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 지카시게
1. 개요
호리 지카시게는 1786년 태어나 1796년 11세의 나이로 이이다 번의 번주직을 상속받았다. 그는 번정 개혁 반대 일규를 수습하고, 막부에서 주자반, 지샤부교, 와카도시요리, 로주 등을 역임하며 덴포 개혁에 참여했다. 1845년 미즈노 타다쿠니의 실각에 연루되어 로주직에서 면직되고 감봉되었으며, 1846년 은거 후 1848년에 사망했다.
| 씨명 | 호리 씨 |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 출생 | 덴메이 6년 8월 5일 (1786년8월 28일) |
| 사망 | 가에이 원년 12월 10일 (1849년1월 4일) |
| 관위 | 종5위하, 종4위하, 시종, 야마토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소자반, 지샤부교, 와카도시요리, 노주 |
| 번 | 시나노이다번 번주 |
| 씨족 | 호리 씨 |
| 부모 | 아버지: 호리 지카나가, 양아버지: 호리 지카타미 |
| 형제자매 | 지카타다, 아리마 우지노리, 지카타미, 지카시게, 도키 요리카쓰, 엔도 다네토미 정실, 아키즈키 다네토모 정실 (후 호리 나오타카 정실) |
| 배우자 | 하치스카 시게요시 딸, 나리히메 |
| 자녀 | 지카요시 (차남), 사카이 다다아키라 정실, 가에 (가네, 다무라 구니아키라 정실), 3녀 (미즈노 가쓰스스무 정실), 요네쓰 마사요시 정실, 엔도 다네시로 정실, 요네쓰 마사타카 정실, 7녀 (호리 지카히로 정실) |
| 직책 | 시나노 이다번 번주 (호리가) |
|---|---|
| 대수 | 10 |
| 임기 | 1796년 ~ 1846년 |
| 전임자 | 호리 지카타미 |
| 후임자 | 호리 지카요시 |
| 직책 | 에도 막부 소바요닌 |
|---|---|
| 임기 | 1841년 ~ 1845년 |
| 전임자 | 공석 (다누마 오키마사) |
| 후임자 | 공석 (미즈노 다다히로) |
-
이다번주 (시나노국) -
오가사와라 히데마사
오가사와라 히데마사(1569년 ~ 1615년)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활약한 무장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세력을 키웠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운 후 오사카 전투에서 전사했다. -
이다번주 (시나노국) -
호리 지카마사
호리 지카마사는 우야마 번의 2대 번주를 거쳐 이다 번의 초대 번주가 되었으며, 영내 검지와 성 개수를 통해 번정 기반을 다지고 이다 번으로 전봉된 후 사망했다. -
에도 막부 소바요닌 -
다누마 오키쓰구
다누마 오키쓰구는 에도 시대 후기 쇼군의 신임을 얻어 로주에 올라 막부 재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부정부패와 농촌 황폐화로 비판받으며 실각한 인물이다. -
에도 막부 소바요닌 -
다누마 오키마사
다누마 오키마사는 에도 시대 인물로 다누마 오키쓰구의 아들이자 미즈노 다다토모의 양자이며, 아버지 실각 후 가문 재건을 위해 노력하여 옛 영지로 복귀했고 막부에서 오반가시라와 와카도시요리를 역임했다. -
도자마 다이묘 -
오다 나가마스
오다 나가마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센노 리큐에게 다도를 배워 유라쿠류를 창시한 다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호 유라쿠는 도쿄도 유라쿠초 지명의 유래 설이 있다. -
도자마 다이묘 -
아리마 하루노부
아리마 하루노부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기리시탄 다이묘로, 히젠 아리마 씨의 당주이자 히노에 번 번주였으며, 가톨릭 개종 후 덴쇼 소년사절단 파견, 임진왜란 참전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이후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 후 처형되었고, 그의 죽음은 에도 막부의 기독교 탄압 강화와 시마바라의 난의 배경이 되었다.
2. 생애
호리 지카나가의 다섯째 아들로 1786년 에도에서 태어났다. 생모는 치카나가의 측실이었다. 8대 번주 치카타다(치카나가의 장남)와 9대 번주 치카타미(치카나가의 넷째 아들)가 잇따라 요절했기 때문에 1796년 11세의 나이로 가독을 상속했고, 17세 때 종5위하 야마토노카미에 서임되었다. 이이다 번 최고의 명군으로 불리며, 분카 6년(1809년)에 일어난 번정 개혁 반대 일규(一揆)도 무사히 수습했다.
막부에서는 사건푸대로서 주자반, 지샤부교, 와카도시요리, 로주 등을 역임했다. 미즈노 타다쿠니를 보좌하여 덴포 개혁에 참여했으며, 덴포 14년(1843년)에는 7000석을 가증받았다. 그러나 고카 2년(1845년) 미즈노 다다쿠니 실각에 연루되어 로주직에서 면직되고 치쿄를 명받음과 동시에 가증 7000석, 본지 3000석, 총 1만 석을 감봉당하여 1만 7000석이 되었다. 고카 3년(1846년) 차남(장남 사망)인 치카요시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으며, 가에이 원년(1848년)에 63세로 사망했다.
2.1. 가독 상속과 번정 개혁
호리 지카나가의 다섯째 아들로 1786년 에도에서 태어났다. 생모는 지카나가의 측실이었다. 8대 번주 치카타다(치카나가의 장남)와 9대 번주 치카타미(치카나가의 넷째 아들)가 잇따라 요절했기 때문에 1796년 11세의 나이로 가독을 상속했고, 17세 때 종5위하 야마토노카미에 서임되었다. 이이다 번 최고의 명군으로 불리며, 분카 6년(1809년)에 일어난 번정 개혁 반대 일규(一揆)도 무사히 수습했다. 막부에서는 사건푸대로서 주자반, 지샤부교, 와카도시요리, 로주 등을 역임했다. 미즈노 타다쿠니를 보좌하여 덴포 개혁에 참여했으며, 덴포 14년(1843년)에는 7000석을 가증받았다. 그러나 고카 2년(1845년) 미즈노 다다쿠니 실각에 연루되어 로주직에서 면직되고 치쿄를 명받음과 동시에 가증 7000석, 본지 3000석, 총 1만 석을 감봉당하여 1만 7000석이 되었다. 고카 3년(1846년) 차남(장남 사망)인 치카요시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2.2. 막부 요직 역임과 덴포 개혁
사건푸대로서 주자반, 지샤부교, 와카도시요리, 로주 등을 역임했다. 미즈노 타다쿠니를 보좌하여 덴포 개혁에 참여했으며, 덴포 14년(1843년)에는 7000석을 가증받았다. 그러나 고카 2년(1845년) 미즈노 다다쿠니가 실각하자, 이에 연루되어 로주직에서 면직되고 치쿄를 명받았다. 동시에 가증 7000석, 본지 3000석, 총 1만 석을 감봉당하여 1만 7000석이 되었다.
2.3. 몰락과 죽음
호리 치카나가의 다섯째 아들로 1786년 에도에서 태어났다. 생모는 치카나가의 측실이었다. 8대 번주 치카타다(치카나가의 장남)와 9대 번주 치카타미(치카나가의 넷째 아들)가 잇따라 요절했기 때문에 1796년 11세의 나이로 가독을 상속했다. 이이다 번 최고의 명군으로 불린다. 미즈노 타다쿠니를 보좌하여 덴포 개혁에 참여했으며, 1843년 7000석을 가증받았다. 그러나 1845년 미즈노 타다쿠니 실각에 연루되어 로주직에서 면직되고 치쿄를 명받음과 동시에 가증 7000석, 본지 3000석, 총 1만 석을 감봉당하여 1만 7000석이 되었다. 1846년 차남(장남 사망)인 치카요시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으며, 1848년 63세로 사망했다.
3. 경력
4. 가계
堀親寚일본어의 가계는 다음과 같다.
| 관계 | 이름 |
|---|---|
| 친부 | 호리 치카나가 |
| 양부 | 호리 치카타미 (호리 치카나가의 넷째 아들) |
| 정실 | 하치스카 시게토시의 딸 나리히메 |
| 차남 | 호리 치카요시 |
| 사카이 타다아키의 정실 | |
| 타무라 쿠니아키의 정실 카이, 코 | |
| 셋째 딸 | 미즈노 카츠스스의 정실 |
| 요네즈 마사요시의 정실 | |
| 엔도 타네시게의 정실 | |
| 요네즈 마사자의 정실 | |
| 일곱째 딸 | 호리 치카히로의 정실 호리 시 (호리 치카요시의 양녀) |
4.1. 부모
* 호리 치카나가 (친부)
* 호리 치카타미 (양부) - 치카나가의 넷째 아들
4.2. 정실
* 하치스카 시게토시의 딸 나리히메
4.3. 자녀
| | 비고 | |
|---|---|
| 호리 치카요시 | 차남 |
| 사카이 타다아키 정실 | |
| 카이, 코 | 타무라 쿠니아키 정실 |
| 미즈노 카츠스스 정실 | 셋째 딸 |
| 요네즈 마사요시 정실 | |
| 엔도 타네시게 정실 | |
| 요네즈 마사자 정실 | |
| 호리 시 | 호리 치카히로 정실, 호리 치카요시의 양녀 (일곱째 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