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티크
1. 개요
크리티크는 조르주 바타유가 창간한 잡지이다. 1945년 말, 바타유는 사상 논쟁을 담고 당대 출판물, 특히 수필에 대한 비평을 다루는 잡지를 기획했다. '크리티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여 모리스 블랑쇼와 피에르 프레보스트의 지원을 받았으며, 1946년 6월 앙리 밀러의 논설을 담은 창간호를 발간했다. 바타유는 밀러의 외설 혐의에 대해 옹호했으며, 잡지는 '프랑스 및 해외 출판물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잡지'라는 부제를 가졌다. 편집진에는 모리스 블랑쇼, 알베르 올리비에 등이 참여했으며, 제2부서에는 마르셀 아를랑, 레몽 아롱 등이 속했다. 피에르 프레보스트 이후 에릭 베유, 장 피엘이 편집장을 맡았다.
| 제목 | 크리티크 |
|---|---|
| 학문 분야 | 철학 |
| 약칭 | Critique (Paris) |
| 언어 | 프랑스어 |
| 창립자 | 조르주 바타유 |
| 출판사 | 미뉘 출판사 |
| 간행 주기 | 월간 |
| 역사 | 1946년–현재 |
| 웹사이트 | 미뉘 출판사 웹사이트 |
| ISSN | 0011-1600 |
| eISSN | 1968-3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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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켈
텔 켈은 필립 솔레르스와 장-에데른 알리에가 창간한 프랑스 문학 잡지로, 구조주의에서 포스트구조주의, 해체주의로 변화하며 프랑스 지성계에 영향을 미쳤고, 사상적 변화를 거쳐 아방가르드 문학과 이론 발전에 기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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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누벨 르뷔 프랑세즈
라 누벨 르뷔 프랑세즈는 앙드레 지드 등을 중심으로 1909년 창간되어 프랑스 문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실존주의 문학을 비롯한 주요 사조 형성에 기여한 프랑스 문학 잡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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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1954년 창간된 프랑스 월간지로, 외교·지정학을 다루다 냉전 종식 후 신자유주의 비판, 국제 문제 심층 분석 등으로 영역을 넓혔으며, 재정적·편집적 독립 후 다양한 언어로 발행되지만, 음모론 게재 및 편향적 보도에 대한 비판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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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1950년 창간되어 여러 제호 변경을 거쳐 1964년 현재 이름으로 재창간된 프랑스의 시사 주간지로, 정치, 경제, 문화, 국제 문제 등 다양한 분야를 심층적으로 보도하며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국제 문제에 대한 분석과 논평을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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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
《파수대》는 찰스 테이즈 러셀이 창간한 여호와의 증인 공식 간행물로, "여호와의 왕국을 선포하는 파수대"라는 제목으로 400개 이상의 언어로 배포되며, 성경에 근거한 내용으로 일반 대중용 공개판과 연구용 연구판으로 나뉘어 자발적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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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1950년 창간되어 여러 제호 변경을 거쳐 1964년 현재 이름으로 재창간된 프랑스의 시사 주간지로, 정치, 경제, 문화, 국제 문제 등 다양한 분야를 심층적으로 보도하며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국제 문제에 대한 분석과 논평을 제공한다.
2. 사상의 교차점
조르주 바타유는 1945년 말부터 주르날 데 사방이 택했던 방식대로 "가장 좋은 책들에서 나온 인간 사유의 정수"를 보여줄 새 잡지를 창간하고자 하였다.
<크리티크>는 처음부터 사상 논쟁을 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당대 출판물, 그중에서도 주로 수필에 대한 비평을 다루는 잡지로 출발했다. 미셸 쉬르야의 말처럼, <크리티크>는 "순수 사상, 창작을 위한 잡지가 아닌, 사상서 비평을 위한 잡지였다." 처음에 ‘크리티카’Critica라는 제목을 선택했던 바타유는 초반에 모리스 블랑쇼와 피에르 프레보스트에게 둘러싸였다.
2.1. 창간 과정
조르주 바타유는 1945년 말부터 새 잡지를 창간하고자 하였다. 그는 17세기에 창간된 주르날 데 사방이 택했던 방식대로 "가장 좋은 책들에서 나온 인간 사유의 정수"를 보여주고자 했다.
<크리티크>는 처음부터 사상 논쟁을 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당대 출판물, 그중에서도 주로 수필에 대한 비평을 다루는 잡지로 출발했다. 미셸 쉬르야의 말처럼, <크리티크>는 "순수 사상, 창작을 위한 잡지가 아닌, 사상서 비평을 위한 잡지였다." 처음에 ‘크리티카’Critica라는 제목을 선택했던 바타유는 초반에 모리스 블랑쇼와 피에르 프레보스트에게 둘러싸였다.
잡지 창간 계획은 다음 해가 되어서야 시작되었으며, 1946년 6월에야 앙리 밀러의 논설이 담긴 창간호가 출간되었다. 바타유는 이후 밀러가 외설로 기소당하자 그를 옹호하게 된다. <크리티크>는 ‘프랑스 및 해외 출판물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잡지Revue générale des publications françaises et étrangères’라는 부제를 가졌다. 또한 바타유가 총책을, 피에르 프레보스트가 편집장을 맡았으며, 편집부에는 모리스 블랑쇼, 알베르 올리비에, 에릭 베유, 쥘 몬로, 피에르 조스랑(국립도서관에서 일할 때 바타유의 전 동료)이 있었다. 제2부서는 편집부보다 비교적 규모가 컸으며, 3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마르셀 아를랑, 레몽 아롱, 루이 드 브로이, 르네 샤르, 르네 위그, 알렉상드르 쿠아레, 마리오 프라즈, 폴 리베, 장 발 등이 속해 있었다. 피에르 프레보스트 이후, 에릭 베유가 편집장이 되었으며, 뒤이어 장 피엘이 편집장을 맡게 된다.
2.2. 편집진 구성
조르주 바타유는 1945년 말부터 "가장 오래된 잡지 중 하나로 17세기 창간된 <주르날 데 사방>이 그 방법으로 삼은, 가장 좋은 책들에서 나온 인간 사유의 정수"를 보여줄 새 잡지를 창간하고자 하였다.
<크리티크>는 사상 논쟁을 담을 의도하에, 당대 출판물, 그중에서도 주로 수필에 대한 비평을 다루는 잡지로 출발했다. 미셸 쉬르야의 말처럼, <크리티크>는 "순수 사상, 창작을 위한 잡지가 아닌, 사상서 비평을 위한 잡지였다." 맨 처음 ‘크리티카’Critica라는 제목을 고른 바타유는 초반에 모리스 블랑쇼와 피에르 프레보스트에게 둘러싸였다.
잡지 창간 계획은 다음 해가 되어서야 시작되었으며, 1946년 6월에야 앙리 밀러의 논설이 담긴 창간호가 출간되었다. 바타유는 이후 밀러가 외설로 기소당하자 그를 옹호하게 된다. <크리티크>는 ‘프랑스 및 해외 출판물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잡지Revue générale des publications françaises et étrangères’라는 부제목을 가졌다. 또한 바타유가 총책을, 피에르 프레보스트가 편집장을 맡았으며, 편집부에는 모리스 블랑쇼, 알베르 올리비에, 에릭 베유, 쥘 몬로, 피에르 조스랑(국립도서관서 일할 때 바타유의 전 동료)이 있었다. 제2부서는 편집부보다 비교적 규모가 컸으며, 3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마르셀 아를랑, 레몽 아롱, 루이 드 브로이, 르네 샤르, 르네 위그, 알렉상드르 쿠아레, 마리오 프라즈, 폴 리베, 장 발 등이 속해 있었다. 피에르 프레보스트 이후, 에릭 베유가 편집장이 되었으며, 뒤이어 장 피엘이 편집장을 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