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1. 개요
1957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는 건강 문제로 사임한 이시바시 단잔의 후임으로 기시 노부스케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 후 실시되었다. 선거는 결선 투표제로 진행되었으며, 당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 대의원에게 선거권이 주어졌다. 기시 노부스케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총재에 재선되었으며, 이후 미일 안보 조약 개정을 추진했다.
1957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선거 개요
| 선거 이름 | 1957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
|---|
| 선거 유형 | 총재 선거 |
|---|---|
| 진행 여부 | 아니요 |
| 이전 선거 | 1956년 12월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
| 이전 선거 연도 | 1956년 12월 |
| 다음 선거 | 1959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
| 다음 선거 연도 | 1959년 |
| 선거 날짜 | 1957년 3월 21일 |
선거 제도
| 선거 제도 | 결선투표제 |
|---|---|
| 유권자 수 | 당 소속 중의원 의원: (불명) 당 소속 참의원 의원: (불명) 지방 대의원 표: 92 합계: (불명) |
후보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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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노부스케
| 후보 1 | 기시 노부스케 |
|---|---|
| 득표수 1 | 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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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무라 겐조
| 후보 2 | 마쓰무라 겐조 |
|---|---|
| 득표수 2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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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미쓰지로
| 후보 3 | 이시이 미쓰지로 |
|---|---|
| 득표수 3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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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무라 도쿠타로
| 후보 4 | 기타무라 도쿠타로 |
|---|---|
| 득표수 4 | 1 |
총재 정보
| 총재 | 총재 |
|---|---|
| 선거 전 총재 | 이시바시 단잔 |
| 선거 후 총재 | 기시 노부스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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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거 배경
전년 12월 이시바시 단잔이 총재로 선출되어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했지만, 건강 문제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해졌다. 1957년 1월 31일, 이시바시는 이전 총재 선거에서 경쟁했던 기시 노부스케 외무대신을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로 지명했다. 2월 25일, 내각이 내각총사직하고, 같은 날 기시 노부스케가 국회에서 총리 지명을 받아 제56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여 제1차 기시 내각이 발족했다. 이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가 실시되었다.
기시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 후에 총재 선거가 실시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기시에 대한 신임 투표의 의미가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