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1908년 창설되어, FIFA 월드컵 4회 우승(1954, 1974, 1990, 2014),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3회 우승(1972, 1980, 1996)의 기록을 가진, 세계적인 강호이다. '전차군단'으로도 불리며, 로타어 마테우스, 미로슬라프 클로제, 토마스 뮐러 등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다. 율리안 나겔스만이 현재 감독을 맡고 있으며,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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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협회 (DFB) 창립 8년 후인 1908년 4월 5일,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공식 경기가 바젤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열렸고, 독일은 3-5로 패했다.[228] 1899년과 1901년 사이에는 국가대표팀 창설 이전에 독일과 잉글랜드 간 5차례의 비공식 경기가 있었는데, 모두 독일팀의 대패로 끝났다.[240] 1909년 3월 옥스퍼드에서 열린 잉글랜드 아마추어팀과의 경기에서 독일은 9-0으로 대패하며 역대 최다 점수 차 패배를 기록했다.[19]
1908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공식 국제 경기
율리우스 히르슈는 1911년 독일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최초의 유대인 선수였다.[22][23] 고트프리트 푸흐스는 1912년 올림픽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10골을 넣어 독일 대표팀 선수 중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25]
당시 선수들은 DFB에 의해 차출되었고, 전담 감독은 없었다. 초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만하임 출신의 학교 교사인 오토 네어츠였고, 1926년부터 1936년까지 감독직을 역임했다.[241] 독일 축구 협회는 대공황으로 인해 1930년 초대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했으나, 1934년 FIFA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3위를 기록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후, 제프 헤어베어거가 감독으로 부임했다.[29] 1937년, 헤어베어거의 독일팀은 브레즐라우 (현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서 덴마크를 8-0으로 대파하며 ''브레즐라우의 11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242][243]
1938년 3월, 오스트리아가 ''병합''으로 독일의 일부가 되면서,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은 해체되었고, 나치 정치인들의 지시에 따라 오스트리아 출신 선수 5-6명이 독일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1938년 FIFA 월드컵에서 "통합된" 독일 국가대표팀은 스위스와 1-1 무승부를 거둔 후 재경기에서 2-4로 패하며 조기 탈락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독일 국가대표팀은 1939년 9월부터 1942년 11월까지 30회 이상의 국가대항전을 치렀다. 이후 대부분의 선수들은 군에 입대해야 했고, 헤어베어거 감독은 ''Rote Jäger'' (붉은 사냥꾼) 부대를 통해 축구 선수들을 보호하려 노력했다.
2. 1. 초창기 (1899년–1942년)
독일 축구 협회 (DFB) 창립 8년 후인 1908년 4월 5일,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공식 경기가 바젤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열렸고, 독일은 3-5로 패했다.[228] 1899년과 1901년 사이에는 국가대표팀 창설 이전에 독일과 잉글랜드 간 5차례의 비공식 경기가 있었는데, 모두 독일팀의 대패로 끝났다.[240] 1909년 3월 옥스퍼드에서 열린 잉글랜드 아마추어팀과의 경기에서 독일은 9-0으로 대패하며 역대 최다 점수 차 패배를 기록했다.[19]
율리우스 히르슈는 1911년 독일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최초의 유대인 선수였다.[22][23] 고트프리트 푸흐스는 1912년 올림픽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10골을 넣어 독일 대표팀 선수 중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25]
당시 선수들은 DFB에 의해 차출되었고, 전담 감독은 없었다. 초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만하임 출신의 학교 교사인 오토 네어츠였고, 1926년부터 1936년까지 감독직을 역임했다.[241] 독일 축구 협회는 대공황으로 인해 1930년 초대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했으나, 1934년 FIFA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3위를 기록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후, 제프 헤어베어거가 감독으로 부임했다.[29] 1937년, 헤어베어거의 독일팀은 브레즐라우 (현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서 덴마크를 8-0으로 대파하며 ''브레즐라우의 11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242][243]
1938년 3월, 오스트리아가 ''병합''으로 독일의 일부가 되면서,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은 해체되었고, 나치 정치인들의 지시에 따라 오스트리아 출신 선수 5-6명이 독일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1938년 FIFA 월드컵에서 "통합된" 독일 국가대표팀은 스위스와 1-1 무승부를 거둔 후 재경기에서 2-4로 패하며 조기 탈락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독일 국가대표팀은 1939년 9월부터 1942년 11월까지 30회 이상의 국가대항전을 치렀다. 이후 대부분의 선수들은 군에 입대해야 했고, 헤어베어거 감독은 ''Rote Jäger'' (붉은 사냥꾼) 부대를 통해 축구 선수들을 보호하려 노력했다.
2. 2. 세 개의 국가대표팀으로 나뉘다 (1945년–1990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 독일은 1950년까지 국가대항전 출전 정지 징계를 받게 되었고, 독일에서 갈라져 나온 3국인 서독, 동독, 자르 보호령 모두 1950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 출전하지 못하였고, 이 월드컵의 본선이 끝나고서야 DFB에 대한 징계가 풀려났다.[32]
서독(West Germany)으로 불린 서독은 DFB를 계승했다. FIFA와 UEFA의 승인을 받은 DFB는 전쟁 이전 팀의 기록을 유지하고 이어갔다. 스위스는 1950년 서독과 경기를 치른 최초의 팀이었다.[32] 서독은 1954년 월드컵에 진출했고 스위스는 월드컵을 개최했다.
1947년부터 1956년까지 프랑스의 보호령이었던 사르란트는 프랑스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고, 전독일 단체에 참가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사르란트는 자체 팀을 1952년 하계 올림픽과 1954년 월드컵 예선에 파견했다. 1957년, 사르란트는 서독에 합병되었다.
1949년, 공산주의 국가인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 East Germany)이 설립되었다. 1952년, ''동독 축구 협회''(Deutscher Fußball-Verband der DDR, DFV)가 설립되었고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이 경기에 나섰다. 그들은 분단된 국가의 양측이 단 한 번 만났던 경기에서 1974년 FIFA 월드컵 우승팀인 서독을 이긴 유일한 팀이었다. 동독은 1976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동독의 축구 대회는 DFB에 재통합되었다.
2. 2. 1. 서독
대부분의 전쟁 이전까지 내려오던 독일 조직이나 생활 방식은 흔히 서독으로 불리는 서독이 계승하였다. 이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재창립된 DFB에도 해당되었고, 제프 헤어베어거는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유지하였다. FIFA와 UEFA의 승인을 받은 후, DFB는 전쟁 이전의 기록을 계승받았다. 이웃하는 스위스는 또다시 1950년에 서독의 첫 상대가 되었고,[32] 1951년에 독일과 맞붙은 터키와 아일랜드는 1951년에 독일과 붙은 유일한 비독일어권 국가들이었다.[244]
전쟁 이후 총 18경기를 치른 서독은 노르웨이와 "세번째 독일" 자르 보호령을 꺾고 1954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다.
1954년 대회에서는 당시 마법의 마자르라고 불렸던 헝가리와의 결승전에서 3-2로 승리했다(베른의 완크도르프 스타디온에서 개최). 이것이 월드컵에서 독일의 첫 우승이다. 이 승리는 ""이라고 불리며, 재건 중이던 서독 국민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185]
1966년 대회 결승전에서는 잉글랜드에게 연장전 끝에 패배했는데, 연장전에서 나온 제프 허스트의 골은 골라인 판정 논란을 일으켰다.
1970년 대회 준결승 이탈리아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했지만,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오른쪽 어깨가 탈구된 상태에서도 경기를 뛰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최초의 자국 개최가 된 1974년 대회에서는 함부르크에서의 1차 리그에서 동독과 역사상 유일한 동서독 대표팀 간의 경기를 치렀는데, 이 경기에서 동독에 패했다.[186] 하지만 결승전에서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를 2-1로 꺾고 우승했다.
1982년 대회 준결승 프랑스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에게 패배했다.
1990년 FIFA 월드컵 예선에는 헤슬러의 득점으로 겨우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187]1990년 본선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결승에서 1-0으로 꺾고 우승했다. 이것이 "서독 대표팀"으로서의 마지막 활동이 되었다.
2. 2. 2. 자르 보호령
자르 보호령은 독일에서 떨어져 나와 1947년부터 1956년까지 프랑스 보호령으로 존재하였다. 자를란트는 프랑스 병합을 거부하였으며, 타 독일의 분단국가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에 따라 1952년 하계 올림픽에 자르 보호령은 선수단을 따로 파견하였고, 1954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도 자를란트 대표로 따로 출전하였으며, 서독에 패하였으나, 노르웨이를 오슬로 원정에서 꺾고, 조 2위를 기록하였다. 전설적인 감독 헬무트 쇤이 1952년부터 서독에 흡수되는 1957년까지 자를란트 사령탑을 맡았다. 그는 1970년대에 서독 국가대표팀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은 1950년까지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에 참가할 수 없었다.[32] 1947년부터 1956년까지 프랑스의 보호령이었던 사르란트는 프랑스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고, 전독일 단체에 참가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사르란트는 자체 팀을 1952년 하계 올림픽과 1954년 월드컵 예선에 파견했다. 1957년, 사르란트는 서독 연방 공화국에 합병되었다.
2. 2. 3. 동독
1949년, 독일 민주 공화국은 소련이 점령한 독일의 동부 지역에 세워졌다.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알려진 또다른 국가대표팀이 이곳에서 창설되었다. 1952년 독일 민주 공화국의 독일 축구 연합 (Deutscher Fußball-Verband der DDR, DFV) 이 창립되었고,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을 관리하게 되었다. 이 팀은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나중에 우승을 거두는 서독을 상대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는데, 동독은 이 경기에서 서독을 꺾으며 이 대회에서 서독에 패배를 안긴 유일한 팀으로 기록되었다. 동독은 1976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1990년 독일의 재통일 이후, 동독 국가대표팀과 협회는 다시 DFB에 통합되었다.
1949년, 공산주의 국가인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 East Germany)이 설립되었다. 1952년, ''동독 축구 협회''(Deutscher Fußball-Verband der DDR, DFV)가 설립되었고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이 경기에 나섰다. 그들은 분단된 국가의 양측이 단 한 번 만났던 경기에서 1974년 FIFA 월드컵 우승팀인 서독을 이긴 유일한 팀이었다. 동독은 1976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동독의 축구 대회는 DFB에 재통합되었다.
2. 3. 베른의 기적 (1954년)
프리츠 발터를 주장으로 둔 서독은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터키,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를 상대하였다. 우승 후보 헝가리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제프 헤어베어거 감독은 정예군을 필드에 배치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주전 선수들은 3-8 대패를 면하였다. 서독은 결승에서 헝가리를 다시 만났고, 여기서 32경기 연속 무패행진중인 무적의 머저르를 다시 상대하였다. 서독은 이 경기에서 0-2로 밀리다가 3-2로 역전하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헬무트 란은 이 경기에서 6분을 남기고 결승골을 득점하였다.[245] 이 승리는 훗날 "베른의 기적" (''Das Wunder von Bern'')으로 회자되고 있다.[246]
1958년 FIFA 월드컵에서 4위, 1962년 FIFA 월드컵에서 8강에 그친 후, 독일 축구 연맹(DFB)는 개혁을 단행했다. 프로 축구 리그가 출범하고, 레기오날리가 상위권 팀들은 분데스리가에 참가하였다. 1964년, 헬무트 쇤이 헤어베어거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다.[247]
1966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서독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홈팀 잉글랜드를 상대하였다. 볼프강 베버의 동점골로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제프 허스트가 독일에서 ''웸블리 골''이라 불리는 논란의 득점을 기록했다. 소련 부심 토피크 바흐라모프는 득점을 인정했고, 이는 축구 역사상 가장 큰 논쟁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결국 잉글랜드가 4-2로 승리했다.[247][248] 서독의 축구팬들은 이 골에 대해 카메라 촬영 자료까지 제출하며 무효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0년 FIFA 월드컵 8강에서 서독은 잉글랜드를 3-2로 꺾고 복수에 성공했으나,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연장 접전 끝에 3-4로 패했다. 카를하인츠 슈넬링어의 동점골 이후 연장전에서 양 팀은 번갈아 리드를 가져갔고, 프란츠 베켄바워는 어깨 탈골에도 불구하고 팔을 몸에 고정한 채 경기를 뛰었다. 이 경기는 이탈리아와 독일 양쪽에서 세기의 경기로 불린다.[249][250] 서독은 우루과이와의 3위 결정전에서 승리했고, 게르트 뮐러는 10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2. 5. 홈에서의 월드컵 우승 (1974년)
1971년, 프란츠 베켄바워가 주장직을 맡은 서독은 UEFA 유로 1972 결승전에서 소련을 3-0으로 완파하며 우승을 차지했다.[251][252] 이후 홈팀으로 참가한 1974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네덜란드를 2-1로 누르고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였다.[253]
1974년 월드컵에서 서독은 두 차례의 상징적인 경기를 치렀다. 1차 조별리그에서 서독은 첨예한 이념 대립이 있는 동독을 상대하였고, 이 경기는 동독의 1-0 승리로 끝났다.[254] 하지만, 서독은 이 경기에서의 패배 이후 선발 라인업을 수정하여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전에서 "토탈 풋볼"을 구사하는 요한 크라위프의 네덜란드를 상대로, 경기 시작 1분 만에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파울 브라이트너의 페널티킥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게르트 뮐러가 전반 종료 직전에 결승골을 득점하였다.[255][256]
2. 6.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서독은 UEFA 유로 1976 결승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와 2-2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5-3으로 패하였다.[257]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독일은 메이저 대회에서 승부차기 무패를 기록하고 있다.[46]197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이미 탈락이 확정된 오스트리아에 2-3으로 패한 뒤 2차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였다. 쇤은 이후 감독직에서 은퇴하였고, 그의 자리는 수석코치였던 유프 데어발이 차지하였다.
데어발 하의 서독은 UEFA 유로 1980 결승전에서 벨기에를 2-1로 꺾으며 두번째 우승을 거두었다.[259] 이후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1차 조별리그 첫경기에서 알제리에 1-2로 패하는 수모를 당한 뒤,[260]오스트리아와의 최종전에서 논란의 1-0 승리를 거둔 후 2차 조별리그에 진출하였다.[49]프랑스와의 준결승전에서, 서독은 연장전에서 1-3으로 밀린 상황에서 3-3 동점을 만들어낸 후, 승부차기 끝에 5-4로 승리하였다.[261][262] 결승전에서, 서독은 이탈리아에 1-3으로 완패하였다.[263]
이 시기동안, 서독은 가장 유능한 골게터인 게르트 뮐러를 보유하였고, 그는 두번의 월드컵 (1970년, 1974년) 에 출전하여 14골을 득점하였다. 게르트 뮐러(Gerd Müller) 1974년 뮐러의 월드컵 역대 최다골 기록은 2006년에 호나우두에 의해 경신되었으나, 이후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16골로 기록을 경신했다.[52]
2. 7. 베켄바워 지도하의 월드컵 우승 (1984년–1990년)
프란츠 베켄바워
서독이 UEFA 유로 1984에서 조기 탈락한 후, 프란츠 베켄바워는 데어발을 대신하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268]1986년 FIFA 월드컵에서 서독은 프랑스와의 준결승전에서 2-0 완승을 거두었으나,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2-3으로 석패하여 두 대회 연속 준우승을 기록하였다.[269][270]UEFA 유로 1988에서 서독은 홈 안방에서 유로 우승을 노렸으나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전에서 1-2로 패하며 1974년 월드컵 결승전 패배를 설욕당했다.[271]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서독은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3회 연속 결승전 진출과 동시에 3번째 월드컵 우승을 달성하였다.[272]로타어 마테우스가 주장을 맡은 이 팀은 유고슬라비아(4-1), 아랍에미리트(5-1), 네덜란드(2-1), 체코슬로바키아(1-0)를 꺾고, 잉글랜드와의 준결승전에서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하며 아르헨티나와 결승전에서 다시 만났다.[273][274] 서독은 85분에 안드레아스 브레메가 기록한 페널티킥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272] 이로써 1974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월드컵 우승을 거둔 베켄바워는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에 이어 월드컵을 선수와 감독으로써 모두 우승을 거둔 두번째 인물이자, 주장과 감독으로써 모두 우승을 거둔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268]
프란츠 베켄바우어(Franz Beckenbauer) 1990년
2. 8. 올림픽 축구
1984년 이전까지 올림픽 축구는 아마추어 대회였기 때문에 프로 선수들은 참가할 수 없었다.[62] 서독은 1988년 하계 올림픽에서 이탈리아를 3-0으로 꺾고 동메달을 획득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62] 서독은 1972년 하계 올림픽과 1984년 하계 올림픽에서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
반면, 동독은 1976년 몬트리올 금메달, 1980년 모스크바 은메달, 1972년 뮌헨 동메달을 획득하며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64년에는 동독 팀이 서독 팀을 이기고 통일 독일팀 대표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독일은 1912년에 처음 올림픽 축구에 참가하여 1회전에서 탈락했다. 1928년과 1936년에는 8강에 진출했고, 1952년에는 4위를 기록했다. 1956년에는 1회전에서 탈락했다.
개최년도
결과
경기
승
무
패
득점
실점
1900년
불참
1904년
1908년
1912년
1회전 탈락
3
1
0
2
18
8
1920년
출전 정지
1924년
1928년
8강
2
1
0
1
5
4
1936년
8강
2
1
0
1
9
2
1948년
출전 정지
1952년
4위
4
2
0
2
8
8
1956년
1회전 탈락
1
0
0
1
1
2
1960년
예선 탈락
1964년
1968년
1972년
2회전 탈락
6
3
1
2
17
8
1976년
예선 탈락
1980년
불참
1984년
8강
4
2
0
2
10
6
1988년
동메달
6
4
1
1
16
4
총계
최고 성적: 동메달 18개 대회 중 8회 출전
28
14
2
12
83
42
2. 9. 베르티 포크츠의 임기 (1990년–1998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독과 서독은 UEFA 유로 1992 예선 5조에 함께 편성되었다.[63] 1990년 서독의 월드컵 우승 이후, 프란츠 베켄바워 감독은 "구 동독 선수의 합류로 독일 축구는 몇년간 천하무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베르티 포크츠에게 감독 자리를 넘겼다. 독일의 재통일 이후, 1990년 12월 19일 구 동독 국가대표 일원이었던 마티아스 자머와 울프 키르스텐이 출전한 가운데 통독은 스위스를 상대하였다.[63]
베르티 포크츠
베르티 포그츠(Berti Vogts)
UEFA 유로 1992에서 독일은 결승전 진출에 성공하였으나, 덴마크에 0-2로 패하였다.[275][64]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참여한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독일은 불가리아와의 8강전에서 1-2로 패하며 탈락하였다.[276][277][65][66]
UEFA 유로 1996에서 독일은 통일 이후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하였다.[278][67] 준결승전에서 잉글랜드를 승부차기로,[279][68] 결승전에서는 체코를 상대로 올리버 비어호프의 골든골에 힘입어 2-1 승리를 거두었다.[280][69]마티아스 자머는 1996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그러나,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독일은 8강에서 크로아티아에 0-3으로 패하였다.[281][70] 포크츠는 이후 사임을 발표하였고, 에리히 리베크가 후임으로 선임되었다.[282][71]
2. 10. 리베크, 푈러, 클린스만의 임기 (2000년–2006년)
UEFA 유로 2000에서 독일은 조별 리그 세 경기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조기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이미 8강 진출을 확정지은 포르투갈과의 최종전에서는 0-3으로 대패했다.[283][72] 대중의 맹비난을 받은 리베크는 사임했고, 루디 푈러가 임시 감독을 맡았다가 크리스토프 다움 감독의 마약 스캔들로 인해 정식 감독으로 확정되었다.[284][285][286][73]
2002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은 예선전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를 통해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본선 E조 첫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대파하고, 카메룬을 2-0으로 꺾으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287] 녹아웃 토너먼트에서는 올리버 칸, 미로슬라프 클로제, 미하엘 발라크의 활약으로 파라과이,[288][74]미국,[289][75]대한민국[290][76]을 모두 1-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미하엘 발라크가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올리버 칸이 부상당하는 악재 속에 브라질에 0-2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291][77] 그러나 올리버 칸은 골든볼과 최고 골키퍼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292][293][78][79]미로슬라프 클로제는 실버슈를 받았다.
UEFA 유로 2004에서 독일은 조별 리그 두 경기를 비기고, 이미 8강 진출을 확정지었던 체코와의 최종전에서 패하며 탈락했다.[294][80] 루디 푈러는 성적 부진에 대한 언론의 비판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295] 이후 오트마어 히츠펠트, 오토 레하겔 등 유력 후보들이 감독직을 거절하면서,[296][297] 전 국가대표 선수이자 감독 경력이 없는 위르겐 클린스만이 신임 감독으로 내정되었고,[298][81][82]요아힘 뢰프가 수석 코치를 맡았다. 클린스만은 UEFA 유로 2004 이후 미하엘 발라크에게 주장 완장을 넘겨주었다.
2006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은 개최국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기대치를 받았다. 그러나 독일은 개막전에서 코스타리카를 4-2로 꺾고,[299]폴란드에 1-0,[300]에콰도르에 3-0 승리를 거두며[301] 조별 리그를 3전 전승으로 통과했다. 16강전에서는 루카스 포돌스키의 두 골로 스웨덴을 2-0으로 제압했다.[302][85] 8강전에서는 아르헨티나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옌스 레만의 선방으로 승리했다.[303][304][305][86][87][88]
준결승전에서는 연장전 막판 이탈리아에 2골을 내주며 0-2로 패했다.[307][89] 3·4위전에서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활약으로 포르투갈을 3-1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308][90]미로슬라프 클로제는 5골로 골든슈를 수상했고,[309][91]루카스 포돌스키는 최우수 신인 선수상을 받았으며,[310]옌스 레만, 필리프 람, 미하엘 발라크,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311] 독일은 대회 최다 득점(14골)을 기록했다.[312]
2. 11. 요아힘 뢰프의 임기 (2006년–2021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사임하면서, 요아힘 뢰프가 감독으로 승격되어 UEFA 유로 2008 예선전을 시작했다.[313][314] 뢰프는 전임 클린스만에 비해 카리스마는 부족했지만, 판단이 빠르고 유능한 전술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국가대표팀에 신인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차출하여 스쿼드에 힘을 불어넣었다. 체코, 아일랜드와 함께 묶인 이 조에서, 독일은 산마리노를 상대로 13-0의 기록적인 승리를 거두는 등 수월하게 본선에 진출하였다.[315]
UEFA 유로 2008 본선에서, 독일은 폴란드, 크로아티아, 그리고 같은 독일어를 쓰는 오랜 앙숙이자 개최국인 오스트리아와 함께 B조에 편성되었다.[316] 독일은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였으나,[317] 크로아티아와의 2차전에서 1-2로 패하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는 공이 없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행위를 하여 퇴장당했다.[318] 독일은 오스트리아와의 최종전에서 승리하며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319] 이 경기의 유일한 득점자는 미하엘 발라크로, 49분에 강력한 장거리 프리킥으로 득점하였는데, 이 골은 후에 독일 올해의 골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독일의 8강 상대는 포르투갈이었다. 독일은 초반에 포르투갈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였고, 슈바인슈타이거는 루카스 포돌스키의 크로스를 골로 연결하였다.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슈바인슈타이거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하여 리드를 두 골 차로 늘렸다. 포르투갈은 전반 종료 직전에 만회골을 넣었으나, 독일은 후반에 발락이 헤딩으로 슈바인슈타이거의 어시스트를 골로 만들어내며 다시 2골 차 리드를 잡았다. 이후 독일은 막판에 한 골을 더 실점하였으나, 경기를 3-2 승리로 마무리했다.[320]
독일은 준결승전에서 터키를 만나 쉽게 결승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초반에 긴장한 독일 대표팀은 기대 이하의 기량을 보였고, 22분에는 우우르 보랄에게 실점하며 끌려갔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동점골을 넣은 후,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역전골을 득점하였으나, 12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세미흐 센튀르크가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연장전으로 향해갈 무렵, 토마스 히츨슈페르거의 부정확한 패스가 콜린 카짐-리차즈를 넘어 필리프 람에게 연결되었고, 람은 결승골을 득점하였다. 독일은 3-2 승리로 결승전에 진출하여 스페인을 상대하게 되었다.[321]
스페인의 절대 우세가 점쳐졌으나, 독일은 몇 안되는 대항마로 꼽혔다. 스페인은 경기를 지배하였고 페르난도 토레스의 선제골로 리드를 잡았다. 독일은 동점골을 넣는데 실패하여 경기를 0-1로 패배, 대회 준우승에 머물렀다.[322]
2018년 러시아 월드컵(2018 FIFA 월드컵)에서의 참패 이후, UEFA 유로 2020(UEFA EURO 2020) 예선에서는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제외하고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조슈아 키미히, 레온 고레츠카, 세르주 그나브리, 안토니오 뤼디거, 카이 하베르츠 등 젊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강호 네덜란드와 같은 조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1년 연기되어 2021년에 개최된 UEFA 유로 2020에서는 조별 리그 1차전에서 프랑스에 패했지만, 2차전에서 포르투갈을 꺾고, 3차전에서 헝가리와 비기면서 승점 4점으로 조 2위를 기록,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하지만 16강전에서 잉글랜드에 패했다. 대회 종료 후 요아힘 뢰프 감독이 사퇴했고, 그의 후임으로는 뢰프 감독 시절 수석 코치를 역임했으며,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서 2020년 트레블을 달성한 한지 플릭이 대표팀 감독에 취임했다.
2022년 월드컵 예선에서는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했지만, 러시아 월드컵 조별 리그 탈락의 영향으로 FIFA 랭킹이 크게 하락하여 조 추첨에서는 2포트에 배정되었다.
카타르 월드컵 독일 대표팀 (2022년 11월 23일)
2022년 카타르 월드컵(2022 FIFA 월드컵) 본선에서 독일 대표팀은 E조에 편성되어 1차전에서 일본, 2차전에서 스페인, 최종전에서 코스타리카와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 독일은 여러 유럽 국가들과 함께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뜻을 담은 ‘원 러브(One Love)’가 적힌 무지개색 주장 완장을 착용할 예정이었지만, FIFA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착용 시 제재를 가하겠다고 발표하여 결국 착용하지 않았다.[203] 1차전 일본과의 경기 시작 전 사진 촬영에서는 이 발표에 대한 항의로 선수들이 입을 가린 채 사진을 찍었다.[203]
한편, 경기에서는 전반전에 얻은 페널티킥을 일카이 귄도안이 성공시켜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전에 2골을 내주면서 1-2로 역전패를 당하며 2회 연속 첫 경기 패배를 기록했다.[204][205] 2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는 알바로 모라타에게 선제골을 허용했고, 후반전에 니클라스 퓔크루크가 동점골을 넣어 따라붙었지만, 역전에는 실패하며 비겼다.[206] 2경기를 치른 후 승점 1점에 그쳤기에 승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최종전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는 세르주 그나브리가 선제골을 넣으며 조별 리그 통과에 한 걸음 다가섰다. 후반 20분 코스타리카의 수비수 후안 파블로 바르가스의 골로 역전을 허용했지만, 카이 하베르츠 등의 활약으로 곧바로 동점을 만들고 역전하여 4-2로 승리했다. 하지만 스페인과 승점이 같았으나, 골득실에서 뒤처져 2회 연속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결과를 맞이했다.[207][208][209]
2. 11. 1. UEFA 유로 2008
독일의 유로 2008 예선 진출은 클린스만의 사퇴 이후 요아힘 뢰브의 승격으로 시작되었다.[92]
UEFA 유로 2008에서 독일은 조별 리그에서 3경기 중 2경기를 승리하여 토너먼트 단계로 진출했다.[93] 8강전에서는 포르투갈을 3-2로 꺾었고,[94] 준결승전에서는 튀르키예를 꺾었다.[95] 독일은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1-0으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96]
2. 11. 2.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
2009년 12월 4일 2010년 월드컵 조편성에서 독일은 오스트레일리아, 세르비아, 가나와 더불어 죽음의 D조에 편성되었다.[324] 대회 내내, 독일은 공격적이며, 흥미로운 축구를 구사하였다. 2010년 6월 13일, 독일은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4-0 대승을 거두었다.[325] 이어지는 2차전에서는 세르비아에 0-1로 패하였다.[326] 이어지는 가나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독일은 메수트 외질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쟁취했고,[327] 독일은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였다. 16강전에서 독일은 4-1 대승을 거두며 잉글랜드에 월드컵 최다 점수차 패배를 안겼다.[328] 그러나, 2-1 상황에서 프랭크 램퍼드의 골이 취소되었고, 비디오 리플레이에서 골 라인을 넘은 것으로 확인되어 논란을 일으켰다.[329][330][331] 8강에 오른 독일은 아르헨티나도 4-0으로 완파하였다.[332] 이 경기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100번째 국가대표팀 경기 출전과 게르트 뮐러의 월드컵 통산 14골 동률을 자축하였고,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기록한 월드컵 통산 최다골까지 한골을 남겼다.[264][265][266][267] 7월 7일에 열린 스페인과의 준결승전에서, 독일은 유로 2008에서처럼 스페인에 카를로스 푸욜의 결승골로 0-1로 패하여 결승진출에 실패한다.[333] 3위 결정전에서는 1970년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우루과이를 상대하였고, 7월 10일에 진행된 이 경기는 3-2로 이겼다.[334]
독일은 2010년 월드컵에서도 16골을 득점하며, 8골을 득점한 2010년 FIFA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과 대조되게 본선 최다 득점팀이 되었다.[335] 독일은 1982년 FIFA 월드컵의 브라질 이래 FIFA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최다 득실차를 기록한 비우승팀이 되었다. 인터넷 설문 조사에서, 독일은 토너먼트 최고의 인기팀으로 선정되었으나, FIFA에서 이것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독일 신예 토마스 뮐러는 팀동료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뒤를 이어 5골 3어시스트로 득점왕에 선정되었고,[336] 또다른 팀동료 루카스 포돌스키에 이어 최우수 신인 선수로 선정되었다.[337]
이 대회에 출전한 독일 대표팀은 독일 인구구조의 변화를 대변하였다. 이전에 비해 다인종적이었고,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23명 중 11명은 이중에서 10명이 독일 태생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타국 대표로 출전 가능하였다. 카카우만이 브라질에서 청소년 시절에 독일로 이민하였다.[338] 이 변화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전통적인 힘을 유지하였고, 메이저 대회에서 강인함을 증명하였다. 월드컵 전까지 독일은 1-2로 패한 잉글랜드와의 친선전[339]과 0-1로 패한 아르헨티나[340]에게만 패하였고, 월드컵 종료 이후 얼마 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 1-2로 패하였다.[341] 이 세 경기 모두 홈 안방에서 패하였으나, 독일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본선에서 이 세팀을 상대로 각각 4골씩 득점하며 모두 승리하였다.
이 대회 조별리그를 유일하게 3전 전승으로 통과한 독일은 8강전에서 그리스를 꺾으며 주요 대회 15연승으로, 이 부문에서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345] 특히 이 경기에서 독일은 후보 선수들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주전 선수들을 내세운 그리스를 완파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의 준결승전에서,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주요 대회에서의 이탈리아전 무승 기록에 종지부를 찍는데 실패하였다.
2012년 6월 9일 리비우의 아레나 리비우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첫 경기에서 고메스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345]하르키우의 메탈리스트 경기장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는 고메스가 2골을 기록하며 2-1로 승리했다.[345] 리비우의 아레나 리비우에서 열린 덴마크와의 마지막 조별 리그 경기에서는 포돌스키와 벤더의 득점으로 2-1 승리를 거두며 3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했다.[345]
8강전에서는 그단스크의 PGE 아레나 그단스크에서 그리스를 만나 람, 케디라, 클로제, 로이스의 연속골로 4-2 완승을 거두었다.[345] 그러나 바르샤바의 바르샤바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준결승전에서는 발로텔리에게 2골을 허용하며 1-2로 패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345]
독일은 예선 조 1위를 차지하며 2014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다. 본선에서 독일은 포르투갈, 가나, 미국과 함께 G조에 편성되었다.[347] 독일은 포르투갈과의 첫 경기에서 토마스 뮐러의 해트트릭과 마츠 훔멜스의 골을 묶어 4-0 대승을 거두었다. 가나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는 마리오 괴체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가나에게 연속으로 2골을 실점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후반 26분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클로제는 이 골로 자신의 통산 15번째 월드컵 득점을 기록, 호나우두와 함께 월드컵 최다 득점 공동 선두에 올랐다. 이후 미국과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16강에 진출, 알제리를 상대하게 되었다. 16강전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연장 전반 2분 안드레 쉬를레의 선제골과 연장 후반 15분 메수트 외질의 추가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알제리는 경기 종료 직전 한 골을 만회했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는 전반 13분 마츠 후멜스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4회 연속 준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348]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는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대승을 거두었다. 독일은 전반전에만 토마스 뮐러, 미로슬라프 클로제, 사미 케디라, 토니 크로스(2골)가 득점하며 5-0으로 앞서 나갔다. 특히 클로제는 이 경기에서 월드컵 통산 16호골을 기록하며 호나우두를 제치고 월드컵 최다 득점 단독 1위로 올라섰다. 후반전에도 안드레 쉬를레가 2골을 추가하며 7-0으로 앞서갔고, 브라질은 경기 막판 오스카르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 결국 7-1로 독일이 승리했다. 이 경기는 브라질의 월드컵 역사상 최다 점수 차 패배로 기록되었으며,[349] 독일은 이 경기 승리로 월드컵 역사상 최초 4회 연속 준결승 진출, 월드컵 본선 토너먼트 단일 경기 최다 득점(7골), 월드컵 최단 시간 5득점 등 여러 기록을 갈아치웠다.
결승전은 7월 13일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에서 열렸으며, 독일은 연장 후반 8분 마리오 괴체의 결승골로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350][351] 이로써 독일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한 최초의 유럽팀이 되었으며, 월드컵 우승 횟수를 4회로 늘리며 이탈리아와 함께 최다 우승 공동 2위에 올랐다.
2. 11. 7. UEFA 유로 2016 예선
팀
경기
승
무
패
득
실
차
승점
10
7
1
2
24
9
+15
22
10
6
3
1
33
10
+23
21
10
5
3
2
19
7
+12
18
10
4
3
3
22
12
+10
15
10
3
0
7
10
16
-6
9
10
0
0
10
2
56
-54
0
독일은 UEFA 유로 2016예선에서 폴란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조지아, 지브롤터를 상대로 10전 7승 1무 2패를 기록, 조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2014년 월드컵 우승 이후 필리프 람, 페어 메르테사커,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 여러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은퇴하면서 예선 초반 부진을 겪었다. 홈에서 스코틀랜드를 2-1로 이겼으나, 폴란드 원정에서 0-2로 패배(역사상 첫 패배)했고, 아일랜드와 홈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지브롤터를 4-0으로 이겼지만, 이후 아일랜드 원정에서 패배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와의 두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고, 폴란드와의 홈 경기와 지브롤터와의 두 경기에서 압승을 거두며 최종적으로 조 1위를 확정지었다. 특히 폴란드 원정 경기 패배는 카잔의 기적을 연상시킬 정도로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다.
전 대회 챔피언이던 독일은 F조 첫 경기에서 멕시코에게 이르빙 로사노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으면서 0-1의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352]스웨덴과의 2차전에서는 올라 토이보넨의 선제골을 얻어맞는 불운 속에서 마르코 로이스의 동점골과 토니 크로스의 극적인 역전골로 2-1의 진땀승을 거뒀다.[352] 그러나 대한민국과의 최종전에서는 김영권과 손흥민에게 후반전 추가시간에만 연속으로 2골을 얻어맞고 결국 0-2의 완패를 당하며 지난 1938년 대회 이후 무려 80년만에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치욕을 당했다.[352] 또, 조별리그가 포함된 월드컵 기준으로는 사상 최초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치욕이기도 했다.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으로 인해 1950년이탈리아, 1966년브라질, 2002년프랑스, 2010년이탈리아, 2014년스페인에 이어 전 대회 우승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이른바 우승국 징크스의 역대 6번째 사례가 되고 말았다.[352]
함부르크에서 독일과 대한민국의 경기를 관람하는 팬들
독일은 2018년 월드컵에서 멕시코에 패하며 1982년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개막전에서 패배를 기록했다.[123] 독일은 두 번째 경기에서 스웨덴을 토니 크로스의 추가시간 결승골로 2-1로 이겼지만, 대한민국에 2-0으로 패하며 탈락했다.[124][125] 이는 1938년 이후 첫 1라운드 탈락이자, 1950년 조별리그 방식이 도입된 이후 첫 조별리그 탈락이었다.[124][125] 이 결과 독일은 1966년 브라질, 2002년 프랑스, 2010년 이탈리아, 2014년 스페인에 이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다섯 번째이자 역대 다섯 번째 우승국이 되었다.[124][125]
2. 11. 10. 2018-19년 UEFA 네이션스리그
카잔 참사 이후 독일은 엄청난 약체로 급전직하했다. 2019년 이후의 독일은 '''절대로 우승후보라고 할 수가 없으며''' 이런 저런 팀들에게 평가전 및 국제대회에서 승리를 못하고 쩔쩔매는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018-19년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는 FIFA 월드컵 우승 유경험국이라는 이유로 리그 A에 배치되었으나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은 조가 되어 4번의 경기 중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게 각각 1무 1패씩을 달성했는데 특히 네덜란드에게 0-3으로 대패를 당한 것은 인구에 회자될 정도였다.[126] 결국 독일은 아이슬란드, 크로아티아, 폴란드와 더불어 리그 B로 강등당했다. 독일이 속한 조에서는 네덜란드가 파이널에 진출해서 잉글랜드를 격파한 뒤 결승에서 포르투갈에게 패해 준우승했다.
그러나 2020-21년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 규정이 변경되는 바람의 독일의 리그 B 강등은 취소되었다. 리그 A의 각 조별 팀이 3팀에서 4팀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128] 이에 따라 독일, 아이슬란드, 크로아티아, 폴란드는 강등이 취소되었으며 새로 리그 A로 합류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우크라이나, 덴마크, 스웨덴과 함께 리그 A를 형성했다.
2. 11. 11. 2020-21년 UEFA 네이션스리그
2020-21년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 독일은 평소에 스페인을 무서워했는데, 공교롭게도 스페인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독일이 파이널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스페인 이외의 팀에게 전승을 거두고, 그 팀들이 스페인을 상대로 무승부 이상을 기록해야만 했다. 독일이 직접 스페인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대회인 2018-19년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 스페인은 잉글랜드에게는 강했지만 크로아티아에게 패배했고, 결국 잉글랜드가 파이널에 진출했다. 독일은 스페인보다 훨씬 약했기에 이러한 시나리오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다행히 스위스, 우크라이나와 같은 조에 편성되어 지난 대회보다는 수월한 조 편성이었지만, 독일은 졸전을 거듭했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한 것을 제외하면 승리가 없었으며, 심지어 마지막 경기에서는 '''스페인에게 0-6으로 대패'''하는 굴욕을 겪었다. 우크라이나의 부진 덕분에 독일 대신 우크라이나가 리그 B로 강등되면서, 독일은 리그 A에 잔류하게 되었다. 독일이 속한 조에서는 스페인이 파이널에 진출했다.
이러한 참담한 결과, 특히 스페인전 6골 차 대패는 요아힘 뢰프 감독 경질 여론에 불을 지폈다. 결국 뢰프는 UEFA 유로 2020까지만 감독직을 수행하고, 유로 2020에서 독일이 탈락하면 즉시 사퇴하기로 결정했다.
2. 11. 12. 2022-23년 UEFA 네이션스리그
2022-23년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는 유로 2020 우승팀 이탈리아, 유로 2020 준우승팀 잉글랜드와 같은 조에 속하는 불운을 겪었다. 헝가리까지 포함된 이른바 죽음의 조였다. 독일은 잉글랜드와 졸전을 거듭했고, 헝가리에게 패배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독일은 2022년 FIFA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2회 연속 탈락한 이탈리아를 5-2로 대파했지만, 이것이 유일한 승리였다. 헝가리를 상대로 유일하게 승리한 이탈리아가 파이널에 진출했다. 독일은 헝가리와의 1차전은 비겼지만 2차전에서 패배했다. 반면 잉글랜드는 헝가리에게 홈에서 0-4, 원정에서 0-1로 패배하며 리그 B로 강등되었고, 독일은 간신히 강등을 면했다.
2. 11. 13. 2022년 FIFA 월드컵 예선전
2021년 4월 1일 독일은 지역예선에서 북마케도니아에게 1-2로 패하는 바람에 '''조 3위로 추락'''했다. 이는 독일이 지역예선을 망쳤다고 생각했던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조 2위로 추락했던 것보다 훨씬 치욕스러운 결과였다. 이로 인해 독일은 조 3위까지 추락했으며 지역예선 초반부터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것을 걱정하는 지경까지 몰렸다.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한 지 단 7년 만에 지역예선 탈락이 유력해진 팀으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그냥 조 3위도 아니고 네이션스 리그에서 스페인에게 0-6으로 대패를 당한 기록까지 겹쳐 독일은 조 1위를 하든가 압승으로 일관해서 조 2위로 올라와야 겨우 본선 진출의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네이션스 리그에서 스페인에게 그냥 패했으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나 문제는 그 점수라는 게 '''0-6 대패인 게 문제'''라서 동률일 경우 독일이 탈락하게 된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2. 11. 14. UEFA 유로 2020
카잔 참사 이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약체로 전락했으며, 두 번의 네이션스 리그와 2022년 FIFA 월드컵 지역예선을 망치면서 요아힘 뢰프 감독의 임기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다. 결국 뢰프 감독은 UEFA 유로 2020을 끝으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원래 뢰프는 2022년 FIFA 월드컵까지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성적 부진으로 조기 사퇴를 선택했다.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UEFA 유로 2020은 1년 늦게 개최되었고, 독일은 프랑스, 포르투갈, 헝가리와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었다. 독일의 경기력은 좋지 않았다. 프랑스와의 경기는 자책골로 패배했고, 포르투갈에게는 4골을 넣어 대승을 거두었지만, 이는 포르투갈의 부진 때문이었지 독일이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었다. 헝가리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헝가리에게 시종일관 밀리는 경기를 펼치며 패배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비겼다.
독일은 조 3위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6강에서 잉글랜드를 만나 0-2로 완패하며 탈락했다. 이로써 요아힘 뢰프 감독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2. 12. 한지 플리크의 임기 (2021년-2023년)
요아힘 뢰프가 사실상 경질에 가까운 사퇴를 한 뒤 후임으로 한지 플리크가 부임했다. 한지 플리크는 팀을 재정비해 2022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다. 본선 진출 이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카잔의 기적과 더불어 그 동안의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 모두 부진했던 일로 인해 FIFA 랭킹이 많이 떨어져 10위권 밖으로 내려갔으며 그 탓에 독일은 1 포트를 놓치고 2 포트가 되었다. 그리하여 추첨 결과 스페인, 독일, 일본, 코스타리카로 편성되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조편성을 받았다. 스페인만 조심하면 16강은 무난했다.
그러나 첫 경기인 일본전부터 방심하는 바람에 1-2로 역전패를 당했다. 문제는 옆 경기장에서는 스페인이 코스타리카를 7-0으로 대승하는 바람에, 독일은 첫 경기부터 16강 진출이 어려워졌다. 2차전 스페인 전에서는 1-1로 겨우 비겼는데 천만 다행히도 코스타리카가 일본을 이겨[353], 승점이 평준화 된 덕분에 아직 희망은 있었다. 하지만 3차전에서 스페인이 일본에게 지는 바람에 독일은 코스타리카를 8점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했으나 4-2로 이기는 바람에 골 득실차에서 스페인에게 5골이 밀려 탈락했다.
독일로서는 이전에 없던 2연속 조별리그 탈락을 당했다. 하지만 한지 플리크가 이 월드컵 감독 32명 중 연봉 순위 1위(약 90억 원 상당)일 정도로, 워낙 고액에 모셔온 감독인지라 경질을 시키면 위약금 역시 엄청났기 때문에 그대로 유임 되었다.
2022년 월드컵에서 독일은 E조에 스페인, 일본, 코스타리카와 함께 편성되었다. 일본에게 2-1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대회를 시작했다.[135] 독일은 스페인과 1-1로 비겼고,[136] 코스타리카를 4-2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골득실에서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2개 대회 연속으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137]
하지만 한지 플리크 감독은 하지 않아도 될 일본과의 평가전을 무리하게 진행시켰고 홈 안방에서 일본에게 1-4 대패를 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독일은 그 이전에도 2002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잉글랜드에게 1-5로 대패를 당했으며 2020~2021년 네이션스 리그에서 스페인에게 0-6으로 대패를 당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잉글랜드와 스페인은 둘 다 유럽의 강호로 FIFA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던 나라들이라 독일 축구 협회에서도 이해했으나 일본은 잉글랜드나 스페인과는 달리 매우 한미한 팀으로 아직까지도 FIFA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해 본 적이 없는 약체였는데 이런 약체에게 대패를 당한 탓에 한지 플리크는 졸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123년 만에 경질 당했으며 이후 루디 푈러가 임시로 독일의 감독직을 담당하게 되었다.
독일의 월드컵 탈락 이후 일본과의 홈경기에서 4-1로 패하는 등 여러 부진한 경기력을 보인 후, 플릭 감독은 2023년 9월 10일에 경질되었다.[138]
2. 12. 1. 2022년 FIFA 월드컵
요아힘 뢰프가 사실상 경질에 가까운 사퇴를 한 뒤 후임으로 한지 플리크가 부임했다. 한지 플리크는 팀을 재정비해 2022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다. 본선 진출 이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카잔의 기적과 더불어 그 동안의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 모두 부진했던 일로 인해 FIFA 랭킹이 많이 떨어져 10위권 밖으로 내려갔으며 그 탓에 독일은 1 포트를 놓치고 2 포트가 되었다. 그리하여 추첨 결과 스페인, 독일, 일본, 코스타리카로 편성되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조편성을 받았다. 스페인만 조심하면 16강은 무난했다.
그러나 첫 경기인 일본전부터 방심하는 바람에 1-2로 역전패를 당했다. 문제는 옆 경기장에서는 스페인이 코스타리카를 7-0으로 대승하는 바람에, 독일은 첫 경기부터 16강 진출이 어려워졌다. 2차전 스페인 전에서는 1-1로 겨우 비겼는데 천만 다행히도 코스타리카가 일본을 이겨[353], 승점이 평준화 된 덕분에 아직 희망은 있었다. 하지만 3차전에서 스페인이 일본에게 지는 바람에 독일은 코스타리카를 8점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했으나 4-2로 이기는 바람에 골 득실차에서 스페인에게 5골이 밀려 탈락했다.
독일로서는 이전에 없던 2연속 조별리그 탈락을 당했다. 하지만 한지 플리크가 이 월드컵 감독 32명 중 연봉 순위 1위(약 90억 원 상당)일 정도로, 워낙 고액에 모셔온 감독인지라 경질을 시키면 위약금 역시 엄청났기 때문에 그대로 유임 되었다.
2. 12. 2. 2023년
하지만 한지 플리크 감독은 하지 않아도 될 일본과의 평가전을 무리하게 진행시켰고 홈 안방에서 일본에게 1-4 대패를 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독일은 그 이전에도 2002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잉글랜드에게 1-5로 대패를 당했으며 2020~2021년 네이션스 리그에서 스페인에게 0-6으로 대패를 당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잉글랜드와 스페인은 둘 다 유럽의 강호로 FIFA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던 나라들이라 독일 축구 협회에서도 이해했으나 일본은 잉글랜드나 스페인과는 달리 매우 한미한 팀으로 아직까지도 FIFA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해 본 적이 없는 약체였는데 이런 약체에게 대패를 당한 탓에 한지 플리크는 졸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123년 만에 경질 당했으며 이후 루디 푈러가 임시로 독일의 감독직을 담당하게 되었다.
율리안 나겔스만: 후보군 중 가장 어리며, 리오넬 메시와 동갑이다.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하고 감독이 되었다.
2. 14. 율리안 나겔스만의 임기 (2023년-)
결국 후보군 중 최연소인 율리안 나겔스만이 감독으로 부임했다. 토마스 뮐러와는 고작 2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며, 마누엘 노이어보다는 되려 1살이 어리다.
2023년 9월 22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한지 플릭의 후임으로 율리안 나겔스만이 감독에 취임했다.[217] 2023년 말 4경기에서 1승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2024년에 토니 크로스가 대표팀에 복귀하면서 3월 프랑스전과 네덜란드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하며 자국에서 개최되는 UEFA 유로 2024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자국에서 개최된 본 대회에서 독일은 A조에 편성되어 개막전에서 스코틀랜드, 2차전에서 헝가리, 최종전에서 스위스와 대결하게 되었다. 개막전 스코틀랜드전에서는 플로리안 비르츠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자말 무시알라, 카이 하베르츠, 니클라스 퓔크르크, 엠레 찬 등의 골로 5-1 대승을 거두었다.[218] 2차전 헝가리전에서는 자말 무시알라가 2경기 연속 골을 넣었고, 주장 일카이 귄도안도 67분에 골을 넣어 2-0으로 승리하며 가장 먼저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다.[219] 패배만 아니면 조별리그 1위로 통과가 결정되는 스위스전에서는 전반 16분에 로베르토 안드리히가 골을 넣었지만 직전 파울이 있었다는 이유로 노골이 되는 불운을 겪었고, 오히려 전반 28분에 단-엔도이(Dan Ndoye)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후반에는 독일이 경기를 장악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상대 진영으로 몰아붙이는 장면이 많아졌지만 득점 기회를 만들지 못한 채 2위로 겨우 토너먼트에 진출하는가 싶었던 종료 직전 니클라스 퓔크르크가 헤딩으로 동점골을 넣어 1-1 무승부로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220] 5일 후 치른 토너먼트 16강전에서는 C조 2위로 통과한 덴마크와 대결했다. 경기 시작부터 독일이 공세를 펼치는 가운데 전반 5분에 니코 슐로터베크가 골을 넣었지만 직전 파울로 인해 득점이 취소되는 등 3번이나 득점이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고, 전반 35분에는 악천후로 인한 일시 중단이라는 악재까지 겹쳤지만, 전반을 스코어리스로 마친 후반에 카이 하베르츠와 자말 무시알라의 골로 2-0으로 승리하며 2대회 만에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221]
8강전에서는 2022 FIFA 월드컵 E조 2차전에서 1-1로 비긴 스페인과 맞붙었다. 전반을 0-0으로 마친 후 51분에 다니 올모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이후에도 수차례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해 8강에서 탈락하는 듯했지만, 89분에 플로리안 비르츠의 대회 2호골로 동점을 만들어 90분 패배를 면하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서는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었지만 수비진이 끈기 있게 버텨 상대에게 득점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PK전에 돌입하는가 싶었던 119분에 미켈 메리노에게 헤딩 결승골을 내주며 남은 시간 동안 동점을 만들지 못하고 1-2로 패배했다. 쾌진격을 이어가며 자국 개최에서 유로 우승이라는 염원을 건 도전은 8강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222] 경기 후, 이 대회를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토니 크로스는 "꿈이 산산조각 났다. 매우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다.[223] 37세의 나이로 첫 국제 대회 지휘봉을 잡은 나겔스만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 대회를 떠날 자격이 없다고 전했다"며 선수들을 위로했다.[224] 대회 종료 후 2010년부터 주축으로 활약하며 2014 FIFA 월드컵에서 조국을 4번째 우승으로 이끈 토마스 뮐러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225]
UEFA 네이션스리그 2024-25에 참가하여 4승 2무 승점 14점으로 그룹 3에서 1위를 차지하며 무난하게 8강에 진출했다.[226] EURO 2024에서는 유럽 챔피언 스페인에 패했지만, 2024년은 친선 경기를 포함해 15경기 10승 4무 1패를 기록하며 독일의 부활을 예감케 하는 한 해가 되었다.
2. 14. 1. UEFA 유로 2024
독일은 개최국 자격으로 지역예선 면제를 받고 UEFA 유로 2024에 출전했다.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은 세르주 그나브리와 같이 부진한 선수들을 과감히 제외했다.
A조에 편성된 독일은 개막전에서 스코틀랜드를 5-1로 대파했다. 플로리안 비르츠(Florian Wirtz), 자말 무시알라(Jamal Musiala), 카이 하베르츠(Kai Havertz), 니클라스 퓔크르크(Niclas Füllkrug), 엠레 찬(Emre Can)이 득점을 기록했다.[218] 2차전 헝가리전에서는 무시알라의 2경기 연속 골과 주장 일카이 귄도안(Ilkay Gündoğan)의 골로 2-0 승리를 거두며 가장 먼저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다.[219]스위스와의 최종전에서는 전반 16분 로베르토 안드리히(Roberto Andrich)의 골이 취소되고, 전반 28분 단-엔도이(Dan Ndoye)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후반 추가시간 니클라스 퓔크르크(Niclas Füllkrug)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기록,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220]
16강전에서는 덴마크를 만나 전반전에 3번의 득점 취소와 악천후로 인한 경기 중단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후반 카이 하베르츠(Kai Havertz)와 자말 무시알라(Jamal Musiala)의 골로 2-0 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221]
8강전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독일은 전반을 0-0으로 마쳤으나, 후반 51분 다니 올모(Dani Olmo)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89분 플로리안 비르츠(Florian Wirtz)의 동점골로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119분 미켈 메리노(Mikel Merino)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1-2로 패배했다.[222] 이 대회를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토니 크로스(Toni Kroos)는 눈물을 흘리며 아쉬움을 표했다.[223] 나겔스만 감독은 선수들을 위로했다.[224] 대회 후, 토마스 뮐러(Thomas Müller)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225]
아디다스는 국가대표팀의 유니폼 스폰서로, 1954년을 기점으로 계약으로 체결하여 최소한 2018년까지 지속되었다. 나이키는 지속적으로 독일 국가대표팀에 제의하였는데, 2007년 8월에는 당시 아디다스가 지불하는 값의 8배인 5억 유로에 8년 계약을 제의하였으나, DFB는 독일 연고의 아디다스와의 계약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355] 70년대에 독일은 현재 아디다스의 자회사인 에리마에서 제작한 유니폼을 입기도 하였다.[356][357]
국가대표팀의 홈 유니폼은 항상 백색 상의와 흑색 하의로 이루어졌다. 이 색은 독일 북부에 위치했었던 프로이센의 19세기 국기에서 유래하였다. 1988년을 기점으로, 다수의 홈 유니폼 디자인은 현 독일 국기를 응용한 패턴을 사용한다. 그러나 2014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공개된 흑색, 적색, 주황색의 패턴이 새겨진 상하의가 모두 백색인 유니폼은 몇 평론가로부터 독일스럽지 않은 유니폼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원정 유니폼은 여러차례 변경되었다. 본래, 녹색 상의와 백색 하의를 가장 흔하게 사용되었다. 이 색이 원정 유니폼으로 채택된 데에는 녹색 유니폼을 홈 유니폼으로 쓰는 아일랜드가 제2차 세계 대전을 이후로 국가대항전을 치른 첫 상대임을 나타내는데 있었다고 한 언론에서 주장되었다.[358] 그러나 이 주장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상대가 스위스이기 때문에 허구가 되었다.[359] 원정 유니폼으로 사용된 색으로는 회색과 흑색도 있었다. 2006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적색이 통계적으로 더 성공적이며, 상대에게 공포감을 더 키워준다고 주장하여, 원정 유니폼을 흑색에서 적색으로 변경하였다.[360] 그는 2006년 월드컵 이전에 이 원정 유니폼을 입고 더 안좋은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 (예를 들어 이탈리아전 1-4 대패) 하고도, 월드컵 본선에서 적색 원정 유니폼을 홈 유니폼처럼 사용하기를 기대하였으나, 독일대표팀은 2006년 월드컵에서 7경기 모두 홈 유니폼을 착용하였다. 2010년, 이 적색 원정 유니폼은 흑색 상의와 백색 하의로 환원되었고, 본선에서는 홈 유니폼의 하의와 조합하여, 상 하의를 모두 흑색으로 하여 3경기 (가나영어, 아르헨티나es, 우루과이es전) 에 착용하였다. 이 새 원정 유니폼은 2010년 3월 3일, 아르헨티나와의 친선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독일 국가대표팀은 유로 2012년을 앞두고 녹색 상의를 다시 원정 유니폼으로 채택하였다. 하지만 201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원정 유니폼이 다시 검은색으로 회귀했다. 다만 완전한 검은색은 아니고 검은색과 붉은 색으로 이루어진 가로 줄무늬를 유니폼 상의의 색상으로 채택했다.
2024년 3월, 아디다스와의 70년 계약이 종료되고 나이키가 새로운 유니폼 스폰서로 발표되자 독일 내에서 광범위한 비판과 반발이 일었다.[152]
독일 내에서 국가대표팀은 ''Nationalmannschaft''(국가대표팀), ''Die DFB-Elf''(DFB의 11인), ''DFB-Auswahl''(DFB의 선택) 혹은 ''Nationalelf''(국가의 11인)으로 불린다.[361] 국외 언론에서는 대체로 ''Die Mannschaft''(글자 그대로 "팀"을 의미)로 부르며, ''Die Adler''(독수리)라는 표현도 가끔 쓰인다.[361]
대한민국 언론과 미디어에서는 흔히 전차군단이라고 부르고 있다.
3. 3. 중계권
독일 국가대표팀의 예선전과 친선전 경기는 ARD와 ZDF가 중계권을 가지고 있다. 독일 국가대표팀이 출전하는 월드컵 경기는 독일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대회에 속한다. 현재 독일의 친선 경기와 예선 경기는 RTL(RTL Television), ARD(ARD (broadcaster)), ZDF에서 순차적으로 방송된다. 주요 대회 경기는 ARD와 ZDF에서만 방송된다.
4. 홈 경기장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국립경기장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국가대항전에 쓰일 홈 경기장은 국내 여러 경기장을 돌아가면서 사용한다. 국가대표팀은 현재까지 39개의 다른 도시에서 홈 경기를 치루었는데, 이들 중에는 오스트리아 합병 당시 독일 영토이자 1938년부터 1942년까지 세 차례 홈경기를 주최한 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도 포함된다.
가장 많은 홈 경기 횟수를 주최한 경기장은 현재 74,500명을 수용 가능한 베를린의 올림픽 경기장으로, 42번의 홈경기를 주최했으며, 1908년 독일의 잉글랜드와의 첫 홈 경기를 주최하였다. 다른 주요 개최 도시로는 함부르크(34경기), 슈투트가르트(29경기), 하노버(24경기), 도르트문트 등이 있다. 또다른 주요 개최 도시로는 뮌헨이 있으며, 네덜란드와의 1974년 FIFA 월드컵 결승전을 포함하여 독일 축구의 역사적인 경기들을 여러 차례 주최하였다.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5. 최근 경기 결과 및 일정
다음은 지난 12개월 동안의 경기 결과 목록과 예정된 향후 경기 목록이다.[162]
승리
무승부
패배
예정 경기
; 2022년
독일은 2022년 FIFA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모라타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퓔크루크가 동점골을 넣어 무승부를 만들었다. 이후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는 그나브리의 선제골, 하베르츠와 퓔크루크의 추가골로 4-2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한 것이 결과적으로 독일의 16강 진출 실패에 큰 영향을 미쳤다. 두 경기 모두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 2023년
독일은 2023년에 11번의 친선 경기를 치렀다. 3월 25일, 메바 아레나에서 열린 페루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3월 28일, 라인에네르기슈타디온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경기에서는 2-3으로 패배했다. 6월 12일, 베저슈타디온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는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6월 16일,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와의 경기에서는 0-1로 패배했다. 6월 20일, 펠틴스 아레나에서 열린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는 0-2로 패배했다.
9월 9일,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1-4로 대패했다. 이는 일본에게 홈에서 당한 뼈아픈 패배였다. 9월 12일, 지그날 이두나 파르크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2-1로 승리했다. 10월 14일, 프랫 & 휘트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3-1로 승리했다. 10월 18일, 링컨 파이낸셜 필드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는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11월 18일,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터키와의 경기에서는 2-3으로 패배했다. 11월 21일,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는 0-2로 패배했다.
5. 1. 2022년
독일은 2022년 FIFA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모라타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퓔크루크가 동점골을 넣어 무승부를 만들었다. 이후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는 그나브리의 선제골, 하베르츠와 퓔크루크의 추가골로 4-2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한 것이 결과적으로 독일의 16강 진출 실패에 큰 영향을 미쳤다. 두 경기 모두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5. 2. 2023년
독일은 2023년에 11번의 친선 경기를 치렀다. 3월 25일, 메바 아레나에서 열린 페루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3월 28일, 라인에네르기슈타디온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경기에서는 2-3으로 패배했다. 6월 12일, 베저슈타디온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는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6월 16일,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와의 경기에서는 0-1로 패배했다. 6월 20일, 펠틴스 아레나에서 열린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는 0-2로 패배했다.
9월 9일,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1-4로 대패했다. 9월 12일, 지그날 이두나 파르크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2-1로 승리했다. 10월 14일, 프랫 & 휘트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3-1로 승리했다. 10월 18일, 링컨 파이낸셜 필드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는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11월 18일,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터키와의 경기에서는 2-3으로 패배했다. 11월 21일,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는 0-2로 패배했다.
독일은 브라질(5회) 다음으로 네 번의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176] 또한 네 번의 준우승을 기록했다.[176] 준결승 진출 횟수는 13회로, 모든 대회에 참가한 브라질(11회)보다 2회 더 많다.[176] 1954년부터 2014년까지(16개 대회) 독일은 최소 8강에 진출했지만, 2018년에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176]
독일은 또한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스페인과 공동으로 세 번 우승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각각 두 번 우승한 유일한 다승 국가다. 독일은 세 번의 준우승을 기록했다.[177] 독일은 1968년 첫 유럽 선수권 대회를 제외하고 모든 유럽 선수권 대회에 출전 자격을 얻었다.[177]
FIFA 월드컵에서는 1954년, 1974년, 1990년, 2014년에 우승하여 총 4번 우승했다. 준우승은 1966년, 1982년, 1986년, 2002년으로 총 4번, 3위는 1934년, 1970년, 2006년, 2010년으로 총 4번, 4위는 1958년에 1번 기록했다.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1972년, 1980년, 1996년에 우승하여 총 3번 우승했고, 준우승은 1976년, 1992년, 2008년에 총 3번, 준결승은 1988년, 2012년, 2016년에 총 3번 진출했다. 올림픽 경기에서는 1988년에 동메달을 획득했다.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2017년에 우승, 2005년에 3위를 기록했다.
서독은 현재 독일의 공식적인 전신이며,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이 거둔 모든 성적은 공식적으로 제외된다.
9. 개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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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5일 기준[166]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선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로 표시된 선수는 현재도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활동 중인 선수이다. 이 목록에는 동독을 대표했던 선수는 포함되지 않는다.
=== 최다 출장 선수 ===
다음은 2024년 7월 5일을 기준으로 하여 독일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 10명의 명단이다.[234] 굵은 글씨로 나타난 선수는 현역 선수들이다. 동독 대표로 따로 출전한 선수들 (요아힘 슈트라이히 (102회), 되어너 (100회), 키르스텐 (100회, 동독대표로 49회, 독일대표로 51회), 크로이 (94회), 그리고 비제 (86회) 등)의 동독대표 출전 기록은 여기에서 누락되어 있다.
150회 독일 국가대표로 출전한 로타어 마테우스는 독일 국가대표팀 역사상 가장 많은 국제경기에 출전하였다.
2024년 7월 5일 기준[166]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선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로 표시된 선수는 현재도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활동 중인 선수이다. 이 목록에는 동독을 대표했던 선수는 포함되지 않는다.
=== 최다 출장 선수 ===
다음은 2024년 7월 5일을 기준으로 하여 독일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 10명의 명단이다.[234] 굵은 글씨로 나타난 선수는 현역 선수들이다. 동독 대표로 따로 출전한 선수들 (요아힘 슈트라이히 (102회), 되어너 (100회), 키르스텐 (100회, 동독대표로 49회, 독일대표로 51회), 크로이 (94회), 그리고 비제 (86회) 등)의 동독대표 출전 기록은 여기에서 누락되어 있다.
(하위 레벨 제목(sub-sectionTitle): 역대 주장의 내용은 선수 기록의 내용이 아니므로 출력하지 않음)
9. 1. 1. 최다 출장 선수
다음은 2024년 7월 5일을 기준으로 하여 독일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 10명의 명단이다.[234] 굵은 글씨로 나타난 선수는 현역 선수들이다. 동독 대표로 따로 출전한 선수들 (요아힘 슈트라이히 (102회), 되어너 (100회), 키르스텐 (100회, 동독대표로 49회, 독일대표로 51회), 크로이 (94회), 그리고 비제 (86회) 등)의 동독대표 출전 기록은 여기에서 누락되어 있다.
다음은 1934년 첫 월드컵 출전 당시부터 2020년까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명단이다.[363][364] 참고로, 이 명단에서 "경기"는 총 출전 횟수가 아닌 주장으로 출전한 횟수를 의미하며, 동독 대표팀 출전 기록은 포함되지 않았다. 활동 기간은 주장이 아니었던 기간도 포함한다.
독일은 월드컵을 네 차례 우승하였으며, 이는 브라질 (5회)에 이어 이탈리아 (4회)와 함께 가장 많은 횟수이다.[369] 같은 대회에서 준우승은 4회 기록하였다.[369] 역대 준결승전 진출 횟수는 독일이 13회로 가장 자주 진출하였고, 매 대회에 개근한 브라질의 11회 진출보다 2회 더 많다.[369] 최근 15번의 월드컵 본선에서, 독일은 최소한 8강 진출에 성공하였다.[369] 독일은 또한 예선전에 참여했던 17회의 월드컵에서 모두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1930년 FIFA 월드컵은 재정적 문제로 인해 참가하지 못하였고,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열린 1950년 FIFA 월드컵에서는 DFB가 이 대회 두달후에 FIFA 정회원으로 복귀하였기 때문에 참가하지 못하였다.
독일은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를 세차례 우승하였고, (독일 외에 스페인과 프랑스만이 2회이상 우승을 경험하였고, 이들은 각각 3회, 2회의 우승을 경험하였다.) 준우승도 세번 하였다.[370] 독일은 UEFA 유로 1968을 제외하고 예선전에 참여했던 12회의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의 본선에 모두 진출하였다. 유로 1968 예선전에서 서독은 네팀으로 이루어진 나머지 조와 다르게 세팀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조에 속했었다. 탈락에 큰 영향을 끼친 경기는 알바니아와의 0-0 무승부로, 알바니아에 이미 승리를 거두었던 유고슬라비아에게 본선 진출권을 헌납하였다.
독일은 1999년 (1라운드 탈락) 과 2005년 (개최국, 3위) 에 컨페더레이션스컵에 두 차례 출전하였다.[371]
다른 독일에 존재했던 팀들의 기록을 확인하려면 동독과 자를란트의 페이지를 참고하고, 독일에 합병되었던 오스트리아도 해당 페이지를 통해 참고한다.
반면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는 독보적으로 저조하며, FIFA 월드컵 우승팀 자격으로 리그 A에 배치되었지만, 매 네이션스 리그마다 강등만 겨우 모면하는 수준으로 졸전을 거듭했다. 특히 2020~2021년 네이션스 리그에서는 스페인에게 '''0-6'''이라는 대참패를 당하는 바람에 요아힘 뢰프가 감독에서 경질 당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으며 결국 UEFA 유로 2020을 끝으로 요아힘 뢰프는 감독 직에서 물러났다. 2022~2023년 네이션스 리그에서도 잉글랜드와 둘이서 강등을 놓고 겨루는 지경까지 갔다. 다만 잉글랜드가 헝가리에게 말도 안 되는 0-4라는 점수로 대패를 당해 잉글랜드가 독일 대신 강등당했다.
11. 1. FIFA 월드컵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 본선에 20회 진출하여 4회 우승(1954년, 1974년, 1990년, 2014년)과 4회 준우승(1966년, 1982년, 1986년, 2002년)을 기록, 브라질에 이어 FIFA 월드컵 역대 순위 2위를 기록하고 있다.[372] 1950년 FIFA 월드컵은 제2차 세계 대전 패전으로 인해 출전이 금지되었고, 1930년 FIFA 월드컵에는 불참하였다. 1954년 FIFA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헝가리를 3-2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74년 FIFA 월드컵은 서독에서 개최되었으며, 결승전에서 크라위프가 이끄는 네덜란드를 2-1로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 FIFA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세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2014년 FIFA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연장전 끝에 1-0으로 꺾고 네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34년 대회에서는 3위를 기록했고, 1938년 대회에서는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1958년 대회와 1970년 대회에서는 각각 4위와 3위를 기록했다. 1962년 대회와 1994년, 1998년 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2006년 FIFA 월드컵은 독일에서 개최되었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10년 대회에서도 3위를 차지했다. 반면, 2018년 FIFA 월드컵과 2022년 FIFA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부진을 겪었다.
독일은 월드컵 예선에서 총 94경기를 치러 74승 18무 2패, 292득점 70실점을 기록하며, 월드컵 예선 승점 순위 20위(유럽 11위)에 올라있다.
11. 2.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독일은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유로)에서 3회 우승(1972년, 1980년, 1996년)과 3회 준우승(1976년, 1992년, 2008년)을 기록하여, 유로 대회 역대 최다 우승국이자 최다 결승 진출국이다. 1960년과 1964년 대회에는 불참했고, 1968년 대회에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서독 시절을 포함하여 1972년 대회부터 2024년 대회까지 14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독일은 1988년과 2024년 유로 대회를 개최했다. 1988년 대회에서는 준결승에서 네덜란드에 패했고, 2024년 대회에서는 8강에서 스페인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2018-19 시즌에는 리그 A 1조에서 3위를 기록했다. 4경기에서 2무 2패를 기록하며 3득점 7실점을 기록, 리그 A 11위를 기록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상대로 각각 1무 1패를 당해 조 최하위로 리그 B로 강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규정이 변경되어 리그 A를 늘리고 리그 D를 줄이게 되면서 강등을 면제받았다.
2020-21 시즌에는 리그 A 4조에서 2위를 기록했다. 6경기에서 2승 3무 1패를 기록하며 10득점 13실점을 기록, 리그 A 8위를 기록했다. 스페인, 우크라이나, 스위스와 같은 조가 되었으며, 우크라이나를 상대로만 승리했다. 스위스와는 홈, 원정 경기 모두 비겼고, 스페인 원정에서는 0-6으로 대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경기로 인해 요아힘 뢰프 감독은 재계약에 실패했으며, 유로 2020에서 탈락하는 즉시 감독직을 사임하기로 결정했다.
2022-23 시즌에는 리그 A 3조에서 3위를 기록했다. 6경기에서 1승 4무 1패를 기록하며 11득점 9실점을 기록, 리그 A 10위를 기록했다. 한지 플리크 감독 부임 이후 치러진 첫 네이션스리그였다. 독일은 이탈리아, 잉글랜드, 헝가리와 같은 조에 편성되었으나, 헝가리에게 패배하며 강등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헝가리에게 2패를 당하고 무승을 기록한 잉글랜드가 대신 강등되면서 잔류에 성공했다. 독일은 이탈리아에게 1승을 거두고, 헝가리에게 1패를 기록했으며, 나머지 경기는 모두 무승부였다.
2024-25 시즌에는 리그 A 3조에 속해 현재 진행 중이다.
11. 4. 1. 2018-19년 UEFA 네이션스리그 A
프랑스와 네덜란드 상대로 각각 1무 1패를 당해 조 꼴찌로 강등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규정이 변경되어 리그 A 를 늘리고 리그 D를 줄이게 되자 강등이 면제되었다.
11. 4. 2. 2020-21년 UEFA 네이션스리그 A
스페인, 우크라이나, 스위스와 같은 조가 되었다. 이긴 팀이라고는 우크라이나 하나뿐이 없었으며 스위스와는 홈 원정 모두 비기고 스페인 원정에서 0-6 대패를 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스페인에게 대패를 당한 일로 인해 요아힘 뢰프 감독은 재계약에 실패했으며 유로 2020에서 탈락하는 대로 감독을 그만두기로 확정했다.
11. 4. 3. 2022-23년 UEFA 네이션스리그 A
감독이 한지 플리크로 바뀐 이후의 네이션스 리그이다. 독일은 이탈리아, 잉글랜드, 헝가리와 같은 조가 되었으나 어처구니 없게도 헝가리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강등 위기에 몰렸으나 헝가리에게 더블을 당하고 승리가 없는 잉글랜드가 대신 강등당한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강등을 모면했다. 독일은 이탈리아에게 1승, 헝가리에게 1패를 거두고 나머지는 전부 비겼다. 이렇게 아직까지 독일은 네이션스 리그에서 대단히 시원치 않다.
11. 4. 4. 2024-25년 UEFA 네이션스리그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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