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김기수 (조선)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김기수(金綺秀, 1832년 3월 30일 ~ 1894년 6월 30일)는 조선 말기의 문신입니다. 자는 연지(秊芝), 호는 창산(蒼山)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입니다.
생애:


  • 1832년(순조 32년) 한성부에서 태어났습니다.
  • 1867년 학행 관련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여 현감을 지냈습니다.
  • 1875년(고종 12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응교로 뽑혔습니다.
  • 1876년 예조참의로 있을 때 강화도 조약 체결 후, 조선 최초의 수신사 대표로 임명되어 일본에 파견되었습니다.
  • 일본에서 20여 일간 머무르며 근대 문물을 시찰하고, 귀국 후 《일동기유(日東記游)》, 《수신사일기(修信使日記)》를 저술하여 쇄국 정책의 문제점과 개화의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 이후 덕원부사, 대사성 등 여러 벼슬을 역임했습니다.
  • 황간, 청풍 지방에서 민란이 발생하자 안핵사로 파견되어 민란을 수습하고 참판에 올랐습니다.
  • 글씨를 잘 써서 서예가로도 이름이 높았으며, 시 <영매> 등이 전해져 옵니다.

업적 및 영향:

  • 조선 최초의 수신사 대표로서 일본의 근대 문물을 시찰하고, 이를 통해 조선의 개화 정책 추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 그의 보고서와 저술은 조정의 일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이후 신사유람단 파견 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 온건개화파의 일원으로서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습니다.

가족 관계:

  • 아버지: 김준연(金駿淵)
  • 어머니: 평산 신씨 부인
  • 부인: 유운환(兪雲煥)의 딸
  • 장남: 김사식(金思軾, 1845년 ~ ?)
  • 차남: 김사철(金思轍, 1847년 ~ 1935년)
  • 삼남: 김사중(金思重, 1851년 ~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