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후 장씨
1. 개요
폐후 장씨는 명나라 가정제의 황후로, 본명은 장칠저이다. 1522년 입궁하여 순비로 책봉되었고, 1528년 황후 진씨가 사망한 후 황후로 옹립되었다. 그러나 가정제의 총애를 잃어 1534년 폐위되어 냉궁에 유폐되었고, 1537년 사망했다. 장례는 공양황후의 형식으로 치러졌으며, 시호는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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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제의 황후 -
효각태후
효각태후는 명나라 가정제의 후궁으로 융경제의 생모이며, 강빈, 강비를 거쳐 융경제 즉위 후 효각황후로 추존되어 황태후가 되었다. -
가정제의 황후 -
효결숙황후
효결숙황후는 명나라 가정제의 첫 번째 황후로, 가정 원년에 황후가 되었으나 총애를 받지 못하고 유산 후 병사하여 사후 추증되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1538년 사망 -
효순공주
중종과 장경왕후의 딸인 효순공주는 능원위 구사안에게 하가했으나 난산으로 사망했고, 구사안은 재혼으로 인해 은권이 박탈되었다. -
1538년 사망 -
영산군 (왕족)
조선 성종의 서차남인 영산군은 이름이 전이며, 여러 역모 의혹과 부도덕한 행실로 물의를 빚었지만 중종의 비호로 큰 처벌을 받지 않고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2. 생애
가정 원년(1522년), 황후 진씨와 공비 문씨와 함께 입궁을 하였고, 장씨는 순비(順妃)로 책봉되었다. 위휘부(衛輝府) 신향현(新郷県) 출신으로, 생원(生員) 장집(張楫)과 아내 설씨(薛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장집은 정사품(正四品) 금의위(錦衣衛) 대봉 지휘첨사(帯俸指揮僉事)에 임명되었다.
가정 7년(1528년) 10월, 진황후가 질투하여 유산하고 붕어하자, 다음 달에 가정제의 어머니인 의 추천으로 장칠저(張七姐)는 대신 황후로 옹립되었다. 그 후 가정제의 뜻에 따라 후궁의 비빈들을 이끌고 '여훈'(女訓)을 배우며, 내향적이고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황제를 섬겼다. 그러나 황제와의 사이는 좋지 않아, 가정 13년(1534년) 정월 6일, 장칠저는 가정제의 노여움을 사 매질을 당하는 벌을 받은 데다, 황후의 지위에서 폐위되어 냉궁(冷宮)으로 쫓겨났다。
가정 15년 윤 12월 3일(1537년 1월 14일)에 훙거했다. 유폐 생활 중에 점차 건강을 해치고 정신적으로도 궁지에 몰려, 결국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은 불명이나, 30대라고 생각된다。사후, 장례는 공양황후 호선상(선덕제의 폐후)의 형식으로 치러졌으며, 단순히 계후(繼后)로 칭해졌을 뿐 시호(諡號)도 붙여지지 않았다. 금산(金山)에 묻혔다.
2.1. 황후 책봉 이전
가정 원년(1522년), 황후 진씨와 공비 문씨(恭妃 文氏)와 함께 입궁을 하였고, 장씨는 순비(順妃)로 책봉되었다. 위휘부(衛輝府) 신향현(新郷県) 출신으로, 생원(生員) 장집(張楫)과 아내 설씨(薛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장집은 정사품(正四品) 금의위(錦衣衛) 대봉 지휘첨사(帯俸指揮僉事)에 임명되었다. 가정 7년(1528년)에 황후 진씨가 가정제와의 불화로 인해 사망하자, 순비 장씨가 황후로 책봉되었다.
2.2. 황후 시절
가정 원년(1522년), 황후 진씨와 공비 문씨(恭妃 文氏)와 함께 입궁하여 장씨는 순비(順妃)로 책봉되었다. 가정 7년(1528년)에 황후 진씨가 가정제와의 불화로 붕어하자, 순비 장씨가 황후로 책봉되었다. 황후 장씨는 재위 초 총애를 받았으나, 가정제가 도교사상과 신선사상에 빠지면서 지나친 총애가 반발을 샀다. 결국 가정제는 황후 장씨를 폐위하고 별궁에 유폐시켰다. 가정 15년 윤12월(1537년)에 폐후 장씨는 서거한다.
2.3. 폐위와 죽음
가정 원년(1522년), 황후 진씨와 공비 문씨와 함께 입궁하여 장씨는 순비(順妃)로 책봉되었다. 가정 7년(1528년)에 황후 진씨가 가정제와 불화로 인해 병을 이기지 못하고 붕어하자, 순비 장씨가 황후로 책봉되었다. 황후 장씨는 재위 초에 총애를 받았으나, 도교사상과 신선사상에 빠져 총애가 지나쳐 가정제가 반발하게 되었다. 가정 13년(1534년) 정월 6일, 장칠저는 가정제의 노여움을 사 매질을 당하는 벌을 받은데다, 황후의 지위에서 폐위되어 냉궁(冷宮)으로 쫓겨났다.
결국 가정제는 황후 장씨를 폐위시키고 죽을 때까지 별궁에서 살게 하였다. 유폐 생활 중에 점차 건강을 해치고 정신적으로도 궁지에 몰려, 결국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숨을 거두었다. 몇 년 후 가정 15년 윤12월(1537년)에 폐후 장씨는 서거한다. 향년은 불명이나, 30대로 추정된다.
사후, 장례는 공양황후 호선상(선덕제의 폐후)의 형식으로 치러졌으며, 단순히 계후(繼后)로 칭해졌을 뿐 시호(諡號)도 붙여지지 않았다. 금산(金山)에 묻혔다.
3. 평가
4. 가족 관계
5. 기타
6. 관련 둘러보기
* 명세종실록
* 완서잡기
분류:명나라 황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