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진 (수호전)
1. 개요
해진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동생 해보와 함께 등주에서 사냥꾼으로 살았다. 관아의 호랑이 사냥 명령으로 인해 모태공의 저택에 화살이 떨어져 강도로 몰려 감옥에 갇혔으나, 탈출하여 양산박에 합류했다. 양산박에서 보군 두령으로 활약하며 정찰 및 잠입 작전에 능했고, 요나라, 전호, 왕경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방랍 토벌전에서 동생과 함께 잠입을 시도하다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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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문화에 관한 -
르네상스 미술
르네상스 미술은 14세기부터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 양식의 변화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부흥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사실적 표현 기법이 발달했으며, 회화, 조각, 건축 분야에서 다양한 발전을 이루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거장들이 활약하며 유럽 각 지역에서 특색을 반영하여 발전했다. -
문화에 관한 -
삼국지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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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2. 생애
해진은 키가 7척이며, 체격이 좋고 자줏빛 얼굴에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이두사(二頭蛇)"라는 별명을 가진 해진은 보통 호랑이나 표범 가죽을 겉옷으로 입으며, 무술에 능하고 언덕을 잘 오르며 악천후도 견딜 수 있었다. 그는 동생 해보와 마찬가지로 청동 갈래 창을 사냥과 전투에 사용하였다.
해진의 생애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등주 시절과 양산박 합류: 등주에서 사냥꾼으로 살던 중 모태공의 모함으로 옥에 갇혔다가 악화, 손립, 손신 형제의 도움으로 탈출, 양산박에 합류하여 축가장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 양산박에서의 활약: 보군 두령으로서 정찰과 잠입 임무를 주로 수행했다. 화주 공격과 북경대명부 공략 때 변장 잠입하여 활약했고, 화주 공격에서는 하태수를 처치했다. 증두시 전투에서는 동생 해보와 함께 증밀의 목을 베었다. 요나라와의 전투에서는 노준의를 구출하고, 전호와 왕경과의 전투에서 활약했으나, 경영에게 패해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 방랍의 난과 죽음: 방랍 토벌전에서 오룡령 공격 중 동생과 함께 산을 타고 잠입을 시도하다 적에게 발각되어 전사했다. 송강은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려다 적의 함정에 빠졌다.
2.1. 등주 시절과 양산박 합류
해진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동생 해보와 함께 등주(현재의 산둥성 동부)에서 사냥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관아에서 호랑이를 사냥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동생과 함께 산에 덫을 놓았다. 독화살을 쏘아 호랑이를 잡았지만, 호랑이는 등주의 부호 모태공의 저택으로 떨어졌다. 모태공은 공을 가로채기 위해 호랑이를 숨기고, 해진과 해보에게 강도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두었다.
해진과 해보는 모태공의 사위인 공목(재판관) 왕정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나, 친척인 악화와 손립, 손신 형제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한다. 이들은 모태공 일가와 왕정을 살해하고 양산박으로 피신하기 위해 등주를 떠난다.
당시 양산박은 축가장과의 전투에서 고전하고 있었는데, 해진과 해보를 포함한 손씨 일가는 축가장에 협력하는 척 잠입하여 내부에서 호응함으로써 양산박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2.2. 양산박에서의 활약
해진은 양산박에 들어간 후 보군 두령이 되어 사냥꾼 시절의 기술을 활용하여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화주 공격과 북경대명부 공략 때는 변장하고 잠입하였으며, 화주 공격에서는 무도인 하태수를 처치하기도 하였다. 증두시 전투에서는 동생 해보와 함께 증밀의 목을 베는 공을 세웠다.
108명이 양산박에 모두 모인 후에도 해진은 보병군 두령으로 계속 활약하였다. 요나라와의 전쟁에서는 절벽에 고립된 노준의 군의 위치를 찾아내어 구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전호, 왕경과의 싸움에서도 여러 적장을 죽이고, 산속에서 길을 잃은 양지를 구출하는 등 공을 세웠으나, 경영에게 패하여 동생과 함께 포로로 잡히기도 하였다.
방랍 토벌전에서도 해진은 산속으로 도망친 패잔병을 소탕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오룡령 공격 때 적군이 산악 지대의 관문에 진을 치고 버티자, 동생과 함께 산을 타고 잠입을 시도하였다. 암벽을 기어오르다 적에게 발각되어 밧줄에 묶여 공중에 매달렸고, 스스로 밧줄을 끊고 벼랑 아래로 떨어져 즉사하였다. 동생 해보도 직후에 사살되었으며, 방랍군은 형제의 시신을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송강은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진격하다가 적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