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키와 킬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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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핑키와 킬러스는 1967년 이마 요코를 솔로 가수로 데뷔시키기 위해 결성된 일본의 그룹이다. 이즈미 타쿠가 기획하여 루이스 등 남성 멤버들과 함께 결성되었으며, 이마 요코의 뛰어난 가창력과 영어 실력으로 성공을 기대했다. 1968년 '사랑의 계절'로 데뷔하여, 4년 후 이마 요코가 솔로 활동을 위해 탈퇴하면서 해산되었다. 멤버로는 이마 요코, 조지 하마노, 엔디 야마구치, 루이스 타카노, 판초 카가미가 있었다. 핑키와 킬러스는 여러 TV 프로그램 출연, 영화 및 광고 출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여러 히트곡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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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키와 킬러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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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원어 명칭 | 핀키토키라즈 (ピンキーとキラーズ) |
영문 명칭 | Pinky & Killers |
음악 스타일 | |
장르 | 보사노바 가요 |
활동 정보 | |
활동 기간 | 1968년 - 1972년 |
레이블 | 킹레코드 |
구성원 | |
현재 멤버 | 이마 요코 (보컬) 조지 하마노 (기타) 엔디 야마구치 (기타) 루이스 다카노 (베이스) 판초 가가미 (드럼) |
이전 멤버 | |
주요 작품 |
2. 결성 배경 및 해산
1968년 보사노바 그룹으로 결성된 핑키와 킬러스는 데뷔곡 「사랑의 계절」이 발매 직후부터 큰 인기를 얻어 오리콘에서 17주 1위 (역대 최고 기록)를 기록하는 등 밀리언 셀러(270만 장[3] 판매)를 달성했다. 「제10회 일본 레코드 대상 신인상」 등 수많은 신인상을 받았으며, 제19회 NHK 홍백가합전에서는 남녀 혼성 그룹 최초로 출전했다. 1969년 2월에는 이들을 주연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마츠타케에서 제작, 공개되기도 했다.
1969년 1월, 4번째 싱글 「눈물의 계절」이 1위를 차지했고, 「일곱 빛깔의 행복」, 「별하늘의 로맨스」 등이 각각 4위와 10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이어갔지만, 이후 톱 10에서는 멀어졌다.
1972년 이마 요코가 솔로 활동을 위해 탈퇴한 후, 2008년 7월 30일 36년 만에 오리지널 멤버로 재결성, 이마 요코의 연예 생활 40주년 기념 디너쇼에 함께 했다.[4] 한편, 킬러스는 여성 보컬 2명을 추가하여 뉴 킬러스로 재출발했지만, 1974년 3월 해산했다.
핑키와 킬러스는 「내셔널 파나소닉 TV 파나파나」, 「내셔널 냉동 냉장고」(마츠시타 전기) 등의 CM에 출연하여 CM송을 부르기도 했다. 이후 추억의 노래 프로그램 (NHK 『추억의 멜로디』, TV 도쿄 『일본의 노래』 등) 출연을 위해 단발성 재결성을 하기도 했으나, 킬러스 전원이 오리지널 멤버였는지는 불명확하다. 『이마 요코와 킬러스』로 표기된 적도 있다.
2. 1. 결성 배경
1968년에 결성된 보사노바 그룹이다. 1967년에 15세의 나이로 빅터 레코드에서 「어리광부리고 싶어」를 발표하며 솔로 가수로 데뷔한 이마 요코(핀키)가 킹 레코드로 이적하여 남성 4명과 함께 핑키와 킬러스를 결성했다.[1] 그룹명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남녀 혼성 밴드 스판키 & 아워 갱을 본떠 작곡가 이즈미 타쿠가 지었다.[1]중산모에 스틱을 든 의상이 트레이드마크였으며, 당시 일본 가요계에서는 남성들 사이에 여성 싱어가 있는 그룹은 신선한 시도였다.[2] 데뷔 음반 『사랑의 계절』의 라이너 노트에는 『세르지우 멘데스를 목표로 하는 신진 그룹』이라고 소개되었다.
이마 요코는 1967년 솔로 가수로 데뷔했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당시 이즈미 타쿠의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던 요코를 띄우기 위해 이즈미는 그룹 결성을 제안했고, 남성 멤버들을 모아 핑키와 킬러스를 결성했다. 당시 음악 업계에는 "키가 큰 여성 가수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징크스가 있었고, 다른 멤버들은 167cm의 큰 키를 가진 요코에게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나 요코의 노래를 들은 멤버들은 뛰어난 성량, 리듬감, 능숙한 영어 가사 소화 능력에 "이 아이는 성공할 것이다"라고 확신했다.[2]
요코는 데뷔 4년 만에 그룹을 탈퇴했는데, 사실 그룹 결성 시점에 남성 멤버들은 이즈미로부터 요코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2] "핑키가 20세가 되면, 핑키와 킬러스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솔로로 활동하게 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요코 본인에게는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멤버들은 "요코가 핑키와 킬러스를 탈퇴한 것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최근까지 책임을 느꼈다"고 전했다.[2]
2. 2. 그룹명 유래
그룹명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남녀 혼성 밴드 '스판키 & 아워 갱'을 본떠 작곡가 이즈미 타쿠가 지었다.[1]2. 3. 해산
1972년 2월, 이마 요코는 솔로 활동을 위해 핑키와 킬러스에서 탈퇴했다.[2] 킬러스는 여성 보컬 2명(러블리즈)을 추가하여 뉴 킬러스로 다시 시작했지만, 1974년 3월에 해산했다.[4]그룹 결성 당시부터 이마 요코는 20세가 되면 솔로로 활동할 예정이었고, 이 사실은 킬러스 멤버들에게도 알려져 있었다.[2] 하지만 이마 요코 본인은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탈퇴 후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2]
3. 멤버
4. 주요 활동
1972년 2월, 이마 요코는 솔로 활동을 위해 핑키와 킬러스에서 탈퇴했다. 킬러스는 '러블리즈'라는 여성 보컬 2명을 추가하여 뉴 킬러스로 재출발했지만, 1974년 3월에 해산했다.
이후, 핑키와 킬러스는 NHK의 《추억의 멜로디》나 TV 도쿄의 《일본의 노래》와 같은 추억의 노래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단발성으로 재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킬러스 멤버 전원이 오리지널 멤버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마 요코와 킬러스'라고 표기된 경우도 있었다.
2008년 7월 30일, 이마 요코가 탈퇴한 지 36년 만에 오리지널 멤버로 핑키와 킬러스가 재결성되었다. 이 재결성은 이마 요코의 연예 생활 40주년 기념 디너쇼에 멤버들이 함께 모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4]
4. 1. 데뷔 및 전성기
1968년에 결성된 보사노바 그룹이다. 1967년에 15세의 나이로 「어리광부리고 싶어」를 통해 빅터 레코드에서 솔로 가수로 데뷔한 이마 요코(핀키)가 킹 레코드로 이적하여, 조지 하마노, 엔디 야마구치, 루이스 타카노, 판초 카가미 등 남성 4명과 함께 결성하였다. 그룹명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남녀 혼성 밴드 「스판키 & 아워 갱」에서 착안하여 작곡가 이즈미 타쿠가 지었다.[1]。중산모에 스틱을 든 의상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았으며, 당시 일본 가요계에서 남성들 사이에 여성 싱어가 있는 그룹은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졌다.[2]。
데뷔 음반 『사랑의 계절』의 라이너 노트에는 『세르지우 멘데스를 목표로 하는 신진 그룹』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데뷔곡 「사랑의 계절」은 발매 직후부터 큰 인기를 얻어 오리콘에서 17주 동안 1위를 차지하는 (역대 최고 기록) 밀리언 셀러를 기록, 을 판매하였다. 또한, 제10회 일본 레코드 대상 신인상을 비롯한 여러 신인상을 받았으며, 제19회 NHK 홍백가합전에서는 남녀 혼성 그룹 최초로 출전하였다. 1969년 2월에는 이들을 주연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마츠타케에서 제작 및 공개되었다.
1969년 1월, 4번째 싱글 「눈물의 계절」이 1위를 차지했고, 이어서 「일곱 빛깔의 행복」이 4위, 「별하늘의 로맨스」가 10위에 오르는 등 오리콘 톱 10에 진입했지만, 이후에는 톱 10 진입에 실패했다.
4. 2. 히트곡
今陽子일본어(핑키)는 킹 레코드로 이적하여, 남성 멤버 조지 하마노, 엔디 야마구치, 루이스 타카노, 판초 카가미 4명과 핑키와 킬러스를 결성했다. 데뷔곡 「사랑의 계절」은 발매 직후부터 히트를 기록하여 오리콘에서 17주 1위(역대 최고 기록)를 기록, 270만 장[3]을 판매하였다. 1969년 1월, 4번째 싱글 「눈물의 계절」이 발매되어 1위, 이어서 「일곱 빛깔의 행복」이 4위, 「별하늘의 로맨스」가 10위에 올랐지만, 그 이후 톱 10에서는 멀어졌다.4. 3. 광고 출연
마쓰시타 전기의 "내셔널 파나소닉 TV 파나파나", "내셔널 냉동 냉장고" 등의 CM에 출연하여 CM송을 불렀다.[4]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CM에 출연했다.기업/브랜드 | 상품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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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코크 마법병 공업 | ||
엔도 체인 | 1969년. 미야기현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슈퍼체인. CM송만 담당했을 가능성 있음. | |
코카콜라 | 1969년 - 1971년 | |
코와 | 콜겐 코와 | 1969년 - 1970년 |
코와 | 우나 코와 | 1969년 - 1972년 |
하우스 식품 | 하우스 버몬트 카레 | 1969년 - 1970년 |
마쓰시타 전기산업 | 내셔널 냉동 냉장고 | 1970년 - 1973년 |
마루신 푸즈 | 마루신 햄버그 | |
메이지 | 초콜릿 | |
밤비 시계 밴드 |
4. 4. TV 출연
- TBS 《푸른 하늘로 날아올라라!》 (1969년 3월 - 9월)
- 후지 TV 《선데이 히트 쇼》 → 《56분 기다릴 수 없어!》 (1969년 10월 - 12월)
- TBS 《핫 핑키!》 (1970년 3월 - 9월)
- NHK 종합 《남자는 배짱》 (지금만) (1970년)
- BS 후지 《퀴즈! 뇌벨 쇼》 BS 후지 11시간 텔레비전 2019 코너 내 (지금만) (2019년)
4. 5. 영화 출연
- 사랑의 계절 (1969년 쇼치쿠): 감독: 이노우에 우메지, 음악: 이즈미 타쿠, 출연: 모리타 켄사쿠, 나미 에츠코, 마츠오카 킷코
- 눈물의 계절 (1969년 닛카츠)
- 사랑의 대모험 (1970년 도호)
4. 6. 뮤지컬 출연
안녕 TYO일본어 (1970년)5.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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