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승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김경승(金景承, 1915년 ~ 1992년 2월 16일)은 대한민국의 조각가입니다. 본관은 설성이며, 아호는 표천(瓢泉)입니다. 일본식 이름은 가네시로 게이쇼(金城景承)입니다.
생애 및 활동
- 1915년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했습니다.
- 1933년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 1934년 일본 단천화학교(川端畵學校)를 거쳐 1939년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했습니다.
- 1930년대 동경미술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와 조선미술전람회(선전)을 무대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 조선미술전람회 조각부에서 연 4회 특선, 이왕가상 1회 및 총독상 2회를 수상했습니다.
- 1945년 광복 후에는 근대화된 사회적 여건 속에서 많은 기념 조형물과 동상을 제작했습니다.
- 이화여자대학교, 홍익대학교 등에서 조각 교수로 후진을 양성했습니다.
- 서울시 문화상(1958), 삼일문화상 예술본상(1964),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공로상 등을 수상하며 국내 조각계의 거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창설위원, 역대 심사위원, 초대작가(1949-1975), 심사부위원장(1974)을 역임했습니다.
- 서울시 문화위원, 문교부 예술위원을 역임했습니다(1948-1968).
- 이충무공 동상, 김구 선생 동상, 맥아더 장군 동상 등 40여 점의 동상을 제작 건립했습니다(1953-1977).
- 1976년 윤치호 선생 동상을 제작 건립했습니다(인천 송도고교).
작품 경향김경승의 작품은 정확한 사실적인 관찰을 토대로 한 사실적인 표현이 특징입니다. 그는 대상을 최소한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조형화하여,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를 추구했습니다. 이를 위해 양감과 구조를 탐구하고,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구상 조각 계열에 속하며, 때로는 아카데미즘에 빠질 우려도 있었지만, 한국 현대 조각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친일 논란김경승은 일제 강점기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그의 형은 서양화가 김인승이며, 두 사람 모두 일제 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화단의 원로로 활동했습니다.
김경승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김경승 |
본명 | 김경승 |
출생일 | 1915년 7월 18일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개성시 |
사망일 | 1992년 2월 16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분야 | 조각 |
학력 | 도쿄 미술학교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