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화태후
1. 개요
효화태후는 명나라의 황족으로, 본래 순천부의 서민 왕월의 딸이었다. 만력 연간에 태자 주상락(후의 태창제)의 저택에 들어가 3품 후궁인 선시가 되었고, 1605년 주유교(후의 천계제)를 낳아 재인으로 봉해졌다. 1619년에 사망하여 태자비의 예로 장례가 치러졌다. 숭정제가 즉위한 후, 효화공헌온목휘자협천성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남편과 함께 청릉에 묻혔다. 자녀로는 천계제와 간회왕이 있다.
-
명나라의 추존황태후 -
효순태후
평민 출신으로 태창제의 후궁이 되었으나 숭정제를 낳은 후 의문사한 효순태후는 숭정제 즉위 후 황태후로 추존되었고 숭정제는 숭모의 정을 나타냈으나 명나라 멸망 후 제사는 폐지되었다. -
명나라의 추존황태후 -
효정태후 (만력제)
명나라 만력제의 후궁이자 태창제의 생모인 효정태후 왕씨는 궁녀로 입궁하여 공비에 책봉되었고, 손자 천계제의 즉위 후 황태후로 추존되었으며, 정귀비로 인해 소외된 궁중 생활을 보냈다. -
명나라의 황후 -
효숙황후
효숙황후는 명나라 영종의 후궁이자 성화제의 생모로, 후궁 시녀 출신으로 빈이 되었고 아들 성화제 즉위 후 황태후, 손자 홍치제 즉위 후 태황태후로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명나라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력 남용 논란 등 긍정적·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
명나라의 황후 -
인효문황후
명나라 영락제의 황후 인효문황후는 서달의 딸로 학문을 좋아했으며, 정난의 변 당시 베이징을 지키고 황후가 된 후 문화 사업에 힘쓰며 불교 관련 사업을 지원했다. -
1582년 출생 -
태창제
만력제의 장남인 태창제는 황태자 책봉 과정의 정쟁과 암살 미수 사건을 겪고 즉위 29일 만에 급서하여,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는 명나라 말기 정치적 혼란의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는다. -
1582년 출생 -
그레고리오 알레그리
그레고리오 알레그리는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작곡가이자 시스티나 성당 합창단 알토 가수로, 조반니 베르나르디노 나니노에게 음악 교육을 받고 페르모 대성당에서 생계를 유지하며 종교 음악을 작곡했으며, 특히 미제레레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매년 연주되고 모차르트의 필사 일화로 유명하며, 콘체르타토 양식과 팔레스트리나 양식을 융합한 독특한 스타일로 초기 현악 사중주 작곡가로도 평가받는다.
2. 생애
왕씨는 태창제가 황태자였을 때 후궁이 되었으며, 황태자의 3품 후궁인 선시(選侍) 지위로 태창제의 후궁으로 간택되었다. 1605년 12월, 훗날 천계제가 되는 주유교를 낳고 재인(才人)으로 봉해졌다. 1607년에는 또 다른 아들을 낳았으나 1610년에 사망했다. 만력 47년(1619년) 3월에 사망하여 태자비(태자의 정실)의 예로 장례가 치러졌다.
숭정제는 즉위 후 어머니에게 '효화공헌온목휘자협천성'(孝和恭獻溫穆徽慈協天聖)이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청릉에 남편과 합장했다.
2.1. 초기 생애
왕씨는 태창제가 황태자였을 때 후궁이 되었다. 그녀는 황태자의 3품 후궁인 선시(選侍) 지위로 태창제의 후궁으로 간택되었다. 순천부의 서민이었던 왕월의 딸로 태어났다.
1605년 12월, 왕씨는 훗날 천계제가 되는 주유교를 낳았고, 재인(才人)으로 봉해졌다. 1607년에는 또 다른 아들을 낳았으나 1610년에 사망했다. 만력 연간, 태자 주상락(후의 태창제)의 저택에 들어가 선시(황자의 측실)가 되었다. 만력 33년(1605년), 주유교(후의 천계제)를 낳아 재인(황자의 첩)이 되었다. 만력 47년(1619년) 3월, 훙거하였다. 태자비(태자의 정실)의 예로 장례가 치러졌다.
2.2. 후궁 생활과 천계제 출산
왕씨는 태창제가 황태자였을 때 후궁이 되었다. 그녀는 황태자의 3품 후궁인 선시(選侍)의 지위로 태창제의 후궁으로 간택되었다. 만력 연간, 태자 주상락(후의 태창제)의 저택에 들어가 선시(황자의 측실)가 되었다.
만력 33년(1605년), 주유교(후의 천계제)를 낳아 재인(황자의 첩)이 되었다. 1607년에는 또 다른 아들을 낳았으나 1610년까지만 살았다. 만력 47년(1619년) 3월, 훙거하였다. 태자비(태자의 정실)의 예로 장례가 치러졌다.
2.3. 사후 추존
숭정제는 즉위 후 어머니에게 '효화공헌온목휘자협천성'(孝和恭獻溫穆徽慈協天聖)이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청릉에 남편과 합장했다. 천계제는 즉위 후 황태후로 추존했다.
3.1. 남편
왕씨는 태창제가 황태자였을 때 후궁이 되었다. 그녀는 황태자의 3품 후궁인 선시(選侍) 지위로 태창제의 후궁으로 간택되었다.
4. 시호 및 봉호
천계제 재위 기간(1620년~1627년) 동안 왕씨는 1621년부터 효화공헌온목휘자해천국성황태후(孝和恭獻溫穆徽慈諧天鞠聖皇太后)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