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대흥사 천불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 남원에 위치한 불전이다. 1811년 화재로 소실된 후 1813년에 재건되었으며, 초의선사의 스승인 완호가 중건을 주도했다. 천불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내부에는 목조 삼존불과 옥석으로 만든 천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건축적으로는 평면, 공포 배치, 상부가구 등에서 특징을 보이며,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장식적 수법을 보여준다.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해남 대흥사 천불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개요 | |
![]() | |
| 명칭 | 해남 대흥사 천불전 (海南 大興寺 千佛殿) |
| 문화재 정보 | |
| 국가 | 대한민국 |
| 유형 | 보물 |
| 지정 번호 | 1807 |
| 지정일 | 2013년 8월 5일 |
| 해제일 | 해당 없음 |
| 주소 | 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길 400 (삼산면, 대흥사)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자 | 대흥사 |
| 참고 사항 | 해당 없음 |
| 면적 | 65.25m2 |
| 수량 | 1동 |
| 전승지 | 해당 없음 |
| 전승자 | 해당 없음 |
| 문화재청 ID | 12,18070000,36 |
| 전라남도 문화재 정보 (지정 해제) | |
| 명칭 (전라남도) | 대흥사천불전 (大興寺千佛殿) |
| 유형 (전라남도) |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전라남도) | 48 |
| 지정일 (전라남도) | 1974년 9월 24일 |
| 해제일 (전라남도) | 2013년 8월 5일 |
| 문화재청 ID (전라남도) | 21,00480000,36 |
2. 입지 현황 및 역사문화환경
대흥사는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줄기에 자리하고 있다. 두륜산(대둔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한 넓은 산간분지에 계류를 끼고 자리한 대흥사는 여러 불전들을 지형적 조건에 맞추어 독립된 군을 이루어 배치함으로써 정연한 가람배치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과 조화를 느낄 수 있다.
대흥사의 역사는 『죽미기(竹迷記)』, 『만일암고기(挽日庵古記)』, 『북암기(北庵 記)』등의 기록과, 이를 종합한 『대둔사지(大芚寺誌)』(1823)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대둔사지(大芚寺誌)』(1823)의 기록에 나타나듯이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나누어 당우들을 배치하였는데, 현재 북원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백설당, 청운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향각, 동국선원, 종무소 등이 또 하나의 군을 이루어 배치되어 있다. 또한 남원의 오른편에는 표충사와 부속건물, 성보박물관이 있고 그 뒤편에 대광명전 영역이 별원을 형성하고 있다.
천불전은 대흥사 남원(南院)의 중심 불전이다. 큰 대문채와 같이 평범한 단층 5칸 맞배집으로 구조된 가허루의 중앙 문간을 거쳐 천불전 안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의 높은 장대석 축단 위에 서향하여 자리한 천불전이 마주보이고 왼쪽에는 봉향각이, 오른쪽에는 옛 강원이던 용화당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어 독립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대웅전에 비하여 마당은 크지 않지만 공간에 맞게 각 건물의 규모와 형식을 갖추었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인 천불전은 높은 장대석 축단 위에 자리하고 있어 남원(南院) 공간의 중심건물로서 격식과 품위가 느껴진다.
3. 연혁 및 건축적 특징
1813년에 다시 지어진 천불전은 자연석 주춧돌 위에 흘림이 있는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정면 우주는 유난히 굵은 기둥에 강한 흘림을 주었다. 칸살 간격과 공포 배열을 통해 주간을 설정하였다. 천불 조상을 모시기 위해 계획된 건물로, 내부 공간 확보를 위해 평면은 정사각형에 가깝고 내진주 없이 통칸으로 처리되었다. 가구 구조는 무고주 5량가이며, 대들보는 곡재, 종보 위에는 판대공을 설치했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 구조이며, 살미첨차는 간결하고 강직하며 연봉으로 장식되었다. 내부는 닫집처럼 불단 위를 장엄하고, 목조삼존불과 천불상을 봉안하였다. 불단 상부는 용두, 우물반자, 빗반자 장식으로 화려하다. 외부에는 용두형 안초공, 전면 창호는 꽃살창으로 장식되어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1]
3. 1. 연혁
대흥사는 임진왜란 이후 승군의 최고 지도자이자 선교양종 도총섭이었던 서산대사 휴정(1520~1604)의 의발(衣鉢)을 모시면서 선교 양종의 대도량으로 발전하였다.[1] 1667년에 대웅전을 중건하였고(현재의 건물은 화재 후 1901년 중수), 1669년에는 표충사를 건립하였다.[1]
천불전은 1811년에 실화로 소실된 것을 1813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1] 「천불조성략기(千佛造成略記)」에는 1811년(가경(嘉慶) 16년) 2월에 화재가 발생하여 지장전, 팔해당, 용화전, 적조당, 천불전, 대장전, 약사전, 가허루가 하룻밤에 모두 불에 탔다고 기록하고 있다.[1] 2년 후 다시 건물을 지었는데, 당시 중건주는 초의 선사의 스승이었던 완호였다.[1] 그는 건물 중건뿐만 아니라 경주 기림사로 가서 화원들에게 천불을 조성토록 하였다.[1] 천불은 1817년 11월 두 대의 배를 이용하여 해남으로 운반 도중 풍랑을 만나 배 한 대가 일본에 표류하였다가 돌아와 1818년 8월 15일에 천불전에 봉안되어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1]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풍계(楓溪) 현정(賢正), 1821)에는 천불의 조성 과정과 표류 상황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어 천불전의 중건과 천불 봉안의 역사를 명확히 알 수 있다.[1]
3. 2. 건축적 특징
천불전은 자연석 주춧돌 위에 흘림이 있는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정면 우주는 유난히 굵은 기둥에 강한 흘림을 주었다. 칸살은 정면 옆칸과 측면의 3칸이 2490mm로 동일하고, 정면 어칸만 이보다 큰 3470mm이다. 공포의 배열도 정면 어칸에만 2조의 간포를 배치하고 나머지는 모두 하나씩 배치하여, 동일한 공포 간격에 따라 주간을 설정하였다.[1]
천불전은 천불 조상을 모시기 위해 처음부터 계획된 건물로, 충분한 내부 공간 확보를 위해 평면도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고 내진주 없이 통칸으로 처리하였다. 이에 맞춰 가구 구조는 전후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친 무고주 5량가이다. 대들보는 자연스럽게 휘어진 곡재를 사용하였고, 종보 위에 판대공을 설치하여 종도리를 받친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 구조이며 살미첨차는 간결하면서 강직하게 구부러져 끝에서 예리하게 솟아오르며 연봉으로 장식하였고, 내부는 초각이 화려하다. 내부는 전체가 하나의 닫집과 같이 불단 위를 장엄하고 있으며, 평면의 반을 경사진 불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 목조삼존불과 옥석으로 만든 천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불단 상부는 제공의 연봉이 천장까지 이어지면서 충량 머리를 장식하는 용두, 우물반자, 빗반자의 장식들과 함께 일체화되어 법당 안을 화려하게 장엄하고 있다.[1]
불전의 장엄은 외부에서도 나타나는데, 어칸 기둥 상부에는 내외부로 연결되는 용두형 안초공을 설치하였으며, 전면 창호는 모두 아름다운 꽃살창으로 장식하였다. 이러한 불전의 장식적 수법은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시대적 특징이다.[1]
4. 지정 가치
천불전은 1813년에 중건된 건물로 대흥사 남원의 중심 건물로서 격식을 갖추고 있으며, 1821년 풍계 현정(楓溪 賢正)이 작성한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1] 등을 통해 건물의 중건과 천불 조성 및 봉안의 역사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건축적으로는 평면 비례, 공포 배치, 상부 가구 등에서 천불을 봉안하기 위한 합리적인 계획 수법을 볼 수 있으며, 공포의 구성과 세부적 조각 수법, 빗천장과 우물천장의 장식과 구성, 창호 등은 화려하지만 지나치지 않고 구조 또한 견실하다. 이러한 공포, 빗천장, 우물천장 등의 구성 및 세부적 수법은 인근의 국가지정문화재(보물)인 미황사 대웅전(1754), 불갑사 대웅전(1764), 불회사 대웅전(1808) 등과 유사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어 비교되어 가치가 높다.
이처럼 대흥사 천불전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천불전 건물을 대표할 수 있는 건물로서 역사적, 학술적으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1]
5. 사진 자료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