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뉴질랜드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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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6년 뉴질랜드 총선은 혼합형 비례대표제(MMP)를 도입한 후 처음으로 치러진 선거로, 1993년 선거 이후 의석 재편과 선거구 개편이 이루어졌다. 선거 결과, 국민당이 1당을 차지했지만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뉴질랜드 제일당이 약진하여 다당제 구도를 형성했다. 결국 국민당과 뉴질랜드 제일당이 연정을 구성하여 짐 볼저가 총리로 재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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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뉴질랜드 총선 | |
---|---|
지도 | |
![]() | |
선거 정보 | |
선거 이름 | 1996년 뉴질랜드 총선 |
투표율 | 2,135,175명 (88.28%) 5.46% |
국가 | 뉴질랜드 |
유형 | 의회 |
선거일 | 1996년 10월 12일 |
진행 여부 | no |
이전 선거 | 1993년 뉴질랜드 총선 |
이전 선거 연도 | 1993년 |
차기 선거 | 1999년 뉴질랜드 총선 |
차기 선거 연도 | 1999년 |
선출 의석 | 하원의 총 120석 |
과반 의석 | 61석 |
선출 의원 | 의원 |
여론 조사 | 1996년 뉴질랜드 총선 여론 조사 |
정당별 결과 | |
국민당 | |
![]() | |
대표 | 짐 볼저 |
대표 취임일 | 1986년 3월 26일 |
정당 | 뉴질랜드 국민당 |
대표 지역구 | 타라나키-킹 컨트리 |
지난 선거 의석수 | 50석, 35.05% |
선거 전 의석수 | 41석 |
의석수 | 44석 |
의석 변동 | 3석 |
지역구 투표 결과 | 699,073표 33.91% 1.14% |
정당 투표 결과 | 701,315표 33.87% |
노동당 | |
![]() | |
대표 | 헬렌 클라크 |
대표 취임일 | 1993년 12월 1일 |
정당 | 뉴질랜드 노동당 |
대표 지역구 | 오와이라카 |
지난 선거 의석수 | 45석, 34.68% |
선거 전 의석수 | 41석 |
의석수 | 37석 |
의석 변동 | 4석 |
지역구 투표 결과 | 640,884표 31.08% 3.60% |
정당 투표 결과 | 584,159표 28.19% |
뉴질랜드 제일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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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윈스턴 피터스 |
대표 취임일 | 1993년 7월 18일 |
정당 | 뉴질랜드 제일당 |
대표 지역구 | 타우랑가 |
지난 선거 의석수 | 2석, 8.40% |
선거 전 의석수 | 5석 |
의석수 | 17석 |
의석 변동 | 12석 |
지역구 투표 결과 | 278,103표 13.49% 5.09% |
정당 투표 결과 | 276,603표 13.35% |
동맹 | |
![]() | |
대표 | 짐 앤더턴 |
대표 취임일 | 1995년 5월 7일 |
정당 | 동맹 |
대표 지역구 | 위그럼 |
지난 선거 의석수 | 2석, 18.21% |
선거 전 의석수 | 2석 |
의석수 | 13석 |
의석 변동 | 11석 |
지역구 투표 결과 | 231,944표 11.25% 6.96% |
정당 투표 결과 | 209,347표 10.10% |
행동당 | |
![]() | |
대표 | 리처드 프레블 |
대표 취임일 | 1996년 3월 24일 |
정당 | 행동당 |
대표 지역구 | 웰링턴 센트럴 |
지난 선거 의석수 | 아직 설립되지 않음 |
선거 전 의석수 | 0석 |
의석수 | 8석 |
의석 변동 | 8석 |
지역구 투표 결과 | 77,319표 3.75% 신생 |
정당 투표 결과 | 126,442표 6.10% |
통합 뉴질랜드 | |
대표 | 클라이브 매튜슨 |
대표 취임일 | 1995년 6월 28일 |
정당 | 통합 뉴질랜드 |
대표 지역구 | 더니딘 사우스 출마 (낙선) |
지난 선거 의석수 | 아직 설립되지 않음 |
선거 전 의석수 | 7석 |
의석수 | 1석 |
의석 변동 | 6석 |
지역구 투표 결과 | 42,666표 2.07% 신생 |
정당 투표 결과 | 18,245표 0.88% |
정부 | |
정부 형태 | 정부 |
이전 정부 | 볼저 2기 |
이후 정부 | 볼저 3기 |
이전 정부 정당 | 뉴질랜드 국민당 |
이후 정부 정당 | 국민당-제일당 |
2. 역사적 배경
1993년 선거에서 국민당과 노동당은 각각 50석과 45석을 획득했고, 연합당과 뉴질랜드 제일당은 각각 2석을 얻었다. 그러나 MMP 도입을 앞두고 의회 내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3개의 새로운 정당이 설립되는 등 1996년 선거 직전의 상황은 1993년 선거와는 상당히 달랐다.
정당 | 1993년 선거 획득 의석 | 1996년 선거 시점 의석 | 변화 이유 |
---|---|---|---|
국민당 | 50 | 41 | 9명의 의원 이탈 |
노동당 | 45 | 41 | 4명의 의원 이탈 |
연합당 | – | 7 | 전 국민당 의원 4명과 전 노동당 의원 3명이 결성 |
뉴질랜드 제일당 | 2 | 5 | 초기 의원들에 전 국민당 의원 2명과 전 노동당 의원 1명 합류 |
연합당 | 2 | 2 | 변화 없음 |
보수당 | – | 1 | 전 국민당 의원 2명이 창당; 1명은 이후 무소속이 됨 |
기독민주당 | – | 1 | 전 국민당 의원이 창당 |
무소속 | – | 1 | 전 국민당(그리고 잠시 보수당) 의원 Ross Meurant |
1996년 총선에서는 MMP 도입으로 인해 지역구 의석수가 감소하고 비례대표 의석수가 증가했다. 하원은 120석으로 구성되었으며, 그중 65석은 지역구 의원(남섬 16석, 북섬 44석, 마오리 선거구 5석)으로 채워졌고, 나머지 55석은 비례대표 의석이었다.[3]
2. 1. 선거구 재조정
1996년 선거는 1993년 선거법 조항에 따라 선거구 경계가 크게 바뀌면서 주목할 만하다.[3] MMP 선거 제도가 도입되면서 선거구 수를 줄여야 했고, 이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MMP 하에서는 1993년 선거에서 선출된 의원 수보다 34석 줄어든 65명의 지역구 의원만 선출되었다.많은 선거구가 폐지되었고, 그 지역은 완전히 새로운 선거구에 통합되었다. 1996년 선거에서 경합한 선거구의 절반 이상이 새로 구성되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경계 변경이 컸다. ''Wanganui''는 ''Whanganui''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총 73개의 선거구가 폐지되었고, 29개의 선거구가 새로 만들어졌으며, 10개의 선거구가 재구성되어 결과적으로 34개의 선거구가 감소했다.
남섬1967년 선거구 재분배 이후 남섬의 일반 선거구 수는 25개로 고정되어 있었다. 1996년 선거부터 남섬 선거구 수는 16개로 고정되었다. 남섬 일반 명부의 유권자 수를 16으로 나눈 값은 북섬과 마오리 선거구의 목표 규모가 되는데, 이를 남섬 할당량이라고 한다.[4]
에이번, 아와루아, 크라이스트처치 북부, 클루사, 더니든 서부, 펜덜턴, 리틀턴, 말버러, 랑기오라, 셀윈, 세인트 올번스, 세인트 킬다, 시든햄, 태즈먼, 티마루, 와이타키, 월리스, 웨스트코스트, 얠드허스트 선거구는 남섬에서 폐지되었다. 기존의 6개 선거구 (크라이스트처치 중부, 더니든 북부, 인버카길, 넬슨, 오타고, 라카이아)는 유지되었다. 7개의 선거구 (아오라키, 뱅크스 페닌슐라, 클루사-사우스랜드, 일람, 카이코우라, 와이마카리리, 웨스트코스트-태즈먼)가 새로 만들어졌다. 3개의 선거구 (크라이스트처치 동부, 더니든 남부, 위그램)가 재구성되었다.
북섬위에서 설명한 계산을 바탕으로 북섬 선거구의 목표 규모는 44개로 나타났다.
버컨헤드, 이스트코스트베이즈, 이스턴베이오브플렌티, 이스턴헛, 이든, 파노스, 프랭클린, 기즈번, 글렌필드, 헤이스팅스, 하우라키, 호크스베이, 헨더슨, 헤레타웅가, 홉슨, 호로웨누아, 호윅, 아일랜드베이, 카이마이, 카이파라, 카피티, 킹컨트리, 마나와투, 마타카나, 마타마타, 미라마, 마운트앨버트, 오네훙가, 온슬로, 오타라, 파히아투아, 팬뮤어, 파파쿠라, 파파토에토에, 펜캐로, 포리루아, 라글런, 레무에라, 로스킬, 타라나키, 타라웨라, 테아타투, 티티랑이, 통가리로, 와이카레모아나, 와이카토, 와이파, 와이토타라, 웰링턴-카로리, 웨스턴헛 선거구는 북섬에서 폐지되었다. 기존의 20개 선거구 (올버니, 오클랜드 중부, 해밀턴 동부, 해밀턴 서부, 망게레, 마누레와, 네이피어, 뉴린, 뉴플리머스, 노스쇼어, 파쿠랑가, 파머스턴노스, 랑기티케이, 로토루아, 타마키, 타우랑가, 와이라라파, 와이타케레, 황거누이, 황거레이)는 유지되었다. 17개의 선거구 (마히아, 오와이라카, 와이파레이라, 카라피로, 오하리우-벨몬트, 포트와이카토, 엡솜, 헛사우스, 마나, 마누카우이스트, 마웅가키에키에, 노스코트, 노스랜드, 리무타카, 롱고타이, 타라나키-킹컨트리, 투키투키)가 새로 만들어졌다. 8개의 선거구 (베이오브플렌티, 코로만델, 후누아, 오타키, 로드니, 타우포, 웰링턴 중부)가 재구성되었다.
마오리 선거구기존의 4개 마오리 선거구 (이스턴마오리, 노던마오리, 서던마오리, 웨스턴마오리)는 모두 폐지되었다. 계산 결과 5개의 마오리 선거구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테푸쿠오테훼누아, 테타이하우아우루, 테타이라휘티, 테타이토케라우, 테타이통가였다.
3. 선거 과정
윈스턴 피터스가 이끄는 뉴질랜드 제일당은 아시아인 이민자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 반(反)이민 노선을 선거 운동의 전면에 내세웠다. 1990년대부터 정부의 이민 규제가 완화되면서 아시아인 이민자가 폭등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이전과 같은 규제책을 다시 마련해 지금의 수보다 80%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제일당의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자 아시아인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뉴질랜드 소수민족당이 새로 창당되기도 하였다.[12][13]
1996년 뉴질랜드 총선은 마이클 로스의 사임으로 인한 보궐선거를 피하기 위해 10월 12일에 치러졌다. 의석이 공석이 된 후 6개월 이내에 총선이 있을 경우 보궐선거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총 유권자 수 2,418,587명 중 88.3%가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율은 이전 두 번의 선거보다 약간 높아졌지만, 여전히 1980년대에 예상되었던 수준보다는 다소 낮았다. 일반 선거구 수는 95개(1993년)에서 60개(1996년)로 감소한 반면, 마오리 선거구는 4개에서 5개로 증가했다. 새로운 의석 55개는 비례대표 후보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선거구의 경계가 수정되거나 폐지되었다.
이 선거에는 842명의 후보가 출마했고, 등록된 정당은 21개였으며 각 정당은 명부를 제출했다. 후보 중 459명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였고, 152명은 지역구 후보만, 231명은 비례대표 후보만이이었다. 후보의 73%(616명)는 남성이었고, 27%(226명)는 여성이었다.[5][6]
3. 1. 정당 및 후보
1996년 총선에는 21개의 정당이 등록되었으며, 842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주요 정당으로는 국민당, 노동당, 뉴질랜드 제일당, 연합당, ACT 뉴질랜드 등이 있었다.[7]1993년 총선에서 국민당과 노동당은 각각 50석과 45석을 획득했고, 연합당과 뉴질랜드 제일당은 각각 2석을 얻었다. 그러나 혼합 비례 대표제(MMP) 도입을 앞두고 의회 내 재편이 이루어지면서 3개의 새로운 정당이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1996년 선거 직전의 상황은 1993년 선거 결과와 크게 달라졌다.
정당 | 1993년 선거 획득 의석 | 1996년 선거 시점 의석 | 변화 이유 |
---|---|---|---|
국민당 | 50 | 41 | 9명의 의원 이탈 |
노동당 | 45 | 41 | 4명의 의원 이탈 |
연합당 | – | 7 | 전 국민당 의원 4명과 전 노동당 의원 3명이 결성 |
뉴질랜드 제일당 | 2 | 5 | 초기 의원들에 전 국민당 의원 2명과 전 노동당 의원 1명 합류 |
연합당 | 2 | 2 | 변화 없음 |
보수당 | – | 1 | 전 국민당 의원 2명이 창당; 1명은 이후 무소속이 됨 |
기독민주당 | – | 1 | 전 국민당 의원이 창당 |
무소속 | – | 1 | 전 국민당(그리고 잠시 보수당) 의원 Ross Meurant |
3. 2. 선거 운동
윈스턴 피터스가 이끄는 뉴질랜드 제일당은 아시아인 이민자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 반(反)이민 노선을 선거 운동의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1990년대부터 정부의 이민 규제가 완화되면서 아시아인 이민자가 폭등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이전과 같은 규제책을 다시 마련해 지금의 수보다 80%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제일당의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자 아시아인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뉴질랜드 소수민족당이 새로 창당되기도 하였다.[12][13]노동당은 당수인 헬렌 클락이 선거 토론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고 보건, 교육, 사회복지 분야에서 강력한 선거 운동을 펼친 것에 크게 기인하여 최상위 두 정당 중 하나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반면, 짐 볼거는 활기 없는 선거 운동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9]
1996년 총선 운동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부분은 기독교 연합이었다. 이는 기독교 민주당과 기독교 유산당의 연합체였다. 이 정당은 일부 여론 조사에서 잠시 5%의 문턱을 넘었지만, 총선에서는 4.33%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의회 진출 자격을 얻지 못했다. 마오리족의 라타나 운동을 제외하고, 공공연히 종교적인 정당이 의회 진출에 가장 근접한 사례였다.
3. 3. 여론조사
1996년 뉴질랜드 총선 전 여론조사에서는 여러 정당들이 경합을 벌이는 양상을 보였다. 주요 정당으로는 국민당, 노동당, 연합당 등이 있었다. 특히, 뉴질랜드 제일당은 초반에는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지지율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조사기관 | 발표일자 | 국민당 | 노동당 | 동맹 | 제일당 | 행동당 | 통합당 |
---|---|---|---|---|---|---|---|
TVNZ/헤일런 | 1993년 12월 4일 | 35 | 25 | 27 | 10 | - | - |
TVNZ/헤일런 | 1994년 2월 19일 | 35 | 32 | 23 | 8 | - | - |
TVNZ/헤일런 | 1994년 3월 5일 | 32 | 32 | 27 | 7 | - | - |
TVNZ/헤일런 | 1994년 3월 26일 | 32 | 29 | 27 | 9 | - | - |
TVNZ/헤일런 | 1994년 5월 7일 | 34 | 30 | 24 | 8 | - | - |
TVNZ/헤일런 | 1994년 5월 28일 | 32 | 29 | 27 | 7 | - | - |
TVNZ/헤일런 | 1994년 7월 2일 | 36 | 29 | 24 | 8 | - | - |
TVNZ/헤일런 | 1994년 7월 30일 | 35 | 27 | 28 | 7 | - | - |
TVNZ/헤일런 | 1994년 9월 3일 | 36 | 22 | 32 | 7 | - | - |
TVNZ/헤일런 | 1994년 10월 1일 | 35 | 24 | 29 | 8 | - | - |
TVNZ/헤일런 | 1994년 10월 29일 | 39 | 27 | 25 | 7 | - | - |
TVNZ/헤일런 | 1994년 12월 3일 | 40 | 28 | 22 | 6 | 2 | - |
TVNZ/헤일런 | 1995년 5월 9일 | 38 | 25 | 24 | 5 | 4 | - |
One/콜마 브런턴 | 1995년 6월 15일 | 36 | 27 | 24 | 6 | 3 | - |
One/콜마 브런턴 | 1995년 7월 17일 | 42 | 24 | 20 | 5 | 2 | 2 |
One/콜마 브런턴 | 1995년 8월 13일 | 42 | 23 | 20 | 5 | 2.9 | 0.7 |
One/콜마 브런턴 | 1995년 9월 7일 | 46 | 24 | 17 | 5 | 1.9 | 0.3 |
4. 선거 결과
1996년 총선 결과, 국민당이 노동당을 꺾고 제1당 자리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MMP) 도입으로 인해 양당 모두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뉴질랜드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나오지 않은 것은 1931년 선거 이후 65년 만이었다. 국민당은 연정 파트너로 예상되었던 행동당, 통합 뉴질랜드와 의석을 합쳐도 과반에 미치지 못했고, 노동당 역시 동맹과의 의석을 합쳐도 과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윈스턴 피터스가 이끄는 제일당이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65개 지역구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은 없었다. 국민당은 30석, 노동당은 26석을 획득했다. 뉴질랜드 제일당은 6석을 얻었는데, 특히 전통적으로 노동당 텃밭이었던 5개 마오리 지역구를 모두 석권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연합당, ACT당, 통합당은 각각 1석씩을 얻었다.
'''1996년 뉴질랜드 총선 선거구 결과'''[11]
일반 선거구 | ||
---|---|---|
선거구 | 당선자 | 소속 정당 |
알바니 | 머레이 매컬리 | 국민당 |
아오라키 | 짐 서튼 | 노동당 |
오클랜드 중앙 | 주디스 티자드 | 노동당 |
뱅크스 페닌슐라 | 데이비드 카터 | 국민당 |
베이 오브 플렌티 | 토니 라이얼 | 국민당 |
크라이스트처치 중앙 | 팀 바넷 | 노동당 |
크라이스트처치 동 | 래리 서덜랜드 | 노동당 |
클루타-사우스랜드 | 빌 잉글리시 | 국민당 |
코로만델 | 머레이 맥린 | 국민당 |
더니든 노스 | 피트 호지슨 | 노동당 |
더니든 사우스 | 마이클 컬렌 | 노동당 |
엡섬 | 크리스틴 플레처 | 국민당 |
해밀턴 이스트 | 토니 스틸 | 국민당 |
해밀턴 웨스트 | 밥 심콕 | 국민당 |
후누아 | 워렌 키드 | 국민당 |
허트 사우스 | 트레버 말러드 | 노동당 |
일람 | 제리 브라운리 | 국민당 |
인버카길 | 마크 펙 | 노동당 |
카이코우라 | 더그 키드 | 국민당 |
카라피로 | 존 럭스턴 | 국민당 |
마히아 | 재닛 매키 | 노동당 |
마나 | 그레이엄 켈리 | 노동당 |
망게레 | 타이토 필립 필드 | 노동당 |
마누카우 이스트 | 로스 로버트슨 | 노동당 |
마누레와 | 조지 호킨스 | 노동당 |
마웅가키에키에 | 벨린다 번 | 국민당 |
네이피어 | 제프 브레이브룩 | 노동당 |
넬슨 | 닉 스미스 | 국민당 |
뉴린 | 필 고프 | 노동당 |
뉴 플리머스 | 해리 듀인호번 | 노동당 |
노스 쇼어 | 웨인 맵 | 국민당 |
노스코트 | 이안 레벨 | 국민당 |
노스랜드 | 존 카터 | 국민당 |
오하리우-벨몬트 | 피터 던 | 통합당 |
오타고 | 가반 허리히 | 국민당 |
오타키 | 주디 키얼 | 노동당 |
오와이라카 | 헬렌 클락 | 노동당 |
파쿠랑가 | 모리스 윌리엄슨 | 국민당 |
팔머스톤 노스 | 스티브 마헤리 | 노동당 |
포트 와이카토 | 빌 버치 | 국민당 |
라카이아 | 제니 쉴리 | 국민당 |
랑기티케이 | 데니스 마셜 | 국민당 |
리무타카 | 폴 스웨인 | 노동당 |
로드니 | 록우드 스미스 | 국민당 |
롱고타이 | 아네트 킹 | 노동당 |
로토루아 | 맥스 브래드포드 | 국민당 |
타마키 | 클렘 시미치 | 국민당 |
타라나키-킹 컨트리 | 짐 볼저 | 국민당 |
타우포 | 마크 버튼 | 노동당 |
타우랑가 | 윈스턴 피터스 | 제일당 |
투키투키 | 릭 바커 | 노동당 |
와이파레이라 | 브라이언 니슨 | 국민당 |
와이라라파 | 와이엇 크리치 | 국민당 |
와이타케레 | 브라이언 니슨 | 국민당 |
4. 1. 정당별 득표 및 의석 배분
정당 | 지역구 | 비례대표 | 의석 | |||||
---|---|---|---|---|---|---|---|---|
# | % | 의석 | # | % | 의석 | |||
bgcolor= | | 뉴질랜드 국민당 | 699,073 | 33.91 | 30 | 701,315 | 33.84 | 14 | 44 |
bgcolor= | | 뉴질랜드 노동당 | 640,884 | 31.08 | 26 | 584,159 | 28.19 | 11 | 37 |
bgcolor= | | 뉴질랜드 제일당 | 278,103 | 13.49 | 6 | 276,603 | 13.35 | 11 | 17 |
bgcolor= | | 동맹 | 231,944 | 11.25 | 1 | 209,347 | 10.10 | 12 | 13 |
bgcolor= | | 뉴질랜드 행동당 | 77,319 | 3.75 | 1 | 126,442 | 6.10 | 7 | 8 |
bgcolor= | | 통합 뉴질랜드 | 42,666 | 2.07 | 1 | 18,245 | 0.88 | - | 1 |
colspan="9" | | ||||||||
뉴질랜드 소수민족당 | - | - | - | 2,514 | 0.12 | - | - | |
유효표 수 | 2,061,746 | 2,072,359 |
1996년 뉴질랜드 총선에서 국민당은 33.84%의 득표율로 44석을 획득하여 제1당이 되었지만,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노동당은 28.19%의 득표율로 37석을 획득했다. 뉴질랜드 제일당은 13.35%의 득표율로 17석을 획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연합당은 10.10%의 득표율로 13석, ACT 뉴질랜드는 6.10%의 득표율로 8석을 획득했다.
4. 2. 지역구 및 비례대표 결과
1996년 총선에서 국민당은 지역구 30석, 비례대표 14석을 획득하여 총 44석을 차지했고, 노동당은 지역구 26석, 비례대표 11석을 획득하여 총 37석을 차지했다. 뉴질랜드 제일당은 지역구 6석, 비례대표 11석을 획득하여 총 17석을 차지했다.[11]정당 | 지역구 | 비례대표 | 의석 | |||||
---|---|---|---|---|---|---|---|---|
# | % | 의석 | # | % | 의석 | |||
bgcolor= | | 뉴질랜드 국민당 | 699,073 | 33.91 | 30 | 701,315 | 33.84 | 14 | 44 |
bgcolor= | | 뉴질랜드 노동당 | 640,884 | 31.08 | 26 | 584,159 | 28.19 | 11 | 37 |
bgcolor= | | 뉴질랜드 제일당 | 278,103 | 13.49 | 6 | 276,603 | 13.35 | 11 | 17 |
bgcolor= | | 동맹 | 231,944 | 11.25 | 1 | 209,347 | 10.10 | 12 | 13 |
bgcolor= | | 뉴질랜드 행동당 | 77,319 | 3.75 | 1 | 126,442 | 6.10 | 7 | 8 |
bgcolor= | | 통합 뉴질랜드 | 42,666 | 2.07 | 1 | 18,245 | 0.88 | - | 1 |
colspan="9" | | ||||||||
뉴질랜드 소수민족당 | - | - | - | 2,514 | 0.12 | - | - | |
유효표 수 | 2,061,746 | 2,072,359 |
어떤 정당도 65개 지역구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국민당은 30석, 노동당은 26석을 획득했다. 뉴질랜드 제일당은 6석을 얻었는데, 특히 전통적으로 노동당 텃밭이었던 5개 마오리 지역구를 모두 석권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연합당, ACT당, 통합당은 각각 1석씩을 얻었다.
'''1996년 뉴질랜드 총선 선거구 결과'''[11]
일반 선거구 | ||
---|---|---|
선거구 | 당선자 | 소속 정당 |
알바니 | 머레이 매컬리 | 국민당 |
아오라키 | 짐 서튼 | 노동당 |
오클랜드 중앙 | 주디스 티자드 | 노동당 |
뱅크스 페닌슐라 | 데이비드 카터 | 국민당 |
베이 오브 플렌티 | 토니 라이얼 | 국민당 |
크라이스트처치 중앙 | 팀 바넷 | 노동당 |
크라이스트처치 동 | 래리 서덜랜드 | 노동당 |
클루타-사우스랜드 | 빌 잉글리시 | 국민당 |
코로만델 | 머레이 맥린 | 국민당 |
더니든 노스 | 피트 호지슨 | 노동당 |
더니든 사우스 | 마이클 컬렌 | 노동당 |
엡섬 | 크리스틴 플레처 | 국민당 |
해밀턴 이스트 | 토니 스틸 | 국민당 |
해밀턴 웨스트 | 밥 심콕 | 국민당 |
후누아 | 워렌 키드 | 국민당 |
허트 사우스 | 트레버 말러드 | 노동당 |
일람 | 제리 브라운리 | 국민당 |
인버카길 | 마크 펙 | 노동당 |
카이코우라 | 더그 키드 | 국민당 |
카라피로 | 존 럭스턴 | 국민당 |
마히아 | 재닛 매키 | 노동당 |
마나 | 그레이엄 켈리 | 노동당 |
망게레 | 타이토 필립 필드 | 노동당 |
마누카우 이스트 | 로스 로버트슨 | 노동당 |
마누레와 | 조지 호킨스 | 노동당 |
마웅가키에키에 | 벨린다 번 | 국민당 |
네이피어 | 제프 브레이브룩 | 노동당 |
넬슨 | 닉 스미스 | 국민당 |
뉴린 | 필 고프 | 노동당 |
뉴 플리머스 | 해리 듀인호번 | 노동당 |
노스 쇼어 | 웨인 맵 | 국민당 |
노스코트 | 이안 레벨 | 국민당 |
노스랜드 | 존 카터 | 국민당 |
오하리우-벨몬트 | 피터 던 | 통합당 |
오타고 | 가반 허리히 | 국민당 |
오타키 | 주디 키얼 | 노동당 |
오와이라카 | 헬렌 클락 | 노동당 |
파쿠랑가 | 모리스 윌리엄슨 | 국민당 |
팔머스톤 노스 | 스티브 마헤리 | 노동당 |
포트 와이카토 | 빌 버치 | 국민당 |
라카이아 | 제니 쉴리 | 국민당 |
랑기티케이 | 데니스 마셜 | 국민당 |
리무타카 | 폴 스웨인 | 노동당 |
로드니 | 록우드 스미스 | 국민당 |
롱고타이 | 아네트 킹 | 노동당 |
로토루아 | 맥스 브래드포드 | 국민당 |
타마키 | 클렘 시미치 | 국민당 |
타라나키-킹 컨트리 | 짐 볼저 | 국민당 |
타우포 | 마크 버튼 | 노동당 |
타우랑가 | 윈스턴 피터스 | 제일당 |
투키투키 | 릭 바커 | 노동당 |
와이파레이라 | 브라이언 니슨 | 국민당 |
와이라라파 | 와이엇 크리치 | 국민당 |
와이타케레 | 브라이언 니슨 | 국민당 |
5. 선거 이후
선거 결과 국민당과 노동당 모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짐 볼저와 헬렌 클라크는 제일당을 연립 정부에 참여시키겠다고 선언했다.[14] 윈스턴 피터스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며 양당 모두와 협상하겠다고 밝혔으나,[15] 결국 제일당은 국민당을 선택했고, 볼저는 총리직을 유지했다.
5. 1. 연립 정부 구성
선거 결과 국민당과 노동당 모두 우호 세력을 포함시켜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자, 짐 볼저와 헬렌 클라크는 모두 제일당을 연정에 합류시켜 내각을 꾸리겠다고 선언하였다.[14] 이에 윈스턴 피터스는 양당 중 어느 한 쪽도 연정 협상에서 배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였다.[15] 최종적으로 제일당은 연정 파트너로 국민당을 선택하면서 볼저는 총리로 재취임할 수 있었다.5. 2. 정치적 영향
1996년 뉴질랜드 총선은 새로운 선거 제도인 MMP 도입 이후 뉴질랜드 정치에 다당제 구도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이 용이해지면서 다양한 의견이 의회에서 대변될 수 있게 되었다.[7] 뉴질랜드 제일당은 17석 (그 중 5석은 'Tight Five'라는 그룹이 마오리 선거구에서 획득)을 차지하며 "킹메이커"의 위치에 서게 되었고, 결국 국민당과 연정을 구성하여 짐 볼거 총리의 정부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8]기존 의회에서 각각 2석을 차지했던 연합당과 뉴질랜드 제일당은 제도 변화의 결과로 각각 13석과 17석으로 의석 수를 늘렸다. 신생 정당인 ACT 뉴질랜드 또한 8석을 얻으며 수혜를 입었다.[7] 반면, 유나이티드 뉴질랜드당은 단 한 석만 유지하며 사실상 몰락했다. 보수당은 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전략적 투표는 오하리우-벨몬트와 웰링턴 중앙 선거구에서 처음으로 발생했다.
노동당은 당수인 헬렌 클락이 선거 토론에서 승리하고 보건, 교육, 사회복지 분야에서 강력한 선거 운동을 펼친 덕분에 최상위 두 정당 중 하나의 지위를 유지했다.[9] 기독교 연합은 4.33%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의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마오리족의 라타나 운동을 제외하고 공공연히 종교적인 정당이 의회 진출에 가장 근접한 사례였다.
유권자들은 MMP에 대비하여 소수 정당 후보에게 지역구 투표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민당이나 노동당이 승리한 여러 선거구에서 다른 주요 정당 후보가 3위 또는 4위를 차지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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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Māori in Parliament: Sandra Lee reflects on introduction of MMP
https://www.rnz.co.n[...]
2021-10-1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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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eara.govt.n[...]
[3]
Act
Electoral Act 1993
http://www.legislati[...]
1993-08-17
[4]
웹사이트
How Electorates are Calculated
http://www.elections[...]
Electoral Commission
2013-03-12
[5]
서적
The Baubles of Office: The New Zealand General Election of 2005
Victoria University Press
2007
[6]
서적
New Zealand Votes: The General Election of 2002
Victoria University Press
2003
[7]
웹사이트
Kiwis react to Winston Peters, the kingmaker
https://www.nzherald[...]
[8]
웹사이트
A decade of MMP: 1996 election left country hanging
http://www.nzherald.[...]
2006-10-11
[9]
서적
The 1996 General Election in New Zealand: Proportional Representation and Political Change
Australian Institute of Policy and Science
1997
[10]
웹사이트
1996 GENERAL ELECTION – OFFICIAL RESULTS AND STATISTICS
https://archive.elec[...]
Electoral Commission
2020-10-18
[11]
웹사이트
Part VI – Elected Candidates Votes
http://archive.elect[...]
New Zealand Chief Electoral Office
1996
[12]
뉴스
뉴질랜드 인종갈등 「이민」 정치쟁점 부상
동아일보
1996-05-05
[13]
뉴스
'돈 있는 중국인' 질시·부러움속 뉴질랜드 등 이민규제 움직임
한겨레
1996-10-29
[14]
뉴스
뉴질랜드 총선 다수당없어 혼미
매일경제
1996-10-14
[15]
뉴스
인종주의 비판속 뚝심·수완 평가
한겨레
199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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