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충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주충은 후한 말기의 인물로, 벼슬하여 대사농, 광록대부를 거쳐 192년 태위와 녹상서사가 되었다. 가후와 함께 주준을 중앙으로 초빙하고, 사손예를 존경하여 그를 삼공에 천거하려 했다. 193년 태위에서 면직된 후 위위가 되었으며, 헌제가 동쪽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이각에게 포로로 잡혔으나 가후의 간언으로 처형을 면했다. 그의 아들 주휘는 동탁의 횡포를 피해 낙향했으나, 헌제가 죽은 후 주충을 만나러 갔다가 동탁에게 살해당했다.

주충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이미지 없음
한자周忠
생몰? ~ 200년
계모 (季謀)
출생지여남군 (汝南郡)
사망지허창
소속원소, 조조
관직
기도위''
간의대부''
태중대부''
집금오''
위위''
가계
아버지주경 (周 경)
아들주선 (周宣)
기타
삼국지연의에서의 역할조조 암살 미수 사건 관련자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여강 주씨 - 저우룬파
    홍콩 배우 저우룬파는 드라마 《상하이탄》으로 인기를 얻고 영화 《영웅본색》으로 액션 배우 입지를 다졌으며, 《가을날의 동화》로 금마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할리우드와 《캐리비안의 해적》 출연을 통해 활동 영역을 넓혔다.
  • 여강 주씨 - 주유
    주유는 중국 후한 말 오나라의 건국에 기여한 무장으로, 적벽 대전에서 유비와 연합하여 조조군을 격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2세기 중국 사람 - 제갈량
    제갈량은 삼국 시대 촉한의 정치가이자 전략가로, 유비의 삼고초려로 촉한에 합류하여 승상이 되었고, 섭정으로서 남정을 통해 촉한의 기반을 다졌으며, 북벌을 통해 위나라를 공격했으나 실패했으며, 법치주의와 인재 등용을 중시하고 경제 정책을 통해 국력을 강화했다.
  • 2세기 중국 사람 - 유비
    유비는 후한 말 평민 출신으로 시작하여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여러 세력을 거치며 활동하다 제갈량을 영입하여 촉한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으나, 이릉 전투 패배 후 병사하였다.

2. 생애

주충은 젊은 나이에 관직에 나아가 여러 차례 승진하여 대사농이 되었다. 192년 12월, 광록대부였던 주충은 황보숭을 대신하여 태위·녹상서사가 되었다. 태위로 재직하며 상서 가후와 함께 주준을 중앙으로 초빙했고, 대사농 사손예를 존경하여 자신이 삼공에 천거되었을 때 사손예를 대신 천거했다고 한다.

193년 6월, 태위 주충은 면직되었고 이후 위위가 되었다. 헌제가 동쪽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이각동승, 양봉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각 등은 궁녀들을 살해하거나 유괴하였고, 소부 전분, 대사농 장의, 상서령 사손예가 살해되었다. 주충은 사도 조온, 태상 왕위, 사례교위 영소 등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 이각은 주충 등을 처형하려 했으나, 가후가 간언하여 중지했다.

그 이후의 기록은 없다.

주충의 아들 주휘는 낙양령이었는데, 동탁이 전횡을 시작하자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주휘와 동생은 빈객을 좋아하여 강회(강수와 회수 사이) 지역에서 번성하였고, 수레는 항상 백여 대가 따라다니며 출입했다. 헌제가 붕어하자 주휘는 도성의 정세가 불안하다는 것을 듣고 주충을 만나러 갔는데, 동탁은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주휘와 동생을 죽였다.

2.1. 초기 생애 및 관직 생활

일찍이 벼슬하여, 여러 차례 경력을 쌓아 대사농에 이르렀다. 광록대부 재임 중 초평 3년(192년) 12월, 황보숭의 뒤를 이어 태위, 녹상서사(錄尙書事)가 되었다. 초평 4년(193년) 6월에 면직되었다.

2.2. 태위 임명과 활동

192년 12월, 광록대부였던 주충은 황보숭의 뒤를 이어 태위·녹상서사가 되었다. 태위로 재직하며, 상서 가후와 함께 주준을 중앙으로 초빙했다. 대사농 사손예를 존경하여, 자신이 삼공에 천거되었을 때 사손예를 대신 천거했다고 한다.

193년 6월, 태위 주충은 면직되었다. 이후 위위가 되었다.

2.3. 면직과 이후 활동

193년 6월, 태위 주충은 면직되었다. 이후 위위가 되었다.

헌제가 동쪽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이각동승, 양봉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각 등은 궁녀들을 살해하거나 유괴하였고, 소부 전분, 대사농 장의, 상서령 사손예가 살해되었다. 주충은 사도 조온, 태상 왕위, 사례교위 영소 등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 이각은 주충 등을 처형하려 했으나, 가후가 간언하여 중지했다.

그 이후의 기록은 없다.

주충의 아들 주휘는 낙양령이었는데, 동탁이 전횡을 시작하자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주휘와 동생은 빈객을 좋아하여 강회(강수와 회수 사이) 지역에서 번성하였고, 수레는 항상 백여 대가 따라다니며 출입했다. 헌제가 붕어하자 주휘는 도성의 정세가 불안하다는 것을 듣고 주충을 만나러 갔는데, 동탁은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주휘와 동생을 죽였다.

2.4. 이각의 난과 죽음

192년 12월, 광록대부였던 주충은 황보숭을 대신하여 태위·녹상서사가 되었다.

태위로 재직하며, 상서 가후와 함께 주준을 중앙으로 초빙했고, 대사농 사손예를 존경하여 자신이 삼공에 천거되었을 때 사손예를 대신 천거했다고 한다.

193년 6월, 태위 주충은 면직되었고, 이후 위위가 되었다.

헌제가 동쪽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이각동승·양봉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각 등은 궁녀들을 살해하거나 유괴하였고, 소부 전분, 대사농 장의, 상서령 사손예가 살해되었다. 주충은 사도 조온, 태상 왕위, 사례교위 영소 등과 함께 포로가 되었으나, 이각은 주충 등을 처형하려다 가후의 간언으로 중지했다.

3. 가계

주충의 아버지 주경(朱京)은 오나라에서 산기상시(散騎常侍)를 지냈다. 형제로는 주휘(朱輝)와 주융(朱融)이 있었고, 슬하에 주이(朱異), 주준(朱俊), 주호(朱ഹു)를 두었다. 손자로는 주유(朱鮪)와 주순(朱恂)이 있으며, 증손은 주윤(朱胤)이다.

3.1. 가계도

👆
좌우로 밀어서 보기
주영주흥주경주숭
주충주휘
주이주준주호
주상주유주순
주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