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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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고리 고린은 1940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러시아의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 유머 작가이다.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응급실 의사로 잠시 일했지만, 1960년대부터 풍자적인 글을 쓰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렌콤 극장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며 <헤로스트라토스를 잊어라>, <스위프트가 만든 집>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사랑의 공식>,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등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2000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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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리 고린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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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그리고리 이즈라일레비치 오프슈테인 |
| 출생 | 1940년 3월 12일, 모스크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소련 |
| 사망 | 2000년 6월 15일 (향년 60세), 모스크바, 러시아 |
| 국적 | 유대인, 소련, 러시아 |
| 직업 | 시인, 작가 |
| 묘지 | 바간코보 묘지 |
| 모교 | 제1 모스크바 국립 의과대학교 |
| 활동 정보 | |
| 활동 기간 | 알 수 없음 |
| 장르 | 알 수 없음 |
| 서명 | |
2. 생애
그리고리 고린은 1960년대부터 풍자적인 기사와 스케치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작가를 직업으로 선택했다. 그의 아버지 이즈라일 아벨레비치 옵시테인(Израиль Абелевич Оф-штейн, 1904∼2000)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공을 세운 소비에트 육군 장교였고, 어머니는 응급실 의사였다.
2. 1. 초기 생애
소비에트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와 의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포돌리아의 볼로치스크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소질을 보였으며, 일곱 살 때 처음으로 시를 썼다.[1] 초등학교에서도 단편소설이나 콩트 같은 짧은 글을 창작하곤 했다.[1] 1963년 세체노프 제1 모스크바 의과대학(세체노프 제1 모스크바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한동안 구급차 의사로 일했다. 이때도 글쓰기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풍자와 유머가 가득한 그의 글은 여러 잡지나 신문에 실렸다.[1] 학생 시절 아마추어 극작에 참여했고, 처음에는 학생들의 지역 KVN 네트워크 클럽을 위한 스케치를 썼다.2. 2. 의대 졸업과 작가 활동 시작
고린은 모스크바 세체노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4년 정도 응급실에서 의사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에도 꾸준히 글을 썼으며, 풍자와 유머가 담긴 그의 글은 여러 잡지와 신문에 실리면서 점차 유명해졌다. 1963년 세체노프 제1 모스크바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한동안 구급차 의사로 일했다.[1]1966년, 동료 작가 아르카디 아르카노프와 코미디 <유럽으로>를 공동 집필했으며, 이후에도 <연회>, <저택에서 벌어진 작은 코미디> 등을 함께 작업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1970년대에는 TV 코미디쇼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명성이 높아지면서 소련 작가동맹 회원이 되었고, 의사 일을 그만두었다.
학생 시절에는 아마추어 극작에 참여하여 지역 KVN 네트워크 클럽을 위한 스케치를 쓰기도 했다.[1] 1960년대부터 풍자적인 기사와 스케치를 발표하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1] ''유노스트'' 잡지의 유머 부서 수석으로 일했으며, ''갈카 갈키나''라는 필명을 사용했다.[1] 1966년에는 첫 번째 책 ''하나의 표지 아래 넷''(공저)이 출판되었다.[1]
2. 3. 필명과 개명
그는 아버지의 성(姓) 옵시테인과 어머니의 성 고린스카야를 합쳐 고린시테인(Го-ринштейн)이란 필명을 사용하다가 1963년에 고린이란 성으로 완전히 개명했다. 고린의 뜻을 묻자 그는 ‘그리고리 옵시테인이 성을 바꾸기로 결심했다(Гриша Офштейн Ре-шил Изменить Национальность)’란 문장의 첫 글자를 땄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2. 4. 작가로서의 성공과 극작가 데뷔
고린은 학생 시절 아마추어 극작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지역 KVN 네트워크 클럽을 위한 스케치를 썼다. 1960년대부터 풍자적인 기사와 스케치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작가를 직업으로 선택했다. 그는 ''유노스트'' 잡지의 유머 부서 수석으로 일했으며, 필명 ''갈카 갈키나''를 사용했다.1966년, 동료 작가 아르카디 아르카노프와 함께 첫 번째 책인 ''하나의 표지 아래 넷''을 출판했다. 1978년부터 1990년까지 고린은 인기 TV 프로그램인 ''웃음 주변''(Vokrug Smekha)에 정기적으로 출연했다.
2. 5. 렌콤 극장과의 협업
1970년대 고린은 렌콤 극장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면서 인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마르크 자하로프와 함께 제작한 <헤로스트라토스를 잊어라>, <스위프트가 만든 집>, <추모 기도>, <광대 발라키례프> 같은 작품은 렌콤 극장을 명문 극장으로 승격시킨 도약대가 되었다. 특히 자하로프가 영화화한 <사랑의 공식>과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은 기록적인 관객 동원에 성공한 명작이었다.2. 6. 죽음
고린은 2000년 6월 15일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아프면 병원에 가보라고 진지하게 권했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2000년 6월 15일 밤, 모스크바 자택에서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바간코보 묘지에 묻혔다.[1]3. 주요 작품
그리고리 고린은 희곡과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희곡으로는 틸 오일렌슈피겔을 소재로 한 ''틸''(1970)을 비롯하여 뮌히하우젠 남작, 숄렘 알레이헴, 에드먼드 킨,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다. 시나리오로는 ''포타포프 멈춰!''(1974), 셜록 홈즈의 모험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모던 코미디, 사랑의 공식 등이 있다.
3. 1. 희곡
| 제목 | 설명 |
|---|---|
| 틸 | 틸 오일렌슈피겔과 기타 국내 민담을 느슨하게 기반으로 함 (1970) |
| 헤로스트라투스를 잊어라! | 비극 코미디 (1972) |
| 진실한 이야기 | 뮌히하우젠 남작에 관한 이야기 (1974) |
| 스위프트가 지은 집 | (1980) |
| 현상 | (1984) |
| 안녕, 콤페르! | (1985) |
| 평균 솜털의 집고양이 | 블라디미르 보이노비치와 공동 집필 (1989) |
| 기념 기도 | 숄렘 알레이헴의 작품을 느슨하게 기반으로 함, 연극 (1989), 1993년 텔레비전 버전으로 제작 |
| 킨 IV | 에드먼드 킨의 전기를 느슨하게 기반으로 함 (1991) |
| 양쪽 집에 재앙이 있기를!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느슨한 속편 (1994) |
| 왕의 게임 | (1995) |
| 럭키맨-언럭키맨 (Schastlivtsev-Neschastlivtsev) | (1997) |
| 발라키레프 바보 | 연극 (1999), 2002 텔레비전 버전으로 제작 |
3. 2. 시나리오
| 연도 | 제목 | 비고 |
|---|---|---|
| 1988 | 용을 죽이다 | |
| 1986 | 나의 다정하게 사랑스러운 탐정 | 셜록 홈즈의 모험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모던 코미디 |
| 1984 | 사랑의 공식 | |
| 1983 | 스위프트가 지은 집 | |
| 1980 | 가련한 후사르를 위해 한마디 | |
| 1980 | 벌거벗은 쿠렌초프 | |
| 1980 | 6번 공장 사건 | |
| 1979 | 바로 그 뮌하우젠 | |
| 1978 | 벨벳 시즌 | |
| 1976 | 용감함을 위한 100그램 | |
| 1976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
| 1975 | 큰 집의 작은 코미디 | |
| 1974 | 포타포프 멈춰! |
4. 문화적 영향
고린의 많은 금언들은 소련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예를 들어, "수풀 속의 피아노"[2]는 즉흥적인 행사를 위한 꼼꼼한 준비를 의미한다. 이 표현은 1966년 아르카디 아르카노프와 고린의 유머집 ''우연히''에 처음 등장했다.[3]
참조
[1]
문서
mostly those by Mark Zakharov and Eldar Ryazanov
[2]
웹사이트
Comments on "piano in the bushes"
http://www.gramota.r[...]
2009-04-08
[3]
뉴스
Arkady Arkanov, anchor of Vokrug Smekha Non-Stop
http://www.tvkultura[...]
Kultura TV channel
201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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