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타이 시판돈
1. 개요
캄타이 시판돈은 라오스의 정치인으로,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 건국 후 부수상, 국방장관, 라오스 인민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는 1950년 파테트 라오에 합류하여 라오스 내전을 이끌었으며, 1975년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 건국 후 부수상, 국방장관, 라오스 인민군 총사령관을 지냈다. 1991년 총리, 1998년 국가 주석에 취임하여 라오스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으며, 2006년 퇴임했다. 재임 기간 동안 라오스의 국제적 지위 향상과 경제 개방에 힘썼다.
| 이름 | 캄타이 시판돈 |
|---|---|
| 원어 이름 | ຄຳໄຕ ສີພັນດອນ |
| 로마자 표기 | Khamtai Siphandone |
| 출생일 | 1924년 2월 8일 |
| 출생지 | 참파삭 주 프랑스령 라오스 보호령,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현재의 라오스) |
| 배우자 | 통반 시판돈 |
| 자녀 | 손싸이 시판돈 비엥통 시판돈 |
| 친척 | 캄펭 사이솜펭 (사위) |
| 직책 | 라오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의장 |
|---|---|
| 임기 시작 | 1992년 11월 24일 |
| 임기 종료 | 2006년 3월 21일 |
| 이전 | 카이손 폼비한 |
| 후임 | 춤말리 사야손 (총서기) |
| 직책 | 라오스 대통령 |
|---|---|
| 임기 시작 | 1998년 2월 24일 |
| 임기 종료 | 2006년 6월 8일 |
| 이전 | 누학 폼사반 |
| 후임 | 춤말리 사야손 |
| 부통령 | 우돔 카티그나 춤말리 사야손 |
| 총리 | 시사왓 케오분판 분냥 워라찟 |
| 직책 | 라오스 총리 |
|---|---|
| 임기 시작 | 1991년 8월 15일 |
| 임기 종료 | 1998년 2월 24일 |
| 이전 | 카이손 폼비한 |
| 후임 | 시사왓 케오분판 |
| 대통령 | 카이손 폼비한 누학 폼사반 |
| 직책 | 라오스 부총리 |
|---|---|
| 임기 시작 | 1975년 12월 2일 |
| 임기 종료 | 1991년 8월 15일 |
| 부총리 | 누학 폼사반 푸미 봉비칫 푼 시파스읏 |
| 직책 | 국방부 장관 |
|---|---|
| 임기 시작 | 1975년 12월 2일 |
| 임기 종료 | 1991년 8월 15일 |
| 이전 | 직책 신설 |
| 후임 | 춤말리 사야손 |
| 총리 | 카이손 폼비한 |
| 정당 | 라오인민혁명당 (1955년–200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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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정부부수상 -
판캄 비파반
판캄 비파반은 라오스의 정치인으로, 정부부수상 겸 교육체육부 장관을 역임하고 정부수상으로 선출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
라오스의 정부부수상 -
소네사이 시판돈
소네사이 시판돈은 2022년 12월 30일 라오스 국회에서 149표의 찬성을 얻어 정부수상으로 승인되었다. -
라오스의 주석 -
수파누봉
수파누봉은 라오스의 정치인이자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프랑스 식민 통치 시대에 토목 기사로 일하며 라오스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라오스 자유전선 의장을 역임했으며, 공산당 집권 후 초대 대통령으로 1991년까지 재임했다. -
라오스의 주석 -
분냥 보라치트
분냥 보라치트는 라오스의 정치인으로, 사바나켓 주지사, 재무장관, 총리를 거쳐 라오스 인민혁명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으로서 라오스의 최고 지도자를 역임하며 라오스의 사회주의 발전과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
라오스의 정부수상 -
분냥 보라치트
분냥 보라치트는 라오스의 정치인으로, 사바나켓 주지사, 재무장관, 총리를 거쳐 라오스 인민혁명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으로서 라오스의 최고 지도자를 역임하며 라오스의 사회주의 발전과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
라오스의 정부수상 -
통싱 탐마봉
통싱 탐마봉은 라오스의 정치인으로, 라오스 인민혁명당에서 활동하며 요직을 두루 역임했고,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제6대 라오스 총리를 지냈다.
2. 초기 생애 및 독립운동
캄타이 시판돈은 1924년 2월 8일 라오스 남부 참파사크 주(당시 참파사크 왕국)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첫 직업은 우편 배달부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의 통치에 반대하는 독립운동 단체인 라오 이사라(Lao Issara)에 참여하여 민족 해방 운동에 투신했다.
1946년 3월 프랑스가 사바나켓을 다시 장악하기 전, 시판돈은 도 전체의 자금(15만 피아스트르)을 압수했다. 1950년 라오 이사라 분열 이후, 베트민의 지원을 받는 파테트 라오에 합류했다. 1954년 인도차이나 공산당에 입당했고, 1955년 라오스 인민당(이후 라오 인민혁명당) 창당에 참여하며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초대 서기장 카이손 폼비한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3. 정치 경력
캄타이 시판돈은 파테트 라오 반군의 군 사령관이었다. 1954년 인도차이나 공산당 당원이 되었고, 1955년 라오스 인민당 결성에 참여했으며, 1972년 라오스 인민혁명당으로 개편된 제2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선출되어 당내 서열 5위가 되었다.
1975년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 수립 이후, 캄타이는 부총리 겸 국방장관 및 라오스 인민군(당시 명칭은 라오스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을 역임하며 대장 계급을 받았다.
3.1. 라오스 인민혁명당 지도부
1991년 제5차 당 대회에서 캄타이 시판돈은 카이손 폼비한과 누하크 품사반에 이어 당 지도부 서열 3위에 올랐다. 1991년 8월 15일 라오스 총리가 되었다. 1992년 11월 21일 카이손 폼비한 국가주석 겸 당 의장이 사망하자, 11월 24일 캄타이 시판돈은 후임 당 의장으로 선출되어 라오스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1998년 2월 24일에는 국가주석에 취임하여 당과 국가의 최고 지위를 모두 차지했다. 2006년 3월 21일 당 의장직을 사임하고, 6월 8일에는 국가주석직도 사퇴하여 최고 지도자 자리를 춤말리 사이냐손에게 넘겨주었다.
3.2. 정책 및 평가
캄타이는 권력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권력 기반인 군부와 시사왓 케오분판 등 심복들을 중심으로 당내 계층 구조를 형성했다.
1997년 7월 23일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에 정식으로 가입하여 라오스의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경제 개방을 추진했다. 2001년 3월 제7차 당 대회에서 국토를 황폐화시키는 화전 경작과 마약의 온상이 되는 아편 재배 근절을 표명하는 등 농업 정책 개선을 추진했다. 한편 정치 개혁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제7차 당 대회 이후 세대 교체를 진행했지만 당내 다원주의를 부정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수하여 라오 인민혁명당의 일당 지배 체제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