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 나오시게
1. 개요
호리 나오시게는 센고쿠 시대 말기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이다. 1585년에 태어나,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웠으며, 오사카 전투에서도 도쿠가와 편에 서서 활약했다. 시나노 스자카에 입번하여 1만 2000석의 영지를 다스렸으나, 1617년 3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석탑이 지바현 가토리시 신푸쿠지에 있으며, 장남 호리 나오스미가 가문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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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에도 시대 초기 |
|---|---|
| 출생 | 덴쇼 13년 (1585년) |
| 사망 | 겐나 3년 6월 17일 (1617년7월 15일) |
| 이명 | 해당 없음 |
| 계명 | 해당 없음 |
| 묘소 | 해당 없음 |
| 관위 | 종5위하, 아와지노카미 |
| 주군 | 도요토미 히데요시→히데요리→도쿠가와 이에야스→히데타다 |
| 번 | 시나노스자카 번 번주 |
| 씨족 | 호리 씨 |
| 부모 | 아버지: 호리 나오마사, 어머니: 불명 |
| 형제 | 나오키요, 나오토모, 나오요리, 나오유키, 나오시게, 나오사토, 나오타다 |
| 배우자 | 정실: 호리 히데시게의 딸 |
| 자녀 | 나오마스, 나오아키라, 나오히사, 나오후사 |
| 직책 | 스자카 번 번주 (호리 가) |
|---|---|
| 대수 | 1대 |
| 임기 | 1615년 ~ 1617년 |
| 후임자 | 호리 나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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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5년 출생 -
엘리자베스 케리
엘리자베스 케리는 영국의 작가로, 여성 최초로 출판된 영어 희곡 《유대의 아름다운 여왕 마리아의 비극》을 저술했으며,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시와 희곡 작품 활동을 했다. -
1585년 출생 -
사사키 코지로
사사키 코지로는 암류 검술 유파를 창시하고 츠바메가에시 검법으로 이름을 알린 검객으로, 미야모토 무사시와의 간류지마 결투에서 패배하여 사망했으며, 그의 삶과 죽음은 여러 논란과 함께 대중매체에서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
호리씨 -
다카다번
다카다번은 에치고국에 위치했던 번으로, 마쓰다이라 다다테루가 다카다 성을 건설하며 시작되어 여러 다이묘 가문이 통치하다가 사카키바라 씨를 거쳐 폐번치현되었고, 간분 대지진과 에치고 소동, 보신 전쟁 등의 사건을 겪었다. -
호리씨 -
호리 히데하루
호리 히데하루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아 분로쿠의 역에 참전하고 후시미 성 공사에 기여했으며, 에치고 가스가야마 영주로 봉해진 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
1617년 사망 -
포카혼타스
포카혼타스는 17세기 초 버지니아 원주민 알곤킨족의 중요 인물로서, 영국 정착민과의 관계에서 역할을 했고, 납치 후 개종과 결혼을 통해 평화를 가져왔으나, 미국 문화에서 상징적인 인물이자 원주민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의 원인으로도 평가받는다. -
1617년 사망 -
오타 가즈요시
오타 가즈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기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전했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가담했다가 구로다 요시타카의 중재로 목숨을 건진 무장이다.
2. 생애
호리 나오시게는 덴쇼 13년(1585년) 호리 나오마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와 게이초 19년(1614년) 오사카 전투에서 도쿠가와 편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시모사 야하타와 시나노 스자카 등에 총 1만 2000석의 영지를 받았다.
겐나 3년(1617년)에 33세로 사망했으며, 장남 나오스미가 그 뒤를 이었다. 지바현가토리시 신푸쿠지에는 나오시게의 석탑이 있는데, 겐나기 전반의 모습을 갖춘 각 부분이 완전하게 남아있어 사후 얼마 지나지 않은 1주기 내지 3주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2.2.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속해 공을 세워 시모사 야하타에 2000석과 시나노 스자카에 6000석의 영지를 받았다. 게이초 19년(1614년)부터 오사카 전투에서도 도쿠가와 편으로 참전하여 공적을 올려 다카이 군 내에 4000석을 추가로 받았다. 이 시기는 겐나 원년(1615년) 설과 겐나 2년(1616년) 설이 있다. 시나노 국 스자카에 입번하여 최종적으로 1만 2000석의 영지를 다스렸다.
2.3. 시나노 스자카 번주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속해 군공을 세운 것으로, 시모사 야하타에 2000석과 시나노 스자카에 6000석의 영지를 받았다. 게이초 19년(1614년)부터의 오사카 전투에서도 도쿠가와 편으로 참전하여 공적을 올려, 다카이 군 내에 4000석이 추가되었다. 이 추가된 연도에 관해서는, 겐나 원년(1615년) 설과 겐나 2년(1616년) 설이 있다. 시나노 국 스자카에 입번하여, 최종적으로 1만 2000석의 영지를 다스렸다.
2.4. 사망과 가독 상속
게이초 19년(1614년)부터 시작된 오사카 전투에서는 도쿠가와 편으로 참전하여 공적을 올렸고, 다카이 군 내에 4000석을 추가로 받았다. 이 시기에 대해서는 겐나 원년(1615년) 설과 겐나 2년(1616년) 설이 있다. 시나노 국 스자카에 입번하여 최종적으로 1만 2000석의 영지를 소유했다.
겐나 3년(1617년)에 33세로 사망했으며, 장남 나오스미가 그 뒤를 이었다. 지바현가토리시 신푸쿠지에는 나오시게의 석탑이 있는데, 겐나기 전반의 모습을 갖춘 각 부분이 완전하게 남아있어 사후 얼마 지나지 않은 1주기 내지 3주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3. 계보
* 아버지: 호리 나오마사
* 정실: 호리 히데시게의 딸
* 자녀
* 호리 나오타카 (장남)
* 호리 나오아키 (차남)
* 호리 나오히사
* 호리 나오후사
3.1. 부모
* 호리 나오마사 (아버지)
3.2. 정실
호리 히데시게의 딸
3.3. 자녀
| 이름 | 비고 |
|---|---|
| 호리 나오타카 | 장남, 생모는 정실 |
| 호리 나오아키 | 차남 |
| 호리 나오히사 | |
| 호리 나오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