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마사나가 (1633년)
1. 개요
혼다 마사나가(1633년)는 에도 시대 초기의 다이묘이다. 아버지 혼다 마사토모가 사망했을 당시 어린 나이로 인해 사촌 혼다 마사카츠가 혼다 종가의 가독을 이었고, 이후 고리야마 번주를 둘러싼 상속 분쟁에 휘말렸다. 간분 11년(1671년) 마사카츠가 죽자, 막부의 재정으로 고리야마 15만 석이 마사나가와 마사토시에게 분할 상속되었으며, 마사나가는 12만 석을 다스리게 되었다. 엔포 7년(1679년) 마사토시에게 독살당한 것으로 전해지며, 양자인 혼다 타다쿠니가 뒤를 이었다.
| 씨족 | 혼다 씨 (본다가) |
|---|---|
| 시대 | 에도 시대 |
| 출생 | 간에이 10년 (1633년) |
| 사망 | 엔포 7년 4월 24일 (1679년6월 2일) |
| 관위 | 종5위 하 |
| 묘소 | 불명 |
| 아버지 | 혼다 마사토모 |
|---|---|
| 어머니 | 치요 |
| 형제자매 | 혼다 마사나가, 혼다 마사노부 의형제: 혼다 마사카쓰 |
| 배우자 | 야마우치 다다토요의 딸, 후우 |
| 양자 | 다다쿠니 |
| 주군 | 불명 |
|---|---|
| 번 | 야마토국고리야마번 |
| 역임한 번 | 고리야마 신덴 번 |
| 영지 | 1653년 ~ 1671년: 고리야마 신덴 번 번주 (혼다 가문 마사나가 파, 혼다 마사노부, 혼다 마사사다 2대에 걸쳐 분할) 1671년 ~ 1679년: 고리야마번 번주 (혼다 가문 다다카쓰 파) |
| 개명 | 불명 |
|---|---|
| 이명 | 불명 |
| 시호 | 불명 |
| 신호 | 불명 |
| 법명 | 불명 |
| 영명 | 불명 |
-
고리야마 신덴번주 -
혼다 마사토시 (1641년)
혼다 마사토시(1641년)는 혼다 타다카츠의 증손으로 가문의 상속 분쟁, 영지 이동, 감봉, 개역, 유폐 등의 과정을 거쳤으며, 괴력과 호색적인 면모로 다양한 풍설을 남겼다. -
고리야마 신덴번주 -
혼다 다다히데
혼다 다다히데는 에도 시대의 무장, 다이묘로 혼다 마사카쓰의 아들이자 혼다 마사노부의 양자이며 하리마 야마자키 번의 초대 번주로서 오반가시라를 역임하고 야마가 소코에게 병법을, 가노 쓰네노부에게 회화를 배우는 등 다방면에 능통한 교양인이었다. -
고리야마번주 -
혼다 다다히라
혼다 다다히라는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혼다 타다요시의 장남으로 태어나 우쓰노미야 번과 고리야마 번의 번주를 역임하며 연공 감면, 백성 구휼, 성하 마을 신설, 번찰 발행 등 번정 개혁을 시도했다. -
고리야마번주 -
혼다 마사카쓰 (1614년)
혼다 마사카쓰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로, 아버지의 전사 후 사촌의 양보로 가독을 잇고 여러 번을 거쳐 고리야마 번의 초대 번주가 되었으나, 후계 문제로 가문 내 분쟁이 발생했다. -
1633년 출생 -
김만기 (조선)
김만기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예가로, 1653년 문과 급제 후 효종과 숙종 대에 걸쳐 요직을 역임하며 서인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고, 딸이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가 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저서로는 《서석문집》이 있다. -
1633년 출생 -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은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의 군사이자 기술자로서 요새 건축과 공성전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도시 계획 및 행정 개혁에도 참여하여 프랑스 사회 발전에 기여했고, 그가 건설한 요새 중 12곳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생애
아버지 마사토모가 병으로 사망했을 당시 겨우 6세였기 때문에 "어린 군주에게 가독을 잇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혼다 가문의 가훈에 따라, 사촌 마사카츠가 혼다 종가의 가독을 이었다.
쇼오 2년(1653년), 일족의 고리야마 신덴 번주 혼다 가쓰유키 (마사카츠의 장남)가 후사가 끊기자, 그 유령 4만 석 중 3만 석을 야마토 국내에서 함께 상속했다. 나머지 1만 석은 동생 마사노부가 상속했다.
원래 고리야마 번은 마사나가가 습봉하는 것이 순리였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어린 나이라는 이유로 마사카츠가 습봉했다. 마사토모는 마사나가가 성장한 후에는 마사나가에게 번주를 양보하도록 유언을 남겼지만, 마사카츠는 친아들 마사토시에게 고리야마를 물려주려 획책했다. 이것이 훗날의 가문 소동으로 이어진다.
간분 11년(1671년)에 마사카츠가 죽자, 마사토시는 즉시 막부 다이로인 사카이 타다키요에게 뒷공작을 펼쳐, 상속에 관한 막부의 재정이 내려졌다. 고리야마 15만 석은 마사나가의 9만 석과 마사토시의 6만 석으로 분할 상속되었고, 마사나가는 습봉 전에 소유했던 신덴 3만 석을 합하여 총 12만 석이 되었다(9·6 소동).
엔포 7년(1679년) 여름, 15만 석 전부를 상속하지 못한 것을 원망한 마사토시에 의해 독살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사나가의 후임은 양자 타다쿠니가 습봉했다.
2.1. 상속 분쟁과 9.6 소동
아버지 마사토모가 병으로 사망했을 당시 마사나가는 겨우 6세였기 때문에 "어린 군주에게 가독을 잇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혼다 가문의 가훈에 따라, 사촌 마사카츠가 혼다 종가의 가독을 이었다.
쇼오 2년(1653년), 일족의 고리야마 신덴 번주 혼다 가쓰유키 (마사카츠의 장남)가 후사가 끊기자, 그 유령 4만 석 중 3만 석을 야마토 국내에서 함께 상속했다. 나머지 1만 석은 동생 마사노부가 상속했다.
원래 고리야마 번은 마사나가가 습봉하는 것이 순리였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어린 나이라는 이유로 마사카츠가 습봉했다. 마사토모는 마사나가가 성장한 후에는 마사나가에게 번주를 양보하도록 유언을 남겼지만, 마사카츠는 친아들 마사토시에게 고리야마를 물려주려 획책했다. 이것이 훗날의 가문 소동으로 이어진다.
간분 11년(1671년)에 마사카츠가 죽자, 마사토시는 즉시 막부 다이로인 사카이 다다키요에게 뒷공작을 펼쳐, 상속에 관한 막부의 재정이 내려졌다. 고리야마 15만 석은 마사나가의 9만 석과 마사토시의 6만 석으로 분할 상속되었고, 마사나가는 습봉 전에 소유했던 신덴 3만 석을 합하여 총 12만 석이 되었다(9·6 소동).
엔포 7년(1679년) 여름, 15만 석 전부를 상속하지 못한 것을 원망한 마사토시에 의해 독살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사나가의 후임은 양자 다다쿠니가 습봉했다.
2.2. 죽음과 의혹
엔포 7년(1679년) 여름, 마사나가는 마사토시에게 독살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마사토시가 15만 석 전부를 상속받지 못한 것을 원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사나가의 후임은 양자인 타다쿠니가 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마사토모가 사망하고 마사카츠를 거쳐 마사토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마사나가가 원래 고리야마 번을 물려받아야 했으나 어린 나이로 인해 마사카츠가 상속받았고, 마사토모는 마사나가가 성장하면 번주 자리를 양보하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마사카츠는 자신의 아들 마사토시에게 고리야마 번을 물려주려 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간분 11년(1671년) 마사카츠가 사망한 뒤, 마사토시는 막부 다이로인 사카이 타다키요에게 로비를 하여 고리야마 번 15만 석을 마사나가의 9만 석과 마사토시의 6만 석으로 분할 상속받는 재정을 얻어냈고(9·6 소동), 마사나가는 기존의 3만 석을 합쳐 12만 석을 다스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