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전조선축구대회 (동아일보 마산지국)
1. 개요
1922년 전조선축구대회는 경상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10개의 축구단이 참가하여 마산에서 1922년 7월 17일부터 7월 18일까지 이틀간 개최되었다.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이 사자 축구단을 결승에서 1:0으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 대회 | 1922년 전조선축구대회 |
|---|---|
| 대회 명칭 |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 |
| 원어 명칭 | (정보 없음) |
| 개최국 | 일제강점기 조선 |
| 개최 도시 | 마산 |
| 개최 기간 | 1922년 7월 17일~7월 18일 |
| 주최 | 동아일보 마산지국 |
|---|---|
| 후원 | 유지제 |
| 선수단 | 10개 선수단 |
|---|---|
| 우승 |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 |
| 준우승 | 사자 축구단 |
| 이전 대회 | (정보 없음) |
| 다음 대회 | (정보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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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7월 -
더블린 전투
더블린 전투는 1922년 6월 말 아일랜드 내전의 시작을 알리며, 반조약 IRA가 점거한 더블린 사법궁을 아일랜드 임시 정부군이 공격하면서 발발하여 오코넬 거리로 확산, 반조약 세력이 진압되며 자유국 정부가 더블린을 장악했지만 내전 격화를 초래했다. -
1922년 7월 -
시나노강 학살 사건
1922년 7월 일본 시나노강 나카쓰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수십 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 속에서 공사 현장 감독에 의해 살해당하고 시신이 유기된 사건으로, 재일 한국인 권익 보호 운동과 노동 운동에 영향을 주었으며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의 비극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
1922년 축구에 관한 -
1922년 전국체육대회 축구
1922년 전국체육대회 축구는 2월과 11월에 제2회, 제3회 전조선축구대회를 포함하여 개최되었으며, 조선기독교청년회의 우승, 경기 규정 명문화, 청년부와 중학부로 나뉜 진행, 민족 단결과 독립 상징, 그리고 한국 축구 발전에의 영향 등이 특징이다. -
1922년 축구에 관한 -
1922년 전조선축구대회 (평양기독교청년회)
1922년 평양기독교청년회 주최로 열린 전조선축구대회는 사회부와 학생부로 나뉘어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일제강점기 한국의 축구 대회로, 민족의 자긍심 고취와 유대감 강화를 목적으로 개최되어 한국 축구 초창기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
1922년 한국 -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국제공산당 자금사건은 1919년부터 1922년까지 레닌 정부의 한민족 지원 자금을 둘러싸고 독립운동 세력 간의 갈등이 발생한 사건으로, 1, 2차 사건을 통해 임시정부 약화, 사회주의 운동 분파 형성, 자금 유용 의혹 등의 논란을 야기했다. -
1922년 한국 -
1922년 전국체육대회 정구
1922년 전국체육대회 정구는 1922년 5월 보성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으며, 중학부에서는 송도고등보통학교가, 청년부에서는 금강구락부가 우승하고 경기도가 종합 1위를 차지했다.
2. 참가 축구단
3. 경기 결과
대회는 1922년 7월 17일부터 7월 18일까지 이틀간 마산에서 개최되었다. 총 10개 선수단(김해청년회 축구단, 맹호 축구단, 밀양청년회 축구단, 사자 축구단, 삼각 축구단, 일신강습 축구단,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 창원청년회 축구단, 철성의숙 축구단, 칠원청년회 축구단)이 참가하여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를 치렀다.
1라운드부터 결승까지 진행된 경기 결과,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이 결승에서 사자 축구단을 1:0으로 꺾고 최종 우승팀이 되었다. 경기 중 김해청년회 축구단의 기권, 창원청년회 축구단의 실격 등 예상치 못한 상황도 발생했다. 상세한 라운드별 경기 결과는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3.1. 1라운드
김해청년회 축구단, 맹호 축구단, 밀양청년회 축구단, 사자 축구단, 삼각 축구단, 일신강습 축구단,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 창원청년회 축구단, 철성의숙 축구단, 칠원청년회 축구단 등 10개 선수단이 참가했다.
1라운드는 1922년 7월 17일에 마산에서 총 5경기가 진행되었다.
3.2. 2라운드
| 날짜 | 시간 | 경기장 | 팀 1 | 점수 | 팀 2 | 비고 |
|---|---|---|---|---|---|---|
| 1922년 7월 17일 | 마산 |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 | 부전승 |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 준결승 진출 | ||
| 1922년 7월 17일 | 15:40 | 마산 | 맹호 축구단 | 5 : 1 | 삼각 축구단 | 맹호 축구단 준결승 진출 |
| 1922년 7월 17일 | 마산 | 사자 축구단 | 부전승 | 사자 축구단 준결승 진출 | ||
| 1922년 7월 17일 | 마산 | 창원청년회 축구단 | 부전승 | 창원청년회 축구단 준결승 진출 |
3.3. 준결승
1922년 7월 18일 마산에서 준결승 경기가 진행되었다.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된 사자 축구단과 창원청년회 축구단의 첫 번째 준결승 경기는 창원청년회 축구단이 대회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되어 실격패 처리되었다. 이에 따라 사자 축구단이 결승에 진출했다.
같은 날 오후 1시 35분에는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과 맹호 축구단의 두 번째 준결승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는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이 후반전에 얻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1:0으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3.4. 결승
1922년 7월 18일 16시에 진행된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과 사자 축구단 간의 결승 경기는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이 1:0으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