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안토니오 바리오스
1. 개요
호세 안토니오 바리오스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에는 CD 테네리페, 그라나다 CF, FC 바르셀로나, 에르쿨레스 CF, 레반테 UD 등에서 활약했으며, 1968년 하계 올림픽에 스페인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참가했다. 은퇴 후에는 테네리페의 감독과 구단 단장을 역임했다.
| 전체 이름 | 호세 안토니오 바리오스 올리베로 |
|---|---|
| 출생일 | 1949년 3월 21일 |
| 출생지 | 테네리페, 스페인 |
| 포지션 | 중앙 공격수 |
| 클럽 | 1966–1968: 테네리페 (54경기, 24골) 1968–1972: 그라나다 (85경기, 17골) 1972–1974: 바르셀로나 (30경기, 8골) 1974–1978: 에르쿨레스 (115경기, 35골) 1978–1980: 레반테 (45경기, 13골) 1980–1981: 테네리페 (24경기, 8골) 1981–1982: 오로타바 |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
| 국가대표팀 | 1968: 스페인 U-23 (3경기) |
|---|
| 감독 | 1994: 그라나다 2004–2005: 테네리페 2007: 마리노 2009: 로스 야노스 |
|---|
| 올림피아 | https://www.olympedia.org/athletes/24857 |
|---|---|
| 스포츠 레퍼런스 | https://web.archive.org/web/20200418074548/https://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ba/jose-antonio-barrios-1.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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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리페 출신 -
디에고 로드리게스 페르난데스
디에고 로드리게스 페르난데스는 스페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레알 베티스, 세비야 FC 등에서 활약했으며 세비야 FC의 주장을 역임했고, 감독으로서는 시우다드 데 무르시아, 세비야 FC 3군과 2군을 지도했다. -
카나리아 제도 출신 축구 선수 -
헤세 로드리게스
헤세 로드리게스는 스페인 국적의 축구 선수로,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시스템을 거쳐 1군 데뷔 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여러 팀에서 임대 생활을 거쳐 현재는 조호르 다룰 탁짐 FC에서 활약하고, 스페인 연령별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U-19 선수권 대회 우승과 U-20 월드컵 득점 3위를 기록했다. -
카나리아 제도 출신 축구 선수 -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은 스페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라스 팔마스, 마요르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등에서 활약하며 스페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했다. -
살아있는 사람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살아있는 사람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바리오스는 테네리페, 그라나다, 바르셀로나, 에르쿨레스, 그리고 레반테에서 활약했다.
테네리페에서 태어난 바리오스는 지역 클럽 CD 테네리페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el Tigre'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그는 1966–67 세군다 디비시온 시즌에 성인 무대 데뷔를 했다. 1968–69 라 리가 시즌을 앞두고 그라나다 CF로 이적하여 4시즌 동안 활약했다. 리누스 미헬스 감독은 1972–73 라 리가 시즌을 앞두고 바리오스를 FC 바르셀로나로 데려왔고, 12골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 바르셀로나는 요한 크루이프를 영입했고, 바리오는 클럽이 10년 만에 첫 라 리가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후보 공격수로 활약했다.
이후 바리오스는 에르쿨레스 CF로 이적하여 4시즌 동안 115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35골을 기록하며 라 리가에서 클럽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에르쿨레스에서의 성공 이후, 바리오스는 1979–79 세군다 B 디비시온 시즌을 앞두고 레반테 UD로 이적했다. 그는 레반테를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승격시킨 후, 고향 클럽인 테네리페로 복귀하여 세군다 B에서 뛰었다. 한 시즌 후, 바리오스는 UD 오로타바에서 선수 경력을 마쳤다.
또한, 1968년 하계 올림픽에 스페인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했다.
2.1. 클럽 경력
바리오스는 테네리페, 그라나다, 바르셀로나, 에르쿨레스, 그리고 레반테에서 활약했다.
테네리페에서 태어난 바리오스는 지역 클럽 CD 테네리페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el Tigre'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그는 1966–67 세군다 디비시온 시즌에 성인 무대 데뷔를 했다. 1968–69 라 리가 시즌을 앞두고 그라나다 CF로 이적하여 4시즌 동안 활약했다. 리누스 미헬스 감독은 1972–73 라 리가 시즌을 앞두고 바리오스를 FC 바르셀로나로 데려왔고, 12골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 바르셀로나는 요한 크루이프를 영입했고, 바리오는 클럽이 10년 만에 첫 라 리가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후보 공격수로 활약했다.
이후 바리오스는 에르쿨레스 CF로 이적하여 4시즌 동안 115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35골을 기록하며 라 리가에서 클럽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에르쿨레스에서의 성공 이후, 바리오스는 1979–79 세군다 B 디비시온 시즌을 앞두고 레반테 UD로 이적했다. 그는 레반테를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승격시킨 후, 고향 클럽인 테네리페로 복귀하여 세군다 B에서 뛰었다. 한 시즌 후, 바리오스는 UD 오로타바에서 선수 경력을 마쳤다.
3. 감독 경력
은퇴 후, 호세 안토니오 바리오스는 감독과 구단 단장을 역임했다. 테네리페 시절, 그는 1980년대에 구단 전력을 정비하고 1부 리그 복귀에 공을 세웠다. 단장 일을 그만둔 후, 그는 마르틴 마레로와 페페 모레 감독을 보좌했다. 그는 2004-05 시즌을 기점으로 총감독을 맡았다. 그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선수단의 경기력이 달라졌다.
그는 이듬해에 훌륭하게 초반기를 보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빛이 바랬다. 그 결과 그는 11경기 만에 감독직에서 해임되었으나, 구단의 다른 보직으로 잔류했다. 그의 감독직은 키케 메디나가 대행했고, 이후 안토니오 로페스 아바스가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