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나카 이치조
1. 개요
하타나카 이치조는 일본 제국의 관료이다. 가고시마현 출신으로, 1915년 조선총독부 순사로 근무했으며, 이후 대만으로 건너가 대만총독부에서 근무했다. 아카오청 순사, 가오슝주 경부보, 경부, 통역을 거쳐 1932년 대만총독부 속으로 전임했다. 1939년 지방 이사관으로 승진하여 차오저우군 군수를 지냈고, 다자이군 군수를 역임한 후 타이중주 산업부 속으로 전임했다.
| 이름 (한자) | 畠中市蔵 |
|---|---|
| 이름 (가나) | はたなか いちぞう |
| 이름 (로마자 표기) | Hatanaka Ichizō |
| 출생일 | 1887년 12월 20일 |
| 사망일 | 미상 |
| 직책 | 미상 |
|---|---|
| 임기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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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총독부 관련자 -
고토 신페이
고토 신페이는 일본의 의사이자 관료, 정치가로서,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에 걸쳐 내무대신, 외무대신, 철도원 총재, 도쿄 시장 등을 역임하며 대만총독부 민정장관, 만철 총재, 도쿄 부흥원 총재 등을 지내며 일본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대만총독부 관련자 -
핫타 요이치
핫타 요이치는 일본의 토목공학 기사이자 타이완 총독부 관리로, 타이완 총독부 기술관으로 근무하며 자난 평야 관개 사업의 일환인 우산터우 댐 건설을 주도하여 타이완 농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그의 업적은 타이완에서 높이 평가받아 기리는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
가고시마현 출신 -
구로다 가쓰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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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현 출신 -
도고 시게노리
도고 시게노리는 조선인 도공 후손으로 도쿄 제국대학 졸업 후 외무성에 들어가 만주, 스위스, 독일, 소련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소일 중립 조약 체결에 기여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외무대신으로서 미일 관계 개선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전범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며, 종전 과정에서 포츠담 선언 수용을 주장하여 일본 항복에 기여한 외교관이자 정치인이다. -
몰년 미상 -
미와 와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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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미상 -
이태준
이태준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로, 섬세한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로 현실을 그린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여 주목받았으며, 특히 1930년대 〈달밤〉, 〈까마귀〉, 〈복덕방〉 등의 작품으로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월북 후 숙청되어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2. 생애
가고시마현 가고시마군요시노촌 오카노이즈미(현・가고시마시요시노)에서 태어났다. 1915년 (다이쇼 4년) 8월, 조선총독부 순사가 되어, 이듬해 11월에 퇴직하고, 대만으로 건너갔다.
1918년 (다이쇼 7년) 4월, 아카오청 (현・핑둥시) 순사를 제수받아, 가오슝주 경부보, 경부를 거쳐, 가오슝주 통역이 되었다. 이어서 1932년 (쇼와 7년) 5월, 대만총독부 속으로 전임, 1939년 (쇼와 14년) 5월에 지방 이사관으로 승진, 가오슝주 차오저우군 군수로 취임했다. 그 후, 타이중주다자이군 군수를 역임한 후, 타이중주 산업부 속으로 전임했다。
2.1. 조선총독부 순사 시절 (1915-1916)
가고시마현 가고시마군 출신인 하타나카 이치조는 1915년 8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조선총독부 순사로 근무하였다. 이후 대만으로 건너갔다.
2.2. 대만총독부 근무
1915년(다이쇼 4년) 8월, 조선총독부 순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11월에 퇴직하고 대만으로 건너갔다.
1918년(다이쇼 7년) 4월, 아카오청(현·핑둥시) 순사를 제수받아, 가오슝주 경부보, 경부를 거쳐, 가오슝주 통역이 되었다.
2.2.1. 조주군수, 대호군수 역임
1932년 (쇼와 7년) 5월, 대만총독부 속으로 전임, 1939년 (쇼와 14년) 5월에 지방 이사관으로 승진, 가오슝주 차오저우군 군수로 취임했다. 그 후, 타이중주다자이군 군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