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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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디출리는 마나슬루 북쪽과 히말출리 남동쪽에 위치한 산괴의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동쪽에서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눈사태 위험과 빙하로 인해 접근이 어렵다. 1970년 일본 원정대가 동쪽 능선과 면을 통해 등반을 시도했으나, 정상 도달 여부는 불확실하다. 1979년 폴란드 등반가에 의해 서쪽 부벽을 통해 최초 등반이 확인되었으며, 2014년 기준으로 추가 등반 시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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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디출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 지도 정보 | |
| 기본 정보 | |
| 이름 | Ngadi Chuli (나가디 출리) |
![]() | |
| 표고 | 7871m |
| 표고 순위 | 세계 20위 |
| 상대 높이 | 1020m |
| 위치 | 네팔 |
| 산맥 | 히말라야 산맥 |
| 등반 정보 | |
| 최초 등반 | 1970년 10월 19일, Hiroshi Watanabe (히로시 와타나베)와 Lhakpa Tsering (라크파 체링) 또는 1979년 5월 8일, Ryszard Gajewski (리샤르트 가예프스키)와 Maciej Pawlikowski (마치에이 파울리코프스키) |
| 가장 쉬운 경로 | 눈/얼음 등반 |
2. 지리적 특징
마나슬루 북쪽과 히말출리 남동쪽에 위치한 나디출리는 이 산괴의 가운데에 위치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동쪽에서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눈사태 위험과 사방으로 활동하는 빙하 때문에 접근하기 어렵다. 가파른 서쪽 면은 바깥쪽 봉우리와 빙하 계곡 뒤로 물러나 있으며, 툴라기 빙하 위로 3200m 이상 솟아 있다. 이 산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는 가파르고 기술적인 암벽으로 덮여 있으며, 이 중 가장 높은 봉우리만 이름이 붙어 있다.
2. 1. 지형
마나슬루 북쪽과 히말출리 남동쪽에 위치한 나디출리는 이 산괴의 가운데에 위치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동쪽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어서 바로 옆에 있는 산들보다 짧고 다소 둥근 모양이지만, 눈사태의 위험과 모든 방향에서 활동적인 빙하에 둘러싸여 접근하기 어렵다. 가파른 서쪽 면은 바깥쪽 봉우리와 빙하 계곡 뒤로 물러나 있으며, 툴라기 빙하 위로 3200m 이상 솟아 있다. 이 산은 길이 전체에 걸쳐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는 가파르고 기술적인 암벽으로 덮여 있으며, 이 중 가장 높은 봉우리만 이름이 붙어 있다.2. 2. 봉우리
마나슬루 북쪽과 히말출리 남동쪽에 위치한 나디출리는 이 산괴의 가운데에 위치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동쪽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어서 바로 옆에 있는 산들보다 짧고 다소 둥근 모양이지만, 눈사태의 위험과 모든 방향에서 활동적인 빙하에 둘러싸여 접근하기 어렵다. 가파른 서쪽 면은 바깥쪽 봉우리와 빙하 계곡 뒤로 물러나 있으며, 툴라기 빙하 위로 3200m 이상 솟아 있다. 이 산은 길이 전체에 걸쳐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는 가파르고 기술적인 암벽으로 덮여 있으며, 이 중 가장 높은 봉우리만 이름이 붙어 있다.3. 등반 역사
나디출리는 세계에서 20위 안에 드는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등반 성공 횟수는 한두 번에 불과하다. 최초 등반으로 추정되는 것은 1970년 일본 원정대의 와타나베 히로시와 셰르파 락파 체링이 동쪽 능선과 면을 통해 등반한 것이다. 그들은 정상 공격을 위해 약 7,500미터 지점의 5번 캠프를 출발했다. 정상에서 약 70미터 아래 지점에서 오후 1시 15분에 거의 두 시간 동안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려운 설릉을 내려온 후 그들은 약 7,600미터 지점에서 6,900미터의 4번 캠프까지 얼음벽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했다. 등반 파트너들이 그들의 추락을 목격했다. 정상에 도달했다면 표지기가 부착되었을 카메라와 와타나베의 아이스 액스 모두 추락으로 인해 파손되어, 그들이 정상에 도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1] 일본은 이 산의 등정을 확정하기 위해 1974년, 1978년에 세 번 더 원정대를 조직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마지막 원정에서는 산 남서쪽에서 세 명의 등반가가 눈사태로 사망했다.[1]
최초로 등반이 확인된 것은 1979년 폴란드의 등반가 리샤르트 가예프스키와 마체이 파블리코프스키가 서쪽 부벽을 통해 등반한 것으로, 고지대에서 5등급 암벽 등반을 포함했다.[1]
1982년 영국 육군 산악 협회 원정대가 몬순 이후 시즌에 피크 29에 도전했으나,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한 악천후와 물류 문제로 인해 원정대는 약 6096.00m 이상 등반하지 못했다.[2]
2014년 기준으로 1982년 영국 원정대 이후 이 산에 대한 추가적인 등반 시도는 없었다.[1]
나디출리 등반 역사는 다음과 같다.
| 연도 | 국가 | 등반대 | 결과 | 비고 |
|---|---|---|---|---|
| 1961년 | 일본 | 탐험대 | 최초 정찰 | |
| 1969년 | 일본 | 탐험대 | 7350미터 도달 | |
| 1970년 | 일본 | 와타나베 히로시, 셰르파 락파 체링 | 첫 등정 (미확인) | 동릉, 동면 등반. 추락사. |
| 1978년 | 일본 | 탐험대 | 실패 | 3명 눈사태로 사망 |
| 1979년 | 폴란드 | 리샤르트 가예프스키, 마체이 파블리코프스키 | 첫 등정 확인 | 서쪽 버트레스 경유 |
| 1982년 | 영국 | 육군 산악 협회 원정대 | 실패 | 악천후, 물류 문제 |
4. 타임라인
| 연도 | 사건 |
|---|---|
| 1961년 | 일본 등반대에 의한 첫 정찰. |
| 1969년 | 일본 등반대가 7350m까지 도달. |
| 1970년 | 일본 등반대에 의한 첫 등정 (미확인). |
| 1978년 | 일본 등반대 도전 중 3명이 눈사태로 사망. |
| 1979년 | 폴란드 등반대에 의한 확실한 첫 등정. |
참조
[1]
간행물
Ngadi Chuli (Peak 29), 7871 m
http://www.himalaya-[...]
himalaya-info.org
2014
[2]
서적
Military Mountaineering, page 171
hayloft
[3]
간행물
Ngadi Chuli (Peak 29), 7871 m
http://www.himalaya-[...]
himalaya-info.org
2014
[4]
간행물
Ngadi Chuli (Peak 29), 7871 m
http://www.himalaya-[...]
himalaya-info.org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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