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흠단황후
1. 개요
효흠단황후는 명나라 계왕 주상영의 비이자, 남명 영력제에 의해 추존된 황후이다. 그녀는 금의위 우소 관대 사인 여여송의 딸로, 만력 45년 계왕의 혼인을 위해 선발되어 약혼했고, 만력 47년에 결혼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급사했다. 이후 주상영이 황제로 즉위하고 영력제가 남명의 황제가 되면서 황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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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1619년 사망 -
후지와라 세이카
후지와라 세이카는 1561년에 태어나 1619년에 사망한 일본의 유학자로, 주자학을 기반으로 다양한 학문을 수용하고 하야시 라잔 등을 제자로 두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유학을 강의하고 『촌철록』 등의 저서를 남겼다. -
1619년 사망 -
페르디난트 2세
페르디난트 2세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으로, 반종교개혁을 추진하여 30년 전쟁의 원인이 되었으나 초기에는 승리했으나, 이후 전쟁의 역전과 재정난 속에 아들에게 제위를 계승했다. -
중국사 인물 -
서태후
서태후는 함풍제의 후궁으로 동치제를 낳았으며, 수렴청정을 통해 청나라 말기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양무 운동 추진 및 의화단 지원 등 다양한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
중국사 인물 -
초한전쟁
초한전쟁은 진나라 멸망 후 항우와 유방 세력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유방의 승리로 끝나 한나라가 건국되었으며, 신분 질서의 변화와 민본주의 정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2. 생애
아버지 여여송(呂如松)은 금의위 관원이었다. 만력 연간에 당시 계왕의 혼인 상대로 선발되어 1619년 혼인하였으나,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훗날 영력제가 남명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남편 주상영이 황제로 추존되자, 여씨 역시 황후로 추존되어 효흠단황후(孝欽端皇后)의 시호를 받았다.
2.1. 초기 생애
아버지 여여송(呂如松)은 금의위 우소 관대 사인이었다.
만력 45년(1617년) 10월, 당시 계왕(桂王)이었던 주상영의 혼인 상대로 선발되어 그의 마음에 들었다. 이듬해인 만력 46년(1618년) 2월, 계왕의 약혼자가 되었다. 만력 47년(1619년) 6월에는 제왕관(齊王官)으로 거처를 옮겼고, 7월에 납징(納徵, 신부 집에 예물을 보내는 절차)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8월 8일, 조정 백관들의 축하를 받는 정식 결혼식 절차 없이 계왕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26일(양력 10월 3일)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2.2. 혼인과 죽음
만력 45년(1617년) 10월, 계왕 주상영의 혼인 상대로 선발되었다. 이듬해인 만력 46년(1618년) 2월에는 계왕의 약혼자가 되었다. 만력 47년(1619년) 6월, 제왕관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7월에는 납징(納徵)의 예를 치렀다. 같은 해 8월 8일, 백관들이 조하(朝賀)하는 정식 혼례 절차 없이 계왕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혼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26일(양력 10월 3일)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훗날 영력제가 남명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계왕 주상영이 황제로 추존되었고, 여씨 역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3. 관련 자료
* 남명사(南明史)
* 명신종실록(明神宗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