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반·김익겸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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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김반·김익겸의 묘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무덤으로,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김반(金槃, 1580∼1640) 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 자는 사일(士逸), 호는 허주(虛舟)입니다. 사계 김장생의 아들이며 신독재 김집의 아우입니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자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에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했습니다. 인조반정 후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위하여 공주까지 모셨고,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습니다. 병자호란 때 다시 왕을 호위하여 강화도로 모셨으며,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었습니다.
 - 김익겸(金益兼, 1614∼1636) 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 자는 여남(汝南)입니다. 김반의 아들이며, 1635년(인조 13)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했습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에서 항전하다가 섬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김상용 등과 함께 자결하였습니다.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광원부원군에 추서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正)입니다.
 
김반·김익겸의 묘역은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땅(사패지)에 조성된 광산 김씨 가문의 묘역입니다. 묘역에는 김반과 그의 부인들의 묘, 큰아들 김익렬, 셋째 아들 김익겸, 손자 김만준의 묘 등이 있습니다. 특히, 김익겸의 묘는 아버지 김반의 묘보다 위쪽에 있는 역장(逆葬)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아들의 공이 크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묘역이 있는 전민동은 조선시대에 정민역(貞民驛)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묘역 입구에는 재실이 있으며, 묘역 내에는 김익겸의 충신정려, 손자 김만중의 효자정려, 연산서씨와 연일정씨의 열녀정려 등 두 개의 정려문이 있습니다.
의 요충지였습니다. 묘역 입구에는 재실이 있으며, 묘역 내에는 김익겸의 충신정려, 손자 김만중의 효자정려, 연산서씨와 연일정씨의 열녀정려 등 두 개의 정려문이 있습니다.
| 김반·김익겸의 묘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묘 정보 | |
| 이름 | 김반·김익겸의 묘 | 
| 한자 표기 | 金槃·金益兼의墓 | 
| 위치 |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 산18-1번지 | 
| 종류 | 문화재자료 | 
| 지정 번호 | 7 | 
| 지정일 | 1989년 3월 18일 | 
| 시대 | 조선시대 | 
| 면적 | 김반 묘(74.8m2), 김익겸 묘(40.1m2) | 
| 수량 | 묘 2기, 비 1기 | 
| google_map | 대전 전민동 김반·김익겸의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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