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크라우스
1. 개요
해리 크라우스는 188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미국의 야구 선수이다. 1909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10연승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첫 해를 보냈지만, 팔 부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퍼시픽 코스트 리그(PCL)에서 활약하며, 1917년에는 28승을 기록하며 선수 경력의 최고조를 찍었다. PCL에서 통산 249승을 기록하고 PCL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194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이름 | 해리 크라우스 |
|---|---|
| 원어 이름 | Harry Krause |
| 전체 이름 | Harry William "Hal" Krause |
| 포지션 | 투수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일 | 1888년 7월 12일 |
|---|---|
| 출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 사망일 | 1940년 10월 23일 |
| 사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 타석 | 양 |
| 투구 | 좌 |
| 신장 | 178 |
| 체중 | 74 |
| 데뷔 리그 | MLB |
|---|---|
| 데뷔일 | 1908년 4월 20일 |
| 데뷔 팀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 마지막 리그 | MLB |
| 마지막 경기일 | 1912년 7월 28일 |
| 마지막 팀 | 클리블랜드 냅스 |
| 통계 리그 | MLB |
| 승-패 기록 | 36–26 |
| 평균 자책점 | 2.50 |
| 탈삼진 | 298 |
| 소속 팀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8–1912) 클리블랜드 냅스 (1912) |
| 주요 업적 | AL 평균자책점 1위 (1909) 2× 월드 시리즈 우승 (1910, 1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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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냅스 선수 -
애디 조스
애디 조스는 20세기 초 클리블랜드에서 뛰어난 투구 실력을 보여준 미국의 프로 야구 선수로, 짧은 선수 생활에도 불구하고 평균자책점 1.89, WHIP 0.97 등의 뛰어난 기록과 퍼펙트 게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여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클리블랜드 냅스 선수 -
패디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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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교통 사고로 죽은 사람 -
롤랑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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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교통 사고로 죽은 사람 -
앤 헤이치
앤 헤이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에미상을 수상한 배우이자 감독으로, 엘렌 드제너러스와의 관계로도 주목받았으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캘리포니아주 출신 야구 선수 -
재키 로빈슨
재키 로빈슨은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하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초의 흑인 선수로 데뷔, 뛰어난 야구 실력과 용기로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물었으며 은퇴 후에도 인권 운동가와 사업가로 활동하며 사회적 정의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
캘리포니아주 출신 야구 선수 -
지미 윌리엄스
지미 윌리엄스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 및 감독으로 활동한 미국인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 보스턴 레드삭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감독을 역임하며 1995년과 2008년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1999년 아메리칸 리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2. 생애
해리 크라우스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세인트 메리 대학교를 다녔다. 1907년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08년 애슬레틱스에 입단하며 동부로 향했다.
1909년 메이저 리그 데뷔 시즌에 18승 8패와 아메리칸 리그 신인 최저 기록인 1.3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이후 팔 부상 등으로 인해 메이저 리그에서의 활약은 줄어들었다.
1913년부터는 서부 해안으로 돌아와 퍼시픽 코스트 리그(PCL)에서 주로 활동했다. 포틀랜드 비버스를 거쳐 오클랜드 오크스에서 12년간 활약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고, PCL 통산 249승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퍼시픽 코스트 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28년 미션 레즈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1940년 10월, 교통 사고를 당해 8일 후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와 프로 입단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세인트 메리 대학교를 다녔다. 그는 1907년에 프로 야구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08년 19세의 나이로 동부로 향했다. 트라이 스테이트 리그에서 17승 14패를 기록했고, 이후 애슬레틱스에 합류했다.
크라우스는 메이저 리그에서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09년을 10연승으로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6번의 완봉승이 포함되었다. 그는 시즌을 18승 8패, 리그 최고인 1.39의 평균자책점으로 마쳤다. 이는 아메리칸 리그 신인 투수 역사상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이다.
2.2. 메이저 리그 경력
크라우스는 애슬레틱스에 합류하여 메이저 리그에서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09년을 10연승으로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6번의 완봉승이 포함되었다. 시즌을 18승 8패, 리그 최고인 1.39의 평균자책점으로 마쳤다. 이는 아메리카 리그 신인 투수 역사상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이다.
그러나 크라우스는 1910년과 1911년에 이전만큼 자주, 그리고 잘 던지지 못했다. 1910년 초에는 팔 부상으로 인해 출장하지 못했다. 1911년에는 1911년 월드 시리즈에 투입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지만, 팀 상황상 실제 등판은 필요하지 않았다. 당시 리치 가이드에 따르면, 그는 팀의 스타 선수인 잭 쿰스와 체프 벤더가 시즌 초반 평소보다 부진했을 때 팀의 투수진 부담을 덜어주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1912년에는 다시 팔 부상을 겪으며 6경기 등판에 그쳤고, 결국 마이너 리그 팀인 톨레도 머드헨스로 보내졌다. 그는 톨레도에서 13승 4패를 기록했다.
2.3. 퍼시픽 코스트 리그 경력
1912년 시즌 후, 크라우스는 서부 해안으로 돌아와 퍼시픽 코스트 리그(PCL)의 포틀랜드 비버스에 합류했다. 포틀랜드에서 보낸 첫 두 시즌인 1913년과 1914년에 그는 총 39승을 거두었고, 평균자책점은 2.30 미만을 기록했다. 그러나 1915년에는 부진했으며, 1916년에는 웨스턴 리그에서 활동했다.
1917년, 크라우스는 오클랜드 오크스와 계약하며 PCL로 복귀했다. 오클랜드에서의 첫 시즌은 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 되었다. 그는 PCL의 긴 시즌 동안 428.2이닝을 투구하며 28승 26패, 평균자책점 2.35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이는 그의 경력 중 단일 시즌 최다 승리와 최다 이닝 기록이다. 이후 10년 동안 크라우스는 오클랜드 오크스의 선발 로테이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꾸준히 좋은 투구를 선보였고, 이 기간 동안 두 차례 더 20승 이상을 달성했다. 1928년, 그는 미션 레즈로 이적하여 그 해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크라우스는 PCL에서 총 16시즌 동안 활약하며 249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퍼시픽 코스트 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4. 은퇴 후
크라우스는 PCL에서 16시즌 동안 총 249승을 거두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퍼시픽 코스트 리그 명예의 전당 회원으로 헌액되었다.
1940년 10월, 크라우스는 교통 사고를 당했고, 8일 후 사망했다. 아내 마리가 유족으로 남았다.
2.5. 사망
1940년 10월, 크라우스는 교통 사고에 연루되었다. 그는 8일 후 사망했으며, 아내 마리가 유족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