크기 초상화는 리버풀의 스페크 홀에서 볼 수 있다.[2][1]

4. 4. Childe of Hale Trail

스페크 홀은 헤일 근처에 위치하며, 그의 집, 발, 손 및 기타 물품을 묘사하는 숲길을 포함하고 있다.[3]

5. 갤러리

참조

[1] 웹사이트 A tall tale: The Childe of Hale remembered https://www.bbc.com/[...] BBC News 2013-04-11
[2] 웹사이트 The Childe of Hale https://www.bnc.ox.a[...] Brasenose College 2022-01-04
[3] 웹사이트 Explore the outdoors at Speke Hall https://www.national[...] National Trust 202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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