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3세 곤차가
1. 개요
프란체스코 3세 곤차가는 1540년 7세의 나이로 만토바 공작이 되었으나, 1550년 사냥 중 호수에 빠져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는 1549년 오스트리아의 카테리나와 결혼했으나, 4개월 만에 사망하면서 결혼 생활은 끝났다. 그의 사후 공국은 동생 굴리엘모 곤차가에게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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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토바 공작 -
만토바 공국
만토바 공국은 이탈리아 북부에 존재했던 공국으로, 곤차가 가문이 1328년 정권을 장악한 후 1530년 공국으로 승격되었으며, 예술 후원과 오페라 발전에 기여했으나 만토바 계승 전쟁으로 쇠퇴하여 1708년 합스부르크에 의해 영토를 상실했다. -
만토바 공작 -
페데리코 2세 곤차가
페데리코 2세 곤차가는 만토바 후작 프란체스코 2세 곤차가의 아들로, 1519년 만토바 후작이 되었으며, 교황군 총사령관으로 활동하고 카를 5세의 친척과 결혼하여 1530년 만토바 공작 칭호를 받았으며, 예술 후원 활동을 하다가 매독으로 사망했다. -
1550년 사망 -
이해 (정민공)
이해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문과 급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권신 탄핵으로 유배되어 병사한 후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정민의 시호를 받았다. -
1550년 사망 -
아시카가 요시하루
아시카가 요시하루는 정치적 격변기에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 교토에서 쫓겨나는 등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낸 무로마치 막부의 제12대 쇼군이다. -
몬페라토 변경백 -
페데리코 2세 곤차가
페데리코 2세 곤차가는 만토바 후작 프란체스코 2세 곤차가의 아들로, 1519년 만토바 후작이 되었으며, 교황군 총사령관으로 활동하고 카를 5세의 친척과 결혼하여 1530년 만토바 공작 칭호를 받았으며, 예술 후원 활동을 하다가 매독으로 사망했다. -
몬페라토 변경백 -
조반니 2세 델 몬페라토
조반니 2세 델 몬페라토는 1336년부터 몬페라토를 통치하며 영토를 확장하고 북부 이탈리아에서 세력을 넓혔으며, 마요르카 여왕과의 결혼으로 갈등을 겪다가 1372년 사망했다.
2. 생애
프란체스코 3세는 아버지 페데리코 2세가 사망했을 때 겨우 7세였지만, 1540년 7월 5일 만토바 공국의 공작이 되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는 어머니 마르게리타와 숙부 에르콜레 곤차가 추기경, 페란테 곤차가가 섭정을 맡아 나라를 다스렸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는 1543년 6월 28일에 프란체스코 3세의 공작 지위를 승인하고, 자신의 사촌이자 페르디난트 1세의 딸인 카테리나와의 약혼을 주선했다. 1549년 10월 22일 프란체스코가 16세가 되면서 결혼식이 거행되었으나, 결혼 생활은 매우 짧았다. 카테리나가 만토바에 도착한 지 몇 달 후, 프란체스코 3세는 호수에 빠져 폐렴에 걸렸고, 요양 중 재발하여 사망했다. 카테리나는 오스트리아로 돌아갔고, 공국은 동생 구리에르모가 계승했다.
2.1. 섭정 통치
프란체스코 3세는 아버지 페데리코 2세가 사망했을 당시 겨우 7세였음에도 불구하고, 1540년 7월 5일 만토바 공작이 되었다.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어머니 마르게리타 팔레올로가와 그의 숙부인 에르콜레 곤차가 추기경, 페란테 곤차가가 섭정을 맡아 나라를 다스렸다. 카를 5세 황제는 1543년 6월 28일에 프란체스코 3세의 만토바 공작 지위를 승인했다. 이와 함께, 카를 5세의 사촌이자 페르디난트 1세의 딸인 카테리나와의 약혼도 이루어졌다.
결혼식은 1549년 10월 22일 프란체스코가 16세가 된 후에 거행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 생활은 짧았다. 프란체스코 3세는 카테리나가 만토바에 도착한 지 몇 달 만에 호수에 빠져 폐렴에 걸렸다. 요양 후 회복하는 듯했으나, 재발하여 결국 사망했다. 카테리나는 오스트리아로 돌아갔고, 만토바 공국은 프란체스코 3세의 동생인 굴리엘모 곤차가가 계승하게 되었다.
2.2. 짧은 결혼 생활
1549년 10월 22일, 그는 페르디난트 1세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딸인 합스부르크의 카테리나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프란체스코가 1550년 2월 21일, 만토바의 호수 중 하나에서 사냥을 하다가 빠져 폐렴으로 사망하면서 단 4개월 만에 끝났다. 과부가 된 카테리나는 인스브루크로 돌아갔다. 합스부르크가는 카테리나가 더 나은 두 번째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이 결혼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3. 사망 이후
프란체스코 3세는 1549년 10월 22일에 페르디난트 1세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딸인 합스부르크의 카테리나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 결혼은 단 4개월 만에 끝났는데, 1550년 2월 21일 프란체스코가 만토바의 호수 중 하나에 사냥을 하다가 빠져 폐렴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과부가 된 카테리나는 인스브루크로 돌아갔다. 합스부르크가는 카테리나가 더 나은 두 번째 결혼을 할 수 있도록 결혼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프란체스코 3세는 호수의 차가운 물에 빠져 폐렴에 걸렸고, 요양 중 재발에 시달렸으나 (아마도 사육제의 준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사망했다. 카테리나는 오스트리아로 돌아갔고, 공국은 동생 구리에르모가 계승하게 되었다.
3. 가족
프란체스코 3세는 1549년 10월 22일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딸 카타리나 폰 합스부르크와 혼인했다.
4. 가계
| 16대조 | 8대조 | 4대조 | 증조부 | 조부 | 부모 | 프란체스코 3세 곤차가 |
|---|---|---|---|---|---|---|
| 페데리코 2세 | ||||||
| 마르게리타 팔레올로가 | ||||||
| 프란체스코 2세 | 페데리코 1세 | 루도비코 3세 | ||||
| 바이에른의 마가레타 | 브란덴부르크의 바르바라 | |||||
| 이사벨라 데스테 | 에르콜레 1세 | 니콜로 3세 | ||||
| 나폴리의 엘레오노라 | 살루초 후작 부인 리치아르다 | |||||
| 빌헬름 9세 | 보니파초 3세 | 요한 야콥 | ||||
| 세르비아의 마리아 | 사보이의 조안나 | |||||
| 알랑송의 앤 | 르네 | 장 2세 | ||||
| 로렌의 마가레타 | 아르마냐크의 마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