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애돈대
1. 개요
후애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강화 53돈대 중 하나이다. 해안 방어 시설 강화를 위해 어영군과 승군을 동원하여 축조되었으며, 화강암으로 정사각 모양을 이루고 4개의 포좌를 설치했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1998년에 복원되었다. 인근 마을에는 돈대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전설이 전해져, 문화재 보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 이름 | 후애돈대 |
|---|---|
| 로마자 표기 | Huae Dondae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종류 | 돈대 |
|---|---|
| 위치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954번지 |
| 지정 번호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3호 |
|---|---|
| 지정일 | 1995년 11월 15일 |
| 시대 | 조선시대 |
| 특징 | 후애돈대는 택지돈대라고도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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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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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루드 궁전은 12세기 홀리루드 수도원 부지에 세워진 15세기 스코틀랜드 왕실 거처로, 16~17세기를 거쳐 재건축되었으며 현재는 영국 군주의 공식 스코틀랜드 거주지이자 역사적, 문화적 유산으로서 일반에 공개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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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향교는 고려 인종 5년에 건립되어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을 교육하는 국립교육기관이었으며, 여러 차례 이전을 거쳐 현재 위치에 자리 잡고 제사 기능만 수행하고 있다.
2. 역사
후애돈대는 강화도에 위치한 53개의 돈대 중 하나로, 조선 숙종 5년(1679년)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의 주관 아래 축조되었다. 화강암을 이용하여 정사각형 모양으로 쌓았으며, 내부에는 대포를 올려놓는 포좌 4개가 설치되었다. 이 포좌들은 비교적 잘 보존된 상태이다.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인 여장(女墻)의 일부가 유일하게 남아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1998년에 복원 작업을 완료하였다. 인근 마을에는 이 돈대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이 때문에 주민들이 돈대를 제단처럼 여기고 보호하여 원형 보존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2.1. 축조 배경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하는 초소이다. 조선은 특히 해상을 통한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여 해안 방어 시설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에 따라 강화도를 중심으로 여러 돈대를 설치하게 되었다. 후애돈대는 이러한 배경 하에 조선 숙종 5년(1679년)에 축조되었으며, 당시 어영군 2천 명과 경기·충청·전라 3도의 승군 8천 명이 동원되었다.
2.2. 축조 과정
조선 숙종 5년(1679)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축조를 주관하였다. 당시 어영군 4,300명과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3도의 승군 8천 명이 동원되었다. 화강암을 이용하여 정방형으로 쌓았으며, 4개의 포좌(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를 설치하였다.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인 여장(女墻)의 일부가 유일하게 남아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1998년에 복원하였다.
3. 구조 및 특징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하는 초소이다. 일반적으로 밖은 성곽으로 높게 쌓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한다.
후애돈대는 강화도에 있는 53개의 돈대 중 하나로,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축조하였다. 이때 어영군과 승군 등이 동원되었다.
3.1. 보존 상태
화강암을 이용해 정사각형 모양으로 쌓아 올렸으며, 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인 포좌(砲座) 4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인 여장(女墻)의 일부가 유일하게 남아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1998년에 전체 모습을 복원하였다. 인근 마을에는 이 돈대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이 때문에 주민들이 돈대를 제단처럼 여기고 보호하여 현재까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3.2. 전설
인근 마을에는 후애돈대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돈대를 제단처럼 여기며 보호하여, 오늘날까지 그 본모습이 잘 남아 있다.
4. 관련 문화재
후애돈대는 강화 53돈대 중 하나이다.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으며, 당시 어영군 2천 명과 경기·충청·전라 3도의 승군 8천 명이 동원되었다. 화강암을 사용하여 정사각형 모양으로 쌓았고, 대포를 올려놓는 포좌 4개가 설치되어 있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여장)의 일부가 유일하게 남아 있었으나 1998년에 완전 복원되었다. 인근 마을에는 이 돈대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며, 이 때문에 돈대를 제단처럼 여기고 보호하여 원형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