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부 스토이카
1. 개요
키부 스토이카는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정치인이었다. 그는 루마니아 철도 공사에서 일하다가 루마니아 공산당에 가입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그리비차 파업에 연루되어 수감되었으며, 이후 루마니아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원, 루마니아 총리, 국가 평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스토이카는 여러 훈장을 받았으며, 3기 매독으로 고통받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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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키부 스토이카 |
|---|---|
| 출생일 | 1908년 8월 8일 |
| 출생지 | 스메니, 부저우 주, 루마니아 왕국 |
| 사망일 | 1975년 2월 18일 |
| 사망지 | 부카레스트,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
| 사망 원인 | 총기 자살 |
| 정당 | 루마니아 공산당 |
| 직업 | 보일러공 |
| 배우자 | 에카테리나 미쿠-키부 (결혼 종료) 마리아 마놀레스쿠-키부 |
| 자녀 | 2명 |
| 임기 시작 | 1965년 3월 24일 |
|---|---|
| 임기 종료 | 1967년 12월 9일 |
| 이전 |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 |
| 다음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
| 부통령 | 에밀 보드나라슈 |
| 임기 시작 | 1955년 10월 21일 |
| 임기 종료 | 1961년 3월 21일 |
| 이전 |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 |
| 다음 | 이온 게오르게 마우레르 |
| 각료평의회 제1부의장 | 데지]] |
| 임기 시작 | 1954년 8월 20일 |
| 임기 종료 | 1955년 10월 4일 |
| 다음 | 에밀 보드나라슈 |
| 임기 시작 | 1948년 4월 15일 |
| 임기 종료 | 1952년 5월 31일 |
| 훈장 | 루마니아 왕관 훈장, 대장교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 별 훈장, 1등급 , 1등급 , 1등급 , 1등급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영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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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저우주 출신 -
마르첼 치올라쿠
마르첼 치올라쿠는 루마니아의 정치인으로, 법학 학위를 받고 부저우 주 의원, 부시장, 하원 의원을 거쳐 사회민주당 당대표를 역임했으며, 2023년 루마니아 총리가 되었다. -
부저우주 출신 -
슈테판 페트레스쿠
슈테판 페트레스쿠는 루마니아의 사격 선수로, 1956년 멜버른 올림픽 25m 속사권총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루마니아 국가대표 코치를 역임했다. -
1975년 자살 -
블라디미르 쿠츠
블라디미르 쿠츠는 소련의 장거리 육상 선수로, 1954년 유럽 선수권 우승을 시작으로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2관왕을 차지하고 4차례 세계 신기록을 세우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친 후 육상 코치로도 활동했다. -
1975년 자살 -
레반흥
남베트남의 군인인 레반흥은 안록 전투에서 제5사단장으로 활약하여 "안록의 영웅"으로 불렸으나, 사이공 함락 후 자결하였다. -
루마니아의 대통령 -
트라이안 버세스쿠
트라이안 버세스쿠는 1989년 루마니아 혁명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교통부 장관, 부쿠레슈티 시장을 거쳐 2004년부터 2014년까지 루마니아 대통령을 역임하며 친서방 외교 정책을 추진하고 두 차례 탄핵 위기를 겪었으며 퇴임 후에는 인민운동당 대표, 상원 의원, 유럽 의회 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
루마니아의 대통령 -
니콜라에 버커로이우
니콜라에 버커로이우는 루마니아의 정치인이자 경제학자로, 총리와 원로원 의장을 역임했으며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했고, 경제 개혁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며 유럽 연합과 NATO 가입을 추진했다.
2. 초기 생애
스토이카는 부저우 주 스메에니에서 쟁기질하는 사람의 여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12세에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친 후 집을 떠나 국영 철도 회사인 루마니아 철도 공사에서 견습생으로 일했다. 1921년 부쿠레슈티로 이주하여 Vulcan, Lemaître, 말락사 회사에서 보일러 제작자로 일했다. 국민 농민당(PNȚ)에 가입하여 1929년까지 부쿠레슈티 블루 구역의 비서로 활동했다. 말락사 공장에서 게오르게 바실리키를 만나 1931년에 루마니아 공산당(PCR) 가입을 권유받았다.
3. 정치 활동
스토이카는 1931년 그리비차 철도 공장에서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 등과 파업을 조직하다 투옥되었으나, 이후 루마니아 노동당에서 주요 직책을 맡으며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1945년부터 1975년까지 루마니아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및 정치국 일원으로 활동했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 루마니아 총리를 역임했으며, 1965년부터 1967년까지는 루마니아 국가 평의회 의장(사실상 국가 원수)을 지냈다.
정치 활동 기간 동안 스토이카는 다음과 같은 훈장을 받았다.
| 훈장 종류 | 수여 년도 |
|---|---|
| 루마니아 왕관 훈장 대장 | 1947년 |
|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별 훈장 1급 | 1948년, 1958년 |
| Ordinul Muncii루마니아어 1급 | 1959년 |
|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 낫과 망치 금메달 | 1958년 |
| Ordinul „23 August”루마니아어 1급 | 1959년 |
| Orden Tudor Vladimirescu독일어 1급 | 1966년 |
|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영웅 칭호 | 1973년 |
3.1. 초기 정치 활동 (1929-1945)
1931년 봄, 스토이카는 그리비차 철도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 바실레 루카, 콘스탄틴 돈체아를 만나 함께 파업을 조직했다. 1934년 8월 20일, 1933년 그리비차 파업에 참여한 대가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아이우드, 도프타나, 터르구 오크나, 버커레슈티, 카란세베슈 등 여러 감옥에서 복역했다. 1935년부터 1936년까지 옥넬레 마리 감옥에서 게오르기우-데지와 함께 수감 생활을 했다. 1940년, 형량이 9년 중노동으로 감형되었다. 이후 제1군단의 전쟁 위원회에서 사면을 받았지만, 터르구 지우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수용소에서 게오르기우-데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으며, 게오르기우-데지는 스토이카를 사무총장 후계자로 고려했을 가능성도 있다.
3.2. 공산당 내 활동 (1945-1975)
1931년 봄, 스토이카는 그리비차 철도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 바실레 루카, 콘스탄틴 돈체아를 만나 함께 파업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1934년 8월 20일, 1933년 그리비차 파업에서의 역할로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아이우드, 도프타나, 터르구 오크나, 버커레슈티, 카란세베슈 감옥에서 복역했다. 1935-1936년에 게오르기우-데지와 함께 옥넬레 마리 감옥에 있었다. 1940년, 형량이 9년의 중노동으로 감형되었다. 나중에 제1군단의 전쟁 위원회는 그를 사면했지만, 터르구 지우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수용소에서 게오르기우-데지와 가까이 지냈으며, 게오르기우-데지는 스토이카를 사무총장의 후계자로 삼고 싶어했을 수도 있다.
1945년부터 1975년까지 루마니아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었으며, 정치국의 일원이었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 루마니아 총리였으며,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루마니아 국가 평의회 의장(사실상 국가 원수)이었다.
스토이카는 루마니아 왕관 훈장 대장(1947년),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별 훈장 1급(1948년, 1958년), Ordinul Muncii루마니아어 1급(1959년),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와 낫과 망치 금메달(1958년), Ordinul „23 August”루마니아어 1급(1959년), Orden Tudor Vladimirescu독일어 1급(1966년),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영웅 칭호(1973년)를 받았다.
3.3. 총리 및 국가 평의회 의장 재임 (1955-1967)
키부 스토이카는 1945년부터 1975년까지 루마니아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자 정치국 일원이었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 루마니아 총리를,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루마니아 국가 평의회 의장(사실상 국가 원수)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