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1. 개요
1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는 1988년에 시작된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 바둑 대회이다. 32강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양재호 6단이 장수영 8단을 결승에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총 상금 1억원, 우승 상금 1,500만원 규모로, 한국 바둑의 국제화에 기여했으나, 중국 기사 불참과 낮은 상금 규모로 인해 미흡한 세계 대회였다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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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바둑 -
9기 KBS 바둑왕전
9기 KBS 바둑왕전은 1989년 10월부터 1990년 8월까지 진행된 기전으로, 조훈현 九단이 서봉수 九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
1989년 바둑 -
2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1990년에 열린 2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기사들이 참가한 대회로 이창호가 조훈현을 꺾고 우승했으며 조치훈의 2연패와 젊은 기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
1988년 바둑 -
8기 KBS 바둑왕전
8기 KBS 바둑왕전은 1988년 이창호 三단이 김수장 七단을 꺾고 우승한 바둑 기전이다. -
1988년 바둑 -
제1회 응씨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제1회 응씨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는 1988년 베이징에서 열린 바둑 대회로, 조훈현이 녜웨이핑을 꺾고 우승하여 한국 바둑의 위상을 높였다. -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노영하
노영하는 1967년 입단하여 1999년 9단에 오른 한국의 바둑 기사이자 KBS 바둑 해설위원으로, 왕위전, 국수전 준우승, KBS 바둑왕전 해설, 바둑 서적 및 강좌를 통해 바둑 교육에 기여했으며 2024년 별세하였다. -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
유창혁
유창혁은 어린이 국수전 3연패 후 1984년 프로 바둑 기사로 입단하여 왕위전 4연패를 포함한 다수의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바둑계를 대표하는 거장이 되었고, 독창적이고 공격적인 스타일로 후배 기사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한국기원 이사, 국가대표 감독 등을 역임하며 한국 바둑 발전에 기여했다.
2. 대회 개요
2.1. 대회 방식
1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는 32강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32강전에서 양재호 六단이 야마시로 히로시 九단을 꺾고 16강에 진출했다. 이시다 요시오 九단, 유창혁 三단, 이창호 三단도 각각 (故)전영선 六단, (故)조남철 九단, 박영찬 初단을 꺾고 16강에 합류했다.
16강전에서는 양재호 六단이 백성호 七단을 꺾고 8강에 진출했으며, 유창혁 三단과 이창호 三단은 각각 이시다 요시오 九단과 최규병 四단을 꺾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서는 양재호 六단이 서봉수 九단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고, 유창혁 三단은 이창호 三단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전에서는 양재호 六단이 김희중 七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고, 장수영 八단이 유창혁 三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양재호 六단이 장수영 八단을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2. 참가 선수
2.3. 상금 규모
3. 대진 및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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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 ||대국일자||대국장소||승자||패자||결과||기보 | |||||||
|---|---|---|---|---|---|---|---|
| 본선 1회전 (32강전) | 1988년 | 12월 10일 |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국기원(舊) 본선대국실 | 펑징화 四단 | (故)김재구 八단 | 250수 백 4집반승 | |
| 장수영 八단 | 홍태선 六단 | 224수 흑 불계승 | |||||
| 양재호 六단 | 야마시로 히로시 九단 | 259수 흑 5집반승 | |||||
| 백성호 七단 | 김수장 七단 | 200수 백 불계승 | |||||
| 12월 19일 | 이시다 요시오 九단 | 전영선 六단 | 158수 백 불계승 | ||||
| 유창혁 三단 | (故)조남철 九단 | 180수 백 불계승 | |||||
| 12월 20일 | 서능욱 八단 | (故)하찬석 八단 | 151수 흑 불계승 | ||||
| 린성셴 四단 | 황원준 五단 | 209수 흑 불계승 | |||||
| 1989년 | 1월 16일 | 최규병 四단 | 이동규 九단 | 157수 흑 불계승 | |||
| 1월 23일 | 김희중 七단 | 홍종현 六단 | 143수 흑 불계승 | ||||
| 2월 8일 | 서봉수 九단 | 조대현 四단 | 181수 흑 불계승 | ||||
| 2월 17일 | 양상국 六단 | 정수현 六단 | 221수 흑 6집반승 | ||||
| 4월 3일 | (故)김인 九단 | (故)이봉근 六단 | 219수 흑 6집반승 | ||||
| 4월 21일 | 이창호 三단 | 박영찬 六단 | 184수 백 불계승 | ||||
| 5월 2일 | 강훈(大) 七단 | (故)김종범 四단 | 202수 백 불계승 | ||||
| 5월 11일 | 윤기현 九단 | 노영하 七단 | 241수 흑 2집반승 | ||||
| 본선 2회전 (16강전) | 1988년 | 12월 12일 | 장수영 八단 | 펑징화 四단 | 288수 백 5집반승 | ||
| 12월 19일 | 유창혁 三단 | 이시다 요시오 九단 | 258수 흑 2집반승 | ||||
| 12월 22일 | 서능욱 八단 | 린성셴 四단 | 239수 백 5집반승 | ||||
| 1989년 | 5월 23일 | 이창호 三단 | 최규병 四단 | 125수 흑 불계승 | |||
| 6월 4일 | 김희중 七단 | 강훈(大) 七단 | 266수 흑 반집승 | ||||
| 6월 7일 | 양재호 六단 | 백성호 七단 | 169수 흑 불계승 | ||||
| 6월 20일 | (故)김인 九단 | 양상국 六단 | 214수 흑 불계승 | ||||
| 7월 4일 | 서봉수 九단 | 윤기현 九단 | 273수 흑 14집반승 | ||||
| 본선 준준결승 (8강전) | 7월 10일 | 장수영 八단 | (故)김인 九단 | 129수 흑 불계승 | |||
| 7월 21일 | 유창혁 三단 | 이창호 三단 | 246수 백 1집반승 | ||||
| 7월 28일 | 김희중 八단 | 서능욱 八단 | 251수 흑 10집반승 | ||||
| 8월 2일 | 양재호 六단 | 서봉수 九단 | 271수 흑 2집반승 | ||||
| 준결승전 (4강전) | 장수영 八단 | 유창혁 三단 | 258수 흑 1집반승 | ||||
| 8월 29일 | 양재호 九단 | 김희중 八단 | 275수 흑 35집반승 | ||||
| 결승 1국 | 9월 18일 |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 양재호 九단 | 장수영 八단 | 238수 백 2집반승 | ||
| 결승 2국 | 9월 29일 |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국기원(舊) 본선대국실 | 207수 흑 불계승 | ||||
| 결승 3국 | 10월 7일 | 장수영 八단 | 양재호 六단 | 258수 흑 4집반승 | |||
| 결승 4국 | 10월 20일 | 양재호 六단 | 장수영 八단 | 151수 흑 불계승 |
3.1. 32강전
1988년 12월 10일부터 1989년 5월 11일까지 32강전이 진행되었다. 대국은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국기원(舊) 본선대국실에서 열렸다.
| 대국일자 | 승자 | 패자 | 결과 |
|---|---|---|---|
| 1988년 12월 10일 | 펑징화 四단 | (故)김재구 八단 | 250수 백 4집반승 |
| 1988년 12월 10일 | 장수영 八단 | 홍태선 六단 | 224수 흑 불계승 |
| 1988년 12월 10일 | 양재호 六단 | 야마시로 히로시 九단 | 259수 흑 5집반승 |
| 1988년 12월 10일 | 백성호 七단 | 김수장 七단 | 200수 백 불계승 |
| 1988년 12월 19일 | 이시다 요시오 九단 | 전영선 六단 | 158수 백 불계승 |
| 1988년 12월 19일 | 유창혁 三단 | (故)조남철 九단 | 180수 백 불계승 |
| 1988년 12월 20일 | 서능욱 八단 | (故)하찬석 八단 | 151수 흑 불계승 |
| 1988년 12월 20일 | 린성셴 四단 | 황원준 五단 | 209수 흑 불계승 |
| 1989년 1월 16일 | 최규병 四단 | 이동규 九단 | 157수 흑 불계승 |
| 1989년 1월 23일 | 김희중 七단 | 홍종현 六단 | 143수 흑 불계승 |
| 1989년 2월 8일 | 서봉수 九단 | 조대현 四단 | 181수 흑 불계승 |
| 1989년 2월 17일 | 양상국 六단 | 정수현 六단 | 221수 흑 6집반승 |
| 1989년 4월 3일 | (故)김인 九단 | (故)이봉근 六단 | 219수 흑 6집반승 |
| 1989년 4월 21일 | 이창호 三단 | 박영찬 六단 | 184수 백 불계승 |
| 1989년 5월 2일 | 강훈(大) 七단 | (故)김종범 四단 | 202수 백 불계승 |
| 1989년 5월 11일 | 윤기현 九단 | 노영하 七단 | 241수 흑 2집반승 |
3.2. 16강전
16강전은 1988년 12월 12일부터 1989년 7월 4일까지 진행되었다.
| 대국일자 | 승자 | 패자 | 결과 |
|---|---|---|---|
| 1988년 12월 12일 | 장수영 八단 | 펑징화 四단 | 288수 백 5집반승 |
| 1988년 12월 19일 | 유창혁 三단 | 이시다 요시오 九단 | 258수 흑 2집반승 |
| 1988년 12월 22일 | 서능욱 八단 | 린성셴 四단 | 239수 백 5집반승 |
| 1989년 5월 23일 | 이창호 三단 | 최규병 四단 | 125수 흑 불계승 |
| 1989년 6월 4일 | 김희중 七단 | 강훈(大) 七단 | 266수 흑 반집승 |
| 1989년 6월 7일 | 양재호 六단 | 백성호 七단 | 169수 흑 불계승 |
| 1989년 6월 20일 | (故)김인 九단 | 양상국 六단 | 214수 흑 불계승 |
| 1989년 7월 4일 | 서봉수 九단 | 윤기현 九단 | 273수 흑 14집반승 |
3.3. 8강전
1989년 7월 10일부터 8월 2일까지 제1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의 8강전이 진행되었다. 8강전은 한국기원 본선대국실에서 개최되었으며, 대진 결과 및 승자는 다음과 같다.
3.4. 준결승전
1989년 8월에 준결승전이 진행되었다. 준결승전 대진 및 결과는 다음과 같다.
| 대진 | 결과 |
|---|---|
| 梁宰豪/양재호한국어 六단 vs 徐奉洙/서봉수한국어 九단 | {{llang|ko|양재호|梁宰豪}} 승 |
| 金熙中/김희중한국어 七단 vs 徐能旭/서능욱한국어 八단 | {{llang|ko|김희중|金熙中}} 승 |
| 兪昌赫/유창혁한국어 三단 vs 李昌鎬/이창호한국어 三단 | {{llang|ko|유창혁|兪昌赫}} 승 |
| (故)金寅/김인한국어 九단 vs 張秀英/장수영한국어 八단 | {{llang|ko|장수영|張秀英}} 승 |
8월 2일에는 梁宰豪/양재호한국어 六단이 徐奉洙/서봉수한국어 九단을 상대로 271수만에 흑 2집반승을 거두었다.
8월 29일에는 梁宰豪/양재호한국어 九단이 金熙中/김희중한국어 八단을 상대로 275수만에 흑 35집반승을 거두었으며, 張秀英/장수영한국어 八단이 兪昌赫/유창혁한국어 三단을 상대로 258수만에 흑 1집반승을 거두었다.
3.5. 결승전
1989년 9월부터 10월까지 제1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의 결승전이 개최되었다. 결승전은 양재호 6단과 장수영 8단의 대결로, 5번기(3판을 먼저 이기면 승리)로 진행되었다.
결승 1국은 9월 18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렸으며, 양재호 6단이 장수영 8단을 상대로 238수만에 백 2집반승을 거두었다. 9월 29일 한국기원(舊) 본선대국실에서 속개된 결승 2국에서는, 양재호 6단이 207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며 승기를 잡았다. 10월 7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결승 3국에서는 장수영 8단이 258수만에 흑 4집반승을 거두며 반격에 성공했다. 그러나 10월 20일 열린 결승 4국에서 양재호 6단이 151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면서, 최종 전적 3승 1패로 제1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의 우승을 차지하였다.
4. 주요 참가 선수
4.1. 대한민국
4.1.1. 양재호
양재호 6단은 조훈현, 서봉수 9단에 이어 1980년대를 대표하는 프로 바둑 기사이다. 공격적인 기풍과 날카로운 수읽기를 바탕으로 '재미난 바둑'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8년 제1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기사로 발돋움했다. 당시 양재호 6단은 국내 기전에서는 여러 차례 결승에 진출했지만, 번번이 준우승에 머무르며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동양증권배 우승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실력을 입증하며, 한국 바둑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4.1.2. 장수영
장수영 8단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source`에 해당 내용이 없으므로, 섹션을 생성할 수 없습니다.
4.1.3. 유창혁
유창혁은 당시 떠오르는 신예였다.
4.1.4. 이창호
이창호 3단은 당시 만 13세 9개월의 나이로, 1회 동양증권배에 최연소(만 14세 이하) 초청을 받아 출전했다. 그러나 이창호는 1회전에서 대만의 왕리청에게 패배했다.
이후 이창호는 2회 동양증권배에서 우승하며 세계 바둑을 제패하기 시작했고, '돌부처'라는 별명을 얻으며 세계 바둑계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4.1.5. 서봉수
서봉수 9단은 '야전사령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실리에 밝고 전투적인 기풍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그의 독특한 바둑 스타일은 큰 주목을 받았다.
4.1.6. 김인
한국 현대 바둑의 선구자인 김인 9단의 마지막 세계 대회 참가라는 의미가 있었다.
4.2. 일본
4.2.1. 이시다 요시오
이시다 요시오는 일본 대표로 참가하였다. 1966년 프로에 입단하여, 1974년 제22기 일본 왕좌전에서 우승했다. 1971년 제6기 일본 랭킹 1위전에서 우승하여 첫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1971년부터 1975년까지 혼인보를 5연패하여 제24기 혼인보 칭호를 획득했다. 1984년 제9기 일본 작은기성전에서 우승하였다. 그의 전성기는 1970년대 초반으로 여겨진다.
4.2.2. 야마시로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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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대만
4.3.1. 린성셴
4.3.2. 펑징화
펑징화에 대한 내용은 현재 제공된 정보에 없습니다.
5. 역사적 의의
제1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는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 바둑 대회로, 한국 바둑의 국제화에 기여했다. 총 상금 규모는 1억원, 우승 상금은 1,500만원이었다. 양재호 6단이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대회 첫 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대회는 국제 기전 총 상금 규모가 낮아졌고, 일본, 대만 등은 출전했으나 중국 기사는 참가하지 않아 미흡한 세계 대회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회 규모 역시 국내 기준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6. 비판 및 논란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 바둑 대회였던 1회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판과 논란에 직면했다. 국제 기전임에도 불구하고, 총상금 규모가 1억원, 우승 상금이 1,500만 원으로 낮게 책정되어 대회 규모가 국내 기전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일본과 대만 기사들은 참가했으나, 당시 바둑 강국이었던 중국 기사들이 불참하여 세계 대회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7. 기타
* 국제기전에서는 <1회 동양증권배 국제기전>에서만 기전명으로 표기되었다.
*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대회 기전의 총규모는 1억원이었다.
* 우승상금은 1,500 만원이었다.
* 양재호 6단이 세계대회 첫 우승 및 초대 챔프가 되었다.
* 국제기전 총 상금규모가 낮아졌다.
* 일본, 대만 등이 출전하였으나 중국기사는 참가하지 않아 미흡했던 세계대회였다.
* 대회 규모가 국내기준수준에 미치지 못해 미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