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프 사스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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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제프 사스트레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 FC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1929년 라리가 우승, 1928년 코파 델 레이 우승, 5번의 카탈루냐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1930년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한 경기에 출전하여 결승골을 기록했으며, 카탈루냐 대표팀 선수로도 활동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지로나 FC를 포함한 여러 카탈루냐 팀의 감독을 역임했다.

주제프 사스트레 - [인물]에 관한 문서
선수 정보
이름주제프 사스트레 페르시바
전체 이름Josep Sastre i Perciba
출생일1906년 6월 25일
출생지바르셀로나, 스페인
사망일1962년 6월 2일
사망지바르셀로나, 스페인
포지션미드필더 (은퇴)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FC 그라시아 (1922–1923)
클럽FC 그라시아 (1923–1926)
바르셀로나 (1926–1932)
에스파뇰 (1932–1933)
바르셀로나 (1933)
EC 그라놀레스 (1933–1934)
클뤼브 프랑세 (1934)
CF 바달로나 (1934)
테라사 FC (1934–1935)
출장수 (골)바르셀로나: 167 (116)
국가대표팀 경력
국가대표팀카탈루냐 (1925-1933)
스페인 (1930)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스페인: 1 (1)
카탈루냐: 13 (9)
감독 경력
감독 클럽지로나 (1950–1951)
수상 내역
메달프린스 오브 아스투리아스 컵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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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주제프 사스트레는 그라시아에서 태어나 FC 에스파냐 데 바르셀로나(1923년 FC 그라시아로 개칭)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여 1926년부터 6년간 활약하며 167경기에서 116골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1928년 코파 델 레이 우승, 1929년 라리가 초대 우승, 카탈루냐 축구 선수권 대회 5회 우승 등에 기여했으며, 특히 1929년에는 라리가 바르셀로나 더비 역사상 첫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1932년 에스파뇰로 이적했으나 수술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1933년 잠시 바르셀로나로 복귀했다. 이후 그라놀예르스 SC, 파리의 클럽 프랑세, CF 바달로나를 거쳐 테라사 FC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에는 지로나를 포함한 여러 카탈루냐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2.1. 초기 경력

그라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1923년 FC 그라시아로 이름을 변경한 FC 에스파냐 데 바르셀로나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FC 그라시아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바르셀로나의 주목을 받아 1926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6년 동안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167경기에 출전하여 116골을 기록했다.

1928년, 사스트레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소시에다드가 맞붙은 1928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출전했다. 이 결승전은 엘 사르디네로에서 열렸으며, 첫 두 경기가 1-1 무승부로 끝나 세 번째 경기에서 승부가 갈렸다. 사스트레는 세 번째 경기에서 골을 넣어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고, 바르셀로나는 우승컵을 차지했다. 또한, 그는 1929년 4월 7일에 열린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 더비 역사상 첫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경기는 바르셀로나의 1-0 승리로 끝났다. 사스트레는 1929년 라리가 초대 우승을 경험한 바르셀로나 팀의 일원이기도 했다. 더불어 1929년부터 1932년까지 3년 연속 우승을 포함하여 총 5번의 카탈루냐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1932년에는 에스파뇰로 이적했으나, 수술을 받게 되면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수술 후 회복하여 1933년 다시 바르셀로나로 복귀했다. 이후 그라놀예르스 SC, 파리의 클럽 프랑세, CF 바달로나를 거쳐 테라사 FC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지로나를 비롯한 여러 카탈루냐 지역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2.2. FC 바르셀로나

그라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FC 에스파냐(1923년 FC 그라시아로 개칭)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FC 그라시아에서의 뛰어난 활약 덕분에 바르셀로나의 주목을 받았고, 1926년 바르셀로나와 계약을 맺었다. 그는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1924년부터 1933년까지 활약하며 총 167번의 경기에 출전해 116골을 기록했다.

1928년, 사스트레는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출전했다. 엘 사르디네로에서 열린 이 결승전은 첫 두 경기가 1-1 무승부로 끝나면서 세 번째 경기까지 치러졌다. 사스트레는 3차전에서 득점하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고, 바르셀로나에 우승컵을 안겼다.

사스트레는 1929년 출범한 라리가의 초대 우승 멤버이기도 하다. 특히 1929년 4월 7일,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1-0 승리를 이끌었는데, 이는 라리가 역사상 첫 바르셀로나 더비 골로 기록되었다. 또한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1929년부터 1932년까지 3회 연속 우승을 포함하여 총 5번의 카탈루냐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1932년에는 에스파뇰로 이적했지만, 수술을 받으면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이후 회복하여 1933년 잠시 바르셀로나로 복귀하기도 했다.

2.3. RCD 에스파뇰

1932년 그는 에스파뇰과 계약했지만, 수술을 받은 후 많은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회복 후 1933년 바르셀로나로 복귀했다.

2.4. 기타 클럽

1932년 에스파뇰과 계약했으나, 수술을 받은 후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회복 후 1933년 바르셀로나로 복귀했다. 이후 그라놀예르스 SC, 파리의 클럽 프랑세, CF 바달로나를 거쳐 테라사 FC에서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 은퇴 후에는 지로나를 포함한 여러 카탈루냐 지역 팀들의 감독을 맡았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사스트레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카탈루냐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모두 활약하였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는 1930년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데뷔하여 결승골을 기록했으며, 카탈루냐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활동하며 아스투리아스 공작 컵 우승 등에 기여했다.

3.1. 스페인 국가대표팀

사스트레는 1930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그는 결승골을 기록하며 스페인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3.2. 카탈루냐 국가대표팀

당시 많은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처럼 사스트레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동안 카탈루냐 국가대표팀을 위해 여러 경기에 소집되었다. 하지만 당시 신문들의 통계 기록이 부족하여 그가 정확히 몇 경기에 출전했고 몇 골을 넣었는지는 불확실하다. 파울리노 알칸타라, 호세프 사미티에르, 리카르도 사모라와 함께 그는 아스투리아스 공작 컵의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한 1920년대 위대한 카탈루냐 팀의 일원이었다. 이 대회는 RFEF가 주최하는 지역 간 대회였다. 1927년 5월 15일, 사스트레는 레스 코르츠에서 열린 센트로 팀 (카스티야/마드리드 XI)과의 친선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한 달 뒤인 6월 16일 다음 경기에서는 같은 경기장에서 열린 브뤼셀 XI를 상대로 4골을 넣으며 더 좋은 활약을 펼쳤다.

;카탈루냐 XI
*아스투리아스 공작 컵:
**우승 (1): 1926

4. 수상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클럽 대회 우승 경력을 쌓았으며, 카탈루냐 대표팀 소속으로도 우승을 경험했다.

4.1. 클럽

바르셀로나
*라리가:
우승 (1): 1929
*코파 델 레이:
우승 (1): 1928
*캄페오나트 데 카탈루냐:
** 우승 (5): 1926–27, 1927–28, 1929–30, 1930–31, 1931–32

4.2. 국가대표팀

* 카탈루냐 XI
아스투리아스 공작 컵
* 우승 (1):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