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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수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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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 유교의 대의명분을 따라 충절을 지켰던 고려 말의 학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조선 왕조에서 벼슬을 하지 않고 은둔하거나,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가 살해되기도 하였습니다.
두문동 72현(杜門洞七十二賢)특히 두문동에 들어가 은둔했던 72명은 두문동 72현이라고 불립니다. 이들은 조선 건국 후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고, 두문동(현재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들어가 마을의 동쪽과 서쪽에 문을 세우고 빗장을 걸어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문동 72현의 이름이 모두 전해지지는 않지만, 알려진 인물로는 임선미(林先味), 조의생(曺義生), 성사제(成思齊), 박문수(朴門壽), 민안부(閔安富), 김충한(金沖漢), 이의(李倚) 등이 있습니다.
고려수절신의 상징성고려수절신은 후대에 절개의 상징으로 숭상되었습니다. 조선 영조는 1740년에 개성을 방문했을 때 부조현(不朝峴)의 유래를 듣고 시를 짓고 비석을 세웠으며, 1751년에는 두문동 72현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고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정조 때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알려져 개성에 표절사(表節祠)라는 사당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고려수절신


  • 이양중(李養中):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석탄(石灘). 두문동 72현 중 한 명으로, 광주시에 묘가 있습니다.
  • 이이(李이): 본관은 원주(原州). 고려 말 예부 상서를 지낸 이반계(李攀桂)의 아들입니다.
  • 노신(魯愼): 함평 노씨, 호는 악은(嶽隱).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었고, 상장군, 함풍군에 봉해졌습니다. 조선 건국 후 두문동에 들어갔다가 함평으로 돌아가 은거했습니다.
  • 길재(吉再), 서견(徐甄), 김주(金澍): 이양중과 함께 절의를 지킨 사군자(四君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수절신은 단순한 역사 속 인물들을 넘어, 절개와 충절이라는 유교적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로 조선시대 내내,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 의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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