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치머만
1. 개요
헤르베르트 치머만은 독일의 전 축구 선수로, 공격수와 수비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나, 1. FC 쾰른으로 이적하여 1978년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우승을 달성했다. 서독 국가대표팀으로 14경기에 출전하여 UEFA 유로 1980 우승을 경험했으며, 1978년 FIFA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 이름 | 헤르베르트 치머만 |
|---|---|
| 전체 이름 | 헤르베르트 치머만 |
| 출생일 | 1954년 7월 1일 |
| 출생지 | 엥거르스, 서독 |
| 신장 | 1.78m |
| 포지션 | 스트라이커, 센터 백 |
| 유소년 클럽 | 1960–1972: FV 엥거르스 07 |
|---|---|
| 클럽 | FC 바이에른 뮌헨 (1972–1974): 2경기 0골 1. FC 쾰른 (1974–1984): 202경기 22골 |
| 총 경기 수 | 204경기 22골 |
| 서독 B 대표팀 | 1977–1980: 6경기 0골 |
|---|---|
| 서독 국가대표팀 | 1976–1979: 14경기 2골 |
| 대회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
|---|---|
| 우승 | 1980 이탈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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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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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54년 출생 -
신영철 (법조인)
신영철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장과 대법관을 역임했으며, 촛불 시위 관련 재판 관여 의혹으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으나 부결된 후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한다. -
1954년 출생 -
마크 워너
마크 워너는 미국의 정치인으로, 버지니아 주지사를 거쳐 현재 연방 상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온건 중도파로 분류되고 낙태 허용을 지지한다. -
UEFA 유로 1980 참가 선수 -
라파엘 고르디요
라파엘 고르디요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이자 레알 베티스의 전 회장으로, 레알 베티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며 다수의 우승을 경험했고 스페인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며 스페인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
UEFA 유로 1980 참가 선수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공격수로 활약하며 바이에른 뮌헨 등에서 뛰었고, 발롱도르 2회 수상 및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은퇴 후에는 바이에른 뮌헨 최고경영자 등을 역임한 독일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 행정가이다.
2. 클럽 경력
헤르베르트 치머만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쾰른으로 이적 후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쾰른 소속으로 1977-78 시즌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우승을 달성하며 더블을 기록했고, 1978-7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 진출했다. 선수 생활 말년에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분데스리가에서 총 204경기에 출전하여 22골을 기록했다.
2.1. 바이에른 뮌헨 시절
헤르베르트 치머만은 스트라이커로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했지만, 서독 대표팀급 선수들이 즐비한 두터운 선수층으로 인해 출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1973년과 1974년 분데스리가 우승, 1974년 유러피언컵 우승 당시 후보 선수로 팀에 기여했다.
2.2. 1. FC 쾰른 시절
치머만은 FC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했지만,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쾰른으로 이적했다. 쾰른에서 그는 부상 문제로 인해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해야 했다. 새로운 포지션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치머만은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 후반, 치머만은 쾰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77년과 1983년 DFB-포칼에서 우승했고, 1978년에는 DFB-포칼과 분데스리가를 동시에 석권하며 2관왕을 달성했다. 쾰른에서 활동하던 시절, 치머만은 일본 선수 아오테라 야스히코와 함께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1976년 10월, 웨일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서독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78년과 1979년에 국가대표팀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이 기간 동안 14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다. 1979년에는 유로 1980 예선에서 웨일스와 튀르키예를 상대로 득점하여 서독의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1978년 월드컵에 참가하여 폴란드전과 이탈리아전에 출전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안토니오 베스푸시오 리베르티 기념 경기장에서 열린 이탈리아전 후반전에 부상으로 교체되었다.
유로 1980 최종 명단에는 포함되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본선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우승을 경험했다. 서독 B 대표팀 소속으로는 6경기에 출전했다.
4. 수상 내역
4.1. 클럽
치머만은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했으나,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쾰른으로 이적하여 중앙 수비수로 활약했다. 쾰른에서 부상 문제로 수비수로 뛰게 되었고, 이 역할에 적응하면서 계속 수비수로 활약했다. 바이에른 뮌헨 시절에는 분데스리가 1973년과 1974년 우승, 1974년 유러피언컵 우승을 경험했지만 후보 선수였다. 쾰른 소속으로는 1978년에 DFB-포칼과 분데스리가를 동시에 석권하며 2관왕을 달성했고, 이는 그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큰 성과였다. 선수 생활 말년에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치머만은 분데스리가에서 204경기에 출전하여 22골을 기록했다.
4.2. 국가대표팀
수비수 시절, 그는 1976년 10월에 웨일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서독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다. 1978년과 1979년에 서독 국가대표팀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했는데, 이 기간동안 치머만은 14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다. 1979년, 유로 1980 예선전에서 웨일스와 튀르키예를 상대로 골을 넣었다. 이 골로 서독은 유로 1980 본선에 참가하여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튀르키예와의 대회 예선전 이후로 출전한 경기는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본선에서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1978년, 1978년 월드컵에 참가해 폴란드전을 치르고, 이탈리아전에도 출전했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안토니오 베스푸시오 리베르티 기념 경기장에서 열린 이 경기 후반전에 부상으로 경기장을 나갔다.
| 국가대표팀 기록 | ||
|---|---|---|
| 연도 | 출장 | 득점 |
| 1976 | 1 | 0 |
| 1977 | 2 | 0 |
| 1978 | 6 | 0 |
| 1979 | 4 | 2 |
| 1980 | 1 | 0 |
| 합계 | | 2 | |
* 서독
**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