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웅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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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창원 웅천읍성은 경상남도 진해시 성내동에 위치한 평지성으로, 조선 세종 21년(1439)에 축조되었다. 1407년 일본과의 무역을 위해 항구를 개항했으나 일본인의 불법 이주가 증가하자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해 읍성을 쌓았다. 문종 원년(1451)에는 왜구 침입에 대비해 수로를 확장했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으로 일시 함락, 임진왜란 때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주둔하기도 했다. 현재는 동·서벽, 동·서문터가 남아있고, 2011년 동문인 견룡루와 일부 성벽이 복원되었다.

창원 웅천읍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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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웅천읍성
이름창원 웅천읍성
로마자 표기Changwon Ungcheon Eupseong
유형경상남도 기념물
지정 번호15
지정일1974년 12월 28일
주소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
시대조선시대
소유자창원시
관리자창원시
수량일곽
꼬리표창원 성내동
문화재청 ID23,00150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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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조선 세종 21년(1439)에 웅천읍성이 만들어졌다. 문종 원년(1451)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서·북에 수로를 만들어 성 일부를 확장하였다. 중종 5년(1510)에는 삼포왜란으로 일시 함락되기도 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현재 성의 동벽과 서벽, 동문터, 서문터는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동문터의 너비는 4m이다. 서벽과 남벽은 일부만 남아있고 북벽은 철거되었다. 성벽 기초 부분에는 네모진 돌을 쌓았으며, 그 위에 사각형 또는 삼각형 돌을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모양이 되게 쌓았다. 벽면은 땅과 수직으로 쌓았으며 큰 돌 사이사이에는 작은 돌을 끼웠다.

2011년 동문인 견룡루와 동측 성벽, 남측 성벽 일부가 복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총 길이는 500m이며, 동벽 북단의 남쪽 100m 쯤에 누각이 있던 자리도 남아 있다.

2.1. 축성 배경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창원 웅천읍성은 경상남도 진해시 성내동에 있는 평지성으로, 조선 세종 21년(1439)년에 만들어졌다. 이곳은 1407년 일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항구를 열어 무역을 하던 곳인데, 일본인의 불법 이주가 많아지자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하여 읍성을 쌓았다.

문종 원년(1451)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서·북에 수로를 만들어 성 일부를 확장하였다. 중종 5년(1510)에는 삼포왜란으로 일시 함락되기도 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2.2. 조선 전기

경상남도 진해시 성내동에 있는 평지성으로, 조선 세종 21년(1439)에 만들어졌다. 이곳은 1407년 일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항구를 열어 무역을 하던 곳인데, 일본인의 불법 이주가 많아지자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하여 읍성을 쌓았다.

문종 원년(1451)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서·북에 수로를 만들어 성 일부를 확장하였다. 중종 5년(1510)에는 삼포왜란으로 일시 함락되기도 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2.3. 임진왜란과 그 이후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으로 웅천읍성이 일시 함락되기도 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3. 구조

읍성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창원 웅천읍성은 이러한 읍성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3.1. 성벽 및 성문

경상남도 진해시 성내동에 있는 평지성으로, 조선 세종 21년(1439)년에 만들어졌다. 이곳은 1407년 일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항구를 열어 무역을 하던 곳인데, 일본인의 불법 이주가 많아지자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하여 읍성을 쌓았다.

문종 원년(1451)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서·북에 수로를 만들어 성 일부를 확장하였다. 중종 5년(1510)에는 삼포왜란으로 일시 함락되기도 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현재 성의 동벽과 서벽만, 동문터, 서문터와 함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동문터의 너비는 4m이다. 서벽과 남벽은 그 일부가 남아있고 북벽은 철거되었다. 성벽의 기초가 되는 부분에는 네모진 돌을 쌓았으며, 그 위에 사각형 또는 삼각형의 돌을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모양이 되게 쌓았다. 벽면은 땅과 수직으로 쌓았으며 큰 돌 사이사이에는 작은 돌을 끼웠다.

2011년 동문인 견룡루와 동측 성벽, 남측 성벽 일부가 복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총 길이는 500m이고, 동벽 북단의 남쪽 100m 쯤에 누각이 있던 자리도 남아 있다.

3.2. 잔존 규모

현재 성의 동벽과 서벽은 동문 터, 서문 터와 함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동문 터의 너비는 4m이다. 서벽과 남벽은 그 일부가 남아 있고, 북벽은 철거되었다. 성벽의 기초 부분에는 네모진 돌을 쌓았으며, 그 위에 사각형 또는 삼각형의 돌을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모양이 되게 쌓았다. 벽면은 땅과 수직으로 쌓았으며, 큰 돌 사이사이에 작은 돌을 끼웠다.

2011년 동문인 견룡루와 동측 성벽, 남측 성벽 일부가 복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총 길이는 500m이며, 동벽 북단의 남쪽 100m 지점에 누각이 있던 자리도 남아 있다.

4. 현황

경상남도 진해시 성내동에 있는 평지성으로, 조선 세종 21년(1439)년에 만들어졌다. 1407년 일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항구를 열어 무역을 하던 곳인데, 일본인의 불법 이주가 많아지자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해 읍성을 쌓았다.

문종 원년(1451)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서·북에 수로를 만들어 성 일부를 확장하였다. 중종 5년(1510) 삼포왜란으로 일시 함락되기도 하였고, 임진왜란고니시 유키나가가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현재 동벽과 서벽, 동문터, 서문터만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동문터의 너비는 4m이다. 서벽과 남벽은 일부만 남아있고 북벽은 철거되었다. 성벽 기초 부분에는 네모진 돌을 쌓았으며, 그 위에 사각형 또는 삼각형 돌을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모양이 되게 쌓았다. 벽면은 땅과 수직으로 쌓았으며 큰 돌 사이사이에 작은 돌을 끼웠다.

2011년 동문인 견룡루와 동측 성벽, 남측 성벽 일부가 복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총 길이는 500m이며, 동벽 북단에서 남쪽으로 100m 쯤에 누각이 있던 자리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