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자친토 디 사보이아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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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란체스코 자친토 디 사보이아는 1632년에 태어나 1638년에 사망한 사보이아 공작이다.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와 크리스틴 마리 드 프랑스의 아들로, 피에몬테 공작으로 불렸다. 1637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사보이아 공작위를 계승했으나, 5세의 어린 나이로 인해 모친이 섭정했다. 그는 '천국의 꽃'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열병으로 사망하여 동생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가 공작위를 이었다. 토리노의 사크라 디 산 미켈레에 묻혔다.
프란체스코 카이로의 초상화, 1635–1650년 사이
| 전체 이름 | 프란체스코 자친토 디 사보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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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632년 9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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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 | 발렌티노 성, 토리노, 사보이아 공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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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일 | 1638년 10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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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지 | 발렌티노 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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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가 | 사보이아 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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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위 | 사보이아 공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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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위 기간 | 1637년 10월 7일 – 1638년 10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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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승 | 사보이아 공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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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통치자 |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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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통치자 |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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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섭정 | 크리스틴 드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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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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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크리스틴 드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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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토리노의 발렌티노성에서 태어난 그는 사보이아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와 그의 아내 프랑스의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살아있는 맏아들이였다. 사보이아 공작의 후계자인 그는 피에몬테 공작으로 칭해졌다. 그의 부모는 프란체스코 자친토가 태어나기 앞서 다른 아들이 있었으나 1628년에 사망했다.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1637년에 그는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았고 그의 어머니가 섭정을 주장하며 권력을 쥐었다. 사보이아 공작은 살루초 후작, 아오스타, 니스, 모리아나 백작, 예루살렘의 왕 등의 부속적인 작위도 지녔다. 그는 천국의 꽃 (플뢰르 드 파라디/Fleur de Paradis프랑스어)라는 별명을 지녔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뒤를 이은 프란체스코 자친토는 5살에 지나지 않아 실질적인 통치를 하지 못 했다. 열병에 걸린 그는 발렌티노성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동생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가 계승했다. 그는 토리노에 있는 사크라 디 산 미켈레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