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당나라)
1. 개요
진정은 당나라 시대의 인물로, 당 태종의 부장이자 조의대부, 영남행군총관을 역임했다. 699년 광둥과 푸젠 지역의 혼란을 평정하기 위해 아들 진원광을 포함한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여 난을 진압했다. 사망 후 아들 진원광이 민남 지역에서 관장성왕으로 추앙받으면서, 노태왕 또는 성왕조로 함께 숭배받았다.
| 이름 | 진정 |
|---|---|
| 한자 | 陳政 |
| 병음 | Chén Zhèng |
| 민남어 병음 | Tân Chèng |
| 자 | 이민 |
| 한자 (자) | 一民 |
| 호 | 소헌 |
| 한자 (호) | 素軒 |
| 출생 | 기원후 618년 경 |
| 사망 | 기원후 677년 경 |
| 복무 | 당나라 |
|---|---|
| 계급 | 좌령군위솔부과의동삼사 |
| 참전 | 민월의 진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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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년 사망 -
글필하력
계필하력은 철륵 계필부 출신으로 당나라에 귀순한 장군으로, 당 태종의 정벌에 참여하고 설연타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후 구차 정벌과 고구려-당 전쟁에서 공을 세워 당 고종 때 양국공에 봉해졌다. -
616년 출생 -
아가보디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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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군인 -
주전충
주전충은 당나라 말기 후량의 초대 황제이며, 황소의 난을 진압하고 당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뒤 애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후량을 건국했지만, 아들에게 살해당했다. -
당나라의 군인 -
절도사
절도사는 당나라에서 군사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견된 지방 장관으로 시작하여 행정 및 재정 권한까지 장악하며 세력을 키웠으나, 안사의 난 이후 당나라 쇠퇴의 원인이 되었고 송나라에서 권한 축소 후 명예직으로, 한국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유사한 관직이 존재했다.
2. 생애
당 태종 때 좌랑장(左郎將)을 지냈다.
당 고종 연간, 광둥과 푸젠에 혼란이 일어나자 669년 조의대부, 영남행군총관의 지위로 아들 진원광과 함께 123명의 군관, 5,600명의 부병(府兵)을 이끌고 난을 평정하였다.
677년 사망 후, 아들 진원광이 그 지위를 계승하였다. 진원광은 민남 일대를 안정시킨 명장으로 백성들에게 관장성왕(開漳聖王)으로 추앙받았고, 진정도 노태왕(老太王), 성왕조(聖王祖)로 높여졌다.
2.1. 초기 생애 및 관직
일찍이 당 태종 때 부장(部將)으로써 좌랑장(左郎將)을 지냈다.
당 고종 연간에 광둥과 푸젠에 혼란이 일어나자, 669년 진정은 조의대부(朝議大夫), 영남행군총관(嶺南行軍總管)의 지위로 당시 13살인 아들 진원광을 비롯한 123명의 군관, 5,600명의 부병(府兵)으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난을 평정하였다.
2.2. 광둥 및 푸젠 지역 평정
당 고종 연간, 광둥과 푸젠에 혼란이 일어나자 699년 진정은 조의대부, 영남행군총관이라는 지위로, 당시 13살인 아들 진원광을 비롯한 123명의 군관, 5,600명의 부병(府兵)으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난을 평정하였다.
2.3. 사망과 가문의 계승
677년 진정이 사망하자 그의 지위는 아들 진원광이 계승하였다. 진원광은 광둥 등지의 난을 평정하여 민남 일대를 안정시키는 등 명장으로 활약하였고, 민간에서 관장성왕(開漳聖王)으로 불리게 되자 그의 아버지인 진정도 노태왕(老太王), 성왕조(聖王祖)로 높여졌다.
3. 사후 추앙
아들 진원광이 민간에서 관장성왕(開漳聖王)으로 추앙받으면서, 진정도 노태왕(老太王) 또는 성왕조(聖王祖)로 높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