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에르진잔 지진
1. 개요
1939년 에르진잔 지진은 1939년 12월 27일 튀르키예 에르진잔에서 발생한 규모 7.9의 강진이다. 북아나톨리아 단층의 활동으로 발생했으며, 서쪽으로 400km에 달하는 단층 파열을 일으켰다. 이 지진으로 인해 약 33,000명이 사망하고 11만 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쓰나미가 발생하여 흑해 연안에 피해를 입혔다. 튀르키예는 이 지진을 계기로 내진 설계 규정을 채택했고, 에르진잔 시는 재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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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1939년 에르진잔 지진 |
|---|---|
| 발생 일시 (UTC) | 1939년 12월 26일 23시 57분 23초 |
| 발생 일시 (현지 시간) | 1939년 12월 27일 오전 1시 57분 23초 |
| 규모 | 7.8 Mw |
| 깊이 | 20 km |
| 진앙 위치 | 튀르키예 에르진잔주 |
| 단층 | 북아나톨리아 단층 |
| 지진 유형 | 주향이동단층 |
| 최대 진도 | XII MMI |
| 최대 진도 지역 | 에르진잔 |
| 지진 해일 | 우크라이나 SSR 노보로시스크 최대 0.53 m |
| 여진 | 예 |
| 사망자 | 32,700–32,968명 |
|---|---|
| 부상자 | 약 100,000명 |
| 피해 건물 | 건물 116,720채 심각한 손상 |
| 재산 피해 | 2천만 달러 |
| ISC 이벤트 | 902291 |
|---|---|
| ANSS URL | iscgem902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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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튀르키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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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년 북아나톨리아 지진은 북아나톨리아 단층대에서 발생한 모멘트 규모 7.8~8.0의 대규모 지진으로, 터키 북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1719년 이후 서쪽 연쇄 지진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며 지진 대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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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이즈미트 지진은 1999년 8월 17일 터키 북서부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으로, 17,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부상하는 등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발생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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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진 발생 배경
소아시아의 북아나톨리아 단층은 유라시아 판이 더 작은 아나톨리아 미세 판을 지나 미끄러지는 주요 변환 단층 경계이다. 1,600km 이상 뻗어 있는 이 단층은 터키 동부에서 마르마라해까지 이어진다.
북아나톨리아 단층은 매우 활발하게 활동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에르진잔은 서기 1000년 이후로 지진으로 최소 11번 파괴되었다. 1942년에서 1967년 사이에는 동일한 단층을 따라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3차례 포함, 총 6번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
3. 지진 발생 및 특성
소아시아의 북아나톨리아 단층은 유라시아 판이 더 작은 아나톨리아 미세 판을 지나 미끄러지는 주요 변환 단층 경계이다. 1,600km 이상 뻗어 있는 이 단층은 터키 동부에서 마르마라해까지 이어진다.
북아나톨리아 단층은 매우 활발하게 활동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에르진잔은 서기 1000년 이후로 지진으로 최소 11번 파괴되었다. 1942년에서 1967년 사이에는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3차례를 포함, 총 6번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이 에르진잔시 인근에 위치한 이 지진 단층 파열은 서쪽으로 400km 길이로 전파되었으며, 표면 파열은 오늘날까지도 볼 수 있다. 최대 360km의 표면 파열이 형성되었고, 평균 표면 변위는 2.3m에서 8.8m 사이로 계산되었다. 수직 변위는 0.5~2.0m로 측정되었다. 최대 수평 미끄러짐은 10.5m였다. 흔들림은 52초 동안 지속되었다. 이로 인해 쓰나미가 발생하여 흑해 연안에 1m에서 3m 높이로 해안을 강타했다. 1939년 지진으로 인한 쿨롱 응력 전달은 북아나톨리아 단층을 따라 서쪽으로 진행되는 파열을 촉진했다. 1939년 이후 규모 6.7 이상인 지진 10건이 이 단층의 1,000km 구간에서 발생했다.
4. 피해 규모 및 상황
지진으로 약 116,720채의 건물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겨울에 발생했기 때문에 피해 지역에 구호 물품이 전달되기 어려웠다.
처음 사망자 수는 약 8,000명이었다. 다음 날인 12월 28일에는 사망자 수가 20,000명으로 증가했다고 보도되었다. 같은 날 기온이 -30°C까지 떨어졌다. 긴급 구조 작전이 시작되었다. 1월 5일까지 지진과 저온, 눈보라, 홍수로 인해 거의 33,000명이 사망했다.
5. 지진의 영향 및 후속 조치
지진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는 튀르키예가 내진 설계 규정을 채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에르진잔 시의 피해는 매우 광범위하여 구시가지는 완전히 버려졌고, 새로운 정착지가 북쪽으로 조금 더 떨어진 곳에 건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