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스 엘레프테라키스
1. 개요
코스타스 엘레프테라키스는 그리스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1964-65 시즌 포스티라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1968년 파나티나이코스에 합류했다. 그는 1971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파나티나이코스 소속으로 출전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와 에버튼의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무산되었다. 1977년 부상 이후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5년 뒤 은퇴했으며, 수페르리가에서 총 331경기에 출전했다. 1969년부터 1977년까지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34경기에 출전했으며, 파나티나이코스 소속으로 여러 대회에서 우승했다.
| 전체 이름 | 콘스탄티노스 엘레프테라키스 |
|---|---|
| 로마자 표기 | Kostantinos Eleftherakis |
| 출생일 | 1950년 7월 18일 |
| 출생지 | 그리스 왕국 |
| 키 | 1.69 m |
| 포지션 | 미드필더 |
| 별칭 | ""το Ελάφι"그리스어" (사슴)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유소년 클럽 연도 | 1962–1968 |
|---|---|
| 유소년 클럽 | 포스티라스 |
| 클럽 연도 | 1968–1980 |
| 클럽 | 파나티나이코스 |
| 출장 수 | 308 |
| 득점 수 | 85 |
| 클럽 연도 | 1980–1981 |
| 클럽 | AEK 아테네 |
| 출장 수 | 23 |
| 득점 수 | 5 |
| 클럽 연도 | 1981–1982 |
| 클럽 | 포스티라스 |
| 출장 수 | 25 |
| 득점 수 | 5 |
| 총 출장 수 | 356 |
| 총 득점 수 | 95 |
| 국가대표팀 연도 | 1969–1977 |
|---|---|
| 국가대표팀 | 그리스 |
| 국가대표팀 출장 수 | 34 |
| 국가대표팀 득점 수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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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출생 -
이완구
이완구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국회의원과 충청남도지사를 지냈으며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나 성완종 리스트 사건 연루 의혹으로 사퇴 후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
1950년 출생 -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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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코스타스 카추라니스
코스타스 카추라니스는 그리스의 전 축구 선수로, AEK 아테네 데뷔 후 여러 유럽 클럽, 인도 슈퍼리그, 호주 NPL에서 활약하며 2004년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멤버이자 그리스 국가대표팀 100경기 이상 출전 기록을 세웠고, 은퇴 후 축구 해설가 및 분석가로 활동 중이다. -
그리스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스테파노스 아타나시아디스
스테파노스 아타나시아디스는 PAOK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으로 PAOK에서 100골 이상을 기록하고 유로파리그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등 뛰어난 득점력을 보인 그리스의 전 축구 선수이며, 그리스 국가대표팀 경력과 그리스 컵 우승 및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
그리스의 남자 축구 선수 -
코스타스 카추라니스
코스타스 카추라니스는 그리스의 전 축구 선수로, AEK 아테네 데뷔 후 여러 유럽 클럽, 인도 슈퍼리그, 호주 NPL에서 활약하며 2004년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멤버이자 그리스 국가대표팀 100경기 이상 출전 기록을 세웠고, 은퇴 후 축구 해설가 및 분석가로 활동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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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스 아타나시아디스
스테파노스 아타나시아디스는 PAOK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으로 PAOK에서 100골 이상을 기록하고 유로파리그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등 뛰어난 득점력을 보인 그리스의 전 축구 선수이며, 그리스 국가대표팀 경력과 그리스 컵 우승 및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코스타스 엘레프테라키스는 1964-65 시즌 2부 리그의 포스티라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하여 활약했으며, 월드 XI에 초청받기도 했다.
1977년 5월 부상으로 6개월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이후 예전 기량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1부 리그에서 총 331경기에 출전했는데, 이 중 308경기를 파나티나이코스에서 뛰며 88골을 기록했다.
이후 5년 뒤 은퇴했으며, 포스티라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1. 초기 경력
그는 1964-65 시즌에 2부 리그 팀인 포스티라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 파나티나이코스에 합류했다. 21세의 나이에 1971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아약스 암스테르담을 상대로 파나티나이코스에서 뛰었다. 그는 결승에 진출하기까지 그 해 대회에서 2골을 넣었다.
그 경기 후, 레알 마드리드와 에버튼이 그를 영입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당시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인 3천 5백만 드라크마를 제시할 것이었다. 그러나 코스타스 아슬라니디스(1967년 그리스 군사 정권이 임명한 육상 사무총장)가 이를 가로막았다. 1970년대 초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도했던 빌리 빙엄을 통해 에버튼이 제안했을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는 월드 XI에 초청받아 출전했다.
2.2. 파나티나이코스 FC
1968년 파나티나이코스 FC에 합류한 그는 월드 XI에 초청받아 출전하기도 하였다. 1977년 5월에 입은 부상으로 6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고, 이후 이전의 기량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1부 리그에서 총 331경기에 출전했으며, 그 중 308경기를 파나티나이코스에서 뛰었고 88골을 기록했다.
2.2.1. 레알 마드리드와 에버튼 이적 무산
21세의 나이에 그는 1971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아약스 암스테르담을 상대로 파나티나이코스에서 뛰었다. 그는 결승에 진출하기까지 그 해 대회에서 2골을 넣었다.
그 경기 후, 레알 마드리드와 에버튼이 그를 영입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당시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인 3천 5백만 GRD를 코스타스 엘레프테라키스에게 제시할 것이었다. 그러나 1967년 그리스 군사 정권이 임명한 육상 사무총장 코스타스 아슬라니디스가 이를 가로막았다. 에버튼이 1970년대 초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도했던 빌리 빙엄을 통해 제안했을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2.3. 부상과 은퇴
1977년 5월에 입은 부상으로 인해 엘레프테라키스는 6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는 그 후로 완전히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고, 5년 후 축구 선수에서 은퇴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포스티라스에서 다시 뛰면서 경력을 마쳤다.
3. 국가대표 경력
엘레프테라키스는 1969년부터 1977년까지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34경기에 출전했다.
4. 수상 경력
파나티나이코스 FC 소속으로 알파 에트니키, 그리스 컵, 그레이터 그리스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