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흠단황후
1. 개요
효흠단황후는 명나라 계왕 주상영의 비이자, 남명 영력제에 의해 추존된 황후이다. 그녀는 금의위 우소 관대 사인 여여송의 딸로, 만력 45년 계왕의 혼인을 위해 선발되어 약혼했고, 만력 47년에 결혼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급사했다. 이후 주상영이 황제로 즉위하고 영력제가 남명의 황제가 되면서 황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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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황후 -
효숙황후
효숙황후는 명나라 영종의 후궁이자 성화제의 생모로, 후궁 시녀 출신으로 빈이 되었고 아들 성화제 즉위 후 황태후, 손자 홍치제 즉위 후 태황태후로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명나라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력 남용 논란 등 긍정적·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
명나라의 황후 -
인효문황후
명나라 영락제의 황후 인효문황후는 서달의 딸로 학문을 좋아했으며, 정난의 변 당시 베이징을 지키고 황후가 된 후 문화 사업에 힘쓰며 불교 관련 사업을 지원했다. -
명나라의 추존황후 -
효숙황후
효숙황후는 명나라 영종의 후궁이자 성화제의 생모로, 후궁 시녀 출신으로 빈이 되었고 아들 성화제 즉위 후 황태후, 손자 홍치제 즉위 후 태황태후로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명나라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력 남용 논란 등 긍정적·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
명나라의 추존황후 -
효원정황후
효원정황후는 명나라 황족으로 만력제의 후궁으로 입궁하여 태창제의 태자비가 되었으나, 태창제 즉위 전에 사망 후 아들인 천계제에 의해 황후로 추존되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아버지 여여송(呂如松)은 금의위 관원이었다. 만력 연간에 당시 계왕의 혼인 상대로 선발되어 1619년 혼인하였으나,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훗날 영력제가 남명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남편 주상영이 황제로 추존되자, 여씨 역시 황후로 추존되어 효흠단황후(孝欽端皇后)의 시호를 받았다.
2.1. 초기 생애
아버지 여여송(呂如松)은 금의위 우소 관대 사인이었다.
만력 45년(1617년) 10월, 당시 계왕(桂王)이었던 주상영의 혼인 상대로 선발되어 그의 마음에 들었다. 이듬해인 만력 46년(1618년) 2월, 계왕의 약혼자가 되었다. 만력 47년(1619년) 6월에는 제왕관(齊王官)으로 거처를 옮겼고, 7월에 납징(納徵, 신부 집에 예물을 보내는 절차)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8월 8일, 조정 백관들의 축하를 받는 정식 결혼식 절차 없이 계왕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26일(양력 10월 3일)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2.2. 혼인과 죽음
만력 45년(1617년) 10월, 계왕 주상영의 혼인 상대로 선발되었다. 이듬해인 만력 46년(1618년) 2월에는 계왕의 약혼자가 되었다. 만력 47년(1619년) 6월, 제왕관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7월에는 납징(納徵)의 예를 치렀다. 같은 해 8월 8일, 백관들이 조하(朝賀)하는 정식 혼례 절차 없이 계왕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혼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26일(양력 10월 3일)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훗날 영력제가 남명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계왕 주상영이 황제로 추존되었고, 여씨 역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3. 관련 자료
* 남명사(南明史)
* 명신종실록(明神宗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