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애벌랜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콜로라도 애벌랜치는 1995년 퀘벡 노르딕스에서 연고지를 이전하여 창단된 NHL 아이스하키 팀이다. 1995-96 시즌에 스탠리 컵 우승을 차지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고, 2000-01 시즌에도 우승을 거두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강팀의 면모를 유지했으나, 2010년대 들어 침체기를 겪었다. 2013년 패트릭 로이 감독 부임 이후 다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2017-18 시즌부터 팀이 재건되면서 2021-22 시즌에 세 번째 스탠리 컵 우승을 달성했다.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의 라이벌리가 유명하며, 조 사키크, 페테르 포르스베리, 파트리크 루아 등 6명의 선수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콜로라도 애벌랜치 - 볼 아레나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볼 아레나는 콜로라도 애벌랜치와 덴버 너기츠의 홈구장으로 1999년에 개장하여 스포츠 경기, 콘서트, 컨벤션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2020년에 볼 코퍼레이션과의 명명권 계약으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지속 가능한 운영을 추구한다. - 콜로라도 애벌랜치 - 맥니콜스 스포츠 아레나
맥니콜스 스포츠 아레나는 윌리엄 H. 맥니콜스 주니어의 이름을 딴 콜로라도주 덴버의 실내 경기장으로, 덴버 너기츠와 콜로라도 애벌랜치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었지만 시설 노후화로 2000년에 철거되었다. - 1972년 설립된 스포츠 클럽 - 뉴헤이븐 나이트호크스
뉴헤이븐 나이트호크스는 1972년부터 1992년까지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을 연고로 AHL에 소속되어 활동한 아이스하키 팀으로, 칼더 컵 결승에 4번 진출했으나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팀명 변경 및 연고지 이전을 거쳐 현재는 벨빌 세너터스로 이어지고 있다. - 1972년 설립된 스포츠 클럽 - 하트퍼드 웨일러스
하트퍼드 웨일러스는 1972년 창단되어 월드 하키 협회와 내셔널 하키 리그에서 활동했으며, NHL에서는 플레이오프에 8번 진출했지만 1997년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 콜로라도주의 아이스하키팀 - 콜로라도 로키스 (NHL)
콜로라도 로키스는 1976년부터 1982년까지 NHL에 존재했던 미국의 프로 아이스하키 팀으로, 캔자스시티 스카우츠를 인수하여 덴버로 연고지를 옮겨 창단되었으며, 맥니콜스 스포츠 아레나를 홈 경기장으로 사용했지만, 짧은 기간 동안 스탠리 컵 플레이오프에 한 번 진출한 후 1982년 뉴저지 데블스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해체되었다. - 콜로라도주의 아이스하키팀 - 콜로라도 이글스
콜로라도 이글스는 콜로라도주 러브랜드를 연고로 하는 프로 아이스하키 팀으로, 센트럴 하키 리그(CHL)에서 창단하여 ECHL과 아메리칸 하키 리그(AHL)로 리그를 옮기며 CHL 레이 미론 대통령 컵 2회, ECHL 켈리 컵 2회 우승을 기록했고, 현재는 NHL 콜로라도 애벌랜치의 AHL 제휴팀이다.
콜로라도 애벌랜치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
구글 지도 | |
기본 정보 | |
팀 이름 | 콜로라도 애벌랜치 |
영어 표기 | Colorado Avalanche |
창단 | 1972년 |
NHL 가입 | 1979년 |
컨퍼런스 | 웨스턴 컨퍼런스 |
디비전 | 센트럴 디비전 |
이전 팀 이름 | 퀘벡 노르딕스 (1972-1995) |
경기장 | 볼 아레나 |
연고지 |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
팀 색상 | 버건디, 파랑, 은색, 검정 |
소유주 | 앤 월턴 크롱키 |
단장 | 크리스 맥팔랜드 |
감독 | 재러드 베드너 |
주장 | 가브리엘 란데스코그 |
AHL 제휴 | 콜로라도 이글스 |
ECHL 제휴 | 유타 그리즐리스 |
우승 기록 | |
스탠리 컵 우승 | 3회 (1995-96, 2000-01, 2021-22) |
컨퍼런스 우승 | 3회 (1995-96, 2000-01, 2021-22) |
프레지던츠 트로피 | 3회 (1996-97, 2000-01, 2020-21) |
디비전 우승 | 12회 (1995-96, 1996-97, 1997-98, 1998-99, 1999-00, 2000-01, 2001-02, 2002-03, 2013-14, 2020-21, 2021-22, 2022-23) |
미디어 및 기타 | |
미디어 제휴 | Altitude Sports and Entertainment Altitude 950 Altitude Sports 92.5 |
공식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골 혼 | Kahlenberg KPH-130 Electric Piston Horn |
골 송 | Chase the Sun by Planet Funk (Avalanche Remix) |
경기장 사진 | |
![]() | |
기타 정보 | |
경기장 수용 인원 | 18,007명 |
2. 역사
1994-95 NHL 시즌은 로크아웃으로 인해 시즌이 단축되어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콜로라도 애벌랜치의 전신인 퀘벡 노르딕스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고, 구단주 마르셀 오뷔는 퀘벡 주 정부에 재정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노르딕스는 프랜차이즈를 덴버로 이전하고, 팀 이름을 콜로라도 애벌랜치로 변경했다.
덴버 이전 후 첫 시즌인 1995-96 NHL 시즌에 애벌랜치는 이미 조 사키크, 피터 포스버그, 아담 푸트 등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 1995년 12월, 몬트리올 캐네이디언스로부터 패트릭 로이와 마이크 키인을 영입하는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면서 전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 트레이드로 애벌랜치는 조슬랭 티보, 마르틴 루친스키, 안드레이 코발렌코를 내주었다.[28] 애벌랜치는 결국 1995-1996 시즌 스탠리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애벌랜치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서부 컨퍼런스의 강팀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 3월에는 보스턴 브루인스에서 레이 보크를, 2001년 2월에는 로스앤젤레스 킹스에서 롭 블레이크를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2000-01 NHL 시즌에는 정규 시즌 118점으로 사장상을 수상했고, 스탠리 컵 결승에서 뉴저지 데블스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01-02 NHL 시즌에도 애벌랜치는 좋은 성적을 이어갔고, 2002년 동계 올림픽에는 6개국에서 9명의 선수를 배출했다. 캐나다의 롭 블레이크, 아담 푸트, 조 새킥은 아이스하키 토너먼트 금메달을 획득했다.[38] 플레이오프에서는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 패했다.
2002-03 NHL 시즌에는 NHL 연속 디비전 우승 기록(9회)을 세웠지만,[61] 플레이오프에서는 미네소타 와일드에 패했다. 2003-04 NHL 시즌에는 폴 카리아와 테무 셀래네를 영입했지만, 두 선수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샌호세 샤크스에 패했다.
2004-05 NHL 시즌은 로크아웃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로크아웃 이후 연봉 상한제가 도입되면서 애벌랜치는 피터 포스버그와 아담 푸트를 FA로 잃어야 했다. 2005-06 NHL 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애너하임 덕스에 패했다.
2006-07 NHL 시즌에는 조세 테오도르를 영입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11년간 이어져 온 487경기 연속 매진 기록도 중단되었다.[86]
2007-08 NHL 시즌에는 라이언 스미스와 스콧 해넌을 영입하고, 피터 포스버그가 복귀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 패했다. 2008-09 NHL 시즌에는 덴버 이전 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9년, 그렉 셔먼이 단장으로, 조 새코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조 사키크는 은퇴했고, 아담 푸트가 새 주장이 되었다. 2009-10 NHL 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샌호세 샤크스에 패했다.
2010-11 NHL 시즌 애벌랜치는 덴버 이전 후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맷 뒤솅은 퀘벡/콜로라도 역사상 최연소 득점왕이라는 구단 신기록을 세웠다.[121] 피터 포스버그와 아담 푸트는 은퇴했다.
비시즌 동안 콜로라도는 가브리엘 란데스코그를 전체 2순위로 지명하고, 세미온 바르라모프와 장-세바스티앙 지귀에르를 영입하며 골텐더진을 개편했다. 2011-12 NHL 시즌에 가브리엘 란데스코그는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2년 9월 4일, 가브리엘 란데스코그는 NHL 역사상 최연소 주장으로 임명되었다.[132]
2012-13 NHL 시즌에 애벌랜치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었고, 조 새코 감독이 경질되었다. 2013년, 패트릭 로이가 감독 겸 하키 운영 부사장으로 애벌랜치에 복귀했다.[135] 2013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네이선 맥키넌을 지명했다.
패트릭 로이 감독 체제 하에 2013-14 NHL 시즌 애벌랜치는 플레이오프에 복귀했지만, 1라운드에서 미네소타 와일드에 패했다. 패트릭 로이는 잭 애덤스 상을 수상했다.[137]
2014-15 NHL 시즌과 2015-16 NHL 시즌에 애벌랜치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패트릭 로이는 2016년 8월 11일 사임했다.[140]
패트릭 로이의 떠남 이후, 애벌랜치는 자레드 베드너를 감독으로 영입했다.[141] 2016-17 NHL 시즌 애벌랜치는 덴버 이전 후 프랜차이즈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142] 2017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케일 마카르를 지명했다.
2017년 11월 5일, 애벌랜치는 3팀 트레이드를 통해 맷 뒤셴을 오타와 세네터스로 보냈다.[143] 2018년 1월, 애벌랜치는 10연승을 기록했다.[144] 네이선 매키넌과 미코 란타넨이 팀 공격을 이끌었다. 애벌랜치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내슈빌 프레데터스에 패했다.
2018년 11월, 애벌랜치는 팀 역사상 1,000번째 승리를 거두었다.[148] 2019년 플레이오프에서 애벌랜치는 캘거리 플레임스를 꺾었지만, 2라운드에서 새너제이 샤크스에게 패했다.
2019년 오프시즌 동안, 애벌랜치는 타이슨 배리를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로 트레이드하고, 나젬 카드리 등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2019-20 시즌이 COVID-19 팬데믹으로 중단되었을 때, 애벌랜치는 디비전 2위에 있었다. 9월 시즌 재개 후, 애벌랜치는 1라운드에서 애리조나 코요티스를 꺾었지만, 2라운드에서 댈러스 스타스에게 패했다.
2020년 플레이오프 이후, 애벌랜치는 데번 투스를 영입했다. 애벌랜치는 정규 시즌을 프레지던츠 트로피로 마무리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애벌랜치는 1라운드에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를 스윕하고, 2라운드에서 베가스 골든 나이츠에 패했다.
2021년 오프시즌 동안, 필립 그루바우어는 시애틀 크라켄과 계약했다. 애벌랜치는 달시 켐퍼를 영입하며 골텐더 문제를 해결했다. 2021-22 시즌에 애벌랜치는 119점을 기록하며 5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내슈빌 프레데터스를 스윕하고,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를 6경기 만에 꺾고 20년 만에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했다. 에드먼턴 오일러스를 스윕하고 스탠리 컵 결승전에 진출, 탬파베이 라이트닝을 6경기 만에 꺾고 프랜차이즈 역사상 세 번째 스탠리 컵을 들어올렸다.[150] 케일 마카르는 콘 스마이스 트로피와 노리스 트로피를 수상했다.
다음 시즌 애벌랜치는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2023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시애틀 크라켄에게 패했다. 2023-24 시즌 애벌랜치는 중부 디비전 3위를 차지했다. 2024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위니펙 제츠를 꺾었지만, 2라운드에서 댈러스 스타스에게 패했다.
2. 1. 퀘벡 노르딕스 (1972–1995)
퀘벡 노르딕스는 1972년 월드 하키 협회(WHA) 창단 팀 중 하나였다. 원래 샌프란시스코에 배정되었으나, 리그 개막 전 퀘벡 시티로 이전했다.[7] WHA에서 7시즌 동안 활동하며 1977년 애브코 월드 트로피를 우승했고, 1975년에는 결승에서 패했다.[8] 1979년 에드먼턴 오일러스, 하트퍼드 웨일러스, 위니펙 제츠와 함께 NHL에 합류했다.[9]
1981년부터 1987년까지 7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이후 쇠퇴하기 시작했다. 1987-88년부터 1991-92년까지 매 시즌 디비전 최하위를 기록했고, 그중 3시즌은 리그 전체 최하위였다. 1989-90년 시즌에는 12승으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10] 그 결과, 3년 연속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여 마츠 썬딘(1989년), 오웬 놀란(1990년), 에릭 린드로스(1991년)를 선발했다.[11][12] 린드로스는 노르딕스에서 뛰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13] 언론 사진 촬영에서 팀 유니폼을 입지 않고, 유니폼을 받았을 때만 들고 있었다.[14] 그는 1992년 6월 30일, 5명의 선수, 피터 포스버그의 권리, 2개의 1라운드 지명권, 그리고 1500만달러에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로 트레이드되었다.[15] 에릭 린드로스 트레이드는 침체기에 빠졌던 노르딕스를 스탠리 컵 우승 후보로 만들었고, 스포츠 역사상 가장 불균형적인 거래 중 하나로 여겨진다.[16] 트레이드 이후 첫 시즌인 1992-93년에 노르딕스는 6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17] 2년 후, 노스이스트 디비전에서 우승했고, 로크아웃으로 단축된 시즌에서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했다.[18]
팀은 경기장 안에서는 성공했지만, 처음 23년 동안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퀘벡 시티는 NHL에서 가장 작은 시장이었고,[19] NHL의 변화하는 재정 환경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1995년, 팀 오너인 마르셀 오뷔는 퀘벡 주 정부로부터 구제금융[20]과 새롭게 공공 자금으로 조성된 경기장을 요청했다.[19] 구제금융은 무산되었고, 오뷔는 COMSAT 엔터테인먼트 그룹과 덴버에서 협상을 시작했다.[21] 1995년 5월, COMSAT은 팀 인수에 대한 원칙 합의를 발표했다.[22] 이 거래는 1995년 7월 1일에 공식화되었고, 이전 발표 후 37일 만에 12,000장의 시즌 티켓이 판매되었다.[22]
역대 시즌 기록
- WHA 시절
시즌 | 경기 수 | 승 | 패 | 무 | 득점 | 실점 | 포인트 | 최종 순위 | 플레이오프 |
---|---|---|---|---|---|---|---|---|---|
1972-73 | 78 | 33 | 40 | 5 | 276 | 313 | 71 | 동부 5위 | 불참 |
1973-74 | 78 | 38 | 36 | 4 | 306 | 280 | 80 | 동부 5위 | 불참 |
1974-75 | 78 | 46 | 32 | 0 | 331 | 299 | 92 | 중부 1위 | 결승전 패배 (휴스턴 에어로즈) |
1975-76 | 81 | 50 | 27 | 4 | 371 | 316 | 104 | 중부 2위 | 8강전 패배 (캘거리 카우보이스) |
1976-77 | 81 | 47 | 31 | 3 | 353 | 295 | 97 | 동부 1위 | 우승 |
1977-78 | 80 | 40 | 37 | 3 | 349 | 347 | 83 | 4위 | 준결승전 패배 (뉴잉글랜드 휠러스) |
1978-79 | 80 | 41 | 34 | 2 | 288 | 271 | 87 | 2위 | 준결승전 패배 (WPG) |
- NHL 시절
시즌 | 경기 | 승 | 패 | 연장패 | 승점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최종 순위 | 플레이오프 |
---|---|---|---|---|---|---|---|---|---|---|
1979-80 | 80 | 25 | 44 | 11 | - | 248 | 313 | -65 | 아담스 디비전 5위 | 불참 |
1980-81 | 80 | 30 | 32 | 18 | - | 314 | 318 | -4 | 아담스 디비전 4위 | 1라운드 탈락 (PHI) |
1981-82 | 80 | 33 | 31 | 16 | - | 356 | 345 | 11 | 아담스 디비전 4위 | 컨퍼런스 결승 탈락 (NYI) |
1982-83 | 80 | 34 | 34 | 12 | - | 343 | 336 | 7 | 아담스 디비전 4위 | 1라운드 탈락 (BOS) |
1983-84 | 80 | 42 | 28 | 10 | - | 360 | 278 | 82 | 아담스 디비전 3위 | 디비전 결승 탈락 (MON) |
1984-85 | 80 | 41 | 30 | 9 | - | 323 | 275 | 48 | 아담스 디비전 2위 | 컨퍼런스 결승 탈락 (PHI) |
1985-86 | 80 | 43 | 31 | 6 | - | 330 | 289 | 41 | 아담스 디비전 1위 | 1라운드 탈락 (HAR) |
1986-87 | 80 | 31 | 39 | 10 | - | 267 | 276 | -9 | 아담스 디비전 4위 | 디비전 결승 탈락 (MON) |
1987-88 | 80 | 32 | 43 | 5 | - | 271 | 306 | -35 | 아담스 디비전 5위 | 불참 |
1988-89 | 80 | 27 | 46 | 7 | - | 269 | 342 | -73 | 아담스 디비전 5위 | 불참 |
1989-90 | 80 | 12 | 61 | 7 | - | 240 | 407 | -167 | 아담스 디비전 5위 | 불참 |
1990-91 | 80 | 16 | 50 | 14 | - | 236 | 354 | -118 | 아담스 디비전 5위 | 불참 |
1991-92 | 80 | 20 | 48 | 12 | - | 255 | 318 | -63 | 아담스 디비전 5위 | 불참 |
1992-93 | 84 | 47 | 27 | 10 | - | 351 | 300 | 51 | 아담스 디비전 2위 | 1라운드 탈락 (MON) |
1993-94 | 84 | 34 | 42 | 8 | - | 277 | 292 | -15 | 노스이스트 디비전 5위 | 불참 |
1994-95 | 48 | 30 | 13 | 5 | - | 185 | 134 | 51 | 노스이스트 디비전 1위 | 1라운드 탈락 (NYR) |
역대 주장
- 장-기 잔드롱 (1972–74)
- 미셸 파리조 (1974–76)
- 마크 탈디프 (1976–81)
- 로비 푸트렉 (1981)
- 앙드레 뒤퐁 (1981–82)
- 마리오 말로아 (1983–85)
- 피터 스타츠니 (1985–90)
- 스티븐 핀, 조 사키크(Joe Sakic) (1990–91) … 공동 주장
- 마이크 허프 (1991–92)
- 조 사키크(Joe Sakic) (1992–95)
2. 2. 콜로라도 애벌랜치 (1995–현재)
콜로라도 애벌랜치는 1995년 퀘벡 노르딕스가 덴버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탄생했다. 덴버 이전 후 첫 시즌, 팀은 이미 조 사키크, 피터 포스버그, 아담 푸트 등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1995년 12월, 몬트리올 캐네이디언스에서 패트릭 로이와 마이크 키인을 영입하는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이 트레이드로 애벌랜치는 조슬랭 티보, 마르틴 루친스키, 안드레이 코발렌코를 내주었다.[28] 이 트레이드는 애벌랜치를 더욱 강력한 팀으로 만들었고, 결국 1995-1996 시즌 스탠리 컵 우승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애벌랜치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서부 컨퍼런스의 강팀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 3월에는 보스턴 브루인스에서 레이 보크를, 2001년 2월에는 로스앤젤레스 킹스에서 롭 블레이크를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다. 2000-2001 시즌에는 정규 시즌 118점으로 사장상을 수상했고, 스탠리 컵 결승에서 뉴저지 데블스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01-02 시즌에도 애벌랜치는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2002년 동계 올림픽에는 6개국에서 9명의 선수를 배출했고, 캐나다의 롭 블레이크, 아담 푸트, 조 새킥이 금메달을 획득했다.[38] 플레이오프에서는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 패했다.
2002-03 시즌에는 NHL 연속 디비전 우승 기록(9회)을 세웠지만,[61] 플레이오프에서는 미네소타 와일드에 패했다. 2003-04 시즌에는 폴 카리아와 테무 셀래네를 영입했지만, 두 선수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샌호세 샤크스에 패했다.
2004-05 NHL 시즌은 로크아웃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로크아웃 이후 연봉 상한제가 도입되면서 애벌랜치는 피터 포스버그와 아담 푸트를 FA로 잃어야 했다. 2005-06 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애너하임 덕스에 패했다.
2006-07 시즌에는 조세 테오도르를 영입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11년간 이어져 온 487경기 연속 매진 기록도 중단되었다.[86]

2007-08 시즌에는 라이언 스미스와 스콧 해넌을 영입하고, 피터 포스버그가 복귀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 패했다. 2008-09 시즌에는 덴버 이전 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9년, 그렉 셔먼이 단장으로, 조 새코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조 사키크는 은퇴했고, 아담 푸트가 새 주장이 되었다. 2009-10 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샌호세 샤크스에 패했다.
2. 2. 1. 초기 성공 (1995–2001)

콜로라도 애벌랜치는 1995년 10월 6일 덴버의 맥니콜스 스포츠 아레나에서 첫 경기를 치러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를 3-2로 꺾었다. 이는 콜로라도 로키스가 뉴저지로 이전하여 뉴저지 데블스가 된 후 13년 만에 NHL이 덴버로 돌아온 것을 의미했다. 발레리 카멘스키가 애벌랜치의 첫 골이자 마지막 몇 분 동안 결승골을 기록했다.[27]
주장 조 색크와 포워드 피터 포스버그, 수비수 애덤 푸트를 중심으로, 피에르 라크루아가 단장으로, 마크 크로포드가 감독으로 활약하면서, 올스타 몬트리올 캐나디언스 골텐더 패트릭 로이가 팀에 합류하면서 애벌랜치는 더욱 강해졌다.
1995년 12월 2일, 몬트리올 캐네이디언스가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게 1대 12로 대패한 경기에서 패트릭 로이는 골키퍼로 출전했다. 당시 캐네이디언스의 코치였던 마리오 트렘블레이는 9실점을 할 때까지 로이를 계속 출전시켰다. 경기 후, 로이는 구단 회장에게 팀을 떠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1995년 12월 6일, 로이는 전 몬트리올 주장 마이크 키인과 함께 조슬랭 티보, 마르틴 루친스키, 안드레이 코발렌코와의 트레이드로 애벌랜치에 합류했다.[28]
이 트레이드를 통해 이미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한 팀에 명예의 전당급 골키퍼가 합류하면서, 1995-1996 시즌 스탠리 컵 우승을 막을 수 있는 팀은 없었다.
다음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했지만,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1996-1997 시즌 스탠리 컵 우승)에게 2승 4패로 패하며 스탠리 컵 2연패의 꿈은 좌절되었다.
이후에도 팀은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2000-2001 시즌 포스트시즌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2000년 3월 6일, 보스턴 브루인스에서 20년 넘게 활약한 수비수 레이 보크가 스탠리 컵 우승을 위해 데이브 안드레추크와 함께 콜로라도로 이적했다. 트레이드 대가는 브라이언 롤스턴, Martin Grenier, Samuel Påhlsson 세 명의 선수와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이었다. 2001년 2월 21일에는 로스앤젤레스 킹스에서 수비수 롭 블레이크를 영입했다.
2000-2001 시즌, 애벌랜치는 시즌 118포인트를 획득하며 사장상을 수상했고, 스탠리 컵 결승 뉴저지 데블스와의 경기에서 7차전에서 승리하며 2번째 스탠리 컵을 획득했다. 애벌랜치의 주장 조 사키크는 컵을 받자 들어올리지 않고 레이 보크에게 건네주며 그에게 들어올리도록 했다.
콜로라도 애벌랜치의 1995-2001 시즌 성적은 다음과 같다.
시즌 | 경기 | 승 | 패 | 무/연장패 | 승점 | 득점 | 실점 | 최종 순위 | 플레이오프 |
---|---|---|---|---|---|---|---|---|---|
1995-1996 | 82 | 47 | 25 | 10 | 104 | 326 | 240 | 태평양 디비전 1위 | 스탠리 컵 우승 |
1996-1997 | 82 | 49 | 24 | 9 | 107 | 277 | 205 | 태평양 디비전 1위 | 컨퍼런스 결승 탈락 |
1997-1998 | 82 | 39 | 26 | 17 | 95 | 231 | 205 | 태평양 디비전 1위 | 컨퍼런스 준준결승 탈락 |
1998-1999 | 82 | 44 | 28 | 10 | 98 | 239 | 205 | 노스웨스트 디비전 1위 | 컨퍼런스 결승 탈락 |
1999-2000 | 82 | 42 | 28 | 11 | 96 | 233 | 201 | 노스웨스트 디비전 1위 | 컨퍼런스 결승 탈락 |
2000-2001 | 82 | 52 | 16 | 10 | 118 | 270 | 192 | 노스웨스트 디비전 1위 | 스탠리 컵 우승 |
2. 2. 2. 경쟁력 유지 (2001–2010)
2001-02 시즌에 콜로라도 애벌랜치는 45승 28패 8무 1연장패, 99점으로 노스웨스트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다. 리그 최저 실점(169점, 경기당 평균 2.06점)을 기록했다. 2002년 동계 올림픽으로 NHL 시즌이 중단되었고, 애벌랜치는 6개국에서 9명의 선수를 배출했다. 캐나다의 롭 블레이크, 아담 푸트, 조 새킥이 아이스하키 토너먼트 금메달을, 미국의 크리스 드루리가 은메달을 획득했다.[38] 블레이크와 새킥은 이 승리로 트리플 골드 클럽 회원이 되었다.[31] 애벌랜치는 플레이오프 1, 2라운드에서 로스앤젤레스 킹스와 샌호세 샤크스를 각각 4-3으로 꺾었다. 패트릭 로이는 각 시리즈의 결정전에서 셧아웃 승리를 거두었다.[60] 4시즌 연속(지난 7시즌 중 6번)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 7년 중 5번째로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다. 5경기 후 3-2로 앞섰지만, 홈에서 6차전을 2-0, 디트로이트에서 7차전을 7-0으로 패했다. 1997년처럼 디트로이트가 스탠리컵을 차지했다. 피터 포스버그는 플레이오프 득점 선두(27점)를 기록했다.[30] 로이는 윌리엄 M. 제닝스 트로피를 수상했다. 로이와 새킥은 NHL 퍼스트 올스타 팀에, 블레이크는 세컨드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2002-03 시즌에 애벌랜치는 NHL 연속 디비전 우승 기록(9회)을 세우며,[61] 몬트리올 캐나디언스의 8회 연속 우승(1974-1982) 기록을 깼다.[62] 팀의 부진한 초반 성적과 12월 밥 하틀리 감독 경질로 이어졌다.[63] 피에르 라크루아 단장은 토니 그라나토를 감독으로 승격시켰다.[64] 한때 플레이오프 진출이 불투명했지만, 105점으로 밴쿠버 캐넉스를 1점 차로 제치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마지막에서 두 번째 경기에서 밀란 헤이덕이 연장전 종료 10초 전 득점, 마이티 덕스 오브 애너하임을 물리쳤다.[65] 마지막 날 애벌랜치가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를 5-2로 이기고 밴쿠버 캐넉스가 로스앤젤레스 킹스에 2-0으로 패하며 우승이 확정되었다.[66] 컨퍼런스 쿼터파이널에서 미네소타 와일드에 3-1로 앞서다가 7차전 연장전에서 패했다.[67] 포스버그는 아트 로스 트로피와 하트 메모리얼 트로피를 수상했고, 헤이덕과 NHL 플러스/마이너스 어워드를 공동 수상했다. 헤이덕은 모리스 "로켓" 리처드 트로피를 수상했다. 포스버그는 NHL 퍼스트 올스타 팀, 헤이덕은 세컨드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패트릭 로이 은퇴 후, 폴 카리아, 테무 셀래네와 계약했다.[68][69] 카리아는 2003-04 시즌 대부분을 부상으로, 셀래네는 78경기에서 32점(16골 16어시스트)만을 기록했다.[70] 데이비드 에비셔 골텐더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71] "9명의 정상급 선수",[72] "에드먼턴 오일러스 시대 이후 한 팀에서 가장 재능 있는 탑 6 포워드"[73]를 보유했음에도, 노스웨스트 디비전 우승에 실패, NHL 연속 우승 기록이 끝났다. 40승 22패 13무 7연장패, 100점으로 밴쿠버 캐넉스보다 1점 적었다. 퀘벡 시절 이후 9년 연속 디비전 우승이 마감되었다.[6]
2004년 3월 8일 밴쿠버와의 경기에서 캐넉스의 토드 버투지가 콜로라도의 스티브 무어를 뒤에서 주먹으로 때려 기절시켰다. 무어는 목뼈 3개가 골절되는 등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75] 버투지는 17개월 징계를 받았다.[76] 덴버 홈 팬들은 펩시 센터에서 버투지가 퍽을 소유할 때마다 야유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2004 플레이오프에서 댈러스 스타스를 5경기 만에 물리쳤지만,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샤크스에 6경기 만에 패했다. 조 새킥은 2004 올스타 팀에 선정, NHL/쉐라톤 로드 퍼포머 어워드를 수상, 해트트릭으로 경기 MVP로 선정되었다.[38] 2004년 7월, 조엘 퀘네빌이 토니 그라나토를 대신하여 감독으로 취임했다.[64]
2004-05 NHL 시즌은 로크아웃으로 취소되었다. 로크아웃 기간 동안 많은 선수들이 유럽 리그에서 뛰었다.[77] 데이비드 에비셔와 알렉스 탕귀는 HC 루가노에서, 밀란 헤이덕과 피터 포스버그는 HC 파르두비체, 모도 호키에서 뛰었다. 다른 9명의 선수도 유럽에서 뛰었다.[77]
2004-05 로크아웃 이후 연봉 상한제 도입으로, 조 새킥과 롭 블레이크를 위한 연봉 확보를 위해 피터 포스버그와 아담 푸트는 FA로 팀을 떠났다.[78] 2005-06 정규 시즌을 43승 30패 9무, 95점으로 마무리, 디비전 2위를 차지, 캘거리 플레임스보다 7점 뒤, 에드먼턴 오일러스와 동률을 이루었다. 2월 토리노 2006년 동계 올림픽으로 시즌이 중단되었다. 8개국 11명의 선수를 파견, 리그 최다 기록이었다.[37] 핀란드의 안티 라악소넨은 은메달, 오시 바아나넨은 부상으로 불참, 체코의 밀란 헤이덕은 동메달을 획득했다.[38] 컨퍼런스 쿼터파이널에서 댈러스 스타스를 5경기 만에 꺾었지만,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애너하임 덕스에게 스윕을 당했다.
다음 날, 피에르 라크루아가 사임, 프랑수아 지규에르가 후임으로 임명되었다.[80][81] 라크루아는 2013년 봄까지 프랜차이즈 회장직을 유지, 조시 크론케가 팀 회장 겸 총괄 관리자를 맡았다. 라크루아는 2020년 COVID-19로 사망할 때까지 팀 고문으로 남았다.[82][83]
2006-07 시즌 시작, 조 새킥과 밀란 헤이덕만이 2000-01 스탠리컵 우승팀 멤버였고, 새킥은 퀘벡 시절 팀 멤버 중 유일했다. 피터 스타스트니의 아들 폴 스타스트니도 프랜차이즈의 과거와 연결되었다. 패트릭 로이 트레이드를 연상시키는 움직임으로, 에비셔를 몬트리올 캐나디언스로 트레이드, 베지나 트로피 수상자 조세 테오도르를 영입했다.[84] 하지만 테오도르는 13승 15패 1무, .891 세이브율, 3.26 실점 평균(GAA)을 기록, 성공적이지 못했다. 600만달러 연봉은 부담이 되었다.[85] 10월 16일 시카고 블랙호크스와의 홈 경기에서 11년간 이어진 487경기 연속 매진 행진이 끝났다.[86] 이 기록은 NHL 역사상 최장 기록, 1995년 11월 9일 1995-96 시즌 애벌랜치의 8번째 정규 시즌 홈경기 맥니콜스 스포츠 아레나에서 시작되었다.[87] 2021년 피츠버그 펭귄스(633경기)에 의해 깨졌다.[88]
애벌랜치는 2006-07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 1993-94 시즌 이후 처음이었다. 시즌 마지막 19경기에서 15승 2패 2무를 기록, 마지막 날까지 희망을 유지했다. 4월 7일 내슈빌 프레데터스에 4-2로 패하며 탈락했다. 전 선수 피터 포스버그가 어시스트, 폴 카리아가 결승골을 넣었다.[89] 다음 날 캘거리 플레임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 노스웨스트 디비전 4위, 서부 컨퍼런스 9위, 95점을 기록, 8위 캘거리보다 1점 적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시즌 전 애벌랜치가 서부 컨퍼런스 13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90] 마지막 경기에서 조 새킥은 1골 2어시스트, 고디 하우에 이어 NHL 역사상 100점을 돌파한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선수가 되었다.[91] 폴 스타스트니는 신인으로 20경기 연속 포인트, NHL 신기록을 세웠다.[92] 칼리스 스크라스틴스는 수비수로 495경기 연속 출전, NHL 신기록을 세웠다.[94] 95점을 획득하고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팀은 NHL 역사상 없었다.[95] 동부 컨퍼런스에서는 뉴욕 레인저스(94점), 탬파베이 라이트닝(93점), 뉴욕 아일랜더스(92점) 등 3개 팀이 95점 미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07-08 시즌을 위해 스콧 해넌, 라이언 스미스를 영입했다.[96] 2008년 2월 25일, 피터 포스버그가 계약했다.[97] 하루 뒤, 콜럼버스 블루 재킷츠에서 아담 푸트, 플로리다 팬서스에서 루슬란 살레이를 영입했다.[98] 컨퍼런스 쿼터파이널에서 미네소타 와일드를 6경기 만에 꺾었다.[99]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스탠리컵 우승팀인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게 스윕을 당했다.[100][101]
2008년 5월 9일, 조엘 퀘네빌이 다음 시즌에 팀 감독으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2주 후, 토니 그라나토가 두 번째로 감독으로 임명되었다.[102]
2008-09 시즌은 덴버 이전 이후 최악의 시즌이었다.[103] 32승 45패 5무, 서부 컨퍼런스 15위(전체 28위), 1979-80 시즌 퀘벡 시절 이후 가장 적은 점수를 기록했다.[104] 3시즌 만에 두 번째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팀 득점왕이 한 시즌에 70점 미만을 기록, 밀란 헤이덕과 라이언 스미스가 각각 59점을 기록했다.[104][105] 2009년 4월 13일, 프랑수아 지규에르 단장을 해임했다.[106] 전체 3위 지명권을 획득, 맷 두숩네를 지명했다.[107]

2009년 비시즌, 그렉 셔먼을 단장, 조 새코를 감독으로 임명했다.[108][109] 다음 달, 라이언 스미스는 로스앤젤레스 킹스로 트레이드, 조 새킥은 은퇴했다.[110] 아담 푸트를 새 주장으로 임명했다.[111] 새킥의 유니폼 은퇴식은 10월 1일 샌호세 샤크스와의 홈 개막전에 앞서 열렸고, 5-2로 승리했다.[112] 올림픽 휴식 전까지 좋은 출발을 보였다. 폴 스타스트니(미국), 루슬란 살레이(벨라루스), 피터 부다(슬로바키아)가 밴쿠버에서 뛰었다.[113] 동계 올림픽 이후 고전했지만, 95점으로 플레이오프 진출, 서부 컨퍼런스 8위를 기록했다.[114] 컨퍼런스 쿼터파이널에서 1위 샌호세 샤크스에 6경기 만에 패했다.[115]
스탠 크론케는 2010년 NFL 세인트루이스 램스의 완전한 소유권을 인수했다. NFL은 소유주가 다른 NFL 도시의 메이저 리그 팀을 대부분 소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2010년 말 덴버 너기츠와 애벌랜치의 일상적인 운영을 아들 조시에게 넘겼다. 2014년까지 두 팀 모두에 대한 지배 지분을 매각해야 했다.[116][117]
2010년 애벌랜치는 플레이오프에 진출, 컨퍼런스 쿼터파이널에서 샌호세에 4-2로 패했다.[118] 조 새코는 잭 애덤스 트로피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
다음은 2007-08 시즌부터 2009-10 시즌까지의 콜로라도 애벌랜치의 시즌별 성적이다.
시즌 | GP | W | L | OTL | 포인트 | GF | GA | 피니시 | 플레이오프 |
---|---|---|---|---|---|---|---|---|---|
2007–08 | 82 | 44 | 31 | 7 | 95 | 231 | 219 | 노스웨스트 2위 | 컨퍼런스 준결승 패배, 0–4 (레드 윙스) |
2008–09 | 82 | 32 | 45 | 5 | 69 | 199 | 257 | 노스웨스트 5위 | 진출 실패 |
2009–10 | 82 | 43 | 30 | 9 | 95 | 244 | 233 | 노스웨스트 2위 | 컨퍼런스 8강 패배, 2–4 (샤크스) |
2. 2. 3. 침체기 (2010–2017)
2010-11 시즌, 애벌랜치는 덴버로 이전한 후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정규 리그에서 68점을 얻는 데 그쳤고,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에는 연패를 거듭했다.[119][120] 30개 팀 중 29위에 머물렀으며, 에드먼턴 오일러스보다 한 계단 위에 있었다.[119] 맷 뒤솅은 67점으로 퀘벡/콜로라도 역사상 최연소 득점왕이라는 구단 신기록을 세웠으며, 데이비드 존스와 공동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121] 전 애벌랜치 선수 피터 포스버그는 시즌 중반 콜로라도에서 NHL 복귀를 시도했지만, 두 경기에서 무득점에 플러스-마이너스(plus-minus) -4를 기록한 후 프로 하키 은퇴를 발표했다.[122][123] 팀 주장 아담 푸트 또한 시즌 마지막 경기 후 은퇴했다.[124]
비시즌 동안 콜로라도는 1라운드 지명권을 두 개 가지고 있었다. 드래프트에 참석한 전 애벌랜치의 스타 조 새킥은 구단의 새로운 대표이사 겸 하키 운영 고문으로서 첫 임무를 수행했다.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온타리오 하키 리그(Ontario Hockey League)의 키치너 레인저스의 젊은 주장 가브리엘 란데스코그를 지명했다.[125][126] 2라운드에서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의 논란이 많은 트레이드를 통해 얻은 지명권으로 수비수 던컨 시먼스를 전체 11순위로 지명했다. 이 트레이드는 파워포워드 크리스 스튜어트, 오랫동안 최고 유망주로 여겨졌던 케빈 섀튼커크 그리고 2라운드 지명권을 블루스에 보내는 대신 1라운드 지명권, 베테랑 제이 맥클레먼트, 그리고 2006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되었던 에릭 존슨을 받는 내용이었다. 골텐딩 포지션의 완전한 개편을 통해 피터 부다이는 몬트리올 캐나디언스로, 브라이언 엘리엇은 세인트루이스로 이적했다. 브라이언 엘리엇은 이전 시즌 팀의 부진 중 오타와 세네터스에서 크레이그 앤더슨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콜로라도에 합류했다. 골텐더 세미온 바르라모프는 워싱턴 캐피털스에서 1라운드와 2라운드 지명권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콜로라도에 합류했고, 베테랑 골텐더이자 전 콘 스마이스 트로피(Conn Smythe Trophy) 수상자인 장-세바스티앙 지귀에르는 젊은 세미온 바르라모프를 멘토링하기 위해 자유 계약으로 영입되었다. 던컨 시먼스는 캠프에서 메이저 주니어 팀인 사스커툰 블레이즈로 돌아갔고, 가브리엘 란데스코그는 10월 8일 펩시 센터에서 레드윙스와의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스티브 코노왈추크가 마이너리그 감독직을 수락한 후 아담 데드머시가 비디오/육성 코치에서 공격 어시스턴트 코치로 승진했다.
피터 포스버그의 등번호 21번은 개막일에 애벌랜치에서 영구 결번된 네 번째 등번호가 되었다. 콜로라도는 디트로이트에 3-0으로 패배했지만, 10월 10일 2011 스탠리컵 플레이오프 우승팀인 보스턴 브루인스와의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설욕했다. 세미온 바르라모프는 보스턴의 30개 슛을 모두 막아내며 자신의 커리어 5번째이자 애벌랜치에서의 정규 시즌 첫 승을 셧아웃으로 장식했다. 밀란 헤이둑이 결승골이자 팀의 시즌 첫 골을 넣어 1-0 승리를 거두었다. 2012년 4월, 애벌랜치는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며 서부 컨퍼런스 11위를 기록했다. 전 시즌보다 20점 향상되었지만, 덴버로 이전 후 처음으로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127] 조 새코 감독은 시즌 종료 직후 2년 계약 연장을 맺었다. 돋보이는 신인 가브리엘 란데스코그는 82경기에서 22골을 넣으며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연소 득점왕으로 맷 뒤솅을 제쳤다.
대부분의 자유계약선수와 재계약을 맺었지만, 무제한 자유계약선수였던 피터 뮬러, 제이 맥클레먼트, 케빈 포터를 잃은 것을 제외하고는 2012년 비시즌에 큰 변화는 없었다.[128] 콜로라도는 그렉 자논, 존 미첼, 그리고 득점력이 뛰어난 윙어 피에르-알렉상드르 파랑토를 영입했다.[129] 2012 NHL 어워드에서 애벌랜치의 유일한 대표로 참가한 가브리엘 란데스코그는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Calder Memorial Trophy)를 수상하며, 크리스 드루리, 피터 포스버그, 피터 스타스니에 이어 애벌랜치에서 최고 신인의 영예를 얻었다.[130]
2012년 9월 4일, 가브리엘 란데스코그가 애벌랜치의 네 번째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밀란 헤이둑은 일주일 전 주장직에서 물러났다.[131] 19세 286일의 나이로 란데스코그는 당시 NHL 역사상 최연소 주장이 되었는데, 시드니 크로스비가 피츠버그 펭귄스의 주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보다 11일 어렸다.[132]
콜로라도 애벌랜치가 2012-13 NHL 시즌에서 컨퍼런스 15위, 리그 전체 29위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둔 후, 2013년 4월 28일 조 새코 감독이 경질되었다.[133] 5월 10일, 전 애벌랜치 주장이자 하키 명예의 전당 멤버인 조 새킥이 하키 운영 부사장으로 임명되어 하키 인력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총괄하게 되었다고 발표되었다. 또한 구단주 스탠 크론케(Stan Kroenke)의 아들 조시 크론케(Josh Kroenke)가 피에르 라크로아의 후임으로 애벌랜치 사장으로 임명되었다.[134] 5월 23일, 패트릭 로이가 감독 겸 하키 운영 부사장으로 애벌랜치에 복귀했다.[135] 셔먼(Sherman)은 단장직을 유지했지만, 실질적으로 자문 역할로 축소되었다. 패트릭 로이와 조 새킥은 대부분의 다른 NHL 팀의 단장이 수행하는 업무의 대부분을 공유했지만, 하키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조 새킥이 최종 결정권을 가졌다.[136] 애벌랜치는 2013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사용하여 패트릭 로이가 QMJHL에서 감독했던 팀과 경기를 했던 네이선 맥키넌을 지명했다.
패트릭 로이 감독 체제 하에 2013-14 NHL 시즌 애벌랜치는 센트럴 디비전 1위, 서부 컨퍼런스 2위로 플레이오프에 복귀했지만, 2014 스탠리컵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미네소타 와일드에 7차전 끝에 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년 감독으로서 뛰어난 성과를 인정받아 패트릭 로이는 NHL 최고 감독에게 수여되는 잭 애덤스 상을 수상했다.[137]
2014-15 NHL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 조 새킥이 단장으로 임명되고 셔먼은 부단장으로 강등되면서 2013년부터 사실상 유지되어 왔던 체제가 공식화되었다.[138] 프런트 오피스 변화에도 불구하고, 애벌랜치는 39승 31패 12무승부의 성적으로 센트럴 디비전 7위에 그치며 2015 스탠리컵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139]
2015-16 NHL 시즌 이후에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자 패트릭 로이는 2016년 8월 11일 사임했다.[140]
패트릭 로이의 떠남 이후, 애벌랜치는 칼더 컵 우승팀인 AHL의 레이크 이리 몬스터스에서 자레드 베드너를 감독으로 영입했다.[141] 자레드 베드너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그는 훈련 캠프 개막 한 달 전에 고용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시스템을 구축할 시간이 거의 없었고, 자신의 스태프를 데려올 수 없어 패트릭 로이의 스태프를 그대로 사용해야 했다. 2016년 12월 10일, 애벌랜치는 몬트리올 캐나디언스에 10-1로 패하며 10골을 허용했다. 애벌랜치는 22승 56패 4무의 성적과 48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는데, 이는 리그 최악의 성적이자 덴버 이전 후 프랜차이즈 최악의 성적이었다 (1989-90 시즌과 1990-91 시즌 퀘벡 노르딕스만이 더 적은 점수를 기록했다). 또한 애틀랜타 쓰래셔스가 1999-2000 시즌(리그 첫 시즌)에 14승 61패 7무, 39점을 기록한 이후 NHL에서 확장팀이 아닌 팀 중 최악의 성적이었다.[142] 1967년 이후 비확장팀으로는 최악의 성적 중 하나였다. 2017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콜로라도는 전체 4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사용하여 수비수 케일 마카르를 지명했다.
2. 2. 4. 부활과 세 번째 스탠리 컵 (2017–현재)
2017년 11월 5일, 애벌랜치는 3팀 트레이드를 통해 맷 뒤셴을 오타와 세네터스로 보냈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애벌랜치는 오타와로부터 앤드류 해몬드, 셰인 보워스, 2018년 NHL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2019년 NHL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을 얻었다. 또한, 내슈빌 프레데터스로부터 사무엘 지라르, 블라디슬라프 카메네프, 그리고 2018년 2라운드 지명권을 받았다.[143]
2018년 1월 2일부터 22일까지, 애벌랜치는 10연승을 기록하며 상대팀을 41-16으로 압도했다.[144] 네이선 매키넌은 97점으로 리그 득점 5위를 기록했고, 미코 란타넨은 84점을 올리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애벌랜치는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를 5-2로 꺾고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145] 애벌랜치는 전 시즌보다 47점 향상된 95점을 기록했다. 프레지던츠 트로피를 수상한 내슈빌 프레데터스와의 1라운드에서 3-1로 뒤진 상황에서, 애벌랜치는 5차전에서 2-1로 승리했다. 세미온 바르라모프와 조나단 베르니어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해몬드가 선발 출전하여 44세이브를 기록했다.[146] 그러나 프레데터스는 6차전에서 애벌랜치를 5-0으로 꺾고 시리즈를 승리했다.[147]
2018년 11월 18일, 애벌랜치는 연장전에서 애너하임 덕스를 꺾고 팀 역사상 1,000번째 승리를 거두었다.[148] 2019년 5월 2일, 덴버 시와 KSE는 애벌랜치와 덴버 너기츠를 2040년까지 덴버에 잔류시키는 데 합의했다.[149]
2019년 플레이오프에서 애벌랜치는 캘거리 플레임스를 5경기 만에 꺾었다. 루키 케일 마카르는 3차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애벌랜치는 2라운드에서 새너제이 샤크스에게 7차전 끝에 패했다.
2019년 오프시즌 동안, 애벌랜치는 타이슨 배리를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로 트레이드하고, 나젬 카드리 등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2019-20 시즌이 COVID-19 팬데믹으로 중단되었을 때, 애벌랜치는 디비전 2위에 있었다. 9월 시즌 재개 후, 애벌랜치는 1라운드에서 애리조나 코요티스를 꺾었지만, 2라운드에서 댈러스 스타스에게 7차전 끝에 패했다.
2020년 플레이오프 이후, 애벌랜치는 데번 투스를 영입했다. 애벌랜치는 정규 시즌을 프레지던츠 트로피로 마무리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애벌랜치는 1라운드에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를 스윕하고, 2라운드 1차전에서 베가스 골든 나이츠를 7-1로 이겼다. 그러나 시리즈에서 2-0으로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애벌랜치는 6경기 만에 탈락했다.

2021년 오프시즌 동안, 필립 그루바우어는 시애틀 크라켄과 계약했다. 애벌랜치는 달시 켐퍼를 영입하며 골텐더 문제를 해결했다. 2021-22 시즌에 애벌랜치는 119점을 기록하며 5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내슈빌 프레데터스를 스윕하고,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를 6경기 만에 꺾고 20년 만에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했다. 에드먼턴 오일러스를 스윕하고 스탠리 컵 결승전에 진출했다. 2022년 6월 26일, 애벌랜치는 탬파베이 라이트닝을 6경기 만에 꺾고 프랜차이즈 역사상 세 번째 스탠리 컵을 들어올렸다.[150] 케일 마카르는 콘 스마이스 트로피와 노리스 트로피를 수상했다.
다음 시즌 애벌랜치는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2023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시애틀 크라켄에게 패했다. 2023-24 시즌 애벌랜치는 중부 디비전 3위를 차지했다. 2024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위니펙 제츠를 꺾었지만, 2라운드에서 댈러스 스타스에게 패했다.
3. 라이벌
1996년 콜로라도 애벌랜치는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를 만나 4대 2로 이변을 일으켰다. 6차전에서 레드윙스 선수 크리스 드레이퍼는 애벌랜치 선수 클로드 르미외에게 얼굴을 먼저 보드에 부딪히는 체크를 당했다.[173] 그 결과 드레이퍼는 안면 재건 수술을 받아야 했고 5주 동안 턱을 고정해야 했다.[174] 이 사건은 언론과 팬들에 의해 NHL 역사상 가장 치열한 라이벌리 중 하나로 여겨지는 라이벌리의 시작을 알렸다.[175]
다음 시즌인 1997년 3월 26일, 애벌랜치와 레드윙스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하키타운 난투극으로 알려진 난투극이 발생했다. 이 경기는 9번의 싸움, 11골, 39개의 페널티, 148분의 페널티, 하나의 해트트릭(발레리 카멘스키), 그리고 스탠리 컵 챔피언 패트릭 로이와 마이크 번 간의 골텐더 싸움으로 끝났다.[174] 클로드 르미외는 레드윙스 선수들에 의해 지목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레드윙스는 연장전에서 6대 5로 승리했다.[174] 두 팀은 그 시즌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다시 만났고, 레드윙스가 승리하여 스탠리 컵을 들어올렸다.
애벌랜치와 레드윙스의 라이벌리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최고조에 달했다.[176] 7시즌 동안 두 팀은 스탠리 컵 플레이오프에서 5번의 포스트시즌 시리즈를 치렀고, 애벌랜치가 3번(1995-96, 4-2; 1998-99, 4-2; 1999-2000, 4-1) 이기고 레드윙스가 2번(1996-97, 4-2; 2001-02, 4-3) 이겼다.[176] 이 기간 동안 두 팀은 7년 동안 총 5번의 스탠리 컵 우승을 차지했는데, 애벌랜치가 2번(1995-96, 2000-01), 레드윙스가 3번(1996-97, 1997-98, 2001-02) 우승했다.[176] 2002년 이후 두 팀의 라이벌리는 약해지기 시작했고, 두 팀은 2008년 레드윙스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애벌랜치를 스윕하고 스탠리 컵을 우승할 때까지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만나지 않았다.[176] 2013-14 시즌 레드윙스가 동부 컨퍼런스로 이적하면서 재편성의 일환으로 두 라이벌은 일년에 두 번밖에 만나지 않게 되었다.[177]
4. 역대 홈경기장
경기장 | 사용기간 | 수용인원 | 장소 | 비고 |
---|---|---|---|---|
맥니콜스 스포츠 아레나 | 1995년~1999년 | 16,061명 | 콜로라도주 덴버 | 빈칸 |
볼 아레나 | 1999년~현재 | 18,007명 | 콜로라도주 덴버 | 1999년~2020년 펩시 센터 |
5. 영구 결번
2008년, 2011년
2008~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