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진 (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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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김규진(金奎鎭, 1868년 ~ 1933년)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서화가입니다. 자는 용삼(容三), 호는 해강(海岡)이며 본관은 남평(南平)입니다.
생애 및 활동:
- 평안남도 중화에서 출생하여 외숙부인 소남(少南) 이희수(李喜秀)에게 서화를 배웠습니다.
- 18세(1885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8년간 오창석(吳昌碩), 오대징(吳大?) 등 유명 서화가들과 교류하며 서화를 공부했습니다.
- 1894년 귀국 후 정열적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서화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1896년 궁내부 외사과 주사로 임명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영친왕의 서법을 지도하는 서사(書師)에 임명되었습니다.
- 1907년 일본에서 사진을 배우고 귀국하여 국내 최초의 사진관인 '천연당사진관'을 개설했습니다.
- 1913년 천연당사진관에 최초의 근대 영업 화랑인 고금서화관(古今書畵觀)을 병설하여 자신의 작품 및 다른 명가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했습니다.
- 1915년 서화미술연구회를 창설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습니다.
- 1918년 오세창, 조석진, 안중식 등과 함께 서화협회를 결성했습니다.
-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 서예와 사군자부 심사위원을 역임했습니다.
작품 세계:
- 전, 예, 해, 행, 초 모든 서법에 능했으며, 특히 큰 글씨(대자)에 독보적이었습니다.
- 금강산 구룡폭포 옆 바위에 새긴 '미륵불(彌勒佛)' 글씨가 유명합니다.
- 묵화를 잘 그렸으며, 특히 묵죽(墨竹)의 대표자로 여러 종류의 대나무를 그렸습니다.
- 창덕궁 희정당 응접실에 걸린 〈외금강 만물상도〉, 〈해금강 총석정도〉가 있습니다.
저술:
- 『죽란보(竹蘭譜)』
- 『서법진결(書法眞訣)』
평가:김규진은 청나라 유학을 통해 습득한 대륙적 필치와 호방한 필력으로 한국 서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전통 서화를 계승하면서도 근대적인 변화를 수용하여 한국 서화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김규진 (서화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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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출생일 | 1868년 |
출생지 | 조선 평안도 중화군 |
사망일 | 1933년 (66세) |
사망지 | 경성부 |
분야 | 서예, 서화 |
직업 | 서예가, 서화가 |
소속 | 前 조선서화협회 이사장 |
친척 | 이희수(외숙부) |
배우자 | 김진애 |
자녀 | 김영기(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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