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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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 여후는 진나라 성후의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진나라 군주가 되었다. 기원전 859년에 사망했으며, 아들 정후가 뒤를 이었다. 1992년 산시성 취워현에서 발굴된 묘가 여후의 것으로 추정되며, 묘에서 발견된 '진후 북마'가 여후의 자 또는 이름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진 여후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비(璧) 디스크
작위
국가
통치 시작알 수 없음
통치 종료기원전 859년
이전 통치자성후
다음 통치자경후
본명희 복 (姬福) 또는 희 발마 (姬僰馬)
성씨희 (姬)
가문
왕조
사망일기원전 859년
추증 시호여후 (厲侯)
가계
아버지성후
자녀경후
생애
시대주나라
사후
시호여후(厲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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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아버지 진 성후의 뒤를 이어 진후가 되었으며, 기원전 859년 사망하였다. 아들 의구(宜臼)가 뒤를 이어 진 정후가 되었다.

1992년, 산시성 취워현 추춘(曲村) 진 베이자오(北趙) 촌에서 서주 시대의 묘지가 발굴되었는데, 이 중 주 효왕 · 주 이왕 때에 재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진후 북마’(晉侯僰馬)의 묘가 여후의 묘로 여겨진다. 혹 이 묘에 기록된 ‘북마’를 여후의 로 보기도 하며, 반대로 ‘북마’가 여후의 이름이고, 《사기》에 기록된 ‘복’을 자로 추정하기도 한다.

2.1. 가계와 즉위

여후는 진나라 성후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성후가 사망하자, 여후가 뒤를 이어 진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1992년, 산시성 취워현 추춘(曲村) 진 베이자오(北趙) 촌에서 서주 시대의 묘지가 발굴되었는데, 이 중 주 효왕 · 주 이왕 때에 재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진후 북마’(晉侯僰馬)의 묘가 여후의 묘로 여겨진다. 혹 이 묘에 기록된 ‘북마’를 여후의 로 보기도 하며, 반대로 ‘북마’가 여후의 이름이고, 《사기》에 기록된 ‘복’을 자로 추정하기도 한다. 기원전 859년, 여후가 사망하고 아들 정후가 진나라 군주로 즉위했다.

2.2. 통치와 사망

아버지 진 성후의 뒤를 이어 진후가 되었으며, 기원전 859년 사망하였다. 여후 사후, 아들 의구(宜臼)가 뒤를 이어 진 정후가 되었다.

1992년, 산시성 취워현 추춘(曲村) 진 베이자오(北趙) 촌에서 서주 시대의 묘지가 발굴되었는데, 이 중 주 효왕 · 주 이왕 때에 재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진후 북마’(晉侯僰馬)의 묘가 여후의 묘로 여겨진다. 혹 이 묘에 기록된 ‘북마’를 여후의 로 보기도 하며, 반대로 ‘북마’가 여후의 이름이고, 《사기》에 기록된 ‘복’을 자로 추정하기도 한다.

2.3. 묘 발굴과 역사적 의의

1992년, 산시성 취워현 추춘(曲村) 진 베이자오(北趙) 촌에서 서주 시대의 묘지가 발굴되었는데, 이 중 주 효왕 · 주 이왕 때에 재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진후 북마’(晉侯僰馬)의 묘가 여후의 묘로 여겨진다. 혹 이 묘에 기록된 ‘북마’를 여후의 로 보기도 하며, 반대로 ‘북마’가 여후의 이름이고, 《사기》에 기록된 ‘복’을 자로 추정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