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바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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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븐 바투타는 1304년 모로코 탕헤르에서 태어난 이슬람 학자이자 여행가로, 자신의 여행기를 통해 14세기 이슬람 세계와 주변 지역의 사회, 문화, 종교, 정치를 기록했다. 1325년 메카 순례를 시작으로 약 24년간 북아프리카, 중동, 동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등지를 여행했으며, 1354년 모로코로 돌아와 여행담을 《이븐 바투타 여행기》로 정리했다. 그의 여행기는 14세기 이슬람 세계에 대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지만, 내용의 사실성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이븐 바투타는 1368년 또는 1369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이름은 탕헤르 공항, 두바이 쇼핑몰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이븐 바투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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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레온 베네트가 그린 이집트에서 이븐 바투타 (가운데)와 그의 안내자 (왼쪽)를 묘사한 삽화
존칭 접두어샤이흐
이름이븐 바투타
원어 이름ابن بطوطة
원어 이름 (언어)ar
출생일1304년 2월 24일
출생지탕헤르, 마린 왕조
사망일1369년 (64–65세)
사망지마라케시, 마린 왕조
다른 이름이슬람의 마르코 폴로
직업여행가, 지리학자, 탐험가, 학자, 판사
시대후기 고전 시대
주요 작품리흘라
이스무샤므스 알딘
나사브무함마드 이븐 압드 알라 이븐 무함마드 이븐 이브라힘 이븐 무함마드 이븐 유수프
니습알-라와티이 아트-탄지이
쿠냐아부 압드 알라
라카브이븐 바투타
로마자 표기ibn Baṭṭūṭah
IPA 표기ˌɪbən bæˈtuːtɑː
여행 정보
여행 거리 (총)117,000km
해상 여행 거리50,000km
육로 여행 거리24,000km
참고 정보
언급"이것은 현대의 편의성으로도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여정의 기록이다. — 어떤 경우든, 이븐 바투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가임에 틀림없다." - 자와할랄 네루
로마자 표기 (원어)Abu Abd Allah Muhammad ibn Abd Allah al-Lawati al-Tanji ibn Battuta
원어 (표제)تحفة النظار في غرائب الأمصار وعجائب الأسفار
원어 (로마자 표기)tuḥfat al-nuẓẓār fī gharāʾib al-ʾamṣār wa-ʿajāʾib al-ʾasfā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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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장 배경 및 초기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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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바투타에 관해서는 출생이나 여행 기록 모두 자서전으로 전해지는 것 이외의 정보는 없다.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1304년 2월 24일 또는 25일, 마리니드 왕조 통치하의 모로코 탕헤르의 이슬람 법학자(울라마)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라와타로 알려진 베르베르인 부족 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당시 북아프리카에서 우세했던 말리크 학파의 샤리아 법학을 수학한 것으로 생각된다. 1325년 6월, 21세 때 그는 순례(하즈)를 위해 메카를 목표로 고향을 떠났다. 원래는 왕복 16개월의 여정이었으나, 그가 다시 모로코 땅을 밟은 것은 24년 후였다.

그는 북아프리카 해안을 육로로 메카를 향했다. 자이얀 왕조, 하프스 왕조를 횡단하는 도중 틀렘센, 베자이아를 통과하고, 튀니스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두 달을 보냈다. 그리고 스팍스에서 첫 번째 아내를 맞이했다. 여기서 시작되는 일련의 결혼이 그의 여행을 독특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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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6년 초봄, 3500킬로미터의 여정 끝에 이븐 바투타는 바흐리 맘루크 왕조 통치하의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두 명의 금욕적이고 경건한 인물을 만난다. 한 명은 셰이크 부르하누딘(Sheikh Burhanuddin)으로, 그는 "나는 당신이 세계를 여행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인도에 있는 나의 제자 파리두딘(Fariduddin), 신드에 있는 루코누딘(Rukonuddin), 그리고 중국에 있는 부르하누딘(Burhanuddin)을 방문할 것입니다. 잘 전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븐 바투타가 세계 여행자가 될 것을 예언했다고 생각된다. 또 다른 경건한 인물, 셰이크 무르시드는 이븐 바투타가 꾼 꿈에 대해, 그가 세계 여행자가 될 운명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수 주일을 이 근처 관광에 보내고, 내륙의 카이로로 향했다. 맘루크 왕조의 수도이자 중요한 도시인 카이로에는 약 한 달 동안 머물렀다. 그는 비교적 안전한 마무룩 영토에서 이 여정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첫 번째 우회를 했다. 즉, 일반적으로 알려진 메카로 향하는 세 가지 길 중 이븐 바투타는 여행객이 가장 적은 나일 강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 후 동쪽으로 향해 홍해의 항구 도시를 경유하는 경로를 선택했으나, 도시에 가까워지자 반정부 세력에 쫓겨났다.

3. 이븐 바투타의 여정

이븐 바투타의 여정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325년, 21세의 나이에 메카 순례를 떠나 이집트를 거쳐 메카(마카)를 순례하고, 이란, 시리아, 아나톨리아 반도, 흑해, 킵차크 칸국, 중앙아시아, 인도, 수마트라, 자바를 거쳐 중국에 도달하여 취안저우와 대도를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1349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알안달루스(이베리아 반도)와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여 1354년 마린 왕조의 수도 페스로 돌아왔다. 특히 이슬람권의 경계 지역(수그르)을 널리 여행했다. 약 30년에 걸친 대여행 중 8년 동안은 인도의 투글루크 왕조에서 판사로서 5개 마을의 영지를 받았고, 1년 가까이 몰디브의 고위 관리로서 생활했다.

1325-1332년 여정
1325-1332년 여정

1332-1346년 여정
1332-1346년 여정

1349-1354년 여정
1349-1354년 여정

3.1. 첫 번째 여정 (1325-1332): 북아프리카, 중동, 동아프리카

1325년 이븐 바투타는 메카 순례, 즉 하즈를 위해 고향 탕헤르를 떠났다. 그는 육로로 북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몇 주를 보낸 뒤 카이로로 이동하여 한 달 정도 머물렀다. 카이로에서 나일강을 건너 홍해의 항구 아이자브로 향했지만, 반란으로 인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카이로로 돌아온 이븐 바투타는 다마스커스를 거쳐 메디나메카를 순례했다. 메디나에는 무함마드의 영묘가 있으며, 메카 순례를 마친 이븐 바투타는 하지 칭호를 얻었다. 1326년 11월, 메카에서 한 달을 보낸 이븐 바투타는 아라비아 반도를 지나 이라크로 향하는 대상단에 합류하였다. 나자프에서는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영묘를 방문하였다.

이후 이븐 바투타는 페르시아를 방문하기 위해 바스라 남쪽의 티그리스강을 따라 와시트로 이동한 뒤, 자그로스산맥을 넘어 에스파한을 거쳐 시라즈로 향했다. 1327년 6월, 바그다드에 도착했을 때는 1258년 훌라구의 침입으로 파괴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바그다드에서 이븐 바투타는 일 한국의 통치자 아부 사이드를 만나 비단길을 따라 타브리즈로 갔다가 바그다드로 돌아왔다. 1327년 7월경에는 바그다드를 떠나 티그리스강을 따라 북쪽으로 모술을 방문하고, 지즈레마르딘을 방문한 뒤 신자르에서 쿠르드인을 만났다. 이후 다시 메카로 돌아와 두 번째 순례를 마쳤다.

이븐 바투타는 메카에서 두어 해 머문 뒤, 지다에서 배를 타고 예멘자비드타이즈를 방문했다. 사나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제 방문 여부는 불확실하다. 아덴에는 1329년 또는 1331년경에 도착했다.

제일라 항구. 19세기의 그림
제일라 항구. 19세기의 그림


아덴에서 배를 탄 이븐 바투타는 소말리아제일라를 거쳐 과르다푸이 항구로 갔다. 이후 남쪽으로 이동하여 모가디슈를 방문했다. 1331년 모가디슈를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그곳이 매우 큰 도시이며 부유한 상인들이 많다고 기록했다. 이븐 바투타는 소말리아 술탄을 만났는데, 술탄은 아랍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오늘날 탄자니아 지역에 있던 킬와 키시와니의 대모스크. 산호를 이용하여 지었다.
오늘날 탄자니아 지역에 있던 킬와 키시와니의 대모스크. 산호를 이용하여 지었다.


소말리아를 떠난 이븐 바투타는 스와힐리 해안에 도착하여 몸바사에 잠시 들렀다가 탄자니아의 킬와로 이동했다. 당시 킬와는 금 거래의 중심지였다. 이븐 바투타는 킬와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라고 기록했다. 1330년, 킬와의 술탄 알 하산 이븐 술레이만을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술탄의 겸손함을 칭찬했다. 킬와는 후수니 쿠브와 궁전이 건설되고 킬와 대모스크가 증축되는 등 매우 번성했다. 킬와 대모스크는 산호를 이용해 지은 건물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이븐 바투타는 몬순 계절에 맞춰 킬와를 떠나 오만을 거쳐 메카로 돌아가 세 번째 하즈를 수행했다.

3.2. 두 번째 여정 (1332-1346): 아나톨리아,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이븐 바투타는 메카에서 3년간 머무른 뒤, 델리 술탄 왕조의 무함마드 빈 투그루크에게 고용되어 인도로 향했다. 1330년(또는 1332년) 아나톨리아를 출발하여 델리로 가는 대상단에 합류하였다. 라타키아에서 제노바 공화국의 상선을 타고 알라니아에 내려 육로로 코니아를 거쳐 흑해 연안의 시노프에 도착하였다. 크림반도로 건너가 킵차크 한국의 아미르를 만나고 마자르에서 우즈베크 칸을 알현했다. 볼가르를 거쳐 카스피해 연안의 아스트라한으로 갔다. 우즈베크 칸의 아내이자 동로마 제국 안드로니코스 3세의 딸인 바얄룬 공주의 출산을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동행했다.

1332년(또는 1334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안드로니코스 3세 팔라이오로고스를 알현하고 아야 소피아를 방문했다. 한 달 뒤 아스트라한으로 돌아가 킵차크 한국의 수도 사라이에서 우즈베크 칸에게 여행 경과를 보고했다. 카스피해아랄해를 지나 부하라사마르칸트를 방문한 후,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여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에 도착했다. 델리에서 술탄 무함마드 빈 투그루크를 알현하였다.

무함마드 빈 투그루크는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었다. 이븐 바투타는 그의 후원으로 6년간 카디(판관)로 일했다. 한시를 방문하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구가 많은 대도시"라고 기록했다. 인더스강 하류의 신드 지역에서는 인도코뿔소를 보았다고 기록했다.

이븐 바투타는 변덕스러운 술탄 밑에서 6년을 보낸 뒤, 원나라로 가는 외교 사절로 가는 제안을 받아들여 델리를 떠났다. 해안을 따라 원나라로 향하다 도적의 습격을 받았다. 캄바트를 거쳐 코지코드로 갔으나, 폭풍으로 배가 침몰하여 수마트라로 가게 되었다.

델리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인도 남부에 머물다 몰디브로 향했다. 몰디브에서 카디로서 이슬람 선교 활동을 하며 반쯤 억류되었고, 왕족과 결혼하여 몰디브에 묶이게 되었다. 이븐 바투타는 몰디브에서 비지르의 사위가 되었고, 결혼과 이혼이 자유롭다고 기록했다.

스리랑카로 가던 중 해적의 습격을 받고 마두라이로 갔다. 다시 몰디브로 돌아가 정크선을 타고 중국으로 향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도착하여 실렛으로 가 은자 샤흐 자랄을 방문했다. 아삼 지방 북부를 둘러본 뒤 치타공으로 돌아와 수마트라섬 북부 아체 지방의 사무데라 파사이 술탄국에 도착했다. 그곳 술탄의 정크선을 타고 말라카와 베트남, 필리핀을 거쳐 원나라 광저우에 도착하였다.

이븐 바투타는 중국에서 화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고 기록했다. 비단과 도자기, 자두, 수박과 같은 과실, 지폐 사용에 대해 기록했다. 광저우에서 큰 배를 만드는 모습을 설명하고, 개구리 요리와 같은 음식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칭옌산(清源山)에 올라 도교 사원을 방문했다. 북쪽의 항저우를 방문하여 시 호에 둘러싸인 매우 매력적인 도시라고 기록했다. 항저우에서 원나라 관리를 만났는데, 그는 중국 토속 요술을 신봉하고 있었다.

대운하를 이용하여 베이징을 방문하여 원 혜종을 알현했다. 만리장성을 보고 꾸란에 나오는 둘 콰르나인이 곡과 마곡을 막기 위해 쌓은 벽과 같다고 언급했다. 다시 대운하를 타고 광저우로 돌아가 푸저우를 방문한 뒤 귀향길에 올랐다.

3.3. 세 번째 여정 (1349-1354): 귀향, 알안달루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1346년, 이븐 바투타는 광저우를 떠나 귀향길에 올랐다. 인도코지코드를 거쳐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바스라에 도착하였다. 일 한국의 마지막 왕 아부 사이드가 바스라에서 사망하고, 페르시아인들과 몽골인 사이의 내전으로 일 한국이 멸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1348년, 다마스커스에 도착한 이븐 바투타는 아버지가 15년 전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흑사병시리아, 팔레스타인, 아라비아 반도 등 근동 지역에 만연해 있었고, 이븐 바투타는 고향 모로코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사르데냐를 거쳐 고향 탕헤르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마저 몇 달 전에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라나다의 왕궁이었던 알람브라 궁전
그라나다의 왕궁이었던 알람브라 궁전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알안달루스라 불리며 이슬람 세계의 일부였고, 카스티야 왕국, 레온 왕국, 아라곤 왕국과 같은 유럽 기독교 국가들과 전쟁 중이었다. 이슬람 세력은 한때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지배했으나, 레콘키스타로 인해 그라나다 타이파 국가만 남게 되었다.

1350년, 카스티야의 알폰소 11세가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탕헤르를 공격하자, 이븐 바투타는 다른 무슬림들과 함께 항구를 지켰다. 알폰소 11세가 흑사병으로 사망하고 레온 왕국 군대가 퇴각하자, 이븐 바투타는 발렌시아그라나다를 여행하였다.

알안달루스를 여행한 후, 이븐 바투타는 당시 모로코의 수도 페스로 돌아왔으나, 흑사병으로 도시는 황폐해져 있었다. 그는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을 여행하기로 결심한다.
사하라 남단의 오아시스인 아우랄라타
사하라 남단의 오아시스인 아우랄라타

1351년 가을, 페스를 떠나 시질마사로 향했다. 넉 달 후, 대상 대열과 함께 타가자에 도착했다. 타가자는 암염 집산지로, 건물들은 노예들이 암염판을 이용해 지었다. 이븐 바투타는 타가자에 흑사병이 번지고 물맛이 짰다고 기록했다.

대상단은 타가자에서 타사라흘라를 거쳐 아우랄라타에 도착했다. 아우랄라타는 사하라 종단 무역의 남쪽 종착점이었다. 두 달 후, 대상단은 시질마사로 돌아갔다.

이븐 바투타는 나이저 강을 따라 말리 제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말리의 왕 술레이만을 알현하고 여덟 달을 지내며, 술탄의 왕비들과 여성 노예들이 벌거벗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이듬해 2월, 팀북투로 향했다. 당시 팀북투는 작은 마을이었고, 이븐 바투타는 하마를 처음 보았다., 팀북투에서 가오로 이동했다.

가오에서 한 달 후, 타케다로 향했고, 모로코 술탄 아부 이난 파리스의 귀환 명령을 받았다. 1353년 9월 시질마사로 귀환, 1354년 초 모로코로 돌아갔다.

* 귀향 경로
베이징 - 항저우 - 취안저우 - 수마트라 - 코지코드 - 오만 - 바스라 - 바그다드 - 다마스쿠스 - 가자 - 카이로 - 아이자브 - 지다 - 메카 - 메디나 -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 스팍스 - 튀니스 - 칼리아리 - 타나쓰 - 페스

* 알안달루스사하라 이남 여정 경로
페스 - 탕헤르 - 지브롤터 - 마르벨라 - 그라나다(알람브라 궁전) - 페스 - 시질마사 - 타가자 - 아우랄라타 - 팀북투 - 가오(말리) - 다케다 - 부다 - 시질마사 - 페스

4. 《이븐 바투타 여행기》

1354년 귀환한 이븐 바투타는 모로코 마린 왕조의 술탄 아부 이난 파리스의 명에 따라 이븐 주자이에게 자신의 여행담을 구술하였고, 이븐 주자이는 이를 정리하여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집필하였다. 이븐 주자이는 이븐 바투타와 그라나다에서 만난 학자였다. 여행기의 원 제목은 تحفة النظار في غرائب الأمصار وعجائب الأسفار아랍어로, “도시들의 불가사의들과 여행의 경이로움을 생각하는 자를 위한 선물”이라는 뜻이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간단히 《리흘라》(الرحلة, 여행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그의 기억에 의존하여 구술된 것이어서, 이븐 주자이는 이전에 발간된 여행기와 지리서들을 참고하여 지명과 교통로를 분명히 하였다. 특히 중동 지역의 메카, 메디나, 다마스쿠스와 같은 여러 도시들에 대해서는 알안달루스 출신의 여행가인 이븐 주바이르의 여행기를 주로 참고하였다.

동양학 연구자들은 이븐 바투타가 자신이 구술한 지역을 모두 방문하였다고 보지는 않고 있다. 자신이 직접 방문하지 않은 지역의 이야기는 이전에 그 곳을 방문한 다른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하였을 것이라고 보는데, 예를 들면 볼가 강을 따라 볼가르를 방문한 여정의 이야기는 이븐 바투타의 다른 지역 방문 이야기와는 매우 다르게 서술되어 있고, 예멘 방문 기록도 의심 가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심지어는 중국 방문도 실제로 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구심들에도 불구하고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가 14세기 이슬람 세계에 대한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이븐 바투타는 여행기 곳곳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화 충격을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븐 바투타는 아내가 남편에게 봉사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에서 자라났지만, 투르크인이나 몽골인 남성이 여성의 종이 된 것처럼 존중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외에도 이븐 바투타는 몰디브 제도나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거의 벌거벗은 옷차림을 하고 사는 모습 등도 기록하였다.

여행기를 구술한 뒤 이븐 바투타가 어떻게 살았는 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역사가 이븐 알-하티브는 이븐 바투타가 라바트 근교 타르마스나에서 판사인 무타왈리(의견을 모으는 역할)를 맡았고, 1368/69년 재직 중에 사망했다고 전한다.

5. 이븐 바투타의 사망과 유산

이븐 바투타는 여행기를 구술한 뒤 모로코에서 법관으로 생활하다가 1368년(혹은 1369년)에 사망하였다. 그의 여행기는 14세기 이슬람 세계와 그 주변 지역에 대한 귀중한 역사적, 문화적 자료로 평가받는다.

모로코 탕헤르에는 그의 이름을 딴 "이븐 바투타 거리"와 탕헤르 이븐 바투타 공항이 있으며, 이븐 바투타의 묘라고 전해지는 백색 묘당도 세워져 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최대 테마 쇼핑몰인 이븐 바투타 몰(Ibn Battuta Mall)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엑스포 2020(Expo 2020)의 모빌리티관에는 알 바크리(Al Bakri), 이븐 마지드(Ibn Majid)와 함께 거대한 이븐 바투타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5.1. 사망

여행기를 구술한 뒤, 이븐 바투타는 모로코의 법관으로 생활하다가 1368년(혹은 1369년)에 사망하였다.

5.2. 유산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14세기 이슬람 세계와 그 주변 지역에 대한 귀중한 역사적, 문화적 자료로 평가받는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 여러 장소에 남아있다. 모로코 탕헤르에는 그의 이름을 딴 "이븐 바투타 거리"와 탕헤르 이븐 바투타 공항이 있으며, 이븐 바투타의 묘라고 전해지는 백색 묘당도 세워져 있다. UAE 두바이에 있는 최대 테마 쇼핑몰인 이븐 바투타 몰(Ibn Battuta Mall)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그가 여행 중 방문했던 이국적인 땅을 재현한 구역과 그의 생애를 묘사한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엑스포 2020(Expo 2020)의 모빌리티관에는 알 바크리(Al Bakri), 이븐 마지드(Ibn Majid)와 함께 거대한 이븐 바투타의 모습이 웨타 워크숍(Weta Workshop)에 의해 디자인되어 전시되어 있다.

6. 평가 및 비판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리흘라》는 14세기 이슬람 세계와 그 주변 지역에 대한 귀중한 기록을 담고 있지만, 몇 가지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긍정적 평가는 이븐 바투타가 남긴 기록의 상세함과 광범위함에 주목한다. 그의 여행기는 당시 이슬람 문화권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는 몇가지 비판점들이 존재한다.

* 기억 의존: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그의 기억에 의존하여 구술되었기 때문에, 내용의 정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 진위 여부: 서구의 동양학 연구자들은 이븐 바투타가 여행기에서 언급한 일부 지역(특히 볼가강, 예멘, 중국)을 실제로 방문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다른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 문화 충격: 이븐 바투타는 투르크인과 몽골인의 모계 중심 문화, 몰디브 제도나 사하라 남부의 독특한 복식 문화, 아프리카 서부의 식인 풍습 등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화 충격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븐 바투타는 1345년 현재 수마트라섬 북부 아체주에 위치한 삼드라 파사이 왕국을 방문하여, 그곳의 통치자인 말릭 자히르 자말루딘에 대해 기록했다. 그는 술탄이 독실한 무슬림이며 종교적 의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정령 신앙 세력에 대해 군사 행동을 했다고 묘사했다. 또한 수마트라섬장뇌, , 정향, 주석이 풍부한 섬이라고 기록했다. 샤피이 학파가 이 지역의 법학파라고 언급하며, 이는 그가 이전에 방문했던 인도 해안의 무슬림, 특히 말라바르 해안의 무슬림()과 같다고 설명했다. 당시 삼드라 파사이 왕국은 다르 알-이스람(이슬람의 집)의 경계에 있었고, 그보다 동쪽에는 무슬림 통치 영역이 없었다.

이븐 바투타는 말레이 반도의 믈라카를 거쳐 베트남의 를 방문했다. 그는 뮬 자위(Mul Jawi)로 기록된 믈라카에서 통치자의 손님으로 3일을 보냈고, 카일루카리(Kailukari)로 기록된 에서는 여왕 우르두자(Urduja)를 만났다고 짧게 언급했다. 우르두자는 아라비아 서예로 바스말라를 보여주었고, 이븐 바투타는 그녀의 일족이 원과 적대적이라고 기록했다. 이후 그는 중국 복건성 취안저우시에 도착했다.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가 14세기 이슬람 세계에 대한 중요한 자료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6.1. 긍정적 평가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14세기 이슬람 세계와 그 주변 지역의 사회, 문화, 종교, 정치 등에 대한 생생하고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어, 당시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슬람 문화권의 다양한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한다.

6.2. 비판적 시각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리흘라》는 그의 기억에 의존하여 구술되었기 때문에 몇 가지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서구의 동양학 연구자들은 이븐 바투타가 여행기에서 언급한 모든 지역을 실제로 방문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볼가강 방문, 예멘 방문, 심지어 중국 방문 기록은 진위 여부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븐 바투타가 직접 방문하지 않은 지역에 대해서는 다른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가 14세기 이슬람 세계에 대한 중요한 자료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또한,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화 충격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그는 투르크인과 몽골인의 모계 중심 문화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으며, 몰디브 제도나 사하라 남부의 독특한 복식 문화, 아프리카 서부의 식인 풍습 등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