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니 앤서니
1. 개요
케니 앤서니는 서인도 제도 대학교와 버밍엄 대학교를 졸업한 세인트루시아의 정치인이다. 그는 1979년부터 1982년까지 교육부 특별 고문 및 장관을 역임했으며, 1997년 세인트루시아 노동당(SLP)의 총리로 선출되어 2006년까지 재임했다. 재임 기간 동안 관광, 인프라 등 경제 개발을 이끌었지만, 빈곤, 범죄 증가 등의 문제에 직면했다. 2006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야당 대표를 지냈으며, 2011년 총선에서 재집권했으나 2016년 총선 패배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 존칭 | 존경하는 박사 |
|---|---|
| 이름 | 케니 앤서니 |
| 존칭 접미사 | 국회의원 |
| 직함 | 제6대 세인트루시아 총리 |
|---|---|
| 군주 | 엘리자베스 2세 |
| 총독 | 펄렛 루이지 |
| 부총리 | 필립 J. 피에르 |
| 임기 시작 | 2011년 11월 30일 |
| 임기 종료 | 2016년 6월 7일 |
| 이전 총리 | 스티븐슨 킹 |
| 다음 총리 | 앨런 차스타넷 |
| 군주1 | 엘리자베스 2세 |
| 총독1 | 조지 말렛 펄렛 루이지 |
| 부총리1 | 마리오 미셸 |
| 임기 시작1 | 1997년 5월 24일 |
| 임기 종료1 | 2006년 12월 15일 |
| 이전 총리1 | 본 루이스 |
| 다음 총리1 | 존 콤프턴 |
| 출생일 | 1951년 1월 8일 |
|---|---|
| 출생지 | 라보리, 세인트루시아 |
| 정당 | 노동당 |
| 배우자 | 로즈-마리 벨 앙투안 |
| 모교 | 웨스트인디스 대학교 케이브 힐 캠퍼스 버밍엄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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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시아의 정치인 -
필립 J. 피에르
필립 J. 피에르는 세인트루시아 노동당 대표로서 2021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세인트루시아의 총리가 된 정치인이다. -
세인트루시아의 정치인 -
앨런 샤스타네
앨런 샤스타네는 세인트루시아의 정치인으로 기업인 출신이며, 통합노동당 대표로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총리를 역임했다. -
세인트루시아의 총리 -
필립 J. 피에르
필립 J. 피에르는 세인트루시아 노동당 대표로서 2021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세인트루시아의 총리가 된 정치인이다. -
세인트루시아의 총리 -
앨런 샤스타네
앨런 샤스타네는 세인트루시아의 정치인으로 기업인 출신이며, 통합노동당 대표로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총리를 역임했다. -
1951년 출생 -
김무성
김무성은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핵심 인물로 정계에 입문하여 여러 차례 국회의원을 역임, 한나라당(새누리당, 자유한국당)에서 주요 당직을 수행하며 다양한 정치적 활동을 펼친 정치인이다. -
1951년 출생 -
고든 브라운
고든 브라운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정치인으로, 영국 의회 하원 의원, 재무장관을 거쳐 총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유엔 교육 담당 특사로 활동한다.
2. 정치 경력
케니 앤서니는 서인도 제도 대학교 케이브힐 캠퍼스와 버밍엄 대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부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1997년 세인트루시아 노동당(SLP)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총리직에 올랐고, 2006년 존 콤튼이 이끄는 세인트루시아 연합노동당(UWP)에 패배할 때까지 재임했다. 이후 야당 대표를 역임하다 2011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여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으나, 2016년 총선에서 패배 후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앤서니는 2007년 시에라리온 총선에서 영연방 관찰단 임무를 이끌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2008년 3월에는 쿠바를 방문, 호세 라몬 마차도 벤투라 제1 부통령 등 고위 관리들과 회담했다.
2.1. 초기 정치 활동
앤서니는 서인도 제도 대학교 케이브힐 캠퍼스와 버밍엄 대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세인트루시아 노동당 정부에서 1979년 8월부터 1980년 12월까지 교육 및 문화부 특별 고문을, 1980년 12월부터 1981년 3월까지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노동당 대표로 선출되기 전인 1995년 3월부터 카리브 공동체(CARICOM) 사무국에서 일했다.
2.2. 총리 재임 (1997-2006)
앤서니는 1997년 5월 24일 세인트루시아 노동당(SLP)이 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다음 날 총리에 취임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재무부 및 방송부 장관을 겸임했다.
앤서니의 지도력과 세인트루시아 노동당의 통치 기간 동안 세인트루시아는 관광, 인프라 및 일반적인 경제 개발 분야에서 기록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경제 개발의 불균형, 선거권 박탈, 증가하는 범죄 수준은 앤서니 행정부가 해결하기 어려웠던 과제였다. 2011년 앤서니가 권력을 되찾은 이후 섬의 빈곤층 수가 증가했다. 많은 경제 개발과 함께 많은 이웃 섬보다 높은 비율로 폭력 범죄가 꾸준히 증가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메이카 및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비교하게 되었다.
케니 D. 앤서니는 국제 라울 발렌베르그 재단의 명예 회원이다.
2.3. 2006년 총선 패배와 야당 대표
2006년 12월 11일에 치러진 총선거에서 세인트루시아 노동당(SLP)은 존 콤튼이 이끄는 연합노동당(UWP)에 11석 대 6석으로 패배했다. SLP는 5석 차이로 선거에서 졌지만, 유효 득표수 차이는 2,000표를 약간 넘는 근소한 차이였다.
앤서니는 자신의 선거구인 비유포르 사우스에서 627표 차로 승리했는데, 이는 SLP의 압승 당시보다 약간 적은 표차였다. 앤서니는 당 대표직을 유지했고 야당 대표 역할을 맡았다.
2006년 선거의 흥미로운 점은 많은 세인트루시아인들이 새로운 정부를 뽑기 위해서라기보다는 SLP가 이전에 누렸던 16 대 1의 압도적인 다수에 맞서 더 강력한 야당을 확보하기 위해 투표를 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SLP가 14 대 3의 다수로 세 번째 임기를 다시 얻을 것이라는 여론 조사와 정치 평론가들의 예측에 대해 과잉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앤서니 본인이 그러한 여론 조사 결과에 매달리지 않았다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며 더 많은 수로 투표에 참여하도록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유권자들은 전 연합노동당 대표인 본 루이스가 SLP로 당적을 옮긴 것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았다. 루이스는 노동당 정부와, 운명적인 패배 1년 전에 총리직을 넘겨받은 전 총리의 강력한 반대자였다. 앤서니와 루이스는 공개적으로 그들 사이의 모든 "악감정"이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고 말했다.
2007년 7월 말, 앤서니는 일련의 뇌졸중으로 인한 콤튼의 질병과 그의 직무 수행 불능(스테판슨 킹이 임시 총리로 임명됨)으로 인해 새로운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고 말했다.
2.4. 2011년 총선 승리와 두 번째 임기
2006년 12월 11일 총선에서 존 콤튼이 이끄는 연합노동당(UWP)에 세인트루시아 노동당(SLP)은 11석 대 6석으로 패배했다. SLP는 5석 차이로 선거에서 졌지만, 유효 득표수 차이는 2,000표를 약간 넘는 근소한 차이였다. 앤서니는 자신의 선거구인 비유포르 사우스에서 627표 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당 대표직을 유지하며 야당 대표 역할을 맡았다.
2006년 선거에서 많은 세인트루시아인들은 새로운 정부를 뽑기 위해서라기보다는 SLP가 이전에 누렸던 16 대 1의 압도적인 다수에 맞서 더 강력한 야당을 확보하기 위해 투표를 했다고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권자들은 SLP가 14 대 3의 다수로 세 번째 임기를 다시 얻을 것이라는 여론 조사와 정치 평론가들의 예측에 대해 과잉 보상한 것으로 보인다.
2007년 7월 말, 앤서니는 일련의 뇌졸중으로 인한 콤튼의 질병과 그의 직무 수행 불능(스테판슨 킹이 임시 총리로 임명됨)으로 인해 새로운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고 말했다. 앤서니는 2007년 8월 선거에서 시에라리온의 영연방 관찰 임무를 이끌었고, 선거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2008년 3월, 앤서니는 쿠바를 방문하여 세인트루시아에 대한 쿠바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아바나와 시엔푸에고스 주를 방문했고, 호세 라몬 마차도 벤투라 제1 부통령을 포함한 고위 관리들과 만났다.
앤서니는 2011년 선거에서 세인트루시아 노동당이 의석 17석 중 11석을 얻으면서 2011년 11월 30일에 다시 총리직에 올랐다.
2.5. 2016년 총선 패배와 정계 은퇴
2016년 6월 6일 총선에서 세인트루시아 노동당(SLP)이 11석 대 6석으로 패배하자, 앤서니는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자신의 선거구인 비유포르 사우스에서 재선되었으며 국회에는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3. 기타 활동
앤서니는 서인도 제도 대학교 케이브힐 캠퍼스와 버밍엄 대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노동당 정부에서 교육 및 문화부 특별 고문(1979년 8월~1980년 12월)과 교육부 장관(1980년 12월~1981년 3월)을 역임했다. 1995년 3월부터 카리브 공동체(CARICOM) 사무국원으로 활동하다가 노동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앤서니는 세인트루시아의 관광, 인프라, 경제 개발에 기여했지만, 경제 개발 불균형, 선거권 박탈, 범죄 증가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2011년 재집권 이후 빈곤층이 증가하고 폭력 범죄가 늘어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비교되기도 했다.
3.1. 국제 활동
앤서니는 국제 라울 발렌베르그 재단의 명예 회원이다. 2007년 8월에는 시에라리온에서 총선 영연방 관찰 임무를 이끌었으며, 선거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2008년 3월에는 쿠바를 방문하여 세인트루시아에 대한 쿠바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고, 아바나와 시엔푸에고스 주를 방문, 호세 라몬 마차도 벤투라 제1 부통령을 포함한 고위 관리들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