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마레 2세
1. 개요
포마레 2세는 타히티의 왕으로, 처음에는 후아히네의 통치자에게 인정받았으나, 타히티에서 쫓겨난 후 1815년 테페이피 전투에서 승리하여 타히티, 모레아 및 그 종속 지역의 왕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기독교를 받아들여 타히티와 모레아의 왕으로 선포하고, 소시에테 제도 외부로 영토를 확장하여 투아모투 제도와 오스트랄 제도의 일부 지역을 명목상 소유했다. 포마레 2세는 1821년 파페에테에서 사망했으며, 아들 포마레 3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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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대 출생 -
휴 글래스
19세기 초 미국 사냥꾼 휴 글래스는 1823년 회색곰 공격 후 동료들에게 버려졌으나 320km 이상을 홀로 이동해 생존했으며, 그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고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유명해졌다. -
1821년 사망 -
조제프 드 메스트르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며 반계몽주의와 반합리주의를 주창하고 정부의 권위는 종교에서 기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상가이자 외교관이다. -
1821년 사망 -
존 키츠
존 키츠는 1795년 런던에서 태어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으로, 가난한 환경 속에서 외과의사 견습생으로 일하다 시 창작에 몰두하여 "그리스의 옛 항아리에 대한 송가" 등의 명작을 남겼으나 25세에 결핵으로 요절했고 사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영국 문학의 거장이 되었다. -
유군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유군 -
루이 14세
2. 생애
포마레 2세는 후아히네의 통치자에게 인정받아 권력을 잡았으나, 타히티에서 쫓겨나 모레아로 피신했다가 1815년 테페이피 전투에서 승리하며 왕권을 회복했다. 그는 기독교를 수용하고 소시에테 제도 외부로 영토를 확장하려 했다. 투아모투 제도에 대한 지배권을 물려받았고, 오스트랄 제도의 라이바바에섬과 투부아이섬을 명목상 소유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통치권은 미치지 못했다.
2.1. 초기 생애와 통치
처음에는 후아히네의 통치자에 의해 최고 군주이자 아리이마로우라로 인정받았으나, 이후 타히티에서 쫓겨나 1808년 12월 22일 모레아로 피신했지만, 돌아와서 1815년 11월 11일 테페이피 전투에서 적을 물리쳤다. 그 후 그는 타히티, 모레아 및 그 종속 지역의 확실한 왕(테 아리'이-누이-오-타히티)으로 인정받았다.
1815년 11월 15일, 기독교 신의 이름으로 자신을 타히티와 모레아의 왕으로 선포했다.
포마레 2세는 그의 영역을 소시에테 제도 외부로 확장했다. 투아모투스에 대한 아버지의 지배권을 물려받았고 1817년과 1821년에 서로 다른 지역 족장들 사이의 많은 갈등을 해결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의 통치는 투아모투 군도의 동부와 중부 지역까지만 확장되었다. 1819년에 왕은 오스트랄 제도의 라이바바에섬과 투부아이섬을 명목상 소유하게 되었지만 통제권은 지역 추장에게 넘겨졌다.
2.2. 기독교 수용과 통치 강화
처음에는 후아히네의 통치자에 의해 최고 군주이자 아리이마로우라로 인정받았으나, 이후 타히티에서 쫓겨나 1808년 12월 22일 모레아로 피신했지만, 돌아와서 1815년 11월 11일 테페이피 전투에서 적을 물리쳤다. 그 후 그는 타히티, 모레아 및 그 종속 지역의 확실한 왕(테 아리'이-누이-오-타히티)으로 인정받았다.
1815년 11월 15일, 기독교 신의 이름으로 자신을 타히티와 모레아의 왕으로 선포했다.
포마레 2세는 그의 영역을 소시에테 제도 외부로 확장했다. 투아모투 제도에 대한 아버지의 지배권을 물려받았고 1817년과 1821년에 서로 다른 지역 족장들 사이의 많은 갈등을 해결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의 통치는 투아모투 군도의 동부와 중부 지역까지만 확장되었다. 1819년에 왕은 오스트랄 제도의 라이바바에섬과 투부아이섬을 명목상 소유하게 되었지만 통제권은 지역 추장에게 넘겨졌다.
2.3. 영토 확장
처음에는 후아히네의 통치자에 의해 최고 군주이자 아리이마로우라로 인정받았으나, 이후 타히티에서 쫓겨나 1808년 12월 22일 모레아로 피신했지만, 돌아와서 1815년 11월 11일 테페이피 전투에서 적을 물리쳤다. 그 후 그는 타히티, 모레아 및 그 종속 지역의 확실한 왕(테 아리'이-누이-오-타히티)으로 인정받았다.
1815년 11월 15일, 기독교 신의 이름으로 자신을 타히티와 모레아의 왕으로 선포했다.
포마레 2세는 그의 영역을 소시에테 제도(Society Islands) 외부로 확장했다. 투아모투 제도에 대한 아버지의 지배권을 물려받았고 1817년과 1821년에 서로 다른 지역 족장들 사이의 많은 갈등을 해결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의 통치는 투아모투 군도의 동부와 중부 지역까지만 확장되었다. 1819년에 왕은 오스트랄 제도의 라이바바에섬(Raivavae)과 투부아이섬(Tubuai)을 명목상 소유하게 되었지만 통제권은 지역 추장에게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