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니베크 칸
1. 개요
티니베크 칸은 우즈베크 칸의 아들이자, 백장 호르드의 총독이었으며, 조치 울루스의 칸이었다. 그는 아버지 우즈베크 칸 사후, 동생 자니 베그에 의해 살해당했다. 티니베크는 1330년경 백장 호르드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며, 이븐 바투타는 그가 우즈베크의 총애를 받았고 후계자로 지명되었다고 기록했다. 티니베크는 자니 베그의 쿠데타로 살해당했으며, 그의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육체의"를 의미한다. 그는 또한 영화 "오르다: 황금 왕국의 마법사"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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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호 | 황금 군단의 칸 |
|---|---|
| 통치 기간 (서부 절반, 청색 호르드) | 1341년 – 1342년 |
| 선임자 | 외즈 베그 칸 |
| 후임자 | 자니 베그 |
| 왕가 | 보르지긴 |
| 왕조 | 황금 군단 |
| 아버지 | 외즈 베그 칸 |
| 어머니 | 타이둘라 카툰 |
| 사망일 | 1342년 |
| 사망 장소 | 사라이 |
| 종교 | 이슬람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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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 칸국의 칸 -
우루스 칸
우루스 칸은 14세기 후반 조치 울루스 좌익의 칸으로, 킵차크 칸국을 재건하려 했으나 티무르의 지원을 받은 토크타미쉬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
청장 칸국의 칸 -
노가이 칸
노가이 칸은 13세기 황금 호르드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동유럽 원정과 비잔티움과의 외교, 칸국 내 권력 다툼을 통해 황금 호르드와 동유럽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킵차크 칸국의 칸 -
토크타미시 칸
토크타미시 칸은 티무르의 지원으로 황금 호르드의 칸이 되어 세력을 확장했으나 티무르와의 갈등으로 몰락, 에디게에 의해 살해당하며 황금 호르드 쇠퇴에 영향을 미쳤다. -
킵차크 칸국의 칸 -
우즈베크 칸
우즈베크 칸은 킵차크 칸국의 칸으로서 이슬람교를 국교로 приняття하고 국가 체제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모스크바 공국을 지지하여 루스 제후들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라이를 정치·경제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
무슬림 -
필리프 트루시에
필리프 트루시에는 프랑스 출신 축구 감독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클럽 및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했으며, 플랫 스리 전술과 젊은 선수 기용을 특징으로 하지만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
무슬림 -
마마두 사코
마마두 사코는 프랑스 국적의 축구 선수로, 수비수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파리 생제르맹, 리버풀 등에서 뛰었고, 프랑스 국가대표팀으로 2014 FIFA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2024년에는 토르페도 쿠타이시와 계약했다.
2. 생애
티니베크는 우즈베크 칸과 그의 정실 부인 타이다울라 하툰 사이에서 태어났다. 1328년경 백장 호르드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며, 이븐 바투타와 같은 무슬림 자료는 그가 우즈베크의 가장 총애받는 아들이었고 그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고 주장했다. 시인 쿠트브는 티니 베그와 그의 아내 말리카 하툰을 위해 니자미 간자비의 "호스로와 시린"을 번역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볼히니아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빼앗겼다.
1334년경 우즈베크 칸의 궁정을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티니 바크(تينه بك, Tīna bak)라는 이름으로 그를 언급했다. 이븐 바투타에 따르면, 티니 베크는 용모가 수려한 인물로, 아버지 우즈베크로부터 차대 조치 울루스 당주로 후계자로 지명되어 존경받는 지위에 있었다.
이름의 "티니"는 페르시아어로 "몸", "육체"를 의미하는 "탄"(تن tan)에서 파생된 "육체의", "유형의"라는 의미의 단어 "타니"(تنى tanī)에서 유래했으며, 동생 자니 베그(이름이 "영혼의" 의미)와 대조되는 의미이다.
2.1. 킵차크 칸국의 칸
우즈베크 칸과 그의 정실 부인 타이다울라 하툰 사이에서 태어났다. 1330년 그의 형 티무르 베그가 죽은 후 유력한 후계자가 되었다. 티니 베그는 아버지 우즈베크 칸이 1341년에 사망했을 때 동쪽 국경에서 차가타이 침략자들과 싸우거나 조치 울루스의 백장 호르드에서 싸우느라 자리에 없었다. 티니 베그의 동생 자니 베그는 어머니 타이다울라 하툰의 도움을 받아 섭정을 맡았다. 불분명한 상황에서 자니 베그는 우즈베크의 또 다른 아들 히드르 베그를 살해했다. 1342년 타이다울라는 티니 베그가 궁정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니 베그를 두려워하여 에미르들을 선동하여 사라이-주크에서 티니 베그를 살해하게 했다. 자니 베그가 칸의 자리를 계승했다.
맘루크 왕조의 역사가 슈자이의 연대기에 따르면, 히즈라력 742년(1341년 - 1342년)에 우즈베크는 차카타이 울루스로 대군과 함께 티니 베크를 파견했지만, 같은 해 샤왈달(1342년 3-4월)에 우즈베크는 사라이에서 사망했고, 궁정에 있던 자니 베크는 책략을 꾸며 동생 히드르 베크와 함께 형 티니 베크를 살해하게 하고 즉위했다고 한다. 이후 문헌에서는, 재위 연월일이 짧기 때문에 아버지 우즈베크와 동생 자니 베크 사이에서 생략되는 경우가 있다.
2.2. 자니 베그의 쿠데타와 죽음
우즈베크 칸과 그의 정실 부인인 타이다울라 하툰 사이에서 태어났다. 1328년경 백장 호르드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이븐 바투타와 같은 무슬림 자료는 그가 우즈베크의 가장 총애받는 아들이었고 그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1330년 그의 형 티무르 베그가 죽은 후 유력한 후계자가 되었다.
1334년경 우즈베크 칸의 궁정을 방문한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는 두 형제에 관해 언급되어 있으며, 티니 바크 تينه بك Tīna bak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븐 바투타에 따르면, 우즈베크 재위 중 금요 예배 때 아버지와 그의 비빈들이 앉는 옥좌 아래 단에 첫째 왕자로서 티니 베크가 오른쪽에, 둘째 왕자로서 동생 자니 베그가 왼쪽에 앉았다고 한다. 바투타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티니 베크는 용모가 수려한 인물로, 아버지 우즈베크로부터 차대 조치 울루스 당주로 후계자로 지명되어 존경받는 지위에 있었다고 한다.
티니 베그는 아버지 우즈베크 칸이 1341년에 사망했을 때 동쪽 국경에서 차가타이 침략자들과 싸우거나 조치 울루스의 백장 호르드에서 싸우느라 자리에 없었다. 티니 베그의 동생 자니 베그는 어머니 타이다울라 하툰의 도움을 받아 섭정을 맡았다. 불분명한 상황에서 자니 베그는 우즈베크의 또 다른 아들 히드르 베그를 살해했다. 1342년 타이다울라는 티니 베그가 궁정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니 베그를 두려워하여 에미르들을 선동하여 사라이-주크에서 티니 베그를 살해하게 했다. 자니 베그가 칸의 자리를 계승했다.
맘루크 왕조의 역사가 슈자이의 연대기에 따르면, 히즈라력 742년(1341년 - 1342년)에 우즈베크는 차카타이 울루스로 대군과 함께 티니 베크를 파견했지만, 같은 해 샤왈달(1342년 3-4월)에 우즈베크는 사라이에서 사망했고, 궁정에 있던 자니 베크는 책략을 꾸며 동생 히드르 베크와 함께 형 티니 베크를 살해하게 하고 즉위했다고 한다.
3. 유산
이븐 바투타는 티니 베크를 왕위에 더 적합한 인물로 기억했다. 티니 베크는 친기독교 성향으로 여겨졌으며, 교황 베네딕토 12세로부터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하는 서신을 받았다.
4. 이름의 어원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는 티니 바크(تینہ بك, Tīna bak)라는 이름으로 두 형제에 관한 언급이 있다. 우즈베크 재위 중 금요 예배 때 아버지와 그의 비빈들이 앉는 옥좌 아래 단에 첫째 왕자로서 티니 베크가 오른쪽에, 둘째 왕자로서 동생 자니 베크가 왼쪽에 앉았다고 한다. 바투타는 티니 베크가 용모가 수려한 인물로, 아버지 우즈베크로부터 차대 조치 울루스 당주 후계자로 지명되어 존경받는 지위에 있었다고 전한다.
"티니"는 페르시아어로 "몸", "육체"를 의미하는 "탄"(تن tan)에서 파생된 "육체의", "유형의"라는 의미의 단어 "타니"(تنى tanī)에서 유래했으며, 동생 이름인 자니("영혼의" 의미)와 대조를 이룬다.
5. 가족 관계
티니베크 칸은 우즈베크 칸과 그의 정실 부인인 타이다울라 하툰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최소 두 명의 부인을 두었다.
6. 현대 문화에서의 묘사
티니베크 칸은 2012년 러시아 영화 《호드》에서 안드레이 파닌이 연기했다.
6.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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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러시아 영화 《호드》에서 러시아 배우 안드레이 파닌이 티니베크 칸을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