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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전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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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차전놀이는 후삼국시대 말 안동에서 왕건을 도운 세 장수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민속놀이다. 동·서편으로 나뉘어 20~30척 길이의 나무로 만든 동채를 이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동채를 제작하고 대장, 머리꾼, 동채꾼, 놀이꾼 등 역할을 분담하여 500여 명이 참여한다. 1937년 일제에 의해 금지되었다가, 8·15 광복 후 부활하여 1969년 안동 차전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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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전놀이
기본 정보
차전놀이 동채 싸움
일반 정보
종류전통 놀이
다른 이름동채싸움
기원고려 시대
지역경상북도 안동시
문화재 지정 정보
명칭안동차전놀이
지정 종류국가무형문화재
지정 번호24
지정일1969년 1월 7일
전승 지역경상북도 안동시
보유자안동차전놀이보존회
영어
영어 명칭Chajeon Nori

2. 유래

차전(車戰)이란 명칭은 속어로 동채싸움, 동태싸움이라고 불린다. 동채싸움과 동태싸움은 같은 어원으로 동태는 동채가 와전된 것이며, 동채란 수레바퀴의 방언이다. 차전놀이는 1937년까지 연중행사로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낮에 강변 백사장이나 벌판에서 거행되다가 일제에 의하여 금지되었다.[1] 8·15광복 후 1958년 건국 10주년 기념행사로서 전국 민속예술 제전이 열렸을 때 부활되었고, 1969년 안동 차전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면서 차전놀이의 대표격이 되었다.[1]

고려시대 이전 원로들의 구전에 의하면 후삼국시대 말기인 930년, 안동권행(권행김선평·장길 세 장군이 있어, 후에 고려 태조가 된 왕건을 도와 견훤을 패하게 하였는데, 그때 견훤과 합전교(현 안동시 송현동)에서 싸울 때(고창 전투) 큰나무를 묶어서 한 덩어리를 만들어 여러 사람이 어깨에 메고 이를 앞세워 진격하였다고 한다.[1] 이 전승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정월 보름날을 기하여 나무묶음(동채)을 메고 싸움하는 놀이를 하였다.[1]

3. 진행 방식

차전놀이는 동·서편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대장, 머리꾼, 동채꾼, 놀이꾼 등 다양한 역할로 구성된다. 대체로 25~40세의 남자 500여 명이 참여하여 승부를 겨룬다. 동부 대장은 부사(府使), 서부 대장은 영장(營將)이라고 부르며, 동채끼리 맞붙어 싸운다. 승리 조건은 상대방 동채 앞머리를 땅에 닿게 하거나, 상대편 대장을 끌어내리거나, 자기편 동채 앞머리를 더 높이 올리는 것이다.[2]

3. 1. 동채 제작

동채를 만들 때는 여러 가지 금기가 있다. 20척~30척이 되는 단단한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는 멀리 산간지방에까지 파견되며, 지정된 나무는 깨끗하게 가져와 두 개를 같은 길이로 자른다. 마사(麻絲) 등의 줄로 차머리를 ×형으로 졸라맨다. 사다리처럼 생긴 동채 위에는 사람이 서 있도록 방석만한 자리를 마련하고 작전에 열중케 한다. 동채 머리에는 고삐를 매어 대장이 잡고 지휘할 수 있게 하고, 판자 뒤에는 나무를 X자 모양으로 하여 4귀를 체목에 묶어 동채가 부서지거나 뒤틀리지 않게 한다.[2]

3. 2. 역할 분담

차전놀이는 동·서편으로 나누어 진행되며, 각 편은 다음과 같은 역할로 구성된다.[2]

역할설명
대장동채 머리에 매단 고삐를 잡고 전체적인 지휘를 담당한다. 동부의 대장은 부사(府使), 서부의 대장은 영장(營將)이라고 불린다.
머리꾼동채 위에 올라가 작전을 수행하고, 상대편 대장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동채꾼동채를 움직이고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놀이꾼차전놀이 전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대체로 25~40세의 남자 500여 명이 동서로 나뉘어 승부를 겨룬다.

3. 3. 승리 조건

차전놀이는 동부와 서부로 편을 나누어 진행하는데, 승부는 상대방의 동채 앞머리를 땅에 닿게 하거나, 상대방 대장을 끌어내려 땅에 떨어뜨리거나, 자기편 동채의 앞머리를 상대방보다 높이 올리면 이긴다.[2] 동부의 대장은 부사(府使), 서부의 대장은 영장(營將)이라고 부른다.[2]

4. 역사

차전(車戰)은 동채싸움, 동태싸움이라고도 불리는데, 동태는 동채가 와전된 말이며 동채는 수레바퀴의 방언이다. 차전놀이는 1937년까지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낮에 강변 백사장이나 벌판에서 거행되다가 일제에 의해 금지되었다.[1] 1958년 건국 10주년 기념 전국 민속예술 제전에서 부활되었고, 1969년 안동 차전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면서 차전놀이의 대표격이 되었다.[1]

구전(口傳)에 따르면, 후삼국시대 말기인 930년 안동에는 권행(權幸)·김선평(金宣平)·장길(張吉) 세 장군이 왕건을 도와 견훤을 패하게 하였는데, 합전교(현 안동시 송현동)에서 벌어진 고창 전투에서 큰 나무를 묶어 만든 덩어리를 어깨에 메고 진격하였다고 한다.[1] 이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정월 보름날 나무묶음(동채)을 메고 싸우는 놀이를 하였다.[1]

5. 현대적 의의

차전놀이는 1937년까지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낮에 강변 백사장이나 벌판에서 거행되다가 일제에 의해 금지되었다.[1] 1958년 8·15 광복 후 건국 10주년 기념행사로 열린 전국 민속예술 제전에서 부활되었고, 1969년 안동 차전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면서 차전놀이의 대표격이 되었다.[1]

참조

[1] 웹사이트 차전놀이 http://www.cha.go.kr[...]
[2] 간행물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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