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위트시우스
1. 개요
헤르만 위트시우스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신학자이다. 그는 엔크하우젠에서 태어나 흐로닝언, 라이덴,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목사로 서품을 받은 후 여러 지역에서 목사직을 수행했다. 1675년 프라네커 대학교, 1680년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1686년 위트레흐트 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1698년에는 라이덴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라이덴에서 사망했다. 위트시우스는 정통주의와 언약 신학의 화해를 모색하며 성경 신학에 기반한 조직 신학을 추구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의 경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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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개신교 신학자 -
코튼 매더
코튼 매더는 미국의 회중교회 목사이자 저술가로, 뉴잉글랜드 청교도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미국 그리스도의 위대한 업적』을 저술하고 세일럼 마녀 재판 당시 마녀 혐의자 처형을 옹호하기도 했다. -
17세기 개신교 신학자 -
존 번연
존 번연은 영국의 대장장이 출신 작가로, 옥중에서 기독교인의 천국 여정을 그린 우화 소설 《천로역정》을 집필하여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종교 서적을 남겼다. -
흐로닝언 대학교 동문 -
자라 바겐크네히트
독일의 정치인이자 경제학자인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좌파당에서 반자본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며 논쟁적인 인물로 활동하다가, 아우프슈테헨 설립 후 좌파당을 탈당,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 - 이성과 정의를 위해" (BSW)를 창당하여 현재 당 대표를 맡고 있다. -
흐로닝언 대학교 동문 -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는 네덜란드의 물리학자로, 저온 물리학 연구의 선구자로서 1908년 세계 최초로 헬륨 액화에 성공하고 1911년 수은의 초전도 현상을 발견하여 191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라이덴 대학교에서 저온 연구소를 설립하여 과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그의 이름이 여러 곳에 기념되었다. -
저작자표시 -
프리드리히 니체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으로 알려진 19세기 독일 철학자이자, 도덕, 종교, 형이상학 비판,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 '영원회귀' 등의 개념 제시로 서양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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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전쟁
장미 전쟁은 1455년부터 1487년까지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왕위 계승 분쟁으로 시작되어 헨리 7세의 승리로 튜더 왕조가 건국되면서 종결된 일련의 내전입니다.
2. 생애
그는 엔크하우젠에서 태어났다. 흐로닝언 대학교, 라이덴, 위트레흐트에서 공부했다. 1656년 서품을 받고 웨스트보우드의 목사가 되었고, 이후 워머, 후스, 레우와르던에서 목사직을 수행했다. 1675년 프라네커 대학교, 1680년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신학 교수를 역임했다. 1686년 위트레흐트 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1698년 프리드리히 스판하임의 후임으로 라이덴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는 라이덴에서 사망했다.
3. 신학 사상
헤르만 위트시우스는 신학에서 당시 지배적이었던 정통주의와 언약 신학(연방주의) 사이의 화해를 목표로 했으며, 성경 신학에 기반한 조직 신학자였다. 주요 저작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의 경륜》(De oeconomia foederum Dei cum hominibus라틴어)이다. 보에티우스파와 코케이우스파 간의 논쟁에 대한 슬픔으로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그는 연방주의 학파의 일원이었지만, 교회의 학문적으로 확립된 교리 체계의 가치를 간과하지 않았다.
3.1. 언약 신학
헤르만 위트시우스는 신학에서 당시 지배적이었던 정통주의와 언약 신학(연방주의라고도 알려짐) 사이의 화해를 목표로 했지만, 무엇보다도 성경 신학에 기반한 조직 신학자였다. 그의 주요 저작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의 경륜》(원래 라틴어: De oeconomia foederum Dei cum hominibus, 1677년 레이우아르덴 출판)이다. 보에티우스파와 코케이우스파 간의 논쟁에 대한 슬픔으로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그는 연방주의 학파의 일원이었지만, 교회의 학문적으로 확립된 교리 체계의 가치를 전혀 간과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3.2. 성경 신학
헤르만 위트시우스는 신학에서 당시 지배적이었던 정통주의와 언약 신학(연방주의라고도 알려짐) 사이의 화해를 목표로 했지만, 무엇보다도 성경 신학에 기반한 조직 신학자였다. 그의 주요 저작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의 경륜》(De oeconomia foederum Dei cum hominibus라틴어, 1677년 레이우아르덴 출판)이다. 그는 보에티우스파와 코케이우스파 간의 논쟁에 대한 슬픔으로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그는 연방주의 학파의 일원이었지만, 교회의 학문적으로 확립된 교리 체계의 가치를 전혀 간과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4. 저작
위트시우스는 신학과 관련된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주 저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의 경제(The Economy of the Covenants between God and Man)로, 1677년에 라틴어(De oeconomia foderum Dei cum hominibus라틴어)로 처음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위트시우스는 양자됨의 교리에 대해 상세히 서술했다.
주요 저서 외에도 유대인의 기독교화(1661), 요한계시록 일곱 서신의 역사적, 예언적 의미에 대한 논쟁(1678),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에 대한 신성한 연습(1681), 신성한 잡록(1692-1700) 등 다양한 저서를 출간했다. 그의 저서 중 일부는 영어로 번역되었다.
4.1. 주요 저서
4.2. 영어 번역 저서
* A Treatise on Christian Faith영어 (London, 1761)
* An Essay on the Use and Abuse of Reason in Matters of Religion영어 (번역: 존 카터(John Carter), 노리치, 1795, 신판: CrossReach Publications, 2016)
* On the Character of a True Theologian영어 (Edinburgh, 1877)
* The Question: ‘Was Moses the Author of the Pentateuch?’ Answered in the Affirmative영어 (1877)
* Sacred dissertations on the Lord's Prayer영어 (1839)
* Sacred Dissertations: On what is Commonly Called the Apostles' Creed영어 (1, 2권) (1823)
* Conciliatory or irenical animadversions on the controversies agitated in Britain : under the unhappy names of antinomians and neonomians영어 (1807)
* The restoration of the Jews영어 (London, 1806)
* The stone laid before Joshua : the substance of a sermon영어 (London,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